종합

‘모자보건법 시행 40주년 특별세미나’로 바라본 방안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3-04-23 수정일 2013-04-23 발행일 2013-04-28 제 284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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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법, ‘예외 아닌 원칙’ 적용 돼야
낙태 폭넓게 허용·반생명적 시술 조장 악법
법 개정 운동·지속적인 홍보에 힘쓸 것 다짐
‘모자보건법’이 우리사회 ‘악법’으로 자리한 지 40년을 넘어섰다.

제정 전부터 사회 각계 반발이 거셌고, 제정과 시행 과정에서도 반대와 개정여론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법의 독소조항들은 1973년 제정 이후 10여 차례 개정 과정에서도 폐지는 고사하고 부분개정조차 되지 않았다. 도리어 사회여론은 사회·경제적 이유의 낙태까지 폭넓게 허용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들끓고 있다.

모자보건법 시행 40주년을 맞아, 독소조항 폐지는 물론 올바른 법 집행과 시행령 및 규칙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특히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와 생명운동본부(본부장 이성효 주교)는 모자보건법 개정에 보다 구체적인 힘을 보태기 위해 19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모자보건법 시행 40년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유재중 국회의원(새누리당·국회 보건복지위원회)과 공동으로 주최해 더욱 관심을 모은 장이었다.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세미나에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난 40년간 줄곧 모자보건법의 부당성과 역기능을 천명해왔지만, 이 법이 제정되고 존속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수많은 귀한 생명과 인간생명의 존엄성 및 의식을 잃어버렸다”고 토로했다. 또한 장 주교는 “이 세미나가 독소조항이 사라지는 또 다른 계기가 되어 태아들의 ‘침묵의 절규’가 사라지고 태아의 생명권이 우리와 동등하게 인정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미나에서는 최현일 연구원장(효산의료재단 샘병원)과 정종휴 교수(전남대 로스쿨), 정재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이연숙 전 국장(평화신문)이 의학과 법학·윤리적·인구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모자보건법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토론에는 차희제 회장(프로라이프 연합회 및 의사회), 신동일 교수(한경대 법학과), 김율 교수(대구가톨릭대 교양학부), 구영모 교수(울산대 의대)가 참여했다. 다음에서는 특별세미나 발표자 및 토론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현행 모자보건법의 문제점과 개정 방안을 간략히 짚어본다.

▨ 모자보건법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모자보건법은 근본적으로 폐지하거나 독소조항들을 전면 개정해야 하는 법이다.

‘모성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보건향상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라는 취지와 달리 태아의 생명 파괴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다. 이 조항이 바로 우리사회의 낙태를 사실상 허용한다. 구체적으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아기 본인이 아니라 부모에게 문제가 있어도 낙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산전검사를 통해 낙태하는 사례가 왕왕 일어나고, 각 장애인 단체 등은 “모자보건법 14조는 장애인들에겐 합법적인 사형선고”라며 폐지를 촉구해왔다. 강간 또는 인천 간 임신 뿐 아니라 부득이한 사유로 배우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을 때는 여성 본인의 의지로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바로 이 조항이다.

또 모자보건법은 반생명적인 시험관아기기술 등 난임 부부 지원과 피임제 보급도 허용한다. 특히 제28조는 이 법에 따라 낙태를 할 경우 형법 제269조 낙태죄의 처벌도 받지 않는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자보건법은 우리 사회의 기본 3법인 헌법과 민법, 형법과 모순되는 법 규정으로 존재하고 있다.

아울러 모자보건법은 경제성장을 위한 인구증가 억제방안의 한 부분으로 제정됐을 뿐 아니라, 최근엔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각돼 더욱 반생명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러한 정책 시도는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격과 인간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만 낳는다.

▨ 개정을 위해서는

모자보건법이 쉽게 개정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비뚤어지고 희박해져가는 사회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법 적용 및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낙태죄 규정에 따른 법집행과 사회적 감시기능이 거의 가동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법학 전문가들은 구체적으로 각 법조항의 구체적인 시행령과 시행규정만 올바로 정해도 마구잡이식 낙태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동일 교수(한경대 법학과)는 “모자보건법이 잘못된 법이라는 점은 비단 종교인 뿐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법조항이 개정되지 않는 원인은 법률적인 위임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독소조항인 14조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더욱 문제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신체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을 규정하는 대통령령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법 적용은 크게 달라진다. 신 교수는 “하지만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 질환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고, 이 규정을 만들기 위해 언제, 누구에게, 왜 위임되는지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며 “시행령과 규칙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태아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의과학 발전에 따라 조산·미숙아의 생존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임신 주수는 개정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의식 또한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번 특별세미나 발표자 및 토론자들은 ‘생명과 관련한 법은 예외 규정이 아닌 원칙’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예외보다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 개정 운동은 물론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의식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