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초석 놓은 133위 시복, 우리의 뿌리 찾는 계기” 순교 사실과 신앙고백 확인된 133위 순교자들 대상자로 선정 증언 수집과 현장 방문 조사 등 4년간 예비심사 과정 모두 마쳐 6월경 교황청 시성성에 전달돼 제출 자료 연구·토의 거쳐 심사 124위 경우 5년 만에 시복 성사 지속적 기도·순교자 현양 필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3월 25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이하 133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 법정을 종료했다. 예비심사 종료를 맞아 133위에 대한 시복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과정이 남았는지 살펴 본다.
■ 133위는 누구인가 133위는 조선 왕조 시기인 1785~1879년에 순교한 신앙선조 중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에 포함되지 않았던 순교자들이다. 자료와 증거 부족으로 시복 재판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동안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고 교회사 연구가 진척되면서 순교 사실과 신앙고백이 확인된 순교자들이 133위의 명단에 올랐다. 특히 133위 중에는 초기 한국교회를 이끈 평신도 지도자들이 대거 포함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133위 중 첫 명단에 오른 이벽(요한 세례자)을 비롯해 우리나라 첫 세례자로 익히 알려진 이승훈(베드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백서’로 유명한 황사영(알렉시오), 명례방 집회의 주역들인 김범우(토마스),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권철신(암브로시오) 등이 그들이다. 박해시기 별로는 명례방 사건(1785년)에 2위가, 신해박해(1791년)에 1위가, 신유박해(1801~1802년)에 19위가, 1815~1833년에 6위가, 기해박해(1839~1841년)에 10위가, 병인박해(1866~1872년)에 91위가, 리델 주교와 드게트 신부 체포사건(1878~1879년)에 4위가 순교했다. ■ 12년 여정의 결실 133위의 시복 추진은 2009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에 대한 제2차 시복 추진’을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경우 비교적 명확한 신앙고백과 순교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반면 133위에는 신앙 고백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거나 배교를 했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는 등 여러 가지 사유로 124위 시복 추진 과정에서 미뤄졌던 순교자들이 포함됐다. 이들의 시복 추진을 위해서는 순교·순교자와 박해·박해자의 개념을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고 규명하는 노력, 그만큼 철저한 준비와 과정이 필요했다. 시복 추진 대상자를 선정해 시복 안건 제목을 결정하는 데만 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고, 2013년 3월 춘계 정기총회를 통해 시복 추진 안건 제목이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로 정해졌다. 이어 주교회의는 ‘역사와 고문서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4년에 걸쳐 시복 대상 순교자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시복을 위해 교회법적인 심사를 거치는 예비심사 법정은 2017년 2월 22일 개정됐다. 133위 시복 안건 재판관인 유흥식 주교는 박동균 신부(서울대교구)를 재판관 대리로, 최인각 신부(수원교구)를 검찰관으로, 시복시성특위 연숙진(아녜스) 간사를 공증관으로 임명했다. 예비심사 중에는 역사와 고문서 전문가, 14개 관련 교구 시복 추진 담당자 등 22명의 증인에게 133위의 생애, 순교 사실과 순교 평판(명성)에 관해 듣고, 133위에 관련된 현장들을 직접 방문, 조사해 133위에 대한 ‘공적 경배 없음’을 확인했다. 또 소송 기록문서 검열, 청원인 보충 증거자료 제출 등을 거쳐 예비심사의 모든 과정을 마쳤다. 133위 예비심사 재판은 4년 동안 총 33회기에 걸쳐 진행됐다. ■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이번 예비심사 법정의 결과물인 소송 기록 문서(조서)는 올 6월경 교황청 시성성으로 전달돼 교황청 시복 절차를 거치게 된다. 예비심사 종료로 한국교회에서 할 수 있는 시복 추진은 모두 끝난 셈이다. 시성성은 심사 서류를 접수하고 하느님의 종의 생애의 성덕이나 순교에 대한 신학자들의 판단을 근거로 심문요항을 준비한다. 시성성은 교구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와 토의를 거치고 청원인을 통해 교구 자료에 대한 질의나 추가자료 요구 등을 하게 된다. 이 심사를 문제없이 마치면 교황에게 시복 심사 결과가 보고되고 교황은 시복을 승인하는 교령을 반포한다. 시복시성에 대한 접수가 전 세계에서 쏟아지고 있어, 언제 시성성 심사가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124위 복자의 경우 한국교회의 순교자현양 열기에 힘입어 불과 5년 만에 시복이 성사된 만큼, 신자들의 지속적인 기도와 현양이 시복을 앞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33위 시복 안건 청원인으로 시성성에 조서를 전달하게 되는 김종강 신부(주교회의 관리국장)는 “우리 입장에서 시복이지만, 순교자들은 이미 우리 신앙의 빛을 비춰 주는 분들”이라며 “시복 절차는 마치 무수히 많은 별들 중에 우리가 바라보는 중요한 별들의 이름을 정하는 작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신앙 실천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며 신자들에게 “험난한 시대 속에서 신앙을 삶으로 살아간 133위를 기억하고 본받으며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