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12) 삶과 죽음의 해리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3-21 수정일 2023-03-21 발행일 2023-03-26 제 333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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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극도의 절망
인간실존을 최대한 단순하게 조망하면 삶과 죽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에서는 실존을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저는 실존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본질에 대한 자기규정’ 정도로 소박하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삶과 죽음 외에도 인간실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상호 모순된 개념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생리적인 것에서부터 시간, 의식작용, 관계, 가치, 영성 등 모든 측면에서 상반된 것이 공생 공존합니다. 인간실존에는 투입과 배출, 과거와 미래, 창조와 파괴, 사랑과 미움, 이해와 오해, 자유와 구속, 현실과 비현실(환상), 성(聖)과 속(俗), 한계와 초월 등 다종다양한 모순들이 서로 연결되고 덧대어져 있습니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인간은 앞서 열거한 모순들로 구성된 완제품이기에 자신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실존적 의미에서 인간은 세상의 부조리뿐 아니라 자신의 부조리한 내면들로 인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대부분 생이 다할 때까지 처음 만들어진 형태 그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내적 균열이 생길 정도로 외부로부터 반복해서 충격을 받게 되면 전혀 다른 양상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왜 이렇게 기획되었는지 본격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내부의 모순을 심각하게 따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기 추궁이 심해지면, 실존은 자체적으로 분해를 시작합니다. 또한 분해 과정에서 실존은 상호 모순된 어느 한쪽을 과도하게 지향하고 또 다른 한쪽을 과잉 부정하면서, 완성된 자기구조(완제품)를 더 악착같이 분해하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번 분해된 인간실존의 조각들은 다시 맞추려고 해도 원래의 상태(완제품)로 되돌아가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심리학 용어인 ‘해리’(dissociation)라는 단어에도 ‘분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무언가 구성된 요소들을 낱낱이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심리적 외상을 입은 사람에게 종종 해리 현상이 나타납니다. 현재의 자신을 감당할 수 없기에 고통받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자신도 마주한 적 없는 낯선 나를 끌어냅니다. 그 과정은 자기를 분해하고 재배치해서 전과 다른 속성의 나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 교체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해리 상태가 진행되면 자신도 본래의 나를 잊고 새로운 정체성을 진짜 나로 인식합니다. 또 기간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예 과거의 기억을 잃고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은 구별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대개 인간 삶 속에 죽음이 내재해 있고 그러한 죽음의 편린들이 인간의 삶을 더 본래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과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모순되지만 통합된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양립 불가능한 차원으로 인식합니다. 자살 행동을 실행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서 수용하는 정체성을 유지하지만 고통이 누적되고 극도의 절망 상태에 이르게 되면, 삶과 죽음이 분해, 유리(遊離)되면서 죽음에 치우치게 되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해리 현상과 유사하게 본래의 나를 잃고 자살행동이 가능한 낯선 나가 자기 내면에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이 가능해진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안전장치는 이제 죽음의 공포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죽음의 공포가 어쩌면 자살시도자들이 몰입해있는 해리 상태를 깨우는 마지막 자연치유력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