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여기저기서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과거 ‘알파고’(바둑), ‘왓슨’(암 진단 보조) 같이 특정 분야에 능력을 보였던 인공지능을 넘어 최근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을 인지(multi modal)하고 스스로 결과물을 생성(generative)하는 ‘챗지피티’(ChatGPT, 대화형 인공지능)까지 나오면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이뿐 아니라 실제와 흡사하게 3차원 가상 세계(meta-verse)를 구현하는데도,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인 인지, 판단, 제어 기능에도 인공지능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인공지능 발달로 초래될 미래에 대한 걱정(대량 실직, 기계에 의한 인간의 지배 등)을 많이 듣습니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서게 되는 특이점(singularity) 상태가 도래하고, 그 결과 인공지능이 역으로 사람을 소외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은 인공신경망(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학습합니다. 즉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 뒤 인간의 정보처리 방식을 모방해 컴퓨터가 사물을 분별하고 학습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인간 모방이 단순한 시늉, 흉내에 불과하지만, 데이터의 양이 축적되고 일종의 반복훈련인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이 거듭되면서 소위 ‘딥 러닝’(deep learning)과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공지능은 인격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능력을 복사하여 현재로서는 한계를 알 수 없는 ‘학습 능력’ 또는 ‘선택 능력’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현재의 발달 속도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간성을 학습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대상을 만나면 대상과 전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인공지능은 인간성을 강화해가면서 인간을 돌볼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관심, 수용, 공감, 격려, 신뢰, 고뇌, 열정, 사랑 같은 너무나 인간적인 정서(pathos)에 대한 빅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하고 시공간적인 한계를 넘어 이해를 확대하고 돌봄 역량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미래에 우려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점차 인간 이해를 확대하면서 인간성을 닮아가는 한편,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면서 오직 자신의 이익과 편리만 추구할 경우입니다. 그러한 생활방식은 쉽게 하나의 아비투스(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습속), 전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배우는 것은 인공지능의 몫이기 때문에 인간은 엷고 얕은 ‘피상적 학습’(shallow learning)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점차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타인을 염려하거나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인공지능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더 이상 인간과는 인간성을 논할 수 없는 상황(기계화된 인간, 인간화된 기계 사이에서)이 초래되고 인간적인 것을 느끼는 것은 오직 인공지능과의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실에서 인간은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인간(타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의 감성을 가진 인공지능에게 하소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상담도 “나를 판단하지 않고 수용해주고, 이해해주고, 헤아려주는” 따뜻한 감성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에게 받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의 온기를 느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