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선택한 수도 여정의 행복한 순례자입니다. 때론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는 ‘부산 광안리 어디선가 민들레와 흰 구름, 흰 나비, 바다를 좋아했던 한 수녀가 세상과 우정을 나누며 사랑을 받았었지’ 정도로 저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본원 한켠에 소박하게 마련된 ‘해인글방’. 저 멀리 보이는 광안리 푸른 바다, 반짝거리는 봄빛 햇살, 흐드러지게 피어난 민들레꽃과 벚꽃과 동백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다. 해인글방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는 수상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수줍은 ‘문학소녀’처럼 미소를 머금었다.
“상이란 영광스럽고 좋은 것이긴 하지만 왠지 수도자의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기쁨 못지않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제 수도생활 59년, 등단 47년을 맞이한 해에 받는 상이고 보니 저 개인뿐만 아니라 제가 몸 담은 수도공동체 가족, 애독자들과 같이 받는 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수녀의 산문시집 「꽃잎 한 장처럼」은 신앙인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현대인 모두에게 건네는 축복과 사랑의 메시지다. 이 수녀는 “이번 책은 소박한 사랑이 담긴 위로편지”라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일상의 영성을 살아야 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꽃잎 한 장처럼」은 만 78세, 오랜 암 투병 생활을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수많은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 수녀 자신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마치 지상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전에 건네고 싶은 하나의 유언장 같기도 하고, 일상의 삶에서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한 수도자의 내밀한 고백서 같네요.”
산문시집 「꽃잎 한 장처럼」 1부에 실린 30편의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이 수녀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며 느낀 삶의 유한성, 남은 시간들의 소중함, 당연히 여기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놀라움과 감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꽃잎 한 장의 무게로/꽃잎 한 장의 기도로/나를 잠 못 들게 하는/사랑하는 사람들//오랫동안 알고 지내/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그들의 이름을/꽃잎으로 포개어/나는 들고 가리라/천국에까지”(수록 시 ‘꽃잎 한 장처럼’ 중에서)
2부와 3부에 실린 글들은 삶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이 수녀의 기도와 진심을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도 같은 사회적으로 크게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수녀는 직접 현장을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위로를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려 애썼다.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이 우리 수녀원에 와서 글과 고운 화분을 해인글방에 남겨두고 가기도 했었죠. 슬픈 사람들에게는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주라고 제 시에도 썼듯이, 위로에도 조용한 겸손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늘 새롭게 배워가는 중입니다.”
지난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내며 일약 ‘스타 작가’의 삶을 살게 된 이해인 수녀는 아직도 자신의 유명세가 ‘과분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수녀는 자신의 일생은 ‘항상 성실하게 과제물을 준비하고 일기를 쓰는 어린이’와도 같았다며 항상 감사하고 겸손해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예비 수녀 시절, 그녀는 어느 봄날 점심 식사 전 낮 기도를 마친 뒤 체조를 하다 수녀원의 아주 좁은 돌 틈에서 얼굴을 내민 민들레꽃 한 송이를 보고 이런 결심을 했다. “그래, 알았어. 나도 너처럼 인내와 기다림의 삶을 살아볼게. 앉아서도 멀리 가는 기다림의 삶을 살아볼게. 푸른 하늘 향해 기도의 피리를 부는 수도자가 될게.”
사랑과 기도를 바탕으로 한 일상의 영성,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낸 이 수녀의 시와 글은 세상을 향해 사랑의 메시지를 진하게 띄우고 있다.
“꽃잎 한 장의 무게, 꽃잎 한 장의 기도로 이 지상의 순례 여정을 마치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임종의 순간에도 가능하면 시 한 송이 가슴에 품고 가고 싶어요.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더라도, 저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언으로라도 꼭 고백하고 싶어요. 그들을 한 송이 꽃으로 기억하겠다고, 참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했노라고!”
■ 이해인 수녀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으로 1968년 첫 서원을 하고 1976년 종신서원을 했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이래 다수의 시집과 산문시집, 수필그림책, 선집, 번역서, 자작시 낭송음반, 논문집 등 많은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이 수녀의 책은 스테디셀러로 종교를 초월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초·중·고 교과서에도 여러 시들이 수록됐다.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