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 의존하는 ‘바다’… 한 번의 투기로 오염 되돌릴 수 없어
교황, 최근 바다 중요성 강조
“모든 생명 잇는 연결 매개체”
교회도 광범위한 오염 우려
“하느님의 창조 질서 위협”
“준비는 끝났습니다.”
도쿄전력은 지난 7월 21일 외국 언론사 기자를 초청해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정화한 오염수를 바닷물과 희석해 방류하는 설비를 공개하는 설명회를 열었다. 그리고 방류에 필요한 모든 절차가 끝났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현재 133만t 이상의 오염수가 1000여 개 대형 탱크에 들어 있다. 투기가 시작되면 알프스로 정화한 오염수가 하루 최대 500t 가까이 배출될 예정이다. 일본 언론들은 기시다 총리가 방류에 반대하는 자국 어민들과의 조율을 거쳐 내달 중 방류 개시를 지시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투기가 임박하면서 일본과 가까운 우리나라 해역에서 잡히는 수산물 안전문제가 국민들 사이에 쟁점으로 대두됐다.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 측에 전달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계획 점검 종합보고서’에 대해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와 관련한 갑론을박의 그늘에 가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 있다. ‘바다의 아픔’이다.
■ IAEA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 VS 환경단체 “삼중수소 내부피폭 위험”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 전원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가동 중인 원자로 3기 및 사용후핵연료 수조의 냉각 기능이 상실됐다. 지하수가 건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배수관과 펌프가 작동을 멈추자 원자로 건물로 지하수가 들어왔고 방사성 잔해에 오염됐다. 또한 건물로 유입되는 일부 지하수는 연료 파편을 냉각시키는 데에 사용되며 방사능 물질에 오염됐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배출된 오염된 물은 저장탱크에 보관했지만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저장탱크가 가득 차는 시기를 고려해 2023년 봄부터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 후쿠시마 제1원전 앞바다에 방류하겠다고 2021년 발표했다.
방사능 오염수 투기 소식에 일본 어민들을 비롯해 한국 국민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배출과 관련된 계획 및 활동을 검토하기 위해 IAEA에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을 검토한 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 7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와의 면담에서 “IAEA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을 거쳐 (오염수 방류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렸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IAEA 보고서 발표와 함께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를 통해 삼중수소를 제외한 핵종들을 제거하고 삼중수소는 희석해 방류하겠다고 밝혔지만, 환경단체들은 실제 다핵종제거설비는 삼중수소 외에 탄소-14도 거르지 못해 일본 측의 방류 계획이 안전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7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 관련 일일브리핑에서 “ALPS 설비가 탄소-14를 거르지 못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면서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오염수에 남아 있는 탄소-14가 위험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해수 희석을 거친 후에는 농도가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 당연하므로, 국민들께서 탄소-14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20년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생물들의 DNA를 연구해 온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티머시 무쏘 생물학 교수는 삼중수소의 내부 피폭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삼중수소가 바다에 있는 생물체인 플랑크톤, 어패류 등을 통해 섭취되면 체내 유기화합물과 결합하게 된다”며 “유기결합 된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최대 500~600일까지 늘어날 수 있으며 체내에 남아 증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처음에는 삼중수소가 측정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수치일지라도,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했을 땐 독성이 있는 위험한 수준까지 삼중수소의 농도가 축적돼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바다는 우리의 연결고리
결국 다핵종제거설비가 거르지 못한 유해물질은 낮은 농도라도 바다에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바다가 원하지 않은 것들을 마음대로 버리려는 인간의 탐욕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구가 ‘공동의 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3월 파나마에서 열린 ‘아워 오션’(Our Ocean) 콘퍼런스 참가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인간이 의존하는 ‘연결 매개체’인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선물 받은 바다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바다는 서로를 이어주는 중요한 요소, 연결 매개체, 공동의 대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불공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산·운송·유통·소비 모델에서 낭비와 소비주의에 기반한 성장 전략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1년 한국과 일본 주교들도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에 힘을 모았다. 한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생태환경위원회는 일본 가톨릭 정의와평화협의회와 2월 9일 공동성명을 발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함유수를 해양으로 방류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한번 바다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절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10주기를 맞이한 지금, 일본 정부가 또다시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할지 예측할 수 없는 ALPS 처리수를 바다에 방출한다면 주민과 국민, 그리고 바다로 연결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큰 불안을 주고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임박한 가운데 지난 6월 26일 성명서를 발표한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나라 바다를 포함한 태평양 일대에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 상황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한 세상으로의 전환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 시점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공동의 집 지구 생태계에 대한 위협이며, 동시에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세상의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