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28주일, 군인주일

박효주
입력일 2025-10-08 00:01:11 수정일 2025-10-08 00:01:11 발행일 2025-10-05 제 346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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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2열왕 5,14-17 / 제2독서 2티모 2,8-13 / 복음 루카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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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치유를 체험한 한 외국인은 주님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그의 몸뿐 아니라 영혼에도 구원을 선물하십니다. 그 눈가에 맺힌 눈물이 어찌 가벼웠겠습니까. 한에 사무쳐 흘리던 눈물, 두려움에 떨며 흘리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오래전 성서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우리 삶 속에서도 주님의 은총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대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뀌어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합니다.인스타그램 @baeyounggil

물 귀한 이스라엘에서 요르단강은 젖줄입니다. 열왕기 하권 5장에 따르면 요르단강은 아람 장군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몸을 씻은 뒤 병에서 해방된 곳입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의 은총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음을 암시해 주는 예입니다.(루카 4,27 참조)

곧 주님의 은총이 그분의 가르침과 더불어 세상 만민에게 전파되리라는 예고에 해당합니다. 다만 우리는 나아만이 치유받았다는 점에만 집중하고, 그가 어떻게 그런 은총을 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왕기 하권 5장에서 엿보이는 그의 인품은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입기에 충분한 사람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아람 임금의 직급 높은 장군으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한센병 환자였는데, 그런 그에게 은총의 서막을 열어준 이는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한 소녀입니다. 그 소녀가 나아만을 도와줄 수 있는 예언자가 사마리아에 있다고 알려줍니다.(2열왕 5,3 참조) 놀랍지요. 자신을 잡아 온 타국인을 위해 충언을 해준다는 점이 말입니다. 아마도 나아만 부부는 포로 소녀의 마음을 얻을 만큼 선량하고 덕이 있었던 듯합니다.

나아만이 소녀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로 가자, 이스라엘 임금은 음모라 여겨 혼비백산합니다.(2열왕 5,7 참조) 엘리사가 심부름꾼을 보내어 나아만의 방문 목적을 알려준 뒤에야 안심합니다. 그 뒤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으로 가는데, 높은 장군의 행차이니 그 모습이 얼마나 위풍당당했을까요? 마을 사람들은 다 구경 나왔을 테고 엘리사도 당장 나가서 맞아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직접 가서 나아만의 상처를 들여다보거나 기도를 해주기는커녕 심부름꾼에게 전언하게 합니다. 요르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그라고 말입니다. 이에 나아만은 실망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봅니다. 그런데 강이 어이없이 작은 걸 보고 그만 역정을 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하들이 나서 그를 아버님이라 칭하며, 손해 볼 것 없으니 엘리사의 말대로 해보시라고 설득합니다.(2열왕 5,13 참조)

여기서도 생각해 봅시다. 만약 부하들이 나아만을 미워했다면 이런 말을 해주었을까요? 나아만이 소녀의 마음을 얻었듯이 부하들의 마음도 얻었기에 그들이 충성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말하자면 나아만은 치유의 은총을 우연히 누린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베풀어온 덕을 돌려받게 된 은총입니다.

나아만은 요르단강에서 몸을 씻고 병에서 해방된 뒤에야 엘리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부터는 하느님께만 제물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며(2열왕 5,17 참조), 흙도 두 가마니 청합니다. 이는 언뜻 이상해 보이는 청이지만 그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이스라엘 땅에서만’ 섬길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시편 137,4 등)

이방 땅은 우상숭배로 부정해진 곳인 데다(아모 7,17; 호세 9,3-5 참조), 당시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주신(主神)이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압은 크모스 신(민수 21,29 참조), 암몬은 밀콤 신(예레 49,1 참조), 바빌론은 므로닥 신(예레 50,2 참조)이 다스린다고 믿은 식입니다. 이에 나아만도 하느님을 아람 땅에서 섬기려면 이스라엘의 흙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나아만은 열왕기 하권 5장 1절에서 한센병 환자로 소개되지만, 격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아람 임금이 아끼던 장군이라 궁전 출입도 가능했을 터입니다. 여기서 나아만의 병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센병과 다른 종류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말 성경에 *‘나병’으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짜라앗’인데, 건선과 백반을 비롯한 악성 피부병을 통칭하던 말입니다. 옷·건물에 피는 곰팡이를 가리킬 때도 쓰였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문드러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한센병은 구약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발굴된 구약 시대의 인골 어디에서도 이런 병의 흔적은 발견된 예가 없습니다. 한센병은 기원전 200년경 등장한 걸로 추정되며, 오늘 복음에 언급되듯이 신약 시대에는 존재했던 걸로 보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나아만은 우리가 아는 병이 아닌 모종의 악성 피부병을 앓았던 셈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한센병에서 해방된 사람이 열 명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 덕분에 치유받은 뒤, 단 한 사람만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외국인이라 일컬어진 사마리아인만 그렇게 하였습니다. 마치 구약 시대에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오히려 율법을 어기고 우상숭배에 빠졌는데, 외국인인 아람 장군 나아만은 악성 피부병에서 해방된 뒤 엘리사를 찾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렸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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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명숙 소피아(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