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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르치기보다 사랑으로”…한국교회 최장 ‘44년 근속’ 교리교사 채근자 씨

박주현
입력일 2025-11-04 17:49:13 수정일 2025-11-04 17:49:13 발행일 2025-11-09 제 346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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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학교·보육 교사 꿈꿔 스스로 입교 후 교리교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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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근속 교리교사 채근자 씨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안겨주는 교리교사 소명 실천에 후배 교사들과 함께 꿋꿋이 헌신해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박주현 기자

한국교회 교리교사 중 최장기간인 44년 동안 근속해 온 채근자(소피아·65·인천교구 일신동본당) 씨는 한평생 교리교사로 헌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직무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꼽았다. 그는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무조건적 사랑을 아이들이 충만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리교사의 가장 큰 책임이자 존재 가치”라고 말했다.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채 씨가 교리교사가 된 것은 무엇보다 내면 깊은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학교 교사나 보육 교사를 꿈꿨고, 비신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입교했던 그의 마음속에는 일찍부터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대 졸업 후 10여 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한 것도, 생업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바람에서 비롯됐다.

“풋내기 신앙인이었던 그때는 ‘이건 내 길이고 해야 하는 일이니까’라는 생각뿐이었어요. 물론 의무감만으로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는 일에서 적성을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 그 의무감조차 예수님에게서 온 것임을 그땐 몰랐던 거죠.”

그 사랑은 아이들과의 ‘참다운 만남’(프란치스코 교황 자의 교서 「오래된 직무」 제5항)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드러났다. 매주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살피고, 성당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토요일마다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았다.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 등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은 집으로 찾아가 성당까지 동행하고, 간식도 더 챙겼다. 어두운 저녁이면 직접 집까지 데려다주며, “늦게 와도 괜찮아. 너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선생님에게는 두근거림이야”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사랑으로 보듬는 데 집중했어요. 복잡한 교리는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렵잖아요. 그저 이렇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챙겨주는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깊이 아낄 수 있는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이구나….’”

어른 간의 갈등에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면 다시 힘이 났다. 시끄럽다고 사제에게 꾸중을 듣고, 채 씨의 전화를 피하려고 토요일마다 집 전화선을 뽑아놓던 한 아이는 의젓하게 자라 본당 교리교사로 자원하며 채 씨와 함께했다. 진지함이 부족했던 한 아이는 그 누구보다 진중한 사제로 성장했다.

9월 28일 교황청에서 봉헌된 ‘교리교사의 희년’ 미사에서 레오 14세 교황에게 직접 교리교사 직무를 받은 채 씨는 “조건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아이들 마음에 심는 교리교사의 본분을 되새기고, 같은 사명에 헌신하는 동료 교사들을 격려하시는 교황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예수님의 무조건적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을 뛰어넘어요. 때론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부모나 가족, 선생님, 친구들의 사랑조차도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는 부족하지요. 그런 순수한 사랑에 아이들이 눈뜨도록 돕는 교리교사의 직무를 앞으로도 후배 선생님들과 함께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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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근속 교리교사 채근자 씨가 10월 29일 인천교구 일신동성당 성모 동산에서 레오 14세 교황으로부터 받은 교리교사 직무 수여 증서와 십자가를 들고 있다. 채 씨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안겨주는 교리교사 소명 실천에 꿋꿋이 헌신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주현 기자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