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 42,1-4.6-7 / 제2독서 사도 10,34-38 / 복음 마태 3,13-17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갈릴래아에서 요르단강으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해 스스로 요한을 “찾아가셨다”(마태 3,13)는 표현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파라기네타이’는 단순히 어떤 장소로 이동해 ‘왔다’는 의미를 넘어, 의도적이고 결정적인 공적 등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들의 한가운데로 내려오신 현현이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신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 세례 사건은 예수님의 사명이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고 전개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기 전에 먼저 죄인들과 연대하시기 위해 연약한 인간의 자리로 찾아오셨습니다. 더욱이 놀랍게도 죄 없으시면서도 죄인들과 함께 줄을 서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당시 종교인들은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세리들, 죄인들, 병자들과 분리시켰습니다. 그들은 규율을 지키고 제물을 바치는 데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완고하고 차갑고 동정심 없이 살피고 감시하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분리와 판단을 넘어서 그들 모두를 형제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사명 수행 방식은 공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죄인들과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실 때(루카 19,5; 요한 4,7; 요한 5,6 참조), 엠마오로 향하던 낙담한 제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실 때(루카 24,15 참조), 그리고 부활 후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요한 20,19 참조)도 예수님은 먼저 움직이는 분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요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기로 결단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로움(디카이오쉬네)’은 도덕적 올바름이나 법적인 정의를 넘어,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올바른 행위인 그분의 자비하신 마음을 드러내는 삶을 뜻합니다. 곧 연민과 자비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사람들 한가운데서 이루어야 할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서 드러난 이러한 ‘의로움의 실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주님의 종의 모습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3)라고 약자와 함께하는 정의를 선포한 이 예언은, 예수님의 죄인들과의 연대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종에게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이사 42,6)라고 하신 약속 또한, 세례받으시는 예수님 위에 성령이 내려오시는 장면에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분 자신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위한 사건입니다. 그날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날이며, 그 결과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우리 위에 머무르셨으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들이다”라고 선언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은총은 예수님께서 먼저 요르단강으로 찾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는 정화 예식이 아니라, ‘의로움’과 ‘성령의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영이 그 안에 머무시는 존재로 변화되고,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여정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이 의로움은 정의롭고 자비로운 태도, 곧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삶 안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이사 42,1; 마태 3,17 참조)가 됩니다. 따라서 주님 세례 축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글 _ 전봉순 수녀(그레고리아·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1985년 입회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과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을 수학했다. 그 후 동 대학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부산 가톨릭 신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 「구약성경 주해, 시편 Ⅰ- Ⅲ권」, 「시편 90편과 지혜로운 마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