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교황권의 승리와 프란치스코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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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2026-01-07 08:28:13 수정일 2026-01-12 16:25:51 발행일 2026-01-11 제 347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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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권 정점의 시대, 마구간에서 시작된 ‘제2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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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디 본도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장면들> 중 두 번째 벽화 <성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망토를 주는 모습>,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799년 레오 3세 교황이 프랑크족의 왕 카를로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축성하며 시작되었던 교황과 황제의 ‘양검론’(예수님께서 영적인 칼은 교황에게 세속의 칼은 황제에게)이라는 공생관계는 서로의 욕심으로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주교 서임권이라는 문제로 촉발된 싸움은 ‘카노사의 굴욕(1077년)’이라는 사건으로 하인리히 4세 황제가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게 무릎을 꿇으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세속의 권한을 둔 교황과 황제의 대립 시기를 지나 프란치스코가 활동하였던 13세기는, ‘교황은 자체 발광체인 태양, 황제는 그 태양 빛에 의존해서 빛나는 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교황권이 최고의 정점을 찍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1198~1216) 시절이었습니다. 교황의 축복 없이는 황제라는 칭호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군대는 없었지만, 파문이라는 막강한 교회 무기로 살아있는 황제도 지옥으로 보낼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원하신다’라는 구호 아래 성전이라 불리는 십자군 전쟁이 교황의 지휘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기로,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완성될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자치도시라고 불리는 코무네(Comune)가 등장할 정도로 상공업이 도시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영주들이나 수도원장들의 예속된 삶에서 벗어나 자기의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자유 시민의 삶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황권을 태양이라 부르던 시대, 상공업 발전과 자치도시 번성
탄생 설화로 예고된 ‘가난의 영성'…세속·영성 기로에서 가난의 길 선택

프란치스코는 1182년 아시시에서 태어나 1226년 44세의 나이로 아시시 성 밖 포르치운쿨라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제2의 그리스도’라는 별명처럼 프란치스코에게는 신비로운 탄생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피카 부인은 아이를 따뜻한 집 안에서 낳으려고 하였지만 산파의 어떤 도움도 소용없이 산고만 더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순간 지팡이를 짚고 집 안으로 들어온 한 순례자는 예언자처럼 피카 부인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아이는 편안한 집 안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집 밖의 마구간으로 가야 합니다.”

피카 부인은 순례자의 말을 믿고 마구간으로 가서 기적적으로 프란치스코를 출산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가 선종하고 300년이나 지나서야 문서상으로 처음 등장한 이 탄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아마도 마구간이라는 탄생 장소의 진위를 밝히려 했다기보다는 그의 삶은 첫 순간부터 예수님을 닮으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앞날에 관한 이야기는 조토 디 본도네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시시의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이 프란치스코를 볼 때마다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공경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 프란치스코 앞에 자기의 망토를 깔아 그 위를 걸어가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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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에 있는 프란치스코의 작은 경당. 마구간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이관술 씨 제공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간적인 토론을 하고 있고, 프란치스코 또한 자신 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에게 망토를 깔아준 사람의 눈을 보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프란치스코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에 이끌려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인간적 갈등은 계속됩니다.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프란치스코지만 자신의 본성인 측은지심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길에서 가난한 기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자신의 망토를 주저함 없이 벗어줍니다. 

이 모습은 비신자 시절 투르의 마르티노 성인(316~397)이 거지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에게 자신의 망토를 잘라 주었던 이야기를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림 속 배경을 보면 왼쪽 언덕 위에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보이고 있고 오른쪽 언덕 위에는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언덕 골짜기의 두 선이 만나는 지점에 프란치스코의 머리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세속을 상징하는 마을과 영적인 삶을 상징하는 수도원 사이에서 프란치스코는 아직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수도원 쪽을 향해 있는 그의 몸과 가난한 사람을 향한 그의 자비로운 행동은 앞으로 프란치스코가 어떤 삶을 살지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크로노스의 양적인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카이로스의 질적인 시간인 주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충만한 시간인 그때는 오로지 주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잡기 위해 사람은 등불을 들고 깨어있는 여인처럼 기다려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망토를 부여잡고 서 있는 프란치스코의 모습 속에서 그때가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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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