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충북농업기술원에서 특강을 맡게 되었다. 초청을 담당한 과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순간, 시간은 뜻밖에도 거꾸로 흘렀다. 그는 45년 전 가톨릭학생회 동아리에서 함께했던 제자였다. 그때 나는 지도교수였고, 그는 아직 세상 앞에 서툰 학생이었다. 졸업과 함께 각자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소식은 자연스레 끊겼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가 우연히 SNS에서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작은 인연의 실마리가 다시 강단 위의 만남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의를 앞두고 우리는 옛 동아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자매’라는 이름의 모임이 지금도 카카오톡 방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초대해 달라 했고, 곧 반가운 인사들이 이어졌다. “교수님, 꼭 한번 뵈어요”, “주례 서 주셨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호주에 사는 제자는 귀국하면 가장 먼저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흩어졌던 인연은 다시 사람을 불러 모았고, 결국 제자와 한 저녁 식탁에 마주 앉게 되었다.
그날 나는 얼마 전 출간한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 이야기」를 작은 기념으로 건넸다. 제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었고, 나는 여전히 학교와 가톨릭교수협의회 그리고 본당에서의 일상을 나누었다. 신앙 이야기와 추억이 겹치자 오랜 공백은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는 마치 늘 함께해 온 사람들처럼 웃고 공감했다. 헤어지며 제자들은 “영원한 동아리 지도교수님”이라는 과분한 말을 남겼다. 그 한마디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 뒤로 카톡방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살아 움직였다. 매일 복음 말씀이 공유되고, 신부님의 강론이 이어졌다. 묵묵히 준비해 주는 제자들의 마음이 고마워,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묵상 수필을 시작했다. 성경을 신앙의 언어로만이 아니라, 식품과학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농업인의 삶의 언어로 다시 읽어 내려간 글이었다.
제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이렇게도 다가올 수 있군요”라며 기뻐해 주었다. 그 변화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매일 이른 새벽, 말씀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도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도 그 글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돌이켜보면, 내가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남겼다기보다 그들이 다시 내 삶 안으로 신앙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르침은 시간이 지나 사라질 수 있지만, 함께 나눈 말씀의 온기와 삶의 태도는 사람 사이에 남아 조용히 이어진다.
신앙은 거창한 선언으로 자라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만남 하나, 잊고 있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인사 한마디, 그 인연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성실함 속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제자들과 나눈 이 작은 수필의 인연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내게 다시 맡기신 ‘지도’가 아니라 ‘동행’의 소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가르치기보다 나란히 걷도록 부르시는 초대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얼마나 더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함께 머물 수 있는가를. 신앙은 그렇게, 말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머물며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