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 한 마디

나는 내 몫을, 너는 네 몫을

이승환
입력일 2026-01-07 08:27:42 수정일 2026-01-07 08:27:42 발행일 2026-01-11 제 347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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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샛별을 보았습니다. 엄마랑 나란히 누운 침대에서 마주 보이는 커다란 통창 너머로 까맣게 시린 겨울 밤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거기 별 하나가 깜박입니다.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엄마는 남편을 여읜 아내 1일 차로, 저는 아버지를 여읜 딸 1일 차로, 둘은 그 별을 함께 바라봅니다.

엄마가 제게 물으십니다. “은귀야 저 별은 무슨 별일까? 내가 여기서 여러 날 자도 저 별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엄마, 아마 샛별 같지요? 새벽에 뜨니까 엄마 주무시느라 못 보셨을 수도 있는데, 오늘 신기하네요. 우리 둘이서 저 별을 보다니. 꼭 아버지가 우리한테 힘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준비되지 않은 작별을 갑자기 해야 할 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떠나는 사람은 떠날 준비가 안 되었고, 남는 사람은 보낼 준비가 안 되었는데, 죽음은 그런 상황을 일일이 헤아리지 않고 선명한 마침표를 찍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그리움에 아파 울지만, 떠나는 이의 심정을 생각하면 다른 답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 낯설고 아득한 새벽, 아버지는 정말로 별이 되어 오신 것 같습니다. 저에겐 ‘울지마라, 이 별처럼 내가 깜박깜박 신호를 보낼 터이니 아버지 없다 생각하지 말고 힘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60년을 함께 산 엄마에겐 ‘여보, 내가 없어도 무서워하지 말고 아이들 효도 받으며 잘 지내다 천천히 와.’ 이런 전언(傳言)을 건네는 것만 같습니다. 

엄마가 나직이 말씀하십니다. “은귀야. 잘 들어라. 너무 슬퍼 마라. 나는 여기서 내 몫을 하면 되고, 너는 서울 가서 네 생활을 하면서 너의 몫을 하면 된다. 아버지 병원에서 고통 길게 겪지 않고 가신 것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애통해하지 마라. 내 걱정도 하지 말고.”

갑작스레 닥친 이별의 황망을 잘 견디며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선산에 잘 모셨습니다. 마침 겨울비도 촉촉하게 내렸고요. 돌아오니 곧바로 아기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성탄절이었고 뒤이어 스테파노 축일이었지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 22) 마태오복음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받는 미움과 고통을 끝까지 견딜 때 이르는 구원을 뜻하는데, 저는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에 맞닥뜨린 고통과 견딤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으로 태어나 의지와 지혜를 키워 어른이 된 어떤 목숨 하나. 그 끝에 이르러 마주한 고통은 온전히 견딤의 시간이었겠지요. 회복을 바라는 가족들의 염원과 달리 아버지는 하늘의 부르심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의 몫으로 견디셨다는 것. 그러니 남은 가족들은 각자의 몫으로 견뎌야 한다는 것.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몫을 이어 갑니다. 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밥은 먹었나. 학교에 가나. 그래. 그러면 된다. 추운데 따습게 입고. 내 걱정은 마라.” 

저는 이렇게 또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감사히 살아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견디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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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