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손자 키우려 평생 쉼 없이 일해…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 유지 “완치된다지만…제 형편에는 꿈 같아요”
“항암 치료를 받고 싶어요. 완치가 가능하대요. 다 나아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일하면 하루가 금방 가잖아요. 지금은 집에만 있으니 너무 우울하고, 가끔은 ‘이 세상에 벌받으러 온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윤금란(67) 씨는 중국 장자제가 고향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2002년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오산에서 24년째 살고 있다. 지금은 군 복무 중인 손자와도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다.
2023년, 공공근로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왼쪽 가슴에서 피가 묻은 진물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부천성모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준비하던 중 C형 간염도 발견돼 간 치료부터 시작했고, 그 사이 암이 겨드랑이까지 퍼졌다. 다섯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병세는 여전히 위중하다.
윤 씨는 암 외에도 여러 질병을 안고 살아간다. 5년 전 받은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저혈압과 어지럼증, 두통, 이명에 시달리고 있고, 최근에는 왼쪽 무릎 연골이 파열돼 긴급 시술도 받았다. 복용 중인 약만 4~5종이다. 치매 약의 부작용으로 항암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도 받았지만,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손발에 물집이 잡혀도 쉬지 못했어요. 칼질도 남들보다 더 많이 했죠. 일을 잘해야 저를 계속 써주니까요.”
윤 씨의 병은 오랜 노동에서 비롯됐다. 20여 년 전, 대기업 주방에서 궂은일을 도맡았고, 손이 떨려도 쉬지 못했다. 결국 일하다 쓰러져 영양실조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척추 치료를 이어갔다. 그가 이렇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던 건 손자 때문이다.
김밥집을 운영하던 딸과 사위가 부도난 뒤, 윤 씨는 딸과 손자를 함께 돌봤다. 그러나 딸은 아들을 학교에 두고 몰래 중국으로 떠났고, 윤 씨는 손자가 여덟 살 때부터 홀로 키웠다. 손자가 아프고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딸은 제가 아픈 걸 알아요. 그래도 전화 한 통 없어요.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못 들었어요. 이제는 보고 싶지도 않아요. 괘씸해요.”
윤 씨는 너무 힘들어 세 차례나 중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현지의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복지 지원에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사는 걸 후회하지 않아요. 의료도 행정 지원도, 주변의 따뜻한 도움도 있으니까요. 그 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수원교구 세마본당 주임 홍명호(베드로) 신부는 “본당 빈첸시오회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윤 씨를 찾아 돌보고 있다”며 “본당에서도 매달 10만 원가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비를 포함해 월 70만 원 정도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금란 씨가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독자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 성금계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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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301-0192-429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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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금기간: 2026년 1월 7일(수) ~ 2026년 1월 27일(화)
◇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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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미 기자 bgm@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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