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성지’를 순교영성 체험의 공간으로

이승환
입력일 2026-01-07 08:27:43 수정일 2026-01-07 08:27:43 발행일 2026-01-11 제 347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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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지를 찾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2025년 서울대교구 내 성지를 찾은 외국인 순례자는 38만 명을 넘어섰고, 성지 미사 참례자 또한 전년 대비 11% 늘었다. 

전국 교구의 성지가 다국어 안내 체계를 정비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확충하는 등 외국인 순례자 환대 채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진정 고민해야 할 본질은 한국교회 순교영성을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로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콘텐츠가 한국의 전통과 결합해 전 세계인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는 한국 고유의 색채가 세련된 감각과 만났을 때 얼마나 강한 설득력이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성지순례 역시 이러한 ‘K-컬처’의 역동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할 수 있다. 순교자들의 드라마 같은 생애와 신앙 수호 여정을 간직한 성지가 한국교회의 활기찬 모습과 연결될 때, 외국인 순례자들에게는 더 매력적이고 깊이 있는 영적 체험의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방한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땅의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희망과 일치를 선사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말처럼, 한국 순교자들의 신심과 영성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평등과 희생, 인간 존엄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불과 200여 년 전 신앙을 증거한 신앙 선조들의 삶은, 세계 각국 순례자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신앙의 모델’로 다가갈 수 있다. 모든 순례자가 한국 순교자들의 숨결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정성 어린 마중물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