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수도회의 시작, 라테라노 성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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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2026-03-11 08:35:34 수정일 2026-03-11 08:35:34 발행일 2026-03-15 제 348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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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 가는 성전을 어깨로 떠받친 거지, 탁발 수도회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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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디 본도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장면들> 중 여섯 번째 벽화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꿈>,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다미아노 성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직후 프란치스코의 회개의 행동은 빨랐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을 유산을 가난한 아시시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복음적 삶을 살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심한 질책과 감금을 불러왔고, 결국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의 극단적인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친 프란치스코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음을 깨달은 아버지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던 아시시의 귀도 주교에게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재산을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재판을 청하였습니다. 

조토 디 본도네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장면들>을 통해 이후 프란치스코의 행보를 살펴봅니다.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이 재판을 보기 위해 아시시의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주교좌였던 성모 마리아 대성당 광장 한가운데서 맨몸의 프란치스코는 손과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 구름 사이로 나타난 하느님의 손은 지상과 천상이라는 대비되는 상황을 위아래로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손을 바라보며 육적인 아버지에게 세상과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겠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벗어준 옷을 받으며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격분합니다. 그는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발을 내디디며 프란치스코를 한 대 때릴 기세입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아내이자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피카 부인은 프란치스코의 뜻을 알아차린 듯 남편의 손목을 꽉 잡으며 말리고 있습니다. 반면 프란치스코의 신앙심과 알몸에 놀란 귀도 주교는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감싸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옷을 벗어 알몸이 된 것은 세상을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알몸을 감싸 주는 주교의 망토는 프란치스코가 교회의 사람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대치되는 상황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부자들인 세상 사람들이 서 있고, 프란치스코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교회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건물들의 모습은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보이는 하느님의 손은, 마치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울려 퍼졌던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프란치스코에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1209년과 1210년 사이 수도회 인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갑니다. 당시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황의 힘이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 가난의 중요성을 외쳤던 사람이 프란치스코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형제들 또한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의 자식들이었던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이 마을을 떠돌며 구걸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와 구걸을 나갔던 형제들이 매를 맞고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복음적 삶을 살며 형제들을 보호할 방법은 수도회 인준뿐이었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을 알현하고 자신들의 수도 생활을 적은 새로운 회칙에 대한 인준을 청하였지만, 몇몇 추기경들은 프란치스코의 생각이 너무나 새롭고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교황은 잠시 생각하기 위해 당신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며 꿈을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교황은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라테란 성전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지 한 명이 나타나 자신의 어깨로 기울어 가던 라테란 성전을 떠받쳐 다시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거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조금 전 자신을 알현하였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교황은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을 황급히 불러들입니다.

교황의 축복 없이는 황제가 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던 교황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겸손한 프란치스코의 새로운 회칙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를 구두로 인준하며 오른손으로 축복했습니다. 사실 수도회 인준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인준 이전에는 반드시 증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증명은 성령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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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디 본도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장면들> 중 일곱 번째 벽화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회칙 인준>,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창립자의 카리스마로 시작되는 수도회에 얼마나 많은 회원이 늘어나는지, 그리고 그 카리스마를 통해 얼마나 많은 성령의 열매가 맺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오랜 시간 두고 지켜봅니다. 교회는 새로 시작되는 수도회 안에서 성령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것을 확인한 뒤 인준합니다. 그러기에 수도회 인준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순간적인 꿈을 통해 모든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준서를 써 줄 시간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가져온 회칙을 받으며 구두로 인정해 줍니다.

이로써 베네딕도 수도회가 탄생한 지 700년 만에 새로운 정신의 수도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수도회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는 구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탁발 수도회’ 혹은 ‘설교자 수도회’라고 부르게 됩니다.

강력한 힘만이 교회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모두가 말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나눔의 밑바탕인 가난과 성경 안에 보여주신 예수님 삶의 재실천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느님께서 이를 인준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원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 인준이 곧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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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