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깊은 감독과 십자가·성모상 지닌 선수들의 스페인 vs 40년째 라커룸에 기도 공간 마련한 아르헨티나
스페인 데 라 푸엔테 감독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내게 확신과 힘 줘”
마지막 탱고 메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
[OSV]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한국 시간 7월 20일 오전 4시 미국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앙이 뿌리 깊은 스페인과 아르헨티나는 뛰어난 경기력뿐 아니라 선수와 감독이 경기장 안팎에서 드러낸 신앙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두 나라 대표팀의 신심에서 월드컵 탄생에 영향을 준 가톨릭 사회교리에 이르기까지, 이번 결승전 곳곳에서는 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신심 깊은 축구의 마술사”
스페인 대표팀이 정교한 경기 운영 속에서도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공격수 페란 토레스는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그 답을 짐작하게 했다.
토레스는 스페인 축구대표팀이 공개한 영상에서 “십자가와 성모상을 지니고 다닌다”며 “힘들 때마다 큰 의지가 되고, 신앙 안에서 힘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탁월한 전술 능력뿐 아니라 깊은 신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24년 7월 스페인이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네 번째 우승을 차지하자, 스페인 주교들은 그의 신앙과 지도력을 높이 평가했다.
세비야대교구장 호세 앙헬 사이즈 메네세스 대주교는 데 라 푸엔테 감독을 “신앙이 깊고,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가 세비야에서 ‘엘 카초로’로 불리는 ‘숨을 거두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에 깊은 신심을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신앙과 겸손, 개인보다 팀을 앞세우는 자세, 희생과 노력, 신뢰의 정신을 선수들에게 전했다”고 평가했다.
오리우엘라-알리칸테교구장 호세 이그나시오 무니야 아기레 주교도 데 라 푸엔테 감독이 공개적으로 신앙을 밝힌 점에 주목했다. 당시 데 라 푸엔테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확신과 힘을 준다고 말했다.
무니야 아기레 주교는 이 발언을 듣고, 아르헨티나가 202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가 그렇게 뛰도록 해 주셨다”고 말한 리오넬 메시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무니야 아기레 주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정강이 보호대 안에 모신 루한의 성모
아르헨티나 대표팀도 이번 대회 내내 라커룸과 경기장에서 강한 가톨릭 정체성을 드러내 왔다. 대표팀 장비 담당자인 마리오 디 스테파노는 경기 전마다 선수단 라커룸에 작은 기도 공간을 마련한다.
중앙에는 아르헨티나교회의 주보인 루한의 성모상이 놓인다. 그 옆에는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과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엑스페디토 성화가 함께 놓인다. 이 전통은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던 1986년 월드컵 당시부터 이어 온 것이다. 선수들의 개인적인 신심도 관심을 모았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는 정강이 보호대 안에 루한의 성모 상본을 넣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회를 앞두고는 리오넬 메시가 신을 축구화도 루한의 성모대성당에서 축복을 받았다. 스포츠 기자 왈테르 케이헤이로가 성당에 가져간 이 축구화는 아디다스 한정판 ‘엘 울티모 탕고’(El Último Tango·마지막 탱고)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악인 탱고와 함께, 이번 대회가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루한의 성모대성당 주임 루카스 가르시아 신부는 순례자와 어린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시의 축구화를 축복했다. 메시는 6월 16일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알제리전에서 이 축구화를 신고 월드컵 출전 사상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여섯 번째 월드컵에 나선 메시에게 ‘마지막 탱고’라는 이름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묵주 선물 받은 메시 “위대한 하느님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마련해 주신다”
메시와 동료 선수들은 팬들이 전하는 신앙의 선물도 공개적으로 받아 왔다.
아르헨티나가 카보베르데를 꺾은 뒤, 콘텐츠 제작자 훌리안 페레스 레히오는 경기장 밖에서 메시에게 다가가 바티칸에서 축복받은 묵주를 건넸다.
그는 이 묵주가 메시와 아내 안토넬라, 자녀들, 부모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메시가 지난 20년 동안 아르헨티나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말했다. 여섯 차례나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경기 최우수선수에 오른 메시는 걸음을 멈추고 감동한 표정으로 묵주를 받아들었다.
메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밝혀 왔다. 아르헨티나가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그는 “하느님은 위대하시며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마련해 주신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제 하느님께 더 이상 무엇을 청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월드컵 창설에 깃든 가톨릭 사회교리
월드컵의 탄생 배경에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영향도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주교회의 스포츠 담당 이자벨 드 샤텔뤼스 국장은 OSV 뉴스에 “월드컵은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었던 프랑스 가톨릭 신자 쥘 리메의 제안으로 1928년 창설됐다”고 설명했다.
리메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영향을 받아, 축구를 인간 존엄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바라봤다. 특히 계층을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노동자와 소외된 이들도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샤텔뤼스 국장은 “리메에게 축구는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이자 사회적 결속을 이루는 도구였다”며 “노동자들이 생계를 포기하지 않고도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수의 프로화와 보수 지급에도 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스포츠가 경쟁과 갈등을 규칙과 존중 안에서 풀어 가는 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포츠 안에서도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