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5만~6만 명 유입 과정서 최소 72명 사망 카디스·세우타교구 긴급 지원… 유럽 국경 통제 논쟁 확산
[외신종합] 레오 14세 교황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주민 유입과 인명 피해에 우려를 표하고, 평화와 안정, 정의에 바탕을 둔 해결책을 촉구했다.
교황은 8월 2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주일 삼종기도를 바친 뒤 “세우타의 상황을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다”며 “아프리카의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성모는 세우타의 수호성인이다.
교황은 이어 세우타 사태를 넘어 세계의 모든 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
교황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멈추고 분쟁을 해결할 외교적 해법이 마련되도록 계속해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어 “적대 행위로 희생된 모든 사람, 특히 가장 약하고 무방비한 어린이와 노인, 병자들을 기억하자”며 “주님께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도움과 위안을 전하는 이들의 활동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세우타에서는 7월 30~31일 모로코에서 넘어온 이주민 5만~6만 명이 국경 인근 방파제를 넘거나 해안을 따라 걷고 바다를 헤엄쳐 들어왔다. 대부분 젊은 남성으로, 이틀 동안 유입된 인원은 인구 약 8만4000명인 세우타 주민의 절반을 훨씬 넘는 규모다.
스페인 당국은 8월 2일 현재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최소 7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희생자 가운데 일부는 바다에서 익사했고, 일부는 방파제로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해상경비대는 세우타 인근 해역에서 실종자와 희생자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스페인의 자치시로,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다. 유럽연합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국경이라는 특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유럽 진입을 시도하는 이주민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짧은 시간에 수만 명이 유입되면서 세우타의 이주민 수용시설과 행정 체계는 한계에 이르렀다. 스페인 정부는 군 병력을 투입해 경찰과 민방위대의 국경 통제와 긴급 대응을 지원했다. 이후 이주민 대다수는 모로코로 돌아갔으나 일부는 세우타에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디스·세우타교구도 긴급 지원에 나섰다. 교구는 7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과 이 현실로 영향을 받는 수많은 사람이 처한 특별한 취약성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교구는 “교구 교회로서 행정기관과 관계 당국에 전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음을 거듭 밝힌다”며 “각 행정기관의 권한을 존중하고 상호 협력하는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필요에 대응하도록 교구가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세우타 지역 본당에서 주말 동안 모은 헌금 전액을 교구 이주사목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헌금은 세우타의 성 안토니오 이주민지원센터를 통해 관계 기관과 협력하며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교구는 “신자들과 모든 선의의 이들이 보여 줄 너그러움에 미리 감사드린다”며 “평화와 정의, 희망의 길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모든 이를 위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더욱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규모 국경 이동이 갑자기 발생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모로코 청년들이 겪는 빈곤과 높은 실업률, 유럽에서 더 나은 삶을 찾으려는 열망이 근본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모로코의 15~24세 청년 가운데 약 4분의 1은 교육이나 취업, 직업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이주민들이 바다를 통해 세우타에 도착할 경우 즉시 송환할 수 없다는 내용의 스페인 대법원 판결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부정확하게 확산된 것이 대규모 이동을 촉발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스페인 정부는 밀입국 조직들이 판결의 내용을 왜곡해 이주민들에게 “바다로 세우타에 도착하면 스페인에 머물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판결은 적법한 절차 없는 즉각적인 송환을 금지한 것으로,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거친 송환까지 막은 것은 아니다.
모로코 당국이 처음부터 국경 통제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일부 현장에서는 모로코 경비대가 이주민들의 이동을 지켜보는 모습이 목격됐다. 다만 모로코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경 통제를 완화했다는 의혹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유럽 각국의 국경 통제 논쟁으로도 번졌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대규모 이주민 유입이 “유럽 국경의 안보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스페인에서 항공이나 선박으로 입국하는 비유럽연합 국적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인 신분 확인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한 달 동안 시행되며 스페인과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멜로니 총리는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를 지키고 이탈리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특별 조치”라며 여름철 관광객의 이동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주민 대부분이 모로코로 돌아갔고 세우타에서 유럽 본토로 이동한 사람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조치는 국내 정치적 목적이 강한 상징적인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마리 란타넨 핀란드 내무장관도 스페인이 유럽의 외부 국경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이탈리아의 강경 대응을 지지했다. 프랑스도 스페인과 맞닿은 국경에서 검문을 강화했다. 반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세우타에 들어온 이주민 가운데 유럽 본토로 이동한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세우타와 멜리야에서 유럽 본토로 이동할 때는 이미 별도의 국경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세우타에서는 2021년에도 모로코 당국이 국경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서 80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넘어온 바 있다. 당시 사태는 서사하라 독립운동 지도자의 스페인 입국을 둘러싼 스페인과 모로코의 외교 갈등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입 인원과 인명 피해 모두 2021년 사태를 크게 웃돌아 세우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이주민 위기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