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53) 쪼잔한 사람의 착각

강석진 신부
입력일 2016-09-27 16:34:43 수정일 2016-09-28 10:22:50 발행일 2016-10-02 제 301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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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본당과 성지의 신자 분들께서 감사인사와 함께 사제관에 과일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주방에 과일이 들어올 때마다 여러 개의 과일 박스를 보며 흐뭇했습니다. 마치 내가 본당에서 잘 살았기에 받게 되는 포상금처럼!

추석 전날 아침, 사제관에서 주임신부님, 보좌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주임신부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관에 과일이 종류별로 너무 많이 들어왔는데, 이를 어쩌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살짝 맛이 가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사는 신부님들은 마음이 넉넉해도 너무 넉넉하셔서, 평소 사제관에 선물이 들어오면 주변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임신부님이 이번에 들어온 과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냥 선물로 다 줄까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선물들은 우리 세 사람의 신부들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신자 분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주신 선물일 테지. 그러므로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무작정 나누어주면 안 되지. 음, 어떡하지…. 맞다, 박스에 과일을 싸고 있는 비닐 포장을 과감히 다 찢어버리자. 그러면 신부님들은 포장지를 뜯은 과일 박스를 다른 사람에 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후, 내 방에 가서 잠시 양치질을 한 후 주방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각 과일마다 묶어 놓은 비닐 포장지를 다 뜯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안 빈자리에 과일을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와…. 이번 가을에는 과일을 실컷 먹을 수 있겠군!’

그날 오후 3시 순례자 미사 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그럴싸하게 강론을 한 후, 저녁 식사 때가 되어 주방엘 갔더니 주임신부님뿐이었습니다.

“우리 보좌신부님 어디 갔어요?”

그러자 주임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응, 총원에 갔어. 사제관에 들어온 과일들을 싸들고 총원에 계신 할아버지 수사님들 드시게 하려고 가지고 갔어. 사실 사제관에서는 어느 정도 과일을 먹고 살잖아! 그래도 신자 분들이 사제관에 과일을 선물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분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주신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잘 나누는 삶을 살아야지!”

갑자기 나의 얼굴이 발그레해졌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얼마나 쪼잔하고 속 좁은 인간인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선물이라! 사실 선물로 치면 지금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어느 것 하나, 신자들로부터 받지 않는 것이 없는데…. 그런데 성지에 있으면서 순례자 분들이 가끔 주시는 선물을 감사한 마음에 받지 않고, 그저 내 노력의 결과로 생각하니! 우리가 살면서 받는 모든 것들은 내 노력의 결과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 자체가 모두 하느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