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제3자 변제’, 교회 가르침에도 어긋나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3-03-14 수정일 2023-03-14 발행일 2023-03-19 제 3335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삶이 뒤흔들린 피해자에겐 사죄가 우선”
피해자 의사는 묻지도 않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게 문제
한·일 주교회의 2019년 담화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 강조 

정부가 지난 3월 6일 일제 강점기 일본 기업에 의해 강제징용 피해를 입은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제3자 변제’로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종교, 시민사회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역사를 후퇴시키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실제 시행한 것은 일본 기업들이지만 일제의 식민통치를 배경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에 강제 징용 피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 왔다. 일본 정부는 ‘유감’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강제 징용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는 강제징용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않고, 일본 기업을 대신한 한국 내 재단이 국내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하자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95) 할머니는 “잘못한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사죄를 하고 배상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정부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에 경제적·군사적 제재를 가하면서 한일 간 갈등이 촉발됐다. 이듬해 8월 15일 일본주교회의 정의와평화협의회와 한국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각각 담화를 발표하고 일본 정부에 과거의 과오를 직시하고 책임 있는 조치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당시 일본 정평협은 “한국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결된 비인도적 행위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일본 기업에 위자료 배상을 명한 것”이라고 밝혀 일제강점기 시절 부당하게 이뤄진 강제징용 행위와 그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한국주교회의 정평위 역시 “한국 사법부의 식민시대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대한(對韓) 수출 제한 조처를 단행함으로써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는 형국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면제시켜 주는 조치로서 한일 양국 교회의 기존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강주석(베드로) 신부는 이와 관련해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문제 해법은 인권 침해와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사법주권 훼손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며 “일본 정부의 사죄 및 가해 기업 배상 책임이 빠졌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하성용(유스티노) 신부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과와 배상 문제는 피해자의 의사가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하고, 제3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교회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제징용 피해 배상은 ‘돈’만 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의 진실된 사죄가 사안의 본질”이라고 부연했다.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양성일(시메온) 신부도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의 ‘제3자 변제’ 발표는 인간 중심 사고가 아닌 자본 중심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며 “정부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