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어느 날, 교황청 성녀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아침 7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례하시는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주교황청 김경석 대사님께서 초대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대사님께서 초대해주실 때 성모님을 좋아하시는 교황님을 위해 성모님을 그려 선물하면 좋겠다고 미리 말씀하셨기에, 성모님 성화를 80x110㎝ 크기로 그렸습니다. 대사님께서는 미리 받은 성모님 성화를 들고 오셨습니다. 크지 않은 성녀 마르타의 집 경당은 하얀 천장, 창가의 푸른색 벽으로 밝으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였고, 제대는 작지만 계단이 없어서 신자석과 같은 바닥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흰 대리석으로 된 제대와 독서대는 정말로 소박했기에 교황님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황님은 미사를 집전하실 때 조금 엄숙한 표정이셨지만 강론하실 때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사람들이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계실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계시는 것을 보고 ‘세상 고통의 무게가 교황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것처럼 교황님께서도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무겁고 힘겨워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어둡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때 이미 느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미사 후 교황님께서는 특유의 밝은 미소로 맞아 주셨습니다. 대사님께서 교황님께 성모님 성화를 선물로 드리고 저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함박 미소를 지으시면서 성모님 성화를 한참 바라보셨고, 대사님과 대화하시면서 저를 간간이 바라보실 때 그 환한 미소에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교황님은 제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기도해 주셨는데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알현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사님께 교황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여쭸습니다. ‘최고의 칭찬을 세 번이나 하셨다’는 것을 듣고는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그 후 교황님을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은 장면을 만났습니다. 2020년 3월 28일 한국 시간 새벽 2시 교황님께서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 계신 우르비 엣 오르비 장면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홀로 단상으로 걸어가시는 교황님의 뒷모습은 우리를 위하여 올리브 동산으로 기도하시기 위해 걸어 올라가시는 예수님처럼 보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올리브 동산으로 홀로 걸어가시는 예수님처럼 그렇게 교황님도 홀로 어둠 속에서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를 기도하시기 위하여 힘겹게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 모습을 그렸고 잊힐까봐 몇 번이고 또 그렸습니다. 그릴 때마다 같은 장면인데 교황님이 더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가슴이 아파 덜 힘들게 보이도록 고쳐서 그리려고 했지만 다시 고개를 더 숙이시고 힘들게 걸어가시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다시 고치려고 붓을 들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지금 교황님이 우리의 고통을 안고 아픔 속에서 걸어가시는데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조금 더 편한 모습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그리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고치려고 붓을 들었던 손을 놓았습니다.
“주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