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서 지방도를 따라 북동쪽으로 24㎞가량 가면 퇴촌면 끝자락에 앵자봉(해발 620m) 기슭 천진암 계곡이 나타난다. 이곳 천진암성지는 이벽·권철신 등이 1779년부터 6~7년 동안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모임인 강학(講學)을 통해 지식에 머물렀던 천학(天學)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시작한 한국천주교회 발상지다.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인 앵자봉과 천진암성지는 경기도 광주8경 중 제4경으로 계절마다 신록·녹음·단풍·낙엽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하다. 주말이면 순례자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로 성지의 넓은 주차장이 꽉 들어찬다. 성지 내 광암성당을 지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터와 세계 평화의 성모상이 보인다.
대성당 터 오른쪽 위 오솔길을 따라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비를 거쳐 산비탈을 10분여 동안 오르면 매끈하고 곧게 솟은 전나무와 소나무 숲에 다다르게 된다. 그 맨 위 대나무 숲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에 각각 이벽 성조 독서처 터와 천진암 강학당 터(天眞菴講學堂址) 표석이 있다.
“일찍이 기해년(1779년) 겨울에 천진암에서 강학이 있을 때 주어사는 설중(雪中)인데도 이벽이 한밤중에 도착하자 각자가 촛불을 밝혀들고 경서를 담론하였다. 그 후 1785년 이 강학을 비방하는 소리가 일어나서, 다시는 그러한 강학을 더 이상 개최할 수 없었다. 이른바 성대한 잔치는 사실 다시 하기 어렵다.”(1822년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제1집 중 녹암 권철신 묘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