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랜 세월 한일 문제에 관여한 종교·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컵에 물을 채우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희망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해방 이후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처럼 한일의 ‘새로운 미래’가 아직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진정한 화해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된 평화를 위한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는 “상호 용서가 정의에 대한 요구를 묵살해서는 안 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막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정의와 진실은 화해에 필요한 실질적 조건들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17항)라고 명확하게 가르친다.
한일관계가 ‘최악’이었다는 2019년, 일본 삿포로교구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는 3·1운동 100주년 그리고 8·15를 기념해 발표했던 담화들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지적했다. 당시 일본주교회의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의 책임을 맡고 있던 가쓰야 주교는 “현재 일본과 한국 간 긴장이 심층적으로는 일본의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그 청산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원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이 과거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 문제 해결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기초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끝내지 못한 6·25전쟁, 개선되기 어려운 한일 문제는 폭력의 어두운 역사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국, 일본, 미국의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뿌리 깊은 갈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동북아시아의 상황이지만, 가쓰야 다이지 주교의 발언과 일본주교회의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의 노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올해에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는 한국, 일본, 미국의 가톨릭교회가 연대하는 국제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적대와 두려움이 가득한 이 땅에서 한국, 미국, 일본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