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부활로 구원하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에 머물다
하느님 자비 선포 사명 맡기고자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나타난 예수
세상이 회개하며 자비에 머물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 가르쳐
기도로써 하느님께 자비 간청하고
자비의 사도로 살아갈 것을 강조
부활 제2주일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떠올리며 부활 시기 중에 이날을 지낸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하는 하느님의 ‘자비’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천주교사도직회(팔로티회) 강원도 양덕원 분원(분원장 장화기 바오로 신부)에 있는 ‘하느님의 자비 경당’을 찾았다.
하느님의 자비 경당
하느님의 자비 경당은 높은 바위산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다. 굽이지고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니 꽃잔디가 봄의 생명력을 자랑하며 땅을 덮고 경당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다. 분원 입구에는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성화’(이하 성화) 모자이크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수문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같은 자비의 빛이 두드러지는 거대한 성화다. 성화를 뒤로하고 또 한 번 돌계단을 올랐다. 바위틈에서 피어난 진분홍색 금낭화가 바람에 흔들흔들 소리 없는 종을 울리며 도착을 알렸다. 마침내 하느님의 자비 경당이다. 감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나무로 만든 경당은 은은한 나무 향이 가득했다. 우리나라에는 나무 경당을 지어본 목수가 없어 팔로티회 본부인 폴란드에서 폴란드 목수들이 직접 나무를 들여와서 지었다.
팔로티회는 특별한 사도직을 정해놓지 않고 회원 각자의 소명에 따라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강조한 창립자 성 빈첸시오 팔로티의 영성을 따라 폴란드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전파하고 있다. 자비 신심 불모지였던 한국에 1990년 진출, 지금의 분원 땅에 터를 잡았다. 한국 사도직의 주목표인 자비 신심을 기억하며 경당을 짓고 ‘하느님의 자비 경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분원의 안동억(프란치스코) 신부는 “이곳은 과거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고 살던 교우촌 자리”였다고 안내했다. 숨어든 이들의 신앙만큼이나 높고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연이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환시 속 자비의 예수님
경당에 들어가면 제대 중앙에 온화하면서도 근엄한 모습의 성화가 모셔져 있다. 한 손은 강복하듯 위로 들고, 다른 한 손이 닿아 있는 심장 부근에서 붉은 빛과 엷은 빛이 나온다. 발치에는 ‘예수님, 당신께 의탁하나이다’라고 적혀 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환시 속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성녀에게 자신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기게 하고, 세상에 하느님 자비를 선포하는 사명을 맡겼다.
성화의 특징은 두 빛줄기다. “흰 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뜻한다. 이는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는 나의 심장이 창에 찔려서 열렸을 때, 나의 자비의 깊은 심연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일기 299)
예수님은 성녀에게 “초상화가 부활 주일 후 첫 주일에 성대하게 축성되고 그날이 자비의 축일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또 이 초상화를 세상 모든 이가 볼 수 있어야 하며, 초상화를 공경하는 영혼은 멸망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안 신부는 “성화 공경은 바라보는 것을 넘어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께 진정으로 의탁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 9일 전인 성금요일 오후 3시. 경당에서는 하느님 자비의 9일 기도와 십자가의 길이 시작됐다. 예수님은 성녀에게 당신이 돌아가신 오후 3시가 ‘온 세상을 위한 자비의 시간’이라고 했다. 세상이 회개하며 하느님 자비 안에 머물도록 3시에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5단 기도’를 바치라고 가르치고, 자비의 축일 전에는 매일의 지향을 두고 9일 기도를 바치며 축일을 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기도에 함께한 이영옥(글로리아·55·서울 청담동본당)씨는 “예수님의 성심 안에 머무를 때 위로를 받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따라 사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기도를 이끈 김태광(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고 그분과 일치하려는 뜻으로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 자비가 우리 존재 깊은 곳까지 스며들도록 내 존재를 온전히 낮추려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당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파우스티나 성녀, 복자 미하우 소포치코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신비 체험을 한 것은 파우스티나 성녀지만, 이를 세상에 드러내는 견인차 역할은 성녀의 영적 지도신부인 예수회 미하우 소포치코 신부가 했다. 성녀는 자신의 체험을 모두에게 침묵하고 오로지 소포치코 신부에게만 털어놨다. 이 또한 예수님의 뜻이었다. 자비의 예수님 초상화가 그려지고 세상에 공개된 일,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5단 기도가 널리 퍼지게 된 것 모두 소포치코 신부의 노력으로 실현됐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어떻게 보낼까
2000년 4월 30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1세기 첫 성인으로 ‘하느님의 자비의 사도’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했다. 동시에 교황은 하느님 자비를 특별히 기념하라고 당부하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제정했다. 교황도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서 ‘자비를 잊은 시대’를 사는 인류에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며 속죄할 것을 촉구했다.
김 신부는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곧 자비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기도로써 하느님께 자비를 간청하고, 하느님께 받은 자비를 또 이웃에게 전하는 ‘자비의 사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를 떠올리며 이날을 그저 부활 제2주일이 아닌 하느님의 자비를 마음 깊이 새기는 날로 보내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주님의 기도·사도신경·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바치면 된다.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은 우리 또한 다른 이들을 용서하려는 마음을 갖고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녀를 통해 “서로 자비로운 행동을 하고, 자비로운 말과 기도로써 자비를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말과 기도와 행동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우리 영혼에 스며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려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이날을 합당하게 보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하느님의 자비만이 우리의 얼음같은 마음을 녹이고, 바위같이 단단한 마음도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게 한다(일기 370 참조).
※유튜브 채널 ‘천주교사도직회’에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