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2열왕 4,8-11.14-16ㄴ / 제2독서 로마 6,3-4.8-11 / 복음 마태 10,37-42 겉으로 보이는 외양에만 집중하며 상대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주변의 작은 이를 주님으로 여기고 기꺼이 섬기며 기쁨과 행복 찾길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섬 본당에 있을 때 공소 건축한다는 것을 알리고, 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고구마랑 쌀을 들고 다니면서 신부님들께 인사를 다녔었습니다. 신부님이 계시면 고구마를 드리면서 공소 사정을 말씀드리고, 신부님이 계시지 않으면 사무실에 고구마랑 공소 사정에 대한 편지를 남기고 다녔는데요. 제가 잠바 입고 모자 쓰고, 또 트럭을 타고 다녀서인지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제관에 가서 식복사 자매님에게 고구마를 전해 드리면 저를 택배회사 직원으로 아십니다. 또 사무실에 가서 사무장님이나 관리장님에게 전해 드리면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시면서 ‘뭔가 팔아먹으려는 사람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복장과 모습은 신부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금이나 고구마를 배달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신부인 걸 알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보통 형제님들이 소금이나 고구마 배달을 많이 하시지만 저도 일손이 부족할 때는 같이 나가거나 혼자 배달을 나갔는데요. 혼자 나가서 일을 하다 보면 맞이하는 형제님이나 자매님의 반응에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낍니다. 예를 들어, 제가 신부인 걸 아는 본당에 가면 사무장님이나 관리장님이 고구마나 소금을 내려놓는 걸 도와주십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내려놓으십니다. 그런데 제가 신부인 걸 모르는 본당에 가면 이런저런 지시만 하십니다. ‘여기다 쌓으세요’, ‘저기다 갖다 놓으세요’ 하고 일하는 걸 보고만 계십니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내가 신부라는 걸 알면 도와주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요한과 예수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마태 17,12) ‘내가 엘리야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너희가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예전에 어떤 수도원에 싸우기만 하고 갈라져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수도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스승이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주님이 숨어 계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수도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서로서로 ‘저 친구가 주님일지도 몰라’ 하고 행동했던 겁니다. 비슷한 일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친구가 주님일지도 몰라. 저 친구가 신부일지도 몰라’ 하고 말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고(故) 장영희 교수님의 ‘위대한 순간은 온다’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야학에서 가르치던 용호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성적이 안 돼서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속초로 내려가 자동차 정비를 배우게 됐답니다. 그 학생이 내려가기 전에 교수님은 책 한 권을 주며, 그 앞 장에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 주는 사람이 되거라!’ 라고 써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용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에이,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줘요. 저는 신부님이 돼서 위대한 일을 많이 하고,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자동차 정비공이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겠냐는 말인데, 그 말을 들으며 교수님은 예전에 유학 중에 알게 된 토니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나이가 예순 정도로 기숙사 경비였는데, 전직이 콜택시 기사였다고 합니다. 언젠가 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좀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그날 밤 당번이었던 그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도어벨을 누르니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마치 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 든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난 시간이 아주 많아.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식구도 없고,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젠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대.”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토니는 미터기를 껐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던 빌딩, 처음으로 댄스 파티를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라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토니는 몸을 굽혀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나중에 토니는 이런 말을 했다. “난 그날 밤 한참 동안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했더라면…. 돌이켜 보건대 나는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은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지 몰라.”> 내 주변에 작은 이들을 주님으로 여기고 섬길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과 행복이 돼 줄 수 있는 그 위대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