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을 나눈다기보다 오히려 배우기 위해 해외 의료봉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가난을 배움으로써, 영적 감수성을 일깨워주시는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오산지구 의료인 모임 루카회 최현철(미카엘·50·제1대리구 동탄영천동본당) 회장은 회원들과 매년 해외 의료봉사를 펼쳐온 이유를 이처럼 밝혔다.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그는 “물적 풍요 속 영적 메마름이 진정한 결핍”이라며 “비어짐 속 충만함을 사는 이들에게서 영성의 목을 축이시는 주님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루카회의 출발은 최 회장이 2009년 준종합병원 봉직의 시절 시작한 작은 기도 모임이다. 모태 신앙인임에도 업무에 쫓겨 신심에서 멀어진 최 회장의 영을 두드린 건 같은 성당을 다니는 동료들의 ‘비워진 마음’이었다.
“일로 성당을 찾았는데 병원 청소를 하는 동료들을 마주쳤습니다. 내적 겸손으로 늘 기쁘게 일하는 분들이 본당 교우였던 것이죠. 매주 성당 외에 직장에서도 함께 영적 낮아짐을 좇으려는 마음은 병원 내 기도 모임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곧 의료인들도 루카회에 합류하자 최 회장은 2013년 필리핀에서 1차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베푸는 생색이 아닌 주님이 살아 숨쉬는 ‘비움’ 속으로 친교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자기 뜻을 비우고 하느님의 도구가 되려는 소명만 남긴 내면에서 그분의 역사를 체험했다”는 신앙 고백대로다.
가난한 이들은 영적 스승이기에 봉사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최 회장은 “물질과 자기 자신으로 가득찬 ‘죽음의 문화’ 속 무뎌지는 영적 감수성을 필리핀 빈민들에게서 반성한다”고 전했다. 쓰레기 매립장에 살며 스콜과 작렬하는 더위에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그들 마음의 가난을 배우려는 열망이 매년 봉사할 원동력이 된 것이다.
비움을 실천하는 봉사는 필리핀 요셉의원 등 협력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동참해 점점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사가 중단된 건 최 회장에게 큰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성경 및 영적 독서 비대면 모임에 참여하며 활동의 빈자리를 하느님 말씀으로 채웠다. “복음적으로 하느님께 더욱 가까워져 또 다른 비움과 채움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6월 필리핀에서 루카회 아홉 번째 해외 의료봉사를 4년 만에 재개한 최 회장. 그는 봉사가 앞으로도 “이웃을 나눔의 대상이 아닌 가난의 스승으로 삼는 피정의 길로 이어지길” 희망했다.
“비우는 법을 잊은 우리에게 오히려 그들은 마음의 가난을 가르쳐주고 영적 감도의 영점을 조정해줍니다. 봉사가 앞으로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비움에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영성 배움터로 계속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