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정수민 옮김/376쪽/2만5000원/가톨릭출판사
1952년 「테레즈 데케루」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20세기 대표적 가톨릭 작가로 꼽힌다. 주로 ‘신이 없는 인간의 비참함’을 주제로 작품을 쓴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유혹과 죄악으로 방황하는 이들이 스스로 신의 존재와 구원의 빛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표현했다.
이 책은 예수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하며 형성된 그의 신앙심과 문학관을 보여 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는 “세상 것들에 강하게 얽매여 있는 평범한 그리스도인, 평범한 평신도에게 그리스도의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이 발간된 당시는 모더니즘이 유럽 전반에 팽배했던 시기였다. 모리아크는 신을 믿지 않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시대 안에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믿음의 토대를 찾고자 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루카 2,35) 칼이라는 이 단어는 마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그 칼은 마리아의 가슴을 찌른 채 그대로 박혀 있었다.”(42쪽)
“예수는 곧 다가올 날에 엄청난 무리가 작은 성체 앞에 엎드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쳐 버린 예수, 겉으로 보이는 세상 아래 예수가 지상의 모든 나라에서 수많은 군중을 일으킬 것이다.”(165쪽)
성경적 사실을 기반으로 공생활 시작부터 부활 때까지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는 책은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져 성경 속 장면이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예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슬픔과 고독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신성과 인성이 하나 된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열두 제자를 비롯한 니코데모, 마리아 막달레나, 라자로 등 예수와 함께했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세밀하게 담겼다. 이들 모습에서는 삶의 어두움을 넘어 빛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여정을 볼 수 있다. 이는 죄에 이끌리는 인간이 하느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모리아크의 소설적 장치다.
모리아크는 이 책을 통해 살아 있는 예수, 삶 안에 함께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도 “내 삶에서 예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묵상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서 복음 속 인물들도 가깝게 마음 안에 자리하고, 그들이 예수와의 관계 안에서 느낀 깨달음도 더 큰 공감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