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모여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에 지난 18일 두 청년이 ‘굿바이 버터 비치’ 팻말을 들고 섰다. K팝 팬이기도 한 두 사람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위기에 놓인 삼척을 지키고자 맹방해변에서 캠페인을 펼쳤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 중 하나였던 이다연(크리스티나·21)씨는 ‘팬질’을 할수록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환경오염에 동참하는 현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훼손되는 지구를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던 이씨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고자 2021년 K팝 팬들이 참여하는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을 세웠다.
“K팝은 앨범을 많이 사야 하는 문화가 있어요. 포토카드가 무작위로 앨범에 동봉되기 때문에 원하는 멤버의 카드를 갖고자 여러 장을 사기도 하고 팬사인회 당첨을 위해 한 사람이 많게는 몇 백장의 앨범을 사기도 합니다. 모두 쓰레기로 버려지죠. 회사들의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경제적 이윤만을 위해 환경 오염시키는 행위를 팬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한국인 2명, 인도네시아인 2명이 손을 잡고 시작한 플랫폼. 이들이 하는 일은 K팝 팬 개개인의 뜻을 모으는 것이었다. ‘앨범 구매 시 친환경 선택지 제공하기’, ‘앨범 및 굿즈의 플라스틱 패키징 최소화’, ‘디지털 플랫폼 앨범 발매’ 등을 촉구하는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는 프로젝트는 97개 국가 1만 명이 넘는 팬들이 연대 서명에 동참했다.
지난해 4월에는 팬들이 사고 버려지는 앨범 8000여 장을 수거해 기획사에 돌려보내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또한 아이돌 앨범 순위를 올리기 위해 이용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해줄래’ 퍼포먼스도 벌였다.
환경을 위해 K팝 팬들이 목소리를 낸 결과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의 솔로 앨범 ‘Jack In The Box’ 이후 음원과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위버스 앨범(Weverse Albums)’을 내놓은 것이다. 이밖에 대형기획사들도 친환경 소재 음반 제작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구를 보존하는 일이 어렵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케이팝포플래닛을 시작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이해하기 쉽고 참신한 콘텐츠를 만들어서 누구나 동참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 결과 K팝을 사랑하는 이들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됐죠.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였을 때 하느님이 창조하신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