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쉼터] 대를 이어 나눔 실천하는 ‘크웰브 베이커리’

“수녀님~, 빵 가지러 오세요.” 경쾌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이계자 수녀(소피아·성바오로딸수도회)가 베이커리 카페 크웰브(Cwellve)를 운영하는 송예원(크리스티나·수원교구 용인본당) 씨에게서 두 달에 한 번꼴로 받는 전화다. 약속한 날, 이 수녀가 경기도 용인의 베이커리에 들어서면 송 씨는 크루아상과 화이트롤, 캄파뉴, 케이크를 차곡차곡 담은 상자를 건넨다. 통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2층 베이커리 카페에서 수녀원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나눔. 이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몇 년째 이어지는 이 만남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송 씨의 할머니, 고(故) 배영숙(수산나) 씨가 있다. 할머니의 신앙 2005년 77세로 선종한 배영숙 씨는 생전에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성당에 나갔다. 가족 눈을 피해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서였다. 말릴까 봐 숨어서 했고, 장례를 치른 뒤에야 그 사실이 자세히 알려졌다. 배 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힘든 일을 자처했다. 사실 넉넉한 형편이었음에도 물질로 충분히 돕지 못하는 아쉬움을 몸으로나마 채우고 싶어 했다. 받은 선물은 한 번도 쓰지 않고 새것 그대로 필요한 이들에게 내주었다. ‘좋은 것을 남한테 먼저 주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특히 수도자들에게 각별했다. 어린 손녀의 눈에도 그 모습은 선명했다. 길을 가다 수도자를 만나면 지갑을 다 비워 차비를 드리던 할머니였다. 그 정신은 가족에게도 스며들었다. 송 씨의 어머니 최점숙(루치아) 씨가 무료급식소 설거지와 도시락 배달에 나서는 등 봉사 활동에 열심인 것도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나눔의 한 면이다. 배 씨는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싶다는 뜻과 함께, 본인을 위한 기도를 가르멜 수녀회에 청하고 싶어 했다. 가족들이 유지를 받들어 알아보다가, 경기도 동두천에 신축될 의정부 가르멜 여자 수도원 소식을 접했다. 마침 건립 기금을 모으는 중이었다. 가족들은 기꺼이 후원금을 보탰다. 북방선교를 준비하다가 동두천에 자리잡은 수녀원과 연결된 것은 신비였다. 송 씨는 “이북 출신으로 평생 통일이 소원이었던 할머니의 뜻이 이어진 것 같아 섭리처럼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밤새 구운 빵, 그것이 시작이었다 2021년경, 수녀원에서 연락이 왔다. 건물이 완공됐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로 맺어진 끈이 오랜 세월을 넘어 다시 살아난 순간이었다. 마침 크웰브 개장을 준비하던 시기여서, 방문을 앞두고 제빵 연습실에서 밤을 새워 빵을 구웠다. 수녀가 일곱 명 정도라는 것도 모르고, 마흔 명분은 될 재료로 크루아상 등을 잔뜩 만들었다. 인원보다 푸짐한 빵 선물에 수녀들은 “나눠 먹으면 된다”며 반겼다. 이후 빵을 구우면 보냈고, 수녀들은 “맛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 개업 과정에서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기도로 응답했다. “어려울 때 기도를 굉장히 많이 해 주셨죠. 많이 의지했었고, 기도하고 있다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됐어요.” 그렇게 나눔은 기도와 함께 익어가며 점차 퍼져나갔다. 성바오로딸수도회와도 손이 닿았고, 지금은 베이커리 인근 몇몇 수녀원과 무료급식소 등 복지시설에 빵을 전달하고 있다. 수도회들은 받은 빵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시 나누기도 했다. 인연은 인연을 낳고 나눔은 나눔을 낳았다. 나눔의 순환 수도자들이나 기관의 “빵 잘 받았다, 고맙다"는 인사 속에 서로 안부를 묻는 일 자체가 송씨에게는 보람이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빵뿐이라 가끔은 죄송하기도 해요. 그분들의 봉사와 희생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갓 만든 빵을 바로 보내드리면 좋으련만, 냉동 보관했다가 전할 때면 아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수녀님들은 속 크림이 살짝 녹아 아이스크림처럼 됐다고 더 좋아하신다”며 환하게 웃었다. 매장을 직접 찾기 어려운 복지시설 이용자들이 빵을 받아 행복해하는 모습도 뿌듯함을 더한다. 크웰브는 2022년 용인 유림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선정하는 나눔 실천 ‘착한 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협의체의 밑반찬 지원 사업에 동참해 매월 다양한 식재료를 기탁해온 덕분이었다. 이 모든 것 뒤에는 베푸는 삶이 결국 선한 것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이계자 수녀는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참 많이 닮았다”며 “받은 선물을 기꺼이 이웃과 나누며 기뻐하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 늘 섬김과 봉사가 함께함을 깨닫는다”고 했다. 송 씨는 “할머니의 정신을 따라가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의미를 느낀다”며, “직접 말씀드릴 수는 없어도, 할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할머니가 내어주는 삶을 사셨기에 그 복으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봉사의 첫걸음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당부했다.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에서부터 감사하게 시작하면, 더 큰 가치와 기쁨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크웰브(Cwellve)는 카페(Café)·크루아상(Croissant)의 ‘C’와 웰빙(Well), 열둘(Twelve)을 합친 이름이다. 완전한 숫자 12처럼 언제나 모든 이에게 좋은 공간이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 할머니의 신앙적 헌신에서 비롯된 빵 나눔은 그 이름이 품은 ’완전함‘의 의미를 날마다 채워간다.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다른 이와 나누는 일, 그것이 오늘도 이곳을 조금 더 깊고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11면

[가톨릭 쉼터] ‘오병이어 밥집’ 문 연 날

도시락 나눔을 통해 노숙인에게 사랑을 전해오던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가 노숙인들이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광주역 인근에 자리한 ‘오병이어 밥집’이다. 이름 그대로, 작은 나눔이 큰 기적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섯 개의 보리빵과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처럼, 이곳 역시 작은 손길들이 모여 우리 시대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4월 7일, 오병이어 밥집 축복식에서 만난 이들은 이름이 담은 의미를 함께 되새기며, 이곳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으로 성장하길 바라고 있었다. “든든한 한 끼 이거 참말로 좋당께요. 예전에는 식은밥, 도시락으로 받으면 너무 딱딱해져 부러서 먹지도 못 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빨도 안 좋아서 먹다가 부러져불고 그라제. 지금은 갓 지은 밥 한 끼로 먹으면 참말로 좋제잉.” 노숙인 장재용(가명·안드레아) 씨가 봉사자들이 갓 만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이하 사회복지회)는 지난 10여 년간 광주천, 광주역, 충장로 등에서 노숙인들에게 도움을 주며 사랑을 나눠왔다. 2020년부터는 호남동성당 뒤편 비닐하우스에서 도시락을 제공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도시락 전달 방식으로 바꾸게 됐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 문제와 이용자 간 갈등 등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 밥집 봉사자 김자혜(소피아) 씨는 “도시락을 받은 후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고, 서로 싸우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숙인들이 함께 식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 이러한 사연을 전한 사회복지회는 2025년 9월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사회복지 시설을 돕는 ‘사랑의 손길’ 사업에 선정돼 현 공간을 임대할 수 있었다. 밥집은 광주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역 주변 쪽방촌 주민들을 배려한 장소다. 사회복지회 채홍우(미카엘) 교육복지과 과장은 “10년 가까이 걸려 마련한 공간인 만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자혜 씨도 “따뜻한 음식을 바로 드릴 수 있어서 봉사자와 이용자 모두 마음이 편해졌다”고 전했다. 밥집은 후원과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교구 내 본당 빈첸시오회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 나눔을 희망하는 신자 등 100여 명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각자의 요일에 맞춰 셰프팀, 배식팀, 설거지팀 등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음식을 포장해 몸이 불편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노숙인들을 찾아가는 ‘아웃리치’ 활동도 하고 있다. 셰프팀 이옥순(수산나) 씨는 “퇴직 후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짧은 시간만 나와도 부담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맛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성의껏 준비하고 있다”며 “최소한 이곳에서는 이용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침 이날은 올해 2월 문을 연 밥집의 축복식이 열려 의미를 더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주례로 열린 행사에는 사회복지회 사제들과 직원, 30여 명의 봉사자와 11명의 노숙인이 함께했다. 축복식에 앞서 고영철(다니엘)신협중앙회장과 신협 광주전남 가톨릭이사장협의회는 옥 대주교와의 간담회 후 밥집에 사랑의 쌀 후원금 800만원을 전달해 기쁨을 더했다. 옥 대주교는 “가진 것을 나누면 5000명이 다 먹고도 남았다는 말씀처럼 못 할 일이 없다”며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이 함께한다면 밥집은 부족하지 않고 풍요로운 기적이 일어나는 나눔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하루 평균 40여 명의 노숙인이 밥집을 찾는다. 특히 한겨울에는 서울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광주로 내려오는 노숙인들이 많아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다. 사회복지회 회장 김재중(베드로) 신부는 “밥집에 더 많은 분이 와서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이런 곳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한다”며 “밥집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길 바라면서도 지금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편안하고 따뜻한 쉼터가 되도록 정성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노숙인을 위한 밥집이 만들어져 매우 기쁘다”는 옥 대주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노숙인들.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은 서로 어디가 불편한지, 몇 시에 이곳에 방문하는지, 무엇이 고민인지 잘 안다. 오병이어 밥집은 단순히 그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공간이 되고 있다. ■ 오병이어 밥집 -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 265 - 운영 시간: 월~토 오후 4시 30분~5시 30분 - 이용 대상: 노숙인, 여인숙 등 비주택 거주자 누구나 - 후원 계좌: 농협 301-0209-0858-41 (재)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 후원·자원봉사 문의: 062-716-1236 오병이어 밥집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11면

[가톨릭 쉼터] 벚꽃 ‘성지’ 순례해 볼까?

매년 이맘때면 전국의 벚꽃 명소, 흔히 ‘벚꽃 성지’라고 불리는 곳들은 상춘객들로 붐빈다. 꽃만을 바라보며 즐기는 봄나들이도 좋지만, 기왕 벚꽃 ‘성지’라면 신앙선조들의 숨결이 깃든 진짜 성지와 성당에서 봄을 맞이하며 순례를 함께해 보는 것도 뜻깊다. 고풍스러운 성당과 함께하는 벚꽃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빛 벚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고풍스러운 건물과 함께라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특히 100년 안팎의 역사를 간직한 고딕양식 성당과 함께하는 벚꽃 풍경은 고즈넉한 정취를 더한다.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곳이 대전교구 아산 공세리성당이다. 공세리성당은 순례자는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벚꽃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의 종 박의서(사바)·박원서(마르코)·박익서의 묘소가 있던 자리이며, 1922년 지어진 벽돌조 고딕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명하다. 사시사철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평소보다 방문객이 10배 이상 늘어난다. 청주교구 음성 감곡성당, 바로 감곡매괴성모순례지도 1904년에 세워진 고즈넉한 성당과 벚꽃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당으로 들어서는 길목 좌우로 벚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벚꽃 길을 지나 성당을 만나게 된다. 유서 깊은 교우촌에서 이어온 성당에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총탄을 맞은 성모상도 자리하고 있다. 2006년 ‘매괴 성모 순례지’로 선포돼 성모순례지로 사랑받고 있다. 충남 공주 지역 최초의 성당인 대전교구 공주중동성당은 성당 내에 벚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주의 벚꽃 ‘포토 스팟’으로 유명하다. 고딕식 종탑과 붉은 벽돌의 라틴십자가형 성당이 인상적이다. 성당은 건너편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을 에워싼 벚꽃들과 함께 촬영할 수 있어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기 좋다. 야간에는 조명 연출도 하고 있어 낮과는 다른 멋을 즐길 수 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산교구 울산 언양성당도 벚꽃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1936년에 세워진 석조 고딕양식 성당 주변의 큰 벚나무들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언양성당에서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은신처였던 죽림굴과 살티공소 등을 함께 순례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기억하는 여러 성지에서도 봄이면 벚꽃을 만날 수 있다. 대전교구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 생가 마당에는 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솔뫼는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한옥으로 복원된 생가와 어우러져 한층 더 고즈넉한 봄 풍경을 만든다. 전주교구 나바위성지에서도 벚꽃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845년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 내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하는 성지다. 성당에서 이 라파엘호를 재현해 놓은 곳까지 향하는 길목 곳곳에서 벚꽃을 만날 수 있다. 김대건 신부가 세례받은 곳이자 사제로서 사목하던 수원교구 은이성지도 숨은 벚꽃 명소다.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김가항성당’을 복원해 김대건 신부의 유년 시절과 사제서품, 사목활동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성당 맞은편에 산길을 따라 조성된 십자가의 길 주변에 벚나무가 있어 꽃길을 걸으며 기도를 바칠 수 있다. ■ 왕벚나무와 에밀 타케 신부 벚꽃(벚나무)은 한국교회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흔히 벚꽃은 일본의 꽃이라고 생각하지만,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56호)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던 토종 나무다. 이 왕벚나무를 우리나라 식물로 세상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 파리외방전교회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다. 1898년 입국한 타케 신부는 경상·전라·제주 등지에서 55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다. 특히 제주에서 사목하는 동안 제주 식물 표본을 만들어 전 세계에 알렸는데, 그 수가 1만여 점에 달한다. 타케 신부는 표본 채집을 통한 수익을 선교 자금으로 활용했다. 그중 대표적인 업적이 1908년 채집한 왕벚나무다. 타케 신부는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해 표본을 만들고 일본의 포리 신부에게 보내 세계 학계에 알렸다. 이 표본은 현재 에든버러왕립식물원에 보관돼 있다. 포리 신부는 왕벚나무 표본에 대한 답례로 온주 밀감 14그루를 보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제주 감귤 재배의 시작이다. 타케 신부는 오늘날 크리스마스트리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제주 구상나무를 처음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대구대교구청에 자리하며 100여 년 동안 꽃을 피워온 벚나무 역시 타케 신부가 심은 제주 왕벚나무다.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14면

[가톨릭 쉼터] 교회사 속 ‘커피’ 이야기

한국인은 한 해 평균 416잔의 커피를 마신다. 이는 세계 평균 150잔의 약 2.8배에 달하는 수치다(2024년 유로모니터 기준). 이처럼 커피는 한국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이 커피에도 교회와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교회사 속 커피 이야기를 만나 보자. ‘악마의 음료’, 축복을 받다? 커피라고 하면 이탈리아, 프랑스처럼 그리스도교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나라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16세기 무렵, 유럽의 신자들 사이에서 커피는 ‘악마의 음료’로 불릴 만큼 거부감을 주는 음료였다. 당시 커피를 즐기던 이들은 중동의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었다. 오스만제국은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과 지중해로 진출해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까지 침공하는 등 잦은 전쟁을 벌였다.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이교도이자 적국의 음료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 ‘악마의 음료’가 그리스도교 문화권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 바로 클레멘스 8세 교황(1535~1605)이다. 당시 신자들은 교황에게 커피를 금지해 달라고 청원했고, 교황은 커피가 유해한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마셔보았다. 그는 커피를 맛본 뒤 금지는커녕 오히려 그 풍미를 극찬하며, 커피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커피는 교황의 손을 거쳐 악마의 음료가 아닌 축복받은 음료가 되었다. 교회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에서 카푸친 작은형제회 복자 마르코 아비아노(Marco d’Aviano, 1631~1699)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북부 아비아노 출신인 그는 오히려 오스트리아 빈에서 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1693년 오스만제국이 두 달 동안 빈을 포위했을 때, 빈을 지켜낸 결정적인 역할을 그가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 각국의 군주들은 내분과 경쟁으로 연합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복자는 설득과 설교로 그들을 하나로 모아 ‘신성 연맹’을 결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설교와 기도는 연합군의 사기를 높였고, 결국 오스만제국군을 물리치며 빈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시 전장에서 오스만군이 남기고 간 진한 커피에 복자가 따뜻한 우유와 꿀을 섞어 마셨고, 이것이 오늘날 ‘카푸치노’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카푸치노라는 이름은 그가 속한 수도회 카푸친에서 비롯됐다. 물론 이는 역사라기보다는 전승이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러나 중동에서 유입된 커피에 처음엔 거부감을 가졌던 교회가 점차 커피와 가까워지게 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기도 하다. ‘복음은 커피를 타고’ 커피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 문화권으로 전해졌을 뿐 아니라, 이후 그리스도교 복음 선포의 여정에도 함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콜롬비아 커피다. 콜롬비아 커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18세기 예수회 소속 호세 구미야 신부가 남긴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선교지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생계를 고려하며 커피 재배를 시험했고, 이 작물이 현지에서 잘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본격적인 커피 재배도 교회의 복음화와 함께 확산되었다. 특히 19세기, 살라사르 데 라스 팔마스본당에서 사목하던 로메로 신부는 ‘커피나무 심기’를 고해성사 보속으로 줄 정도로 재배를 적극 권장했다. 이후 커피는 곧 신자들의 생계를 돕는 중요한 작물이 되었고, 이 지역은 콜롬비아 커피 재배의 요람이 됐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래된 가장 이른 기록 또한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1860년 3월 6일, 성 베르뇌 주교는 리브와 신부에게 선교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요청하며 그중 하나로 커피 40리브르(약 18.14kg)를 포함시켰다. 이듬해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를 통해 커피를 전달받은 그는, 편지를 통해 “커피 덕분에 여름을 예전보다 훨씬 잘 보낼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베르뇌 주교는 이후에도 1861년, 1863년, 1865년에 걸쳐 커피를 지속적으로 청했고, 누적량은 약 130kg에 달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 약 4g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총 3만2500잔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커피의 희소성으로 인해 두세 번씩 우려 마셨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결코 혼자 마시기는 어려운 양이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베르뇌 주교가 커피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선교의 일환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짐작해볼 수 있다. 신자들과 둘러앉아 커피향을 음미하는 목자의 모습도 결코 허황된 상상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약 30년 뒤다. 조선교회 신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베르뇌 주교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보다 전,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역시 커피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혹독한 박해 속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 선교 현장에도, 은은한 커피 향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2면

[가톨릭 쉼터] 청장년과 한 끼 나누는 특별한 식당 ‘같이 한끼’

인천광역시 구월동의 한 영화관 식당가. 북적이는 음식점 사이, 아담한 식당 하나가 시선을 끈다. 다른 가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입구에 적힌 문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호텔 요리사 출신 임영준 신부(베드로·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가 35세에서 50세 사이 청장년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온기를 전하는 작은 밥집 ‘같이 한끼’다. 식당가 가장 아늑한 공간… “당신만을 위한 한 끼” “자~ 오늘의 요리, 스키야키 나왔습니다!” 임 신부의 오늘 메뉴는 일본식 샤브샤브인 스키야키와 본즈 소스를 곁들인 스파이시 치킨샐러드. 정성스럽게 손질한 대파, 표고버섯, 곤약, 두부, 고기를 냄비에 올리고 간장 베이스 육수를 더하면, 짭짤하면서도 깊은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날씨가 추운 1월에 어울리는, 따뜻하게 먹을 만하면서도 간단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채소 등 재료들은 대형 마트에서 구하기도 하지만, 주로 수도회 피정의 집에서 직접 일손을 돕고 얻어온다. 작년에는 ‘오픈 이벤트’로 손님들에게 소고기 스테이크 코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2주에 한 번씩 메뉴를 바꿔요.” 메뉴 구상도 요리도, 임 신부 혼자서 묵묵히 해낸다. 좁은 줄로만 알았던 조리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임 신부가 가지런히 정리한 조미료들과 요리 도구들이 곳곳에 보인다. 다른 식당과 차별점이 있다면 손님들과 대화를 위해 외부에서 잘 안 보이도록 설치한 커튼이다. 커튼을 내리면 주변 소음이 줄어들며 오직 ‘같이 한끼’를 찾아온 손님만을 위한 아늑한 식사 공간이 만들어진다. 임 신부를 포함해 두 명, 많으면 세 명까지 앉을 수 있다. 작은 테이블에는 방문객들의 글귀가 담긴 방명록도 놓여 있다. ‘같이 한끼’는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천 부평동 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에서 상주 사제로 지내는 임 신부는 예약이 있는 날마다 이곳을 찾아 요리하고 손님을 맞는다. “음식은 대화를 이끌어주는 매개체” “직장을 구하고 있는 취준생, 타지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주변에 지인이 없는 외로운 청년 등 정말 다양한 손님들이 와요. 누군가가 차려준 밥상이 너무 오랜만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가 이 식당을 열게 된 데는 인천이라는 지역의 특수성도 작용했다. “이 동네는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지내는 청장년들이 많아요. 일은 해도, 퇴근하면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죠.” 그 고독한 저녁을 따뜻한 식사 한 끼가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음식을 나누다 보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는 “사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음식은 누구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 주는 좋은 재료”라고 말했다. 2025년 11월 8일 문을 연 후 두 달여. 40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짧은 대화 한 줄이, 조용한 공감이 임 신부의 마음속에도 깊은 자취를 남긴다. “밥을 차려주자, 누군가에게 밥을 받아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며 음식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말하더군요.” 식당의 ‘밥값’은 돈이 아니다. 테이블에는 작은 안내문이 놓여 있다.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기’, ‘가족에게 안부 문자 보내기’, ‘누군가에게 응원의 메시지 보내기’ ….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10가지 선행이다. 임 신부는 말한다. “작은 행동이, 다시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어둠을 지나…요리사에서 신부로 ‘같이 한끼’의 시작에는 임 신부 자신의 삶의 전환점도 있다. 수도회 입회 전, 그는 10년 넘게 양식과 일식 요리사로 일했다. 그러나 해외 유학 중 건강 문제로 인해 요리사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귀국 후 몇 년간 깊은 좌절 속에 있었다. “동굴 같은 어둠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학생 시절 잠시 품었던 성소를 다시 떠올리게 됐고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그렇게 들어선 수도자의 길.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지금의 활동은, 그의 삶이 걸어온 길과도 꼭 맞닿아 있다. 수도회도 이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였고, ‘같이 한끼’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같이 한끼’는 현재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SNS와 이메일 등으로 한 끼를 풍족히 나눌 이들의 예약을 받고 있다. 임 신부는 “비록 음식값을 받지 않는 비영리 시설이지만 다른 예약 플랫폼도 활용할 계획”이라며 “식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많은 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같이 한끼’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는 청장년들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에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삶에 기쁨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 같이 한끼 - 주소: 인천시 남동구 예술로 198 SEE&SEE 빌딩 2층 - 카카오톡 아이디: meal4u - 인스타그램: @meal4u.bmc - 이메일: meal4u.kakao.com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10면

[가톨릭 쉼터] 귤과 에밀 타케 신부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는 과일, 귤. 지인들에게 선물도 많이 하는 귤은 이제 국민 과일이 됐다. 하지만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그 의미를 잘 생각 못하듯, 귤의 역사를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귤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그것도 한국으로 선교 온 사제에 의해 보급됐다. 푸른 눈의 선교사 파리외방전교회 에밀 타케 신부(Emile Taquet, 한국명 엄택기, 1873~1952)가 그 주인공이다. 에밀 타케 신부. ■ 식물 채집가 에밀 타케 신부 1898년 처음 조선 땅을 밟은 타케 신부는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를 오가며 선교 열정을 쏟았다. 타케 신부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55년이다.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보다 2배가 넘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그 중 타케 신부가 남긴 가장 뛰어난 업적은 식물에 대한 사랑이다. 그 시작은 제주도에서부터다. 1902년 서귀포 하논본당 제3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타케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한라산이 잘 보이고 하논 분화구에서 가까운 서홍동 홍로로 성당을 옮겼다. 홍로로 이전한 뒤 타케 신부는 13년간 홍로본당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면서 제주교구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 식물 채집으로 유명한 파리외방전교회 포리 신부(1847~1915)를 만난 후 본격적인 식물 채집에 들어갔다. 타케 신부는 홍로본당에서 식물 1만여 점을 채집하고 표본을 만들어 미국 하버드대, 영국 왕립식물원 에든버러, 프랑스 파리 자연사박물관, 일본 도쿄대 등에 보내 제주 식물을 전 세계에 알렸다.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56호) 발견은 타케 신부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1908년 타케 신부는 포리 신부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한라산 해발 600미터 지점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최초로 밝혔다. 또 현재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고 있는 구상나무도 1907년 포리 신부와 함께 한라산 해발 1400미터에서 최초로 발견했다. ■ 온주 밀감의 아버지 타케 신부는 왕벚나무를 발견한 후 일본 아오모리현에 있는 포리 신부에게 보내고 그 답례로 1911년 온주 밀감 14그루를 받았다. 오늘날 제주 감귤 산업의 초석이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과거에도 감귤 재배 기록은 있지만, 조정에 진상품 생산을 위한 것이어서 일반 백성들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진상품이었던 감귤재배를 위해 백성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면서, 수탈 대상인 감귤나무를 뽑아 버리는 등 감귤재배에 대한 기피가 이어졌다. 진상제도 폐지 후에도 농민들은 감귤재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온주 밀감이 들어온 후 서홍동을 중심으로 하논 일대에 감귤원이 조성됐다. 해방 후에는 온주 밀감으로 자식들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정부가 제주 감귤 산업을 육성 지원하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고 오늘날에까지 우리나라 겨울 대표 과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타케 신부가 포리 신부로부터 받은 온주 밀감 14그루 중 1그루가 ‘면형의 집’(옛 홍로성당 터)에서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다 지난해 고사했다. 고사된 나무는 방부 처리하고 면형의 집 성당 입구에 ‘홍로의 맥’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했다. 고사된 나무 자리에는 온주 밀감을 들여온 타케 신부의 업적비가 크게 세워져 있고, 바로 옆에는 60년 된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면형의 집 수도원장 김성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타케 신부가 들여온 온주 밀감 나무는 상징성이 워낙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후대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잘 관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대 감귤 생산지 제주 서귀포 일대 감귤농장에서 주민들이 귤을 따고 있다. 타케 신부가 1911년 포리 신부로부터 받은 우리나라 최초 온주 밀감 14그루 중 1그루가 심겨 있던 자리(면형의 집, 옛 홍로본당 터)에 이를 기념하는 큰 비석이 새겨져 있다. 옆에는 타케 신부가 들여온 온주 밀감의 후계목이라는 이름으로 60년 된 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다. 타케 신부가 1911년 포리 신부로부터 받은 우리나라 최초 온주 밀감 14그루 중 1그루가 10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오다 지난해 면형의 집(옛 홍로본당 터)에서 고사한 후 ‘홍로의 맥’이라는 이름으로 면형의 집 성당 입구에 박제돼 있다. ■ 에밀 타케 신부를 기억하며 타케 신부가 이토록 식물 채집에 몰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에밀타케식물연구소 이사장 정홍규 신부(대구대교구 원로사제)는 “타케 신부가 보인 식물에 대한 관심은 사목적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 당시 제주도는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타케 신부는 땅을 사서 지역 사람들에게 논농사도 가르치고, 식물 채집으로 받은 보상금을 다시 농민들을 위해 썼다. 정 신부는 “타케 신부는 사목적 이유와 지역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식물을 채집한 것”이라며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열정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타케 신부는 식물 분류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오히려 교회 내적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념비나 동상, 타케 신부 이름을 딴 도로, 정원, 박물관, 식물원 등을 만들어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부분들에 교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타케 신부를 기억하는 것 자체가 오늘날 생태위기 상황에서 통합적 가치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밝혔다.

발행일 2020-12-20 제3224호 12면

[가톨릭 쉼터] 보스코젤라또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여름철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인기 있는 디저트다. 게다가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지방 함유율이 낮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젤라토는 시원함에 달콤하고 쫀득한 식감까지 더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아이스크림이다. 이런 달콤한 젤라토에 수사들이 젤라토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듬뿍 담아 파는 가게가 있다.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보스코젤라또’(대표 김평안 신부)다. ■ 돈 보스코의 선물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317 하늘병원 1층. ‘Bosco Gelato’(보스코젤라또) 젤라토 가게임을 알리는 알록달록한 간판이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군침을 불러일으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원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이 점원의 복장이 어쩐지 낯익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복장인 로만 칼라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원의 본업은 수도자, 바로 수사이자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점원, 아니 보스코젤라또 대표인 김평안 신부가 몸담은 살레시오회 창립자가 요한 보스코 성인이기 때문이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고향과 젤라토의 고향이 같다는 생각에 둘의 연관성을 찾아 봤지만, 사실 성인과 젤라토에 특별한 관계는 없다. 다만 보스코젤라또 메뉴를 보니 이곳에서 파는 젤라토가 돈 보스코(보스코 신부)의 선물이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였다. 보스코젤라또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만이 누릴 수 있는 메뉴인 ‘보스코 젤라또·보스코 쉐이크’가 있어서다. 이 메뉴들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젤라또와 쉐이크를 일반 가격에서 20%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메뉴다. 손해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신부는 “애들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요”라며 웃었다. 뿐만 아니라 가게 모든 수익금은 이주배경 청소년을 위해 사용된다. 가게 설립 목적 자체가 청소년을 향한 사랑으로 전 생애를 바친 요한 보스코 성인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레시오회는 그동안 학교, 기술학교, 수련원, 그룹홈 등 다양한 환경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보살피고 가르치는 등 사랑을 주는 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발맞춰 청소년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고민해 왔다. 보스코젤라또는 그런 고민 속에서 시작한 새로운 시도다. 사고 팔며 살아가는 방식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근간으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직접 만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 보스코젤라또와 부산 이태석신부기념관 지하 카페에 자리한 보스코젤라또가 탄생했다. 보스코젤라또는 청소년을 만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청소년·청년들이 사회와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공간을 꿈꾼다. 실제로 보스코젤라또에는 한국에서 유학 중인 이주민 청년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또 부산 보스코젤라또는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직업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보스코젤라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김평안 신부. 김 신부는 보스코젤라또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청소년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함께 걷도록 돕는다. ■ 맛있는 젤라토의 비밀 손님이 방문하자 김 신부 손이 분주해졌다. 젤라토는 일반 아이스크림과 달리 그릇에 담아 낼 때마다 영하 12도 온도에서 젤라토를 반죽해야 한다. 그래야 점성이 생겨 젤라토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이렇게 고된 반죽을 하다 보니 김 신부 손은 매일 붓고 손목이며 근육이며 통증에 시달려 파스와 찜질 없이는 하루를 마칠 수 없을 정도다. 김 신부는 “저도 운동 깨나 했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다”며 “이렇게 해야 맛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누기 위해서라면 상관없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스코젤라또의 젤라토는 다른 젤라토보다도 맛있다는 평을 받는다. 김 신부 정성도 정성이지만, 좋은 재료를 사용하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젤라토 맛의 핵심이 되는 우유는 분유나 가공된 우유가 아닌 신선한 원유 그대로를 사용한다. 설탕도 비정제설탕을 쓰고, 재료도 천연재료로 엄선된 유기농만을 고집한다. 제철 농산물만을 사용하다 보니 철에 따라 젤라토 메뉴가 달라진다. 그 밖의 첨가물은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젤라토 가게에 비하면 조금 비싼 편이긴 하지만, 사실 재료의 질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한 금액이다. 비결은 ‘함께 걷기’다. 좋은 뜻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걸어 준 이가 있었기에 맛있는 젤라토도 가능했다. 살레시오회의 좋은 뜻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늘병원 조성연(요셉) 원장이 병원 1층 매장을 무상으로 제공했기에 보스코젤라또를 설립할 수 있었고, 임대료가 없으니 가장 좋은 재료로만 젤라토를 만들었음에도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하늘병원 1층에 자리한 보스코젤라또. 청소년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할인 메뉴 보스코젤라또. 매장 안에 있는 요한보스코 성인상. ■ 함께 걷기 보스코젤라또의 함께 걷기는 젤라토의 맛만이 아니라 세상사는 맛도 좋게 만들고 있다. 보스코젤라또는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하는 가톨릭농민들의 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해 농촌살리기에 동참하고, 보스코젤라또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는 건강한 친환경 먹거리를 전하고 있다. 게다가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포장 시에도 생분해가 가능한 녹말이나 옥수수전분 성분의 수저와 빨대를 활용해 환경과도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로사리아 맘 집반찬’ 사업에도 힘을 보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간식으로 젤라토를 후원하는 활동도 하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에도 동참해 캠페인 확산에 앞장서는 ‘평화의 가게’ 1호점이 되기도 했다. 보스코젤라또는 이주민들과 사회의 소통을 위한 행사로 오픈 103일째가 되는 10월 26일에는 매장 내에서 이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물건을 판매하는 수공예품 시장도 열 예정이다. 103일은 103위 한국순교성인을 기억하는 의미로 정했다. 김 신부는 “아직 시작 단계고 팬데믹 영향으로 수익은 거의 없지만, 매장을 후원해 주신 조 원장님을 보면서 어려울수록 내어놓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교회라는 생각을 했다”며 “손님이 늘어 수익이 많아진다면 이주민이나 이주배경 청소년들을 더 고용해 노동의 대가를 얻으며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나아가 2호점, 3호점을 만든다면 더 많은 분들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는 희망도 전했다.

발행일 2020-09-27 제3213호 12면

[가톨릭 쉼터] 청년들 위해 신부님이 차린 든든한 밥상, ‘청년밥상 문간’

‘가성비 맛집’, ‘3000원의 행복’ 서울 정릉시장과 정릉천이 맞닿은 자리. 동네에서도 온라인상에서도 입소문이 난 맛집이 있다. 메뉴는 김치찌개 달랑 하나지만, 밥과 반찬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 단돈 3000원으로 청년들이 따듯한 한 끼를 든든하게 먹게 해 주는 식당. ‘청년밥상 문간’(서울시 성북구 보국문로11길 18-2, 이하 ‘문간’)을 찾았다. ‘문간’의 대표 메뉴, 김치찌개를 내고 있는 이문수 신부. 이 신부는 “청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오늘도 ‘문간’을 연다. ■ 신부님이 차린 밥집 “김치찌개 나왔습니다.” 진한 육수에 잘 익은 김치, 두부, 돼지고기가 듬뿍 담긴 김치찌개가 가스렌지 위에 올라온다. 이내 퍼지는 찌개 냄새와 보글보글 소리에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고 만다. 언뜻 보기에도 양이 제법 많아 보인다. 식사를 마친 한 손님은 “가격도 싸고 맛있는데 양까지 많다”며 “양이 많아서 다 먹지 못해 미안할 정도”라고 말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열심히 김치찌개를 나르는 점원에게 손님이 인사를 건넨다. ‘문간’은 다른 식당에 비해 유난히 먼저 인사를 건네는 손님이 많다. 손님과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이 점원은 사실 ‘문간’의 사장님이다. 그리고 이 사장님의 본업은 ‘신부님’이다. ‘문간’ 사장 이문수 신부(글라렛선교수도회)를 보고 “어떻게 신부님이 이런 일을 하냐”라며 신기해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이 신부에게 ‘문간’은 그 무엇보다 본업(?)에 충실한 일이다. 이 신부는 “‘문간’의 목적은 대한민국 청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교회가 청년들을 응원하고 격려한다는 표현 중 하나”라고 했다. 이 신부가 밥집을 차리기로 결심한 건 2015년의 일이다. 인천의 전교가르멜수녀원을 방문한 이 신부는 한 수녀와 고시원에서 굶어 죽은 청년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청년을 위한 식당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신부는 어르신이나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도 많았고 결식아동을 위한 시스템도 있었지만, 굶주린 청년을 위한 식당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 2017년 12월 ‘문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신부는 “청년의 죽음에 가슴만 아파했지 구체적인 행동은 생각지 못했는데 수녀님께 식당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청년을 위한 새로운 사도직을 고민하던 수도회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 청년을 위한 공간 이 신부가 밥집을 차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청’이었다. 청년들을 상담하는 상담사, 청소년·청년과 함께 생활하는 활동가, 청년 요리사, 고시원 거주 경험이 있는 청년 등을 수소문해 만나며 ‘청년에게 필요한 것’을 물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청년에게 그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공부도 하며 쉬어갈 수 있는 편한 공간. ‘문간’에는 무엇보다 청년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드나드는 문턱 없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그래서 ‘문간’은 청년을 위한 식당이지만, 청년이 아니라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누구나 똑같은 3000원에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이 어려운 청년에게 3000원보다도 그 어려운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찌개 양이 많다 보니 여성들은 인원수보다 적게 시켜 나눠먹기도 하고, 청소년들도 여러 명이 찌개 하나를 시켜 밥과 반찬의 무한리필을 이용하기도 한다. 정릉시장의 방문객이나 인근의 어르신도 온다. “청년이 아닌 손님이 많을수록 청년도 찾아오기도 편하다”는 것이 이 신부의 설명이다. 이렇게 누구나 똑같이 이용하는 ‘문간’에서는 손님 중 누가 어려운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문간’은 식당 외에도 북카페와 옥상을 개방하고 있어, 식사 목적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1년째 ‘문간’의 단골이라는 김원종(24)씨는 “타지에서 왔는데 ‘문간’에 올 때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매번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서 “종교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천주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간’에는 십자고상도, 성모상도 없다. 이 신부도 ‘문간’에 출근할 때는 로만칼라를 착용하지 않는다. 종교관이 다른 청년들도 방문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이 곳에서 편하게 ‘신부님’을 찾고 있다. 어떤 신자들은 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기도 하고, 신자가 아닌 청년들도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곤 했다. 심지어 불교나 개신교, 정교회 신자 청년이 ‘문간’을 찾아와 이 신부에게 성소상담을 청하기도 했다. 이 신부는 “손님으로 오는 청년들의 사정을 묻는 일은 없지만, 청년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오곤 한다”며 “청년들에겐 성당이나 수도원에 있는 신부보다 밥 주는 신부가 더 편한가 보다”며 웃었다. 이문수 신부가 ‘문간’을 찾은 청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간’ 옆에 위치한 북카페. 청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문간’ 복도에 붙어 있는 방문객들의 메모들. ■ 나눔에서 나눔으로 한 그릇 3000원이다 보니 밥값만으론 늘 적자다. 손님이 일평균 130명은 돼야 적자를 면할 수 있지만, 지난해 ‘문간’의 손님은 일평균 90여 명.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더 적은 형편이다. 그래서 ‘문간’의 운영은 알음알음 보내 오는 나눔의 손길로 이뤄진다. 후원 방식은 다양하다. 후원금을 보내는 이도 있고, 결혼식에서 받은 ‘쌀화환’이나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쌀을 보내는 이도 있다. ‘문간’에서 직접 봉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또 ‘문간’의 나눔은 또 다른 ‘문간’으로 이어졌다. ‘문간’의 취지에 공감한 최운형 목사가 이 신부를 찾아와 ‘문간’을 직접 체험하고 2018년 10월 은평구에 ‘문간’ 2호점을 연 것이다. 최근에는 ‘문간’ 2호점이 개신교계에서도 이슈가 되면서, 동참하고자 하는 목사들의 문의가 늘었다. 이 신부의 ‘문간’ 역시 재단법인으로 운영하던 방식을 사회적 협동조합을 발족해 더 많은 이들이 ‘문간’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이 신부는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문간’을 운영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며 “가능하다면 앞으로 적자를 줄여 또 다른 곳에 ‘문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19로 더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어려움이 계속되면 도움 청하기도 미안해지고 사람들과 만남도 피하고 싶을 수 있지만, 손을 내민다면 잡아 줄 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요즘 너무도 힘들 거라 생각하지만 포기하지는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02-741-6031 청년밥상 문간 후원계좌 301-0272-7703-61 농협(예금주: 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

발행일 2020-08-30 제3209호 7면

[가톨릭쉼터] ‘삶터’ 손수 짓는 정광섭·기철 父子

집짓기 공사 전 기도를 바치고 있는 정광섭(오른쪽)씨와 아들 정기철씨. 부자의 일과는 어김없이 기도로 시작된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며 처음 만난 주민에게 물었다. “정 프란치스코 형제님 댁이….” 대번에 답이 돌아왔다. “아…, 아들하고 같이 집 짓는 분…!” 이웃이 알려준 대로 찾아가자 어느 정도 얼개가 갖춰진 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야~!”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부터 나왔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자락에 자리한 ‘사누스힐’ 언저리에서는 망치소리가 은근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광섭(프란치스코·61)·기철(요한 세례자·34)씨 부자와 만남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 기도로 짓는 집 “아버지, 기도 안 해요?” 아들 기철씨가 먼저 채근한다. 집을 다 지을 때까지 머물고 있는 원주에서 새 집이 올라가고 있는 ‘사누스힐’까지는 30분 남짓한 거리. 현장에 도착한 정씨 부자의 일과는 어김없이 기도로 시작된다. 미사 때면 복사까지 서다 10년이나 냉담하던 기철씨를 다시 신앙 안으로 불러들인 것도 집짓기 덕이다. 처음 공사에 들어간 게 4월 10일이니 정씨 부자의 집짓기는 어느덧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주 5일, 매일 8시간씩 이어지는 강행군. 싫증이 날법한데도 얼굴 찡그리는 일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부자의 집짓기는 삶에 대한 깨침이고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의 여정이다. “못 박는 일 하나하나도 제 힘만으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느낍니다. 애초부터 이 일이 저희에게는 기도이고 묵상의 길임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대못이 손을 관통하는 사고를 쳤음(?)에도 뼈를 다치지 않아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경험은 두고두고 묵상거리를 던져준다. 방수공사를 하고 있는 정광섭(아래)씨와 아들 정기철씨. ■ 닮아가는 꿈 정씨 부자의 여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었는지 모른다. 해군 장교였던 정씨의 부친도 선종하기 전까지 경남 창원에서 20년 동안 집을 짓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아들이, 그 아들의 아들이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짓고자 하셨던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부친 뒤를 이어 제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꿈을 꾼 시간만 10년이 넘는다. 전자회사를 다니던 정씨는 2003년부터 주말마다 짬짬이 전기설비를 비롯해 건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기 위해 2014년 조기은퇴를 택했다. 그해부터 그는 타일시공, 실내목공 등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집 지을 땅은 의외로 쉽게 구해졌다. 2015년 8월 가까운 지인과 우연한 기회에 ‘사누스힐’에 들렀다가 사흘 만에 땅을 계약했다. 이후 온 가족이 집짓기 ‘예행연습’에 돌입했다. 정씨는 2015년 연말부터 목조주택학교에서 두 달간 실습을 했다. 아내 오인옥(클라라·60)씨는 귀촌 준비를 위해 식초 담그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손수 집을 짓겠다는 뜻을 털어놓자 아들 기철씨도 두말 않고 따라나섰다. 이미 자신의 신혼집을 새집같이 리모델링해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두터웠기 때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6년 초부터 실내목공을 공부하며 아버지의 꿈에 희망을 보탰다. “집을 짓다 보면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기도생활에 젖어드는 모습에 스스로 놀랍니다.” ■ 나누고 싶은 체험 목조주택학교에서의 실습 체험을 바탕으로 2016년 3월 정식 목수로 나선 정씨가 올 1월까지 직접 공사에 참여해 지은 집만 다섯 채. 이젠 내 힘으로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나선 길이 자신들의 집짓기다. 두 부자의 힘만으로 건물 바닥 기초공사부터 기둥 세우기, 지붕 얹기, 벽체 세우기, 전기 배선, 상하수도 놓기 등을 하다 보니 집이 올라가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사이 폭염, 장마 등과 싸우는 동안 부자의 정은 한결 도타워졌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도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아버지와 집을 짓는 동안 자신의 미적 감각을 계발한 기철씨는 건축 공부를 더하기 위해 유학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목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도 이러셨을까요. 몸소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들을 만드시며 하느님 나라라는 더 큰 집을 그리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하루하루 생각도 못했던 체험들이 쌓이는 만큼 기도와 묵상의 깊이도 더해가고 있다. ◆ ‘사누스힐’은… 치악산 허파인 강원 횡성 매화산 자락 초대교회 공동체의 꿈 실현하는 마을 치악산의 허파에 해당하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사누스’(Sanus)는 ‘건강한’, ‘치유되는’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치유해 건강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뵈러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청년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낸 (주)사누스 박영군(루피노·65·원주교구 안흥본당) 대표가 주님을 찬미하며 복음을 살아가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궈나가고 있는 마을이다. 지난 2004년 주천강변 일대 10만㎡(3만 평) 대지에 처음 둥지를 튼 ‘사누스빌’이 시작이었다. 복잡한 도회지에서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사누스빌은 방송과 일간지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 은퇴를 앞둔 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전원주택단지로 소개됐다.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늘면서 2차 뜨래꽃마을, 3차 사누스밸리, 4차 사누스힐까지 마을이 확장되고 있다. 정광섭씨는 “전원생활이 실패하는 주된 원인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한다. 따로 신자만 고른 것도 아닌데, 입주민 90%가 신자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부터 함께하는 산책으로 열린다. 마을 둘레 숲속 길 3㎞ 남짓한 공간에 조성된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을 돌며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세상사도 나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여는 반모임, 마음 맞는 이들끼리 수시로 갖는 기도모임 등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계절별로 정월대보름 축제에, 함께 산나물을 캐 나누는 산나물 축제, 한여름 밤의 콘서트 등은 인근 마을주민들에게도 인기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이뤄진 일이라 믿습니다. 주님 뜻만 좇는 공동체로 발전해 나갔으면 합니다.” 박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소비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생산도 함께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협동조합형 마을기업. 주민들이 신앙에 더해 생활도 함께 나눠갈 수 있는 고리인 셈이다. 쉽게 할 수 있는 된장 등 장류와 효소, 절인 배추를 만드는 일과 조경, 전원주택 관리 등 개개인의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피정센터도 마련해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장도 구상 중이다. 여느 피정집과 다른 것은 철저히 마을사람들의 봉사로 꾸려간다는 것. 마을 주민뿐 아니라 지친 이 누구에게나 열어놓을 계획이다. “우리 스스로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한 형제가 될 수 있는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의 033-344-8877 (주)사누스, www.sanus.co.kr

발행일 2017-10-15 제3065호 7면

[가톨릭쉼터]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 도보순례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을 한국교회와 시민사회 모두의 순례길, 더 나아가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세계적인 순례 명소로 만들기 위한 발걸음과 땀이 모아졌다. ■ 주교와 서울시 부시장·구청장들이 한자리에 7월 26일 오전 8시 무렵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정순택 주교) 직원들이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구 주교관 앞에 안내 부스를 차리고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정순택 주교, 원종현 신부(서울 순교자현양위 부위원장) 등이 등산화에 모자, 수건 등을 갖춘 모습으로 속속 구 주교관 건물터로 모였다. 서울시 류경기 행정1부시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최창식 중구청장, 성장현(빈첸시오) 용산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도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함께 가벼운 등산복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2013년 9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 의해 선포된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은 서울시내 종로구·중구·용산구·마포구 등 4개구에 걸쳐 총 27.3㎞에 이르는 도보순례 코스다.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터-좌포도청터와 한성부 내 주요 관청터-서소문역사공원·순교성지-당고개순교성지-새남터순교성지-절두산순교성지 등이 주요 순례거점이다.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은 내년 9~10월 경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로부터 교황청 공식 순례지로 선포될 계획이다. 이번 도보순례는 교황청 공식 순례지 선포를 앞두고 사전에 개선사항을 점검하고 자치구의 문화콘텐츠를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이뤄졌다. 서울시와 자치구별 관광정책 책임자는 물론 역사정책, 보행·도심재생 실무 공무원들도 참여해 27.3㎞ 전 구간을 꼼꼼히 점검했다. 원종현 신부가 마이크를 잡고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 조성 경위와 교황청 공식 순례지로 선포되기 위한 준비사항 등을 설명한 뒤 참석자들은 구 주교관 계단에 자리를 잡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이날 순례의 막을 올렸다.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 도보순례단이 7월 26일 출발에 앞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날 순례에는 서울시 류경기 행정1부시장을 비롯해 김영종 종로구청장, 최창식 중구청장, 성장현(빈첸시오) 용산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도 함께했다. ■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절두산순교성지까지 순례단은 주교좌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안치된 성인 유해 앞을 천천히 지나며 마음을 경건히 하고 첫 번째 목적지인 수표교 옆 ‘이벽의 집터’로 향했다. 한국 천주교가 시작된 장소인 이벽의 집터를 알리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표지석은 현재 종로구 관수동 두레시닝빌딩 인근에 세워져 있지만 교회사 연구자들의 고증 결과 중구 수표동이 정확한 위치로 밝혀졌다. 관수동과 수표동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청계천을 사이에 둔 지척 거리에 불과하다. 원 신부가 즉석 제안에 나섰다. “종로구청장님과 중구청장님이 이 자리에서 바로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표지석을 내년까지는 중구 수표동으로 옮긴다는 합의를 해 주십시오.” 표지석을 둘러싸고 서 있던 김 종로구청장과 최 중구청장은 정 주교와, 원 신부, 류 부시장과 곧바로 손을 하나로 모으고 웃음꽃을 피우며 “표지석 이전해야죠”라고 시원하게 화답했다. 순례단의 발걸음은 박해시대 순교선조들이 고초를 겪었던 좌포도청터로 향했다. 지금은 종로3가 치안센터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원 신부의 ‘백과사전식’ 설명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좌포도청터에 지금은 치안센터가 들어와 본래 기능과 역사성, 장소성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곳이 역사적 의미를 살린 문화시설로 이용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이에 대해 김 종로구청장은 “종로3가 치안센터를 ‘종로3가 좌포도청터 치안센터’로 명칭을 바꾸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 교회 역사는 한국사회 역사와 분리 불가 순례단은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 한낮 더위에 아랑곳없이 다음 행선지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을 찾았다. 한양도성 성곽은 조선 초기부터 중기, 후기, 1960년대, 최근까지 여러 번 고쳐 돌을 쌓아 서울의 역사를 가장 오롯이 보여주는 문화재다. 돌 색깔만 봐도 유구한 역사를 생생히 알 수 있다. 한양도성 성곽길(낙산길)을 따라 내려오자 출구가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으로 연결된다. 가톨릭대 성신교정은 본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전신인 백동수도원터다. 서울의 역사와 한국교회 역사가 장소적으로 별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음 순례지인 가회동성당으로 가는 길에 서울 계동 한옥마을을 지나던 중 도심 한가운데 이색적인 우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석정보름우물’이다. 원 신부의 설명이 또 이어진다. “1794년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님이 계동에 숨어서 선교하며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1845년 김대건 신부님도 짧은 기간이지만 이 지역에서 사목하며 이 우물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회동성당을 나와 124위 시복식이 열린 광화문광장, 형조터, 의금부터, 전옥서터, 우포도청터 순례가 계속됐다.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 보신각을 따라 걸으며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국천주교 순교터이자 신앙증거터’라고 적힌 표지석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다들 놀라워 했다. 교회사와 한국역사가 하나로 묶여 있고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을 가꾸기 위해 교회와 사회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서울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가 서울 계동 북촌한옥마을 ‘석정보름우물’에 얽힌 교회사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 도심이 내려다 보이는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단. ■ 모두가 걷고 싶은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로 서소문역사공원·순교성지 공사현장과 당고개·새남터·절두산순교성지 순례는 버스 이동과 도보순례가 결합됐다. 다른 성지들과 달리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당고개순교성지가 하마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사연을 들은 순례단은 탄식을 내뱉었다. 성장현(빈첸시오) 용산구청장의 증언이다. “1998년 당고개성지에는 10명의 순교자 이름이 적힌 안내판 하나만 세워져 있었을 뿐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이곳에 아파트 설립 허가가 나자 제가 당시 고건 서울시장을 찾아가 ‘새 역사도 만드는데 있는 역사를 없애서야 됩니까? 아파트 설립 허가를 취소·변경하고 성지 부지는 남겨주십시오’라고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결국 아파트 두 동이 들어서기로 했던 당고개성지 부지는 천만다행으로 보존이 되고 주변에만 아파트가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지막 순례지인 절두산성지가 올려다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밑 ‘영혼의 강’(이인평 작) 시비 앞에 모인 순례단은 순교자 유해실로 이동해 경배한 뒤 성지 사무동으로 자리를 옮겨 더위를 식히는 다과와 담소를 나눴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정 주교는 “천주교 성지 순례에 서울시 부시장님과 4개 구청장님들, 실무 공무원들이 동참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며 “평신도에 의해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 역사가 우리 교회의 자랑인 동시에 우리 역사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우포도청터 표지석.

발행일 2017-08-06 제305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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