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브렌다노의 항해〉와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5월 16일은 아일랜드의 성인, 항해자 브렌다노 축일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배를 타고 형제들과 함께 ‘약속된 땅’을 찾아 서쪽 바다로 떠났다. 항해가 역사적으로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리스도교 세계를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브렌다노가 향한 곳은 지리의 바다이기 이전에, 신앙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중세 라틴어 문헌 「성 브렌다노 수도원장의 항해(Navigatio Sancti Brendani Abbatis)」, 「브렌다노의 삶(Vita Brendani)」 등으로 전해진다. 항해담 속 바다는 평온하지 않다. 브렌다노 일행은 섬이라고 믿고 내린 곳에서 불을 피우지만, 그곳은 섬이 아니라 거대한 해양 생물 야스코니우스(Jasconius)의 등이다. 그들은 떠돌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새들의 섬, 유다 이스카리옷이 절망 속에서 잠시 쉬는 바위를 본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기이한 전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바다는 인간이 자신을 내어 맡기고 하느님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의 장소다. 이런 성 브렌다노를 20세기 음악으로 듣는 경험은 각별하다. 아일랜드 작곡가 숀 데이비(Shaun Davey)가 1980년 선보인 〈브렌다노의 항해(The Brendan Voyage)〉는 탐험가 팀 세버린이 아일랜드에서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까지 배를 타고 나아간 과정을 묘사한 곡이다. 여기서 세버린의 모험은 성 브렌다노의 뱃길을 재현한 것이다. 아일랜드 전통 악기 일리언 파이프의 음색은 성인의 배를 표현하고, 오케스트라는 그들이 마주하는 바다, 기상 조건, 섬, 생물들을 형상화한다. 10개 악장의 구조는 실제 항로를 그대로 따른다. ‘서곡’과 ‘브렌다노의 테마’로 시작된 도정은, ‘미키네스의 절벽’ 같은 구체적인 풍경 속으로 청자를 인도한다.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행로’와 집어삼킬 듯한 ‘강풍’의 위기는 신앙의 시련처럼 그려지지만, 배는 끝내 ‘뉴펀들랜드’라는 평화로운 항구에 도착한다. 이 서사는 9세기 철학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의 ‘지성적 항해’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의 이름 ‘스코투스’는 당시 맥락에서 아일랜드인을, ‘에리우게나’ 역시 에리우(Ériu, 아일랜드) 태생임을 의미한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 활동한 그는 주저 「자연구분론(Periphyseon)」 4권에서 신학·철학적 탐구를 위태로운 바닷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독자를 초대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혀 다른 항해에 들어선다. 여기서는 수많은 굽이치고 얽힌 논의들 사이에서 항로를 가려내야 하고, 난해한 교리들의 가파른 비탈을 올라야 하며, 시르테스의 해역, 곧 낯선 가르침들의 급류가 만들어내는 위험한 지역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곳에서는 가장 미묘한 지성들의 어스름 속에서 언제나 즉각적인 난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들은 마치 숨겨진 암초처럼 갑작스레 우리의 배를 산산이 부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선장이자 조타수가 되고, 성령의 은혜로운 바람이 우리 돛을 가득 채운다면, 우리는 이 모든 위험 속에서도 참되고 안전한 항로를 가려낼 것이며, 마침내 우리가 찾는 항구에, 상처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평온한 여로 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돛을 펼치고 바다로 나아가자.”(「Periphyseon」, Ⅳ. 744a-b) 이 점에서 브렌다노, 작곡가 데이비, 에리우게나는 아일랜드 수도승 전통인 ‘그리스도를 위한 순례(Peregrinatio pro Christo)’와 겹친다. 이는 고향과 안온한 삶을 떠나 오직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거룩한 유랑의 정서다. 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장소인 동시에, 나를 비우고 하느님 현존과 이끄심을 느끼는 은총의 공간이었다.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넘었던 수도자들, 지성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했던 철학자, 〈브렌다노의 항해〉 선율은 오늘날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하느님 자비를 조타수 삼아, 각자의 대해로 기꺼이 향하고 있는가. 그러니 이제 돛을 펼치고 바다로 나아가자.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6면

[성미술 산책]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녀 안나와 성모자>

이 작품은 당시 60대 초반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으로 물 흐르는 듯 생기 넘치고 절제된 움직임과 고상하고 우아한 색채 그리고 무한대로 펼쳐지는 원경의 자연 풍광 등 그의 원숙한 화풍이 고스란히 담긴 걸작입니다. 그는 르네상스의 과학적인 일점소실원근법을 넘어 ‘시각적 효능은 어느 한 지점으로 귀착되지 않고 눈의 동공 전체로 확산된다’는 광학적 연구에 근거한 ‘대기원근법(atmospheric perspective)’과 사물의 윤곽선을 ‘연기처럼(sfumato)’ 흐릿하고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화풍을 창안했는데, 이는 바로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여기서는 성모자의 모친 성녀 안나도 함께 등장하는데 모녀간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세상의 시간 개념을 초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맨 뒤에는 가장 크게 표현된 안나가 있고 무릎 위에 마리아가 앉아 있는데, 우리 시선은 사랑 넘치는 눈으로 마리아를 내려다보는 성녀 안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시선과 그를 향해 뻗은 두 팔 그리고 천진하게 성모를 올려다보며 흰 양에게 팔을 뻗는 아기 예수에게로 이어집니다. 여기 아들이 맞닥뜨릴 고통의 운명을 막으려는 듯 희생의 상징인 양 위에 올라타려는 예수를 말리려는 성모의 간절함이 전해져 애처롭습니다. 또한 안나의 몸은 좌측으로 움직이는 반면 시선은 예수에게로 향하고, 마리아의 몸과 시선은 다시 우측의 예수에게로 그리고 예수와 양은 고개를 돌려 마리아를 바라보는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되었는데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인물들이 균형 잡힌 피라미드 구도로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동작과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복잡 미묘하고 신비로운 교감, 바로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가 오가는 순간입니다. 자연과 인체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 레오나르도. 그에게 땅은 인간의 ‘살’, 산맥은 ‘골격’ 그리고 강물은 ‘피’입니다. 여기 원경의 푸르스름 어렴풋한 자연풍광과 전경의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지는 것은 이 모두 대자연 속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의 자연 속 성가족은 동양의 장자(莊子)가 일컫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우러져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이같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 이것이 대자연의 신비, 바로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4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몬테루코 성지, 성스러움 가득한 숲속 은둔소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스폴레토(Spoleto) 남쪽, 해발 800m에 자리한 몬테루코(Monteluco)는 ‘산’을 뜻하는 Monte와 ‘성스러운 숲’을 뜻하는 lucus에서 유래했습니다.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들어서면, 이름에 담긴 의미를 모르더라도 사방에서 밀려드는 거룩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신성한 숲은 기원전 3~2세기에 제정된 ‘스폴레토 숲의 법(Lex Luci Spoletina)’에 따라 보호되어 왔습니다. 스폴레토 지역의 신성한 숲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한 이 법은 최초의 산림법 가운데 하나로도 여겨집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기원후 5세기부터는 시리아에서 온 수도자들이 성지 안에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경당을 세우고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베네딕도 규칙서를 따르던 수도자들은 이 경당을 은둔 장소로 이어 오다, 1212년 이곳을 처음 방문한 프란치스코에게 사용하도록 내어주었습니다. 1218년 프란치스코는 초기 형제들과 함께 카타리나 경당 주변에 나뭇가지와 진흙, 석회로 독방들을 만들고, 은둔 생활과 공동 기도 생활을 함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선교 활동에서 벗어나 은둔하기 위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1205~1206년, 그가 기사 복장을 하고 제4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기 위해 풀리아주로 향하던 길에 스폴레토에서 처음 신앙의 소명을 느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난 장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듯, 스폴레토에서 들은 주님의 음성은 프란치스코가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게 한 힘이었을 것입니다. 15~16세기 건물들로 둘러싸인 사각 정원의 몬테루코 성지 입구를 지나면, 프란치스코가 기적적으로 물을 솟아나게 했다고 전해지는 우물이 나옵니다. 그 옆에는 ‘프란치스코의 기도소’라고 불리는 경당이 있습니다. 초기 형제들이 사용했던 다른 공간들처럼 이 경당도 본래 자연 동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경당 안 제대를 받치고 있는 돌은 프란치스코가 기도할 때 무릎을 꿇거나 잠을 잤던 자리로 전해집니다. 우물 왼쪽으로는 프란치스코의 초기 형제들 때부터 1960년대까지 사용한 독방들이 이어진 좁은 복도가 나옵니다. 성지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은둔 생활에 관한 규칙서를 작성했는데, 그 안에서 강조한 것은 홀로 고립되는 고독이 아니라 형제애였습니다. 은수자는 셋이나 넷을 넘지 않도록 했고, 두 사람이 마리아처럼 주님 곁에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면, 나머지 두 사람은 안주인처럼 그들을 보호하고 음식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역할을 바꾸어 모두가 하느님을 찾는 일을 우선하도록 한 것입니다. 가로세로 2m 크기의 작은 방 일곱 개로 지어진 은둔소에는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방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좁은 창문으로 희미한 빛만 들어옵니다. 푹신한 침대 대신 널빤지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몇 가지 물건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나무문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방이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마치 시간이 800년 전에 멈춘 듯 모든 방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눈을 감으면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방들은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성인과 복자들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오랜 기간 머물렀던 자리입니다. 성 보나벤투라(1217~1274),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1195~1231),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1380~1444), 파올루치 트린치(1309~1391)를 비롯해 이름 없는 많은 수도자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이 이곳을 찾은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다가도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셨던 것처럼, 형제들도 이 거룩한 숲에서 스스로 고독을 택했습니다. 이 고독은 하느님을 기다리고 만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홀로 머무는 시간입니다. 그중 성 안토니오는 1221년 시칠리아 여행 중 이 은둔소에 머물렀습니다. 그의 이름은 지금도 숲속 깊은 곳, 접근하기 어려운 동굴 가운데 하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몬테루코 성지에 성 안토니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1232년 5월 30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바로 스폴레토 대성당에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시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몬테루코 숲의 신성한 분위기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듯합니다. 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험준한 바위 능선 사이에 보물처럼 숨겨진 작은 동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동굴들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와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를 비롯한 여러 성인이 머물렀던 곳이며, 그들은 이곳에서 온전히 은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숲속 끝 전망대에서는 스폴레토 계곡의 푸르름에 둘러싸인 스폴레토 마을, 요새, 두오모 대성당 등 역사적 중심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광활한 풍경은 프란치스코의 영혼에 깊은 감명을 주었고, 그는 벨베데레 벽에 새겨진 것처럼 “nil iucundius vidi valle mea spoletana(스폴레토 계곡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3면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가족은 먹이고 돌보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두고 흔히 ‘방귀를 튼 사이’라고 말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가족의 본질을 꽤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사이입니다. 숨길 것도 체면도 없이 서로의 습관과 약점까지 아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서로에게 엉겨 붙어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몸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호르몬이 작용합니다. 자극을 찾게 하는 도파민, 만족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스트레스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 같은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 호르몬’이라는 별칭을 가진 호르몬이 옥시토신입니다. 옥시토신은 손을 잡거나 포옹할 때,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분비됩니다. 옥시토신이 충분히 분비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안정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군가와 연결될 때 안정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서로에게 끌리는 힘과 서로를 살리는 책임이 함께 살아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두 사랑을 에로스와 아가페로 설명합니다. 에로스는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이고, 아가페는 자신을 내주는 사랑입니다. 가족은 이 두 사랑이 함께 작동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은 감정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살게 하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부활의 첫 장면은 놀라울 만큼 평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리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숯불을 피우시고 물고기와 빵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행동은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그 식사 뒤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세 번 명령하십니다. 전례용 성경에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원문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리듬이 있습니다. “내 어린 양들을 먹여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먹여라.” 예수님은 먹이고, 돌보고, 다시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동사’로 보여 주십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살게 하는 행동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차려 주고, 지친 사람을 돌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가족의 사랑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의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함께 식탁에 앉고, 서로의 하루를 묻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는 경쟁과 성취를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이루라는 압박이 우리를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경쟁이 아니라 사랑에서 옵니다. 그래서 가족은 특별합니다.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과 서로를 살리는 책임이 함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에로스와 아가페가 함께 어우러진 사랑, 그것이 가족의 근간입니다. 어쩌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전하신 사랑의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먹이고, 돌보고, 다시 먹이는 사랑. 그것이 가족을 이루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6면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사랑은 발을 씻어 주는 일

클라라가 만삭이었을 때 일입니다. 엘리사벳이 태어날 즈음, 클라라는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신발 가방을 따로 챙겨야 했습니다. 두 발은 무거워진 몸을 지탱하기가 힘겨워 보였습니다. 아침에는 괜찮았던 발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어서 퇴근할 무렵이면 출근할 때 신었던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퉁퉁 부은 발이 들어갈 만한 큰 사이즈의 신발을 넣은 신발 가방은 만삭 임산부의 필수 지참물이 되었습니다. 직장 동료가 말린 쑥을 챙겨주었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넣고 불린 다음 발을 담그면 부기가 가라앉을 거라고 하면서요. 집으로 돌아와 쑥물에 족욕을 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를 버텨 준 두 발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양손으로 구석구석 주물러 주었습니다.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도, 발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고 온몸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좋은 곳에 갈 때 가족이 떠오르는 것처럼 족욕의 기쁨도 가족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와 카타리나를 불러 식탁 의자에 앉혔습니다. 쑥물이 담긴 대야 두 개를 두 사람 발 앞에 각각 두었습니다. 두 발을 담그라고 하자, 두 사람은 클라라를 빤히 쳐다볼 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발이 더럽고 냄새도 날 거라며 발을 내보이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클라라는 곧 자신의 발을 씻은 그 방식대로 두 사람의 발을 담그고 천천히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날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세족식을 한 날입니다. 만삭의 몸으로 두 사람의 발을 씻어 주던 그날의 장면이 생생합니다. 하루 종일 신사용 검정 구두 안에 갇혀 건장한 남성의 체중을 견디며 분주하게 움직였을 큰 발과 엄마 아빠가 일하는 사이 다섯 살의 세상을 누볐을 작은 발. 클라라는 그 발들을 씻으면서 그들이 보낸 하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세족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클라라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랑은 ‘발을 씻어 주는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언젠가 친한 친구의 발에 통풍성 관절염으로 심한 부종이 생긴 걸 본 적 있습니다. 그의 발을 씻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의 발을 씻어 주는 대신, 그의 아픔을 목격하며 얼마만큼 아픈지 어쩌다 아프게 되었는지 도울 일이 있는지 그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게 발을 씻어 주는 일의 의미는 아픔을 공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지치고 고단했을 발을 씻어 주는 시간, 온몸으로 사랑이 전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서로의 발을 씻어 줍니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하루의 무게가 물 안에 풀어지고, 손끝으로 전해진 온기가 다시 몸으로 스며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갑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하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와 브뤼허 성 요한 병원(하)

성 요한 병원을 묘사한 그림을 다시 떠올려본다. 한쪽에서는 사제가 병자 성사를 집전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녀가 막 숨을 거둔 이를 위해 기도한다. 여기서 배경음처럼 한 성가가 들려온다. 〈하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 이 노래는 죽음의 문턱을 넘은 이를 성인들과 천사들이 맞아들이도록 청하는 화답송(Responsorium)이다. 장례미사 고별식에서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할 때 고별 노래로 쓰인다. 초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Subvenite, Sancti Dei) 주님의 천사들이여, 마주 오소서.(occurrite, Angeli Domini) 이 교우를 받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 바치소서.(Suscipientes animam eius, Offerentes eam in conspectu Altissimi)” 성 요한 병원은 병자와 순례자, 가난한 이가 머물던 곳이었고, 돌봄은 치료만이 아니라 기도와 전례, 임종 동반까지 포함했다. 치유할 수 없는 이들,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자, 순례 중 쓰러진 이들을 위한 공간. 이것이 병원이 오랫동안 수행해 온 호스피스 역할이었다. 이 계보를 더 멀리 끌어올 수 있다. 4세기 카파도키아의 성 바실리우스가 세운 바실레이아는 가난한 이, 병자, 여행자를 위한 복합 시설이었고, 당시 사회에서 가장 배척받던 한센인들을 위한 시설 켈루포코메이온(keluphokomeion)까지 있었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는 친구 바실리우스를 위한 추도 연설에서 한센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죽음 이전에 이미 죽었으며, 몸 대부분이 이미 사라져 버렸다. 도시에서, 집에서, 공공장소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수원지에서, 심지어 가장 친한 벗들에게서 쫓겨난 사람들.”(「대 바실리우스 추도연설」 Oration 43) 바실리우스 공동체의 급진적인 면은 이처럼 혐오 받는 계층에 대한 포용에 있었다. 불치병이나 말기 환자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당시 의료 상황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다. 호스피스 개념과 전인적 돌봄의 시작이다. 성 요한 병원 역시 그 전통을 충실히 잇는 기관이었다. 이곳이 소장하고 있는, 화가 한스 멤링의 역작 〈성 우르술라의 성유물함〉이나 아폴로니아의 어금니 같은 성 유해들도 장소의 정체성과 연계되어 있다. 병자들은 각자 앓는 질병에 따라 성인에게 치유를 청원했다. 성 로코는 흑사병, 성 아폴로니아는 치통, 성 고르넬리오는 간질·발작, 성 루치아는 안질, 성 우르술라는 급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환자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고, 성인들에 대한 전구는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성 요한 병원이 소장한 〈해골을 든 수녀의 초상〉은 인상적이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해골은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의 표지였다. 수도자의 손에 들린 해골은 헛됨과 무상함을 상징하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 소품과는 조금 다르다. 죽어가는 이들 곁에 있었던 이들이 쥔 해골은, 추상적 상징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실제로 마주하는 죽음 자체였기 때문이다. 〈애덕이 있는 곳에〉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타인을 씻기고 안는 찬가였다면, 〈하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는 사랑이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음을 들려준다. 전자가 산 이를 위한 애덕이라면, 후자는 떠나는 자를 위한 환대다. 병원은 두 노래가 한 곳에서 만났던 공간이다. 병자는 치료받았고, 가난한 이는 의탁할 곳을 얻었으며, 죽어가는 이는 홀로 버려지지 않았다. 카리타스는 생명을 돌보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죽음마저 품어 안는 환대로 완성되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16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카르체리 성지, 하느님이 계신 곳에 평화 있다

해발 800m에 있는 ‘에레모 델레 카르체리(Eremo delle Carceri)’는 포르치운콜라 경당에서 약 6km 떨어진 수바시오산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고요한 성지입니다. 이곳은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첫 동료들이 은둔하며 묵상에 잠기고, 더욱 간절한 기도 생활을 하며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곳입니다. ‘카르체리(Carceri)’는 라틴어 카르세르(carcer)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 ‘울타리’를 뜻합니다. 종교적으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과 떨어져 머무는 외딴 장소, 곧 은둔소를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카르체리는 하느님께 온전히 마음을 두는 안식처이자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의 제자이자 작가인 첼라노의 토마스가 그의 책에서 기록한 다음의 글에서도 드러납니다. “프란치스코는 영혼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주님과 하나 되려고 늘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녔고, 장소가 없으면 망토로 방을 만들었으며, 망토가 없으면 옷소매로 얼굴을 덮었고, 옷소매마저 없으면 가슴에 성전을 만들었다.” 또한 그가 머물렀던 여러 은둔소에는 공통적으로 바위와 물이라는 상징이 나타납니다. 바위는 든든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고, 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성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르체리 역시 이러한 영성을 공유하는 장소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페루지아 전쟁(1202년) 패배와 1년간의 감옥 생활 이후 아시시로 돌아와 이곳에서 은둔하며 침묵 속에서 묵상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홀로 잠자고 기도하던 프란치스코의 바위 동굴 은둔소에는 웅크려 누울 정도의 공간만 남아 있지만, 진정한 자유는 귀족으로의 신분 상승이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주인이신 예수님과 하나 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가난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형제들과 자신의 것을 나누는, 그리고 모든 이와 자신의 것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나눔은, 줄어듦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주님의 현존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머무르며 기도했던 이 장소를 중심으로 15세기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설교자인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 성인에 의해 여러 수도자가 머물 수 있는 수도원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계신 곳에 평화 있다(Ubi Deus, ibi pax)’라고 적힌 문을 지나면 두 개의 우물이 있는 회랑, 사방이 막힌 사각형 구조의 정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외형적으로는 삼각 정원처럼 보이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수도원 구조와 공간적 의미를 고려하면 ‘무형의 사각의 정원’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수도원의 우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물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공동체 생활의 가장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베르나르디노 성인의 설교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예수는 세상의 빛, 태양 같은 존재’라는 표현을 상징하는 ‘IHS’ 문양이 새겨진 문을 지나면,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공동 식당이 있습니다. 성당이 기도를 하는 영적 양식을 위한 공간이라면, 식당은 육체적 양식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모든 식사를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수도자의 앞자리는 항상 비워 두었습니다. 식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15세기에 조성된 수도자들의 독방으로 이어집니다. 바위 절벽과 맞닿은 복도 사이에 자리한 이 독방들은 침묵과 인내, 기도와 찬미의 삶을 상징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머물렀던 동굴 옆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기도소인 ‘성모 마리아 경당’이 있습니다. 초기 형제들이 함께 기도하던 이곳에는 아기 예수님을 안은 채 옥좌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제단화가 있는데, 이는 1506년 아시시의 티베리오가 그린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제단화 안에는 13세기에 그려진 십자가상 제단화가 겹쳐 있습니다. 아기 예수와 십자가의 예수를 겹쳐 표현함으로써, 육화하신 아기 예수님이 운명처럼 다가오는 자신의 희생을 아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앉아 계신 성모님은 더욱 깊은 위로로 다가옵니다. 프란치스코의 동굴 밖으로 나오면 절벽 아래 구멍이 뚫린 붉은 돌바닥이 보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들」 29장에는 이곳에서 루피노 수사가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프란치스코는 루피노에게 재치 있게 대응하도록 권했고, 그 말에 격분한 악마가 절벽에서 떨어지며 돌에 구멍을 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혹에 흔들릴 수 있지만, 인내와 믿음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지금은 물이 마른 계곡의 다리를 건너면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설교할 때 새들이 머물렀던 나무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대부터 존재해 온 나무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이곳부터 오래된 참나무 숲길을 따라 산책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10항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그는 신비주의자이자 순례자였으며, 하느님과 타인, 자연 그리고 자기 자신과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모든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말보다 ‘하느님 계신 곳에 평화 있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간입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3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애덕이 있는 곳에〉와 브뤼허 성 요한 병원(상)

벨기에 브뤼허 성 요한 병원(Sint-Janshospitaal) 박물관의 고요한 전시실. 한 유물 앞에서 헤드폰을 쓴 순간 그레고리오 성가가 흘러나왔다.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 〈애덕이 있는 곳에(Ubi Caritas)〉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발 씻김 예식의 교송(안티폰)으로 오랫동안 사용됐다. 가사는 8세기 샤를마뉴 대제의 궁정에서 활동했던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핵심 인물인 아퀼레이아의 바울리노 성인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정의는 어떤 교리적 진술보다 명료하다. 지금 서 있는 장소의 정체성을, 성가는 단번에 관통하고 있었다. 12세기 중반에 설립된 성 요한 병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병자와 순례자, 여행자들을 돌보았고, 신분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조력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받았다. 〈애덕이 있는 곳에〉가 흙먼지 묻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재현하는 세족례, 주님 만찬 미사에서 불리듯, 이 시설은 환자들의 피고름과 토사물을 닦아내며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던 정신이 깃든 곳이다. 수녀들의 초상화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근대 이후 이곳은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를 따르는 수녀회의 헌신으로 유지됐다. 이들의 사망률이 관 모양의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1300년부터 1500년 사이, 이곳의 수녀와 간호하는 이들이 5년 이내 죽음에 이른 비율은 16퍼센트. 얼핏 작아 보이는 숫자다. 그러나 동일 조건으로 환산하면 10년 내 치사율은 약 30퍼센트, 15년 수치는 40퍼센트를 넘어선다. 도리어 환자들의 사망률은 낮게 유지됐다. 1782년부터 1796년까지 14년간 환자 생존율은 85퍼센트에 육박했다. 아픈 자보다 돌보는 자가 감염이나 과로로 먼저 쓰러진 것이다. 많은 종교가 희사나 자선을 강조한다. 그러나 재산을 내어주는 것과 생명을 내어주는 일은 다르다. 한 번의 순교가 아니라, 매일 병동에서 일하며 전염에 노출되고, 역병의 계절마다 쓰러져 가면서도 서원을 거두지 않는 삶. 이런 완전한 자기 봉헌, 애덕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전통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특히 선명하고 눈물겹다. 성 요한 병원은 그래서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다. ‘환대’의 원형이다. 병원(Hospital)과 환대(Hospitality)는 ‘손님 혹은 주인’을 뜻하는 같은 어근 ‘hospes’에서 왔다. 성 베네딕토가 수도 규칙서 53장에서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라고 했듯이, 이곳은 타인을 품어 안는 환대와 연민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전시장 곳곳의 〈착한 사마리아인〉, 〈아브라함의 환대〉를 그린 걸작들은 이 공간의 신념을 반복해서 증언한다. 이곳에는 또 다른 음악이 깃들어 있다. 죽어가는 이 곁에서 성사를 집전하고 기도하는 사제와 수녀의 모습, 그것은 호스피스의 원형이다. 다음 편에서는 〈하느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Subvenite, Sancti Dei)〉를 다룬다. 〈애덕이 있는 곳에〉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자비의 노래라면, 이는 여정의 끝에서 망자를 성인과 천사들에게 의탁하는 찬가다. 두 음악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치유와 환대, 돌봄과 임종은 이 공간에서 완벽히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편에서 계속〉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6면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공부는 어디에 서느냐의 문제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만난 황용연(바오로 예레미야) 신부님은, 훗날 이태석(요한) 신부님을 사제의 길로 이끈 분이십니다. 황 신부님은 중학생인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사흘을 굶은 사람이 빵집 유리창을 깨고 빵을 꺼내 먹었다면, 그 사람은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저희는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부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 나라 법으로 무죄입니다.” 그 말은 세상의 법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평가와 비교의 언어로 배워 왔습니다. 얼마나 잘했는지, 누구보다 앞섰는지를 묻고 답하는 데 익숙합니다.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고,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를 가족과 나누지 않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들꽃을 가리키시며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아라”(마태 6,28) 하십니다. 무엇을 먹고 입을지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먼저 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불안을 덜어 내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합니다. 공부는 평가하기 전에 먼저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 바라봄은 경탄을 낳고, 끝내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게 합니다.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마태 12,34),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 8,33)라고 꾸짖으셨습니다. 복음은 생각보다 거칩니다. 그 거친 언어는 가난한 이들이 밀려나는 현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목소리입니다. 우리는 그 목소리 앞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부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감각에 머물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는 점수에는 민감하지만, 불의에는 침묵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녀의 점수는 묻지만,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결과를 요구하는 데 익숙합니다. 예수님의 공부는 우리를 머물게 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경탄은 우리를 바라보게 하고, 그 바라봄은 끝내 정의를 찾게 합니다. 공부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서느냐의 문제입니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공부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고통받는 이들 곁에 설 것인지, 외면당한 이들과 함께할 것인지, 이런 선택들이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드러냅니다. 분노가 감정으로 흩어지지 않고 삶의 방향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공부는 가족 안에서 드러납니다. 자녀는 버티고 있는데, 우리는 결과를 먼저 묻습니다. 함께 견디며 머무르는 일에는 서툽니다. 그렇게 자녀는 우리 곁에서 자라지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도 함께 배웁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이해하려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공부는 다른 길을 가리킵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기보다, 더 깊이 바라보고, 외면하지 않으며, 끝내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6면

[성미술 산책]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모영보>

수평으로 긴 화면이 안정감을 주는 평화로운 그림입니다. 멀리 중앙에는 푸르스름 어렴풋이 보이는 뾰족한 산이 무한의 공간을 열어 주고, 전경에는 작은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정교하게 짠 페르시안 카펫과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측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저택이 있는데, 열린 문틈으로 붉은 침대보가 씌워진 친밀한 공간이 들여다보입니다. 지붕 있는 복도 로지아(loggia)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탁자가 있고, 마리아는 성경 위에 살포시 손가락을 짚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 집중하고 있는 순간, 천상에서 가브리엘 대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붉은 드레스에 흰 상의 그리고 카키색 망토를 휘날리는 고상하고 어여쁜 천사는 날개를 채 접지도 않고, 손에는 성모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 한 송이를 든 모습입니다. 마리아의 살짝 들어 올린 왼손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방문과 전해 주는 소식에 놀라워하는 심적 동요가 전해집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정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화면 중경에 낮은 벽이 있고 그 뒤로 각양각색의 모양을 한 검은 실루엣의 나무들이 마치 앞의 마리아를 보호하는 병풍같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는 중세 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성모의 ‘무염시태’ 신비를 의미하는 ‘닫힌 정원(hortus conclusus)’ 비유로 “닫힌 정원은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아가 4,12 참조)에서 유래되었고, 주로 장미 정원에 있는 성모자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아직 20세인 레오나르도의 초기작이어서 머리 주위의 후광을 표현했는데, 점차 과학적인 시선이 지배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후광은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성모영보’의 신비로운 순간, 천사와 마리아 간 주고받은 깊은 영적 대화의 순간을 청년 화가가 이리도 감동적으로 포착하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는 3대 거장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중에서도 미술, 과학, 식물학, 건축, 해부학 등의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든 진정한 천재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섬세하고 고전적인 매력이 두드러지는 걸작입니다. 크나큰 영광이지만 한 여인의 몸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십자가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리아. 이제 구약의 아담과 이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신약의 아담과 이브, 구원의 희망을 알립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여, 부족한 제 마음에도 임하소서.”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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