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말고 인간!] AI가 빠르다? 그래도 인간이 먼저 도착한다

채팅창에 질문을 남기면 AI는 순식간에 답을 내놓는다. 몇 초 만에 문장이 줄줄 이어진다. 그 앞에서 사람은 이상하게 조급해진다. 나도 이만큼 빨리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메시지에 답장이 조금만 늦어도 불안하고, 검색 결과가 바로 뜨지 않으면 답답하다. 물건을 살 때도, 밥을 고를 때도, 진로를 정할 때도 우리는 점점 더 빨리 정하려 한다. 빠른 것이 곧 좋은 것이라고, 우리는 어느새 믿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빠른 결정이 좋은 결정일까. 중국 칭다오대학교 심리학과 궁쥔 연구팀은 2026년 4월 이 질문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같은 참가자들에게 확실한 돈과,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는 도박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참가자들은 한 번은 1초 안에 서둘러, 또 한 번은 시간제한 없이 여유롭게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참가자들의 눈이 어느 선택지를 얼마나 오래, 몇 번이나 바라보는지 정밀한 장비로 하나하나 살폈다. 결과는 뚜렷했다. 1초 안에 골라야 했던 순간, 참가자들은 두 선택지를 제대로 비교하지 못했다. 눈길이 한쪽에만 짧게, 그것도 몇 번 머물지 않고 곧바로 결정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급히 고른 답은 눈에 먼저 들어온 정보나 표현에 쉽게 흔들렸다. 특히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일수록 더 크게 흔들렸다. 정작 신중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더 성급해진 것이다. 반대로 시간이 충분했을 때는 같은 사람들이 양쪽을 여러 번 오가며 천천히 비교했고, 그만큼 한쪽으로 치우치는 정도도 훨씬 적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급하게 고른 답은 그 순간엔 빨라 보이지만, 나중에 다시 확인하고 고치는 일이 잦다. 실수를 바로잡느라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충분히 살피고 고른 답은 처음엔 느려 보여도 다시 손댈 일이 적다. 결국 끝까지 다시 헤매지 않고 가는 쪽은, 서두른 사람이 아니라 천천히 살핀 사람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누른 주문 버튼은 다음 날 반품으로 돌아오고, 화가 난 채로 보낸 문자는 나중에 사과할 말을 덧붙이게 만든다. 회의 중 서둘러 정한 결론은 결국 다시 모여 논의하게 만들고, 급하게 정한 진로는 몇 해 뒤 다시 갈림길 앞에 세운다. 그 순간엔 빨랐어도, 전체로 보면 시간을 두 번 쓴 셈이다. 우리가 오래 써온 ‘빨리빨리’라는 말도 사실은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무조건 서두르라는 말이 아니라, 다시 하지 않도록 한 번에 제대로 하라는 뜻이다. AI는 빠르다. 하지만 그 빠름은 단 한 번의 대답일 뿐,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은 다르다. 오늘 내린 결정을 안고 내일을 살아야 하고,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면 언젠가 되돌아가 다시 걸어야 한다. 그러니 사람에게 진짜 빠름이란,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오늘 당신이 서두르다 놓친 것은 없었는가. AI가 빠르다? 그래도 인간이 먼저 도착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6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폰테 콜롬보, 규칙서를 받은 프란치스코의 시나이산

이탈리아 리에티 지역, 수백 년 된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해발 550m의 폰테 콜롬보(Fonte Colombo)는 원래 파르파 베네딕도 대수도원의 소유지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이미 은수자들이 사용하던 작은 ‘마리아 막달레나 경당’이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경당을 중심으로 기도 생활을 이어 갔고, 오늘날에도 경당 안에서는 그가 직접 벽에 그렸다고 전해지는 ‘타우(ת)’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탈출기 12장에 나오는 파스카 축제에 대한 이야기에서 직접적인 타우를 언급하진 않지만, 문설주와 상인방의 형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피의 문은 그들의 히브리어 알파벳 타우(ת) 모양과 같았고 이 표시는 ‘이집트로부터 해방’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우는 히브리어의 마지막 알파벳이며 세상의 마지막 날을 상징하는 예언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어의 마지막 알파벳인 오메가(Ω) 또한 요한묵시록에 쓰인 것처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타우를 처음 접한 것은, 제4차 라테란공의회가 있던 1215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개회식에서 언급하면서라고 합니다. 교황은 에제키엘서의 타우 표식을 인용하며, 자신도 모든 교회가 가난한 옷을 입고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인장을 이마에 찍어주길 희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그의 나이는 죽음까지 1년도 안 남아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도전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있던 많은 군중 사이에 프란치스코가 있었고 교황의 말씀은 메아리가 되어 프란치스코에게 강한 부름으로 마음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때부터 프란치스코는 더욱 열정적으로 참회와 회개로 이끄는 설교를 하였고, 그 표시로 자신 가까이 오는 모든 사람에게 타우의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표식은 사람에게만 그친 것이 아니라, 서명처럼 자신의 편지와 자신이 기도하던 마리아 막달레나 경당에도 그려 넣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타우는 참회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었고 그리스도의 삶과 승리의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타우 십자가는 프란치스코에게 누구보다도 특별하였고 구분되는 것이었습니다. 샘물을 뜻하는 ‘폰테(fonte)’와 비둘기를 뜻하는 ‘콜롬보(colombo)’가 합쳐져 만들어진 ‘폰테 콜롬보’라는 이름은, 프란치스코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작은 비둘기들이 샘물 주위에 모여 물을 마시고 있던 모습에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 샘물을 마시며 평화를 누리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프란치스코 또한 주님의 생명의 물을 마시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성인이 살아 있을 당시, 프란치스코회는 이미 수천 명의 형제를 거느린 공동체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선종 이전부터 형제들 가운데는 프란치스코의 규칙이 너무 금욕적이고, 개인과 공동체의 절대적 가난을 지키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또 설교를 통한 선교 생활에도 맞지 않는다며, 기존 수도원주의와 금욕주의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성인은 수도회 총봉사직을 사임하고, 1223년 폰테 콜롬보에서 40일간 단식한 뒤 완화된 규칙서를 마련해 호노리오 3세 교황에게 인준을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 가운데에는 이 규칙서마저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해, 그것이 교황의 손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며 없애려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이 규칙서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시어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규칙서를 지키지 않으려면 수도회를 떠나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1223년 11월 29일 호노리오 3세 교황은 인준된 규칙서를 반포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폰테 콜롬보는 모세가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은 것처럼, ‘프란치스코의 시나이산’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6세기 베네딕토 성인이 건물 안에 사는 정주 수도원을 위한 보편적인 규칙서를 썼다고 한다면, 프란치스코는 수도원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건물을 허물고 세상 밖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사는 새로운 규칙서를 쓴 것입니다. 폰테 콜롬보와 관련된 프란치스코 생애의 두 번째 중요한 순간은 선종 1년 전인 1225년에 일어났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제5차 십자군 시기에 이집트까지 가서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술탄 알카밀을 만났고, 그에게 그리스도교로의 개종과 평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눈병을 안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기에 1224년 오상까지 입으며 실명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우골리노 추기경의 권유로 눈 수술을 받기 위해 폰테 콜롬보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리에티에는 교황이 머물고 있었고, 유능한 안과 의사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수술은 고문과 다름없을 만큼 끔찍했습니다. 눈으로 흐르던 고름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쇠꼬챙이를 귀에서 눈썹까지 찔러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성인 곁에 있던 형제들은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해 눈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서 달아났고, 그곳에는 성인과 의사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쇠막대만 남았습니다. 그 순간 성인도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불의 형제’를 부르며 고통을 덜어 달라고 간청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눈 옆으로 파고들던 쇠꼬챙이의 뜨거움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돌아와 프란치스코를 본 형제들은 주님의 자비에 찬미를 드렸습니다. 비록 수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성인은 이 체험을 통해 자신이 지은 <피조물의 찬가> 안에 불의 형제에 대한 내용을 쓰게 됩니다. “내 주님, 불 형제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그는 아름답고 쾌활하고 씩씩하고 힘차나이다.” 성인의 형제애가 동식물을 떠나 물질에도 있었음에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3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프란츠 리스트의 〈새들에게 강론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주변에 영적 체험을 했다고 고백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그 사이에서 늘 모종의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기도 중 특별한 음성을 들은 적도, 소위 환시를 본 적도 없다. 다만 그 찰나에 어렴풋이 다가서 본 기억이 있다. 오래전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았다. 성당 한가운데 작은 경당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를 품고 있는 곳. ‘작은 몫’을 뜻하는 포르치운콜라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때마침 8월 2일 포르치운콜라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장미정원 옆 회랑에 도착한 순간, 성 프란치스코 동상 주위로 흰 비둘기 두 마리가 보였다. 한 마리는 성인의 품에 있는 바구니에, 다른 한 마리는 벽 위에 앉았다. 이곳 비둘기들은 오랫동안 동상 곁에 머물러 왔다고 했다. 하얀 깃털 사이로 까맣고 맑은 눈이 고요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무수히 많은 말이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눈앞의 비둘기들은 오랜 전승을 떠올리게 했다. 프란치스코가 동물들에게 설교했던 행적은 토마스 첼라노의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그의 일화를 엮은 「잔꽃송이」 등 여러 문헌으로 전해진다. 그는 비둘기와 까마귀를 비롯한 새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달라고 겸손히 청했고, 그들은 성인의 이야기를 기뻐하며 들었다. “나의 자매인 새들이여, 그대들은 창조주를 크게 찬미하고 언제나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 옷이 되는 깃털과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셨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들을 당신이 창조하신 존재들 가운데 고귀하게 만드셨습니다.”(토마스 첼라노의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제1생애」 1부 제21장, 58항) 이 경이로운 장면을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가 피아노로 옮겼다. 1863년경에 쓴 「두 개의 전설(Deux Légendes)」 중 첫 곡 〈새들에게 강론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çois d'Assise: La prédication aux oiseaux)〉다. 리스트는 젊은 시절 비르투오소로서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중년 이후에는 삭발례를 받고 경건한 생활을 해서 성직자 ‘아베 리스트(Abbé Liszt)’로 통했다. 최근 연구는 리스트가 프란치스코 성인을 종교적 모범과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비추는 인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곡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한다. 가벼운 트릴은 새소리와 날갯짓을 떠올리게 하고, 빠른 32분음표 음형은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저마다 다른 울음을 그려낸다. 높은 음역에서 속삭이듯 울리던 흐름에 나지막한 선율이 들어선다. 프란치스코의 목소리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1866년 초판에는 말의 억양과 리듬을 살려 낭송하듯 부르는 양식 ‘레치타티보(recitativo)’라고 적혀 있다. 이는 새들이 놀라서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말을 거는 어조를 연상하게 한다. 이윽고 프란치스코의 소박한 말은 넓은 음역으로 퍼져 나간다. 낮은음에서 시작한 단선율이 건반 전체를 채우는 화음으로 확장된다. 초입에는 새와 성인의 목소리가 뚜렷이 나뉘지만, 서로 다른 음역과 리듬이 상징하던 두 존재의 대화는 하나로 합쳐진다. 새들도 일제히 창조주를 향한 찬미에 동참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말하듯, 성인에게 모든 피조물은 사랑의 유대로 하나 되는 형제요 누이였기 때문이다.(11항 참조) 리스트의 음악은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상행 음형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마주했던 비둘기들은 시간이 흘러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흡사 눈으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성인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피조물들의 눈빛. 어쩌면 신비란, 강렬한 체험보다 미소한 생명의 눈길 하나가 평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6면

[성미술 산책] 「하인리히 3세의 황금복음서」 중 <라자로의 부활>

이 작품은 11세기에 제작된 수사본의 걸작 「하인리히 3세의 황금복음서」의 한 페이지입니다. 밝고 화려한 색채의 화면이 시선을 사로잡고 만화의 한 페이지인 듯, 여러 층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는 페이지 최상단에서 아래로 이어집니다. 페이지 상단 좌측의 집 내부에는 숨을 거둔 라자로, 그 옆에는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있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는 심부름 보낸 사람이 예수를 찾아가 비보를 알립니다. 중간층에는 예수를 찾아간 마리아와 마르타가 형제자매 지간인 라자로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맨 하단에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기적의 장면입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요한 11,43-44)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부패가 시작된 라자로가 눈을 번쩍 뜨고 관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죽음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 뒤에는 마리아와 마르타 그리고 이 기적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이 양손을 앞으로 뻗어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명료하고 극적인 표현, 단순한 형태와 화려하고 세련된 색채로 그려진 이 수사본은 신성로마제국인 독일의 오토(Ottonian) 양식으로 그려졌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부각하기 위해 신장은 짤막하고 분명하게, 그의 업적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도록 손은 크고 명료하게 그리고 영혼의 창인 눈은 크고 눈동자의 시선 처리는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그림으로 성경을 읽어 주는 것이 중세 회화의 핵심적인 역할이었습니다. 녹색, 진보라, 하늘색 그리고 노란색이 여유롭고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고유의 띠 공간의 배경은 인물들이 돋보이도록 해줌과 동시에 화면에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리듬감을 부여해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페이지를 바라보노라면, 우리 마음은 어느새 예수님이 전해 주시는 영원한 사랑의 메시지에 물들게 됩니다.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친구를 부활시킨 예수의 놀라운 기적 에피소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곧 도래할 ‘그리스도의 부활’ 즉 ‘영생’의 약속을 예견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4면

[AI 말고 인간!] AI가 욕망을 채운다? 그래도 갈망은 인간 스스로 채운다

쇼핑 앱을 열었을 뿐인데 어느새 장바구니가 가득하다. 분명 필요해서 산 것 같은데, 막상 상자를 뜯고 나면 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들이 있다. 유튜브를 십 분만 보려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원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욕망은 어디서 왔는가. 내 안에서 자란 것인가, 화면 너머의 무언가가 심어놓은 것인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컴퓨터정보과학부의 옥타비안 마키돈(Octavian M. Machidon)은 2025년 11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추천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취향을 그저 읽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한다. 쇼핑몰이 다음에 살 물건을, 영상 플랫폼이 다음에 볼 화면을 골라줄 때마다 우리의 욕망은 조금씩 그 방향으로 떠밀린다. 이용자는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미리 놓인 길 위를 걷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홍보 주일 담화에서 던진 물음을 함께 짚는다. 완전히 인간다움을 지키면서 이 문화적 전환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방법은 무엇인가. 알고리즘이 인간의 판단과 관계의 자리를 대신 채우려 할수록, 이 물음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해진다. 이 지점에서 욕망과 갈망은 갈라진다.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좋아요’ 하나, ‘알림’ 하나, ‘새 물건’ 하나로 잠시 만족했다가 곧 다음 자극을 찾는다. 손에 쥐는 순간 이미 시들해지는 것, 그것이 욕망의 본성이다. 반면 갈망은 채워도, 채워도 남는 무언가를 향한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의미 있게 살고 싶은 마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아무리 이루어도 완전히 소진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클릭과 체류 시간으로 욕망을 정교하게 다루지만, 갈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갈망은 애초에 숫자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욕망이 갈망의 자리를 조용히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도파민이 터지고, 그 짧은 쾌감에 익숙해진 몸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정작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고 느낄 때조차, 사람들은 그 허전함을 채우려 또 화면을 연다. 갈망을 마주할 시간에 욕망을 소비하며 하루를 지운다. 허기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우리는 그 허기의 진짜 이름을 잊어 간다. 갈망은 원래 불편한 것이다. 당장 채워지지 않기에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언가를 오래 그리워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뜻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만든다. 알고리즘은 그 불편함을 서둘러 지우려 하지만, 정작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그 지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오늘 하루 당신이 누른 ‘좋아요’와 장바구니를 되짚어 보라. 그 안에 진짜 갈망이 있었는가, 아니면 잠깐의 허기를 메운 흔적뿐이었는가. 알고리즘은 욕망을 채워줄 수 있다.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정확히 가져다준다. 그러나 갈망은 누가 대신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스스로 부딪히고 견디며 채워가야 한다. AI가 당신의 욕망을 채운다? 그래도 갈망은, 당신 스스로 채워야 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로젠의 〈받아 주소서〉

교회는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를 기념한다. 성음악을 소개하는 지면이지만 이번에는 그림과 함께 시작한다. 영국 화가 앨버트 슈발리에 테일러(Albert Chevallier Tayler, 1862~1925)가 그린 〈로욜라에서 요양하는 이냐시오〉다. 흰 셔츠 차림의 이냐시오 성인이 침상에서 상체를 세운 채 있다. 다리는 부목으로 고정되어 있고, 무릎 위에 책이 있다. 둘러싼 사물들은 그가 추구했던 생애를 증언한다. 장검과 갑옷은 용맹함, 곤틀릿은 무기를 쥐던 손, 군화와 박차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던 기사였음을 상기시킨다. 투구에 달린 화려한 깃털은 도상적 의미에서는 허영과 과시를 암시하는 기물이기도 하다. 둥근 사운드홀인 로제트가 세 개나 있는 화려한 류트는 궁정의 사랑과 세속적 여흥의 표상이다. 꺼진 촛불과,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은 쇠약해진 육체와 감각적 삶의 덧없음을 환기한다. 바니타스 정물의 어법이 성인의 회심 장면으로 들어온 셈이다. 화면 오른편에는 열쇠를 든 성 베드로 그림이 있고, 아래 궤짝에도 작은 열쇠가 꽂혀 있다. 이냐시오는 베드로 사도에 대해 각별한 신심을 가졌고, 성인의 전구를 통해 회복했다고 믿었다. 이 상징물들이 증언하는 삶은 무엇일까. 이냐시오가 살았던 16세기 초는 칼과 창 같은 전통 무기와 총포·대포 같은 화기가 공존하던 시기다. 전장에는 새 병기들이 등장했지만, 이냐시오의 사고는 칼과 창, 말과 갑옷으로 대표되는 기사도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기사 문학에 심취했고, 고귀한 신분의 여인을 섬기며 무훈을 세우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한 일화는 그런 이냐시오의 사유를 보여준다. 몬세라트로 향하던 길에 한 무어인이 성모 마리아의 출산 후 동정에 의구심을 표하자, 그는 이를 성모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뒤쫓아 단검으로 해할 마음을 품었다. 이는 성마른 충동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냐시오가 이상화된 여성에게 헌신하고 그녀의 명예를 칼로 수호하는 중세 궁정식 사랑, 기사도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1521년 팜플로나 방어전에서 그를 쓰러뜨린 것은 도검류나 창이 아닌 포탄이었다. 기사도적 상상력과 포격전의 현실이 한 사람의 몸에서 충돌한 순간이다. 과학사가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화기의 등장이 전쟁의 방식은 물론 부상의 성격까지 바꾸었다고 지적한다. 칼과 창이 절상과 관통상을 남긴다면, 총탄과 포환은 살과 뼈를 파열하고 분쇄했다. 몸을 절개하고 뼈를 맞추며 봉합하는 외과의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냐시오의 몸은 이런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겪었다. 포탄은 한 다리를 완전히 부쉈고, 다른 다리도 심하게 다쳤다. 의사들은 어긋난 뼈를 다시 부러뜨려 접골했다. 다리가 짧아지고 돌출부가 생기자, 그는 튀어나온 뼈를 잘라 내는 수술까지 받았다. 오늘날 초기 절골술 사례로 거론되는 시술이다. 변곡점은 병상이었다. 이냐시오는 요양 중 기사도 소설을 찾았지만, 받은 책은 작센의 루돌프가 쓴 「그리스도의 생애」와 「황금전설」 계열의 성인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이었지만, 그는 차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마주하게 됐다. 이처럼 이냐시오의 회심은 완전한 취약성에서 비롯되었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독일어 ‘대지(Grund)’를 인간이 발을 딛고 선 ‘근거’이자 ‘기반’으로 읽는다. 포격은 그가 땅을 딛고 서던 다리를, 기사로서 그를 지탱해 온 물리적 근저를 파괴했다. 다리가 으스러진 곳에서, 그가 지금껏 좇아온 세계관이라는 지반 역시 무너졌다. 스스로를 떠받치던 육체적·정신적 토대가 무너진 순간, 회심의 씨앗은 바로 거기서 싹트기 시작했다. 「영신수련」 234항을 되뇌어 본다. “받아 주소서, 주님.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성, 저의 모든 의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 주소서.” 이에 선율을 붙인 미국 현대 작곡가 로젠(Luke D. Rosen)의 성가 〈받아 주소서(Suscipe)〉는 소박한 아카펠라로 자기 봉헌의 노래를 들려준다. 몸과 세계가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서 자신을 바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되돌려드린 사람.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그곳에 서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16면

[성미술 산책] 「비엔나 창세기」 중 <계약의 표징, 무지개>

중세 초기인 6세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제작된 수사본(手寫本) 「비엔나 창세기(Wiener Genesis)」의 한 페이지입니다. 역사적 가치는 물론 뛰어난 예술성으로 높이 평가되는 이 걸작은 원래 총 192페이지로 구성되었는데, 현재 48페이지만 남아 있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나 본래의 화려한 ‘보라색’ 배경이 갈색으로 바래버린 상태지만, 여전히 본래의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보라색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바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고귀한 색이었지요. 이는 창세기의 대홍수 후, ‘무지개의 표징’ 장면으로, 페이지 상단에 희랍어 그리고 하단에 하느님이 노아와 계약을 맺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하느님의 노여움으로 발생한 대홍수는 ‘노아의 방주’를 제외하고, 지상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세 아들 셈, 함, 야펫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입니다. 네 인물 중 세 번째로 흰옷 차림에 백발인 노아가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시선은 둥글고 푸른 하늘을 뚫고 이들을 향해 팔을 뻗은 하느님을 향합니다. 특히 노아의 목이 완전히 뒤로 꺾인 듯한 과장된 표현과 얼빠진 듯 순진무구한 모습은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이고 적극적인 복종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역시 위를 보는 세 아들의 표정과 제스처가 개성 넘치게 표현되어 더욱 친근하고 생기 있게 다가옵니다. 어리석고 타락한 인간을 깨우치기 위해 큰 재앙을 일으키신 하느님, 하지만 이는 깊고 영원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푸른 하늘에 무지개를 띄워 ‘거룩한 표징’을 보여주고 약속하셨습니다.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창세 9,12-17 참조) 노아와 세 아들 위에 드리워진 아치형의 오색찬란한 무지개…. 무지개는 이들을 위협하는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거대한 보호막이자 하느님과 이어주는 다리, 부족함 투성이의 우리 모두에게 전해주신 영원한 희망, 바로 사랑의 약속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4면

[AI 말고 인간!] AI가 나를 안다? 그래도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안다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검색하면, 며칠 동안 비슷한 광고가 화면에 따라다닌다. 포털과 유튜브를 열면 내 취향에 맞춘 뉴스와 영상이 먼저 올라온다. 요즘은 한 해 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정리해 ‘이것이 당신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나왔다. 사람들은 그 정리표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이게 딱 나다. 그러나 정리표를 그린 것은 알고리즘이지 내가 아니다.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인 학자가 있다. 인도 마리안 칼리지의 지나 조셉(Jeena Joseph)은 2025년 7월 발표한 논문에서, 요즘 사람의 자아는 혼자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서비스를 거쳐 조립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알고리즘적 자아(Algorithmic Self)’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이런 자아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정해진 틀에 맞춰 찍어내는 것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 정리표를 기록이 아니라 자기 모습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이 정리표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위험은 그것을 나의 전부로 믿어버리는 순간 시작된다. 조셉은 이런 예를 든다. 매일 아침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보여 주는 수면 점수 하나로 컨디션을 판단하다 보면, 몸이 실제로 느끼는 감각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나를 아는 방법이 몸의 느낌 대신 화면 속 숫자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아는 한번 그려지면 스스로 굳어진다. 내성적이거나 기운이 없다고 분류되면 같은 성격의 내용만 계속 돌아오고, 점점 그 틀 안에 갇힌다. 조셉은 이런 과정을 ‘정체성의 피드백 루프’라고 부르며, 사실상 악순환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기록을 확인하라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틀렸을 수도 있음을 견디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을 눌렀는지는 알아도, 왜 그 순간 마음이 흔들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예전에는 혈액형이 성격을 말해 준다고 믿었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름보다 먼저 MBTI 네 글자를 묻는다. 방법은 달라졌어도 원하는 것은 같다. 나를 어떤 틀에 넣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다 보면, 정작 자신의 모습이 그 틀과 어긋날 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규정당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알고 싶은 마음은 닮아 보이지만 다른 곳을 향한다. 앞의 것은 나를 틀에 가두고 안심시키지만, 뒤의 것은 그 틀 밖으로 걸어 나가는 수고를 요구한다. 인간이 자신을 안다는 것은 기록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기록에 담기지 않는 부분을 끝까지 붙드는 일이다. 실패했던 순간, 이유 모를 눈물, 까닭 없이 마음이 끌렸던 얼굴. 이런 것들은 어떤 정리표에도 나오지 않지만, 바로 이것들이 나를 나로 이해하게 만든다. 내일도 AI는 당신에 대한 정리표를 건넬 것이다. 그대로 받아 들 것인가, 자기 손으로 다시 그릴 것인가. 그 답을 쥔 사람은, 언제나 당신 자신뿐이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6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포도주 기적으로 주님 현존 보여 주신 장소, 라포레스타 성지

오늘날 ‘라 포레스타’ 또는 ‘산타 마리아 델라 포레스타’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는 11세기 성 파비아노 교황(236~250년 재위)에게 봉헌된 자그마한 성당과 가난한 사제가 머물던 2층짜리 숙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작은 채소밭과 포도밭이 있었습니다. 성지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는 옛 제대가 남아 있는 성 파비아노 성당의 모습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제대 뒤편 둥근 벽감의 그림들은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 세바스티아노, 성 파비아노, 성 요한 세례자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순교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성당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이곳에 머물던 시기(1346~1568년)에 성 파비아노 성당의 왼쪽 벽을 허물어 확장한 것입니다. 현재 성당은 숲속의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산타 마리아 델라 포레스타’라는 이름을 새로 갖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제대 위 유리로 가린 벽감 안에는 언뜻 보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 장면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기 마리아의 탄생을 묘사한 장면이며, 그 옆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인물은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관련된 이곳의 이야기는 1225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성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엘리아 수사의 권유와 훗날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되는 우골리노 추기경의 초청으로 프란치스코는 리에티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우골리노 추기경은 프란치스코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당시 리에티에는 호노리오 3세 교황이 머물고 있었고, 유능한 교황 주치의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리에티에 온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성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근처 마을에서까지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부담을 느낀 프란치스코는 리에티 성문을 들어서지도 않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는 리에티에서 5km 떨어진, ‘숲’이라는 뜻을 지닌 라 포레스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온 네 명의 형제들 레오, 베르나르도, 안젤로, 마세오와 함께 그곳에서 50일가량 머물며 눈 수술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성인은 자신이 기도하기 좋아하던 갈라진 바위 동굴에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어려움을 주님께 맡기며 자비를 청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이곳에 머문다는 사실이 리에티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 평화로운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깊은 산속까지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포도가 맛있게 익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오후의 태양은 한여름과 다를 바 없이 뜨거웠고, 산속까지 걸어온 사람들은 허기지고 목이 말랐습니다. 그들에게 라 포레스타의 탐스러운 포도는 유혹을 넘어 하나의 선물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포도밭 주인이었던 담당 신부에게 묻지도 않고,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그 자리에 앉아 포도를 따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구니에 포도를 담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했습니다. 무참히 망가진 포도밭 절망…풍성한 포도즙 기적으로 바꿔 사람들이 마구 짓밟아 놓은 포도밭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머물 곳을 내어주었던 가난한 신부의 마음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곧 이 모든 일이 프란치스코 때문에 일어났다는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포도밭은 신부에게 일 년 동안 삶을 이어 가게 해 주는 생계의 터전이었고, 미사에 꼭 필요한 포도주를 마련해 주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실망하고 화가 나 있던 가난한 신부에게 프란치스코는 말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누구에게도 무례한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제 말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적어도 두 배의 포도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당신께 채워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 뒤, 남아 있는 포도를 모아 포도즙을 짜는 틀에 넣고 사람들에게 밟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의 말처럼 많은 양의 포도즙이 흘러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주님의 현존 앞에서 두려움과 찬미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포도즙을 짜던 틀 반대편에는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잠자고 식사를 했던 장소를 기념하는 제대가 있습니다. 그 왼쪽 벽에는 식사 준비를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벽난로의 나무 그을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 장소와 연결된 옛 수도원의 작은 사각 정원을 지나 오른편 통로의 계단을 내려가면, 프란치스코가 기도했던 갈라진 바위 절벽 동굴에 이릅니다. 성인이 머물던 이 동굴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면, 지금은 평원이 된 리에티 계곡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당시에는 배를 타고 반대편으로 건너갈 만큼 물이 많은 호수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바람 형제와 물 자매에 대한 <피조물의 찬가> 일부를 썼다고 말합니다. 눈병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성인은 시각에 의지하기보다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깊이 느끼며, 모든 피조물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시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던 프란치스코처럼, 현재 라 포레스타에는 ‘몬도 엑스(Mondo X)’라는 공동체가 살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1960년대 밀라노의 엘리지오 신부의 구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마약이나 세상의 편리함 속에서 자신을 잃고 더 이상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모여, 기도와 노동, 그리고 함께 사는 형제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산과 바람과 물이 있는 이 숲속에서, 이들은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참된 세상을 찾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3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보논치니와 칼다라의 〈그리스도 발치의 막달레나〉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이다. 복음서는 그를 십자가 곁을 지킨 여인, 빈 무덤을 찾아간 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증인으로 기억한다. 교회는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부른다. 그녀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한 첫 증인이기 때문이다. 예술사에서 막달레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향유 단지를 들고 풀어진 머리카락으로 그리스도의 발을 닦는 여자, 눈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여인이다. 이는 루카복음서의 ‘죄 많은 여자’, 베타니아의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방 교회 전통 안에서 겹쳐진 결과였다. 이들은 서로 구별되지만, 많은 이들이 그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막달레나를 사랑했다. 그들은 왜 성녀에게 끌렸을까. 그녀의 이야기에 죄와 은총, 속세와 천상, 육체의 아름다움과 영혼의 회심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크 예술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투쟁이나 갈등을 즐겨 그렸다. 막달레나의 눈물, 향유, 보석, 거울, 해골 같은 사물들. 그것들은 헛됨을 나타내는 바니타스의 표지이자 영혼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근대 시기,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회화나 음악이 인기였던 것도 동일한 이유였다. 그래서 1670년생 동갑내기 두 이탈리아 작곡가의 동명 오라토리오를 비교 감상하는 것은 흥미롭다. 조반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 1670~1747)는 1690년 모데나에서 〈그리스도 발치의 막달레나(Maddalena ai piedi di Cristo)〉를 선보였다. 여기서 막달레나의 마음은 일종의 영적 전장이다. 그녀의 마음을 두고 ‘세속적 사랑’과 ‘천상적 사랑’을 의인화한 인물들이 논쟁한다. 세속의 사랑은 세상의 즐거움을 속삭이고, 천상적 사랑은 그리스도께 돌아서라고 설득한다. 안토니오 칼다라(Antonio Caldara, 1670~1736) 역시 동명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보논치니와 8~9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작품은 막달레나의 내면을 더욱 섬세하게 형상화한다. 칼다라의 판본은 등장인물에 마르타를 더해, 막달레나의 회심을 내적 갈등을 넘어 관계와 권고 속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사건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복음서가 분명히 이름을 기억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단지 그리스도 발밑에서 우는 여인을 넘어선다. 요한복음에서 그녀는 부활하신 그분을 정원사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그제야 주님을 알아본다.(요한 20,15-17 참조)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라틴어 전통은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로 옮겼다.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오래도록 주해해 온 이 대목에,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 1940~2021)도 주목했다. 낭시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더 이상 만지거나 붙잡을 수 없는 분이다. ‘현존’이란 소유가 아닌 역설적으로 ‘떠남’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달레나는 그리스도를 붙드는 이를 넘어,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증인이 된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감사송은 이를 전례적으로 확인해 준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이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제시했던 정원 속 하와와 막달레나의 대비에서 선명해진다. “낙원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고(창세 3,6 참조) 무덤에서 나온 여자는 남자들에게 생명을 선포했다. 마리아는 생명으로 회복시켜 주신 분의 말씀을 전했고 하와는 죽음을 가져온 뱀의 말을 전했다.(「복음서 강해」(40편) 25) 보논치니와 칼다라의 음악은 그리스도 발치에서 울던 막달레나의 내면을 들려준다. 복음은 그 눈물이 종국에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녀는 무덤 밖에서 울었고,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알아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했다. 부활의 선포는 만짐과 붙듦을 넘어,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과 파견으로 완성되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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