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요한 드 브레뵈프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10월 18일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되새기는 전교 주일이다. 1926년 비오 11세 교황이 제정한 전교 주일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고, 레오 14세 교황 역시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임을 재차 강조했다.(「만민에게(Ad Gentes)」, 2항 참조) 바로 다음 날 19일, 우리는 북아메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그리고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게 된다. 전교 주일 이튿날, 머나먼 땅으로 건너가 그곳 사람들 곁에서 살아간 이들을 만나는 셈이다. 그중 브레뵈프(Jean de Brébeuf, 1593~1649)에게는 조금 특별한 노래 하나가 따라다닌다. 〈Jesous Ahatonhia〉. 웬다트(Wendat)어로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라는 뜻이며 오늘날 휴런족 캐럴로도 알려졌다. 웬다트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집단으로, 과거 휴런(Huron)족으로도 불렸다. 이는 오랫동안 웬다트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불렸다. 오늘날에는 브레뵈프가 직접 썼다는 전승과 함께, 공동체의 오랜 구전 속에서 다듬어진 곡일 가능성도 제시된다. 선율의 이력도 흥미롭다. 이는 16세기 프랑스에서 불리던 곡 〈한 젊은 처녀(Une jeune pucelle)〉에서 왔다고 추정된다. 본래 원치 않게 수녀가 된 한 여성의 비애를 담은 세속의 노래였지만, 성모 영보와 마리아의 응답을 묘사한 가사로도 바뀌었다. 이것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선교사와 함께 바다를 건넜으며, 북미에 도착해 그곳 사람들의 말로 성탄 이야기를 품게 됐다. 당시 예수회원들은 노래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일찍 눈여겨봤다. 브레뵈프의 동료 폴 르죈(Paul Le Jeune)은 1633년 기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들이 숲에서 배운 것, 즉 교리 내용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곡 역시 그런 맥락에 있다. 유럽의 옛 선율과 북미의 말과 문화가 어우러졌고, 그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영어 가사까지 더해지며 원곡과는 사뭇 달라졌지만, 후렴에는 오래된 문장이 남아 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동료들은 모두 잔혹한 방식으로 순교했다. 17세기 중엽 웬다트 마을들은 이로쿼이 연맹의 거센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고, 현장에 있던 선교사들도 그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던 것. 이사악 조그 신부는 1642년 이로쿼이족 분파였던 모호크족에게 붙잡혔고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다시 북미로 향했다. 그리고 1646년, 결국 모호크족의 손에서 세상을 떠났다. 브레뵈프 역시 1649년 자신이 선교하던 땅에서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와 함께 이로쿼이족의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교했다. 이른바 ‘북미의 첫 순교자들’이 된 이들은 1930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다〉의 소박한 가락에는 낯선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말로 복음을 전했던 이들의 의지와 열망이 녹아 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곡은 대서양을 건너 웬다트족의 새 언어를 얻었고,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말을 기쁘게 되풀이한다. “용기를 내라. 사람들이여.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10-18 제3511호 17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엘리자베트 자케 드 라 게르 〈유딧〉

유딧이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움켜쥐고 칼을 댄다. 옆의 시녀도 온몸으로 저항을 막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두 인물은 강렬하다. 젠틸레스키가 성경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면, 또 다른 여성은 음악으로 풀어냈다. 프랑스 음악가 엘리자베트 자케 드 라 게르(Élisabeth Jacquet de La Guerre, 1665~1729)가 작곡한 〈유딧〉이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건반 연주로 루이 14세의 주목을 받은 그녀는 1694년 오페라의 일종인 서정 비극 〈세팔과 프로크리스〉를 선보였다. 프랑스에서 여성 작곡가의 대규모 극음악이 무대에 오른 첫 사례였다. 그러나 이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이후 그녀는 이런 작품을 다시 내놓지 못했다. 왕의 후원을 받았어도 당시 여성이 건반음악이나 소품이 아닌 극음악으로 입지를 다지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녀가 1708년 내놓은 성서 칸타타집에는 구약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럿 담겼다. 정확히는 〈에스테르〉, 〈수산나와 원로들〉, 〈유딧〉으로 총 여섯 곡 중 세 곡이 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중심의 음악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작곡가는 성경 속 영웅, 의로운 여인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역경에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딧〉의 첫 레치타티보는 “기근이나 전쟁으로, 베툴리아는 숨을 거두려 하고 있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어 “그 성읍을 포위한 잔혹한 자는 자신과 유딧이 함께할 호화로운 잔치를 준비하게 했다”는 가사가 나온다. 유딧기 7장의 죽어가는 성읍과 12장 연회 장면을 곧바로 붙인 것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과음해 쓰러진다. 유딧은 칼로 그의 목을 베어 공동체를 구한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앞서 프랑스어로 ‘잠’을 뜻하는 기악 악장 〈Sommeil〉이 흐른다. 옛 프랑스 음악에서 수면 부분은 주인공이 무방비해지고, 그 곁에서 다른 인물의 마음이 드러나는 심리적 장면인 경우가 많다. 라 게르의 잠 음악도 마냥 평온하지는 않다. 자장가처럼 조용하지만 선율은 계속해서 굽이치고 화성은 좀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홀로페르네스는 잠들었지만, 그의 최후를 아는 청자는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우리는 한 여성이 칼을 들기까지의 시간, 잠든 홀로페르네스 옆에서, 유딧의 굳건한 결단의 시간을 함께 목도하는 느낌을 받는다. 판관기의 적장 시스라도 떠오른다. 야엘의 천막에서 우유를 마시고 깊이 잠든 그 역시 한 여성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판관 4,17-22 참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야엘과 시스라. 잠든 지휘관의 평온과 그 곁에서 깨어 있는 여인들의 결심이 묘한 긴장을 이룬다. 독창과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연주하는 성서 칸타타는 성경 이야기를 실내의 청중 가까이 옮겼다. 자케 드 라 게르는 이 장르를 통해 무대에서 다 펼칠 수 없었던 자신의 극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가장 연약한 손으로도 그분 기적을 이루기에 충분하다(Et la plus faible main suffit pour ses miracles).” 〈유딧〉의 마지막 가사에는 여성과 과부, 여종처럼 당대 취약하던 이들도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는 당시 여성이 지닌 한계 속에서도, 음악으로 오롯이 자신의 길을 일구어갔던 작곡가의 신념이자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10-11 제3510호 17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동정녀 교회여〉

십자가 아래 한 여인이 서 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손에는 잔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잔에 담긴다. 여성은 누구일까. 바로 의인화된 교회(Ecclesia)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가 본 교회의 모습이다. 여기서 교회는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동정녀이며,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신부다. 「스키비아스」 제2부 제6환시에서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서 신랑인 그리스도의 피를 받는다. 힐데가르트는 이를 통해 십자가 희생과 성찬례를 하나로 잇는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교회에 주어지고, 교회는 다시 그 몸과 피를 성찬례 안에서 받아 모시며 살아간다. 이를 떠올리게 하는 힐데가르트의 성가가 있다. 안티폰 〈오 동정녀 교회여(O virgo Ecclesia)〉다. 노래는 교회를 한 여인에게 말하듯 부른다. 후반부 가사는 이렇다. “오, 구세주의 피는 얼마나 귀한가(O quam preciosus est sanguis Salvatoris), 그 피는 왕의 깃발 아래에서(qui in vexillo regis), 교회를 그분께 신부로 맺어 주었다(Ecclesiam ipsi desponsavit).” 여기서 ‘왕의 깃발’은 십자가를 가리킨다. 십자가는 처형 도구였지만 옛 신학적 맥락, 그리고 힐데가르트에게는 신랑과 신부가 결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즉 그리스도의 피가 교회를 그분의 신부로 맺어 준다는 것. 교회를 여성으로 그리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혼인 비유로 설명된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 참조) 요한묵시록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신부가 등장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이를 명확히 한다. “하늘의 예루살렘인 교회는 순결한 어린양의 순결한 신부로 묘사된다.”(「교회 헌장」 6장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성모 마리아와 사랑받는 제자를 서로에게 맡기셨고, 그분 옆구리에서는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요한 19,26-27,34 참조) 교부 전통은 이 물과 피를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표상으로 보았고, 새 아담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에서 교회가 태어난다고 해석했다. 힐데가르트는 이러한 언어를 눈에 보이는 형상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힐데가르트의 교회는 피와 몸, 탄생과 혼인, 사랑과 결합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런 맥락에서 성찬례 역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와 교회가 다시 만나는 자리다. 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성녀의 음악은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교회란 무엇인가. 왜 이는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머리이신 그분의 살과 피로 자라나는 지체다. 힐데가르트가 보았고 노래했던 아름다운 여성. 그녀에게서는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나 그분 생명으로 살아가는 온 교회의 신비가 응축되어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

세례명이 힐데가르트인 이들에게 항상 눈길이 갔다. 의외로 흔한 세례명은 아니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는 중세부터 공경받았지만,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보편교회에 시성을 공식 확정한 것은 2012년이다. 같은 해 여성으로서는 네 번째로 교회학자가 되었다. 알고 있는 ‘힐데가르트’들은 작곡가와 약사, 화가다. 성녀는 신학, 자연철학, 시, 의학, 음악, 그림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그 속에서 지인들은 각자 본받고 싶은 힐데가르트의 면모를 발견했으리라. 그녀의 다채로운 얼굴 가운데 이번에는 한 단어에 주목한다. 힐데가르트가 유난히 사랑했던 개념, ‘푸르른 생명력(viriditas, 비리디타스)’이다. 「스키비아스(Scivias)」 제2부 제2환시에는 독특한 형상이 등장한다. 사파이어 빛으로 빛나는 사람이 두 겹의 빛 가운데 서 있다. 바깥에는 눈 부신 빛이, 안에는 불꽃 같은 빛이 있고, 중심에 푸른 인간이 자리한다. 힐데가르트가 본 삼위일체의 환시다. 밝은 빛은 성부를, 불처럼 타오르는 빛은 성령을, 사람의 형상은 강생·육화되신 성자를 드러낸다. 형언할 수 없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빛과 불, 색채로 형상화했다. 왜 한가운데 성자는 사파이어 빛깔일까. 힐데가르트의 저작과 음악에는 ‘푸름’의 이미지가 자주 나타난다. 라틴어 ‘viriditas’는 ‘푸르다, 싱싱하다’를 뜻하는 ‘viridis​’에서 온 말이다. 이는 봄날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힘, 메마른 땅에 다시 생명을 틔우는 기운, 인간의 몸과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성을 의미했다. 그 근원은 하느님에게 있었다. 힐데가르트의 성가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O nobilissima viriditas), 당신은 태양에 뿌리를 내리고(quae radicas in sole), 눈부시게 맑은 광명 속에서(et que in candida serenitate), 세상의 어떤 뛰어남도 헤아릴 수 없는 원 안에서 빛나십니다(luces in rota quam nulla terrena excellentia comprehendit).” 여기에는 낯익은 이미지가 등장한다. ‘Rota’, 원 또는 바퀴다. 앞서 〈오 지혜의 힘이여〉에서 신적 지혜를 “돌고 돌며 모든 것을 감싸안는” 존재로 노래했던 힐데가르트는 이번에도 생명력을 원에서 빛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우주관 역시 생동하는 질서로 가득했다. 「스키비아스」 제1부 제3환시에서 세계는 불과 물, 바람과 별들이 여러 층으로 맞물린 거대한 달걀처럼 나타난다. 힐데가르트에게 우주는 생기 넘치는 알과 같은 유기적인 성격을 지녔다. 비리디타스 역시 식물과 자연, 인간의 몸과 영혼,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모습을 바꿔 나타난다. 힐데가르트는 〈오 가장 푸르른 가지여(O viridissima virga)〉에서 성모를 “가장 푸른 가지”라고 노래했다. 마른 나무에서 싹이 돋듯,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죽음의 자리에, 다시 생명이자 구원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 그녀는 성모님을 그렇게 보았다.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를 들어 본다. 힐데가르트의 ‘푸름’은 그저 색깔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식물을 자라게 하고 인간을 살아있게 하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본연의 힘. 하느님에게 뿌리를 두고 창조 세계 전체를 흐르는 충만한 생명의 이름이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9-20 제3508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지혜의 힘이여〉

이것은 불교의 만다라일까. 처음 마주했을 때의 생소함과 경이감이 생생하다. 수많은 얼굴과 날개, 눈들이 층층이 원을 이룬다.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동심원들이 제각기 돌아가는 착시현상도 일어나는 듯하다. 이는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가 「스키비아스(Scivias)」 제1부 제6환시에서 묘사한 ‘천사들의 합창단’ 도판이다. 참고로 스키비아스는 ‘주님의 길을 알라(Sci vias Domini)’는 뜻이다. 힐데가르트는 ‘천사들에게서 온갖 종류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들이 경이로운 화음으로 하느님께서 거룩한 영혼들 안에서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환시를 보았다. 천사들의 배경을 알기 위해 중세 천사론의 주요 원천인 위(僞) 디오니시우스의 「천상 위계론(De Coelesti Hierarchia)」을 살펴보자. 여기서 디오니시우스는 천사들을 세 품계씩 세 위계로 나누었다. 치품천사·지품천사·좌품천사, 권품천사·능품천사·역품천사, 주품천사·대천사·천사. 말하자면 3·3·3의 질서다. 힐데가르트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아홉 대열은 3·3·3이 아니라 2·5·2로 묶인다. 그녀는 「스키비아스」에서 이렇게 쓴다. 처음 두 대열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가운데 다섯 대열은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로 정화된 인간의 오감, 가장 안쪽 두 대열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리킨다. 성녀는 기존 구품천사론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인간의 몸과 영혼, 구원의 질서 안에서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이 원형의 천상은 힐데가르트 음악과도 공명한다. 그녀의 성가 〈오 지혜의 힘이여(O Virtus Sapientiae)〉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지혜의 힘이여(O Virtus Sapientiae), 당신은 돌고 돌며(quae circuiens circuisti), 생명을 지닌 하나의 길 안에서 모든 것을 감싸안으셨습니다(comprehendendo omnia in una via quae habet vitam).” Circuiens circuisti. 돌고 돌며, 에워싸며. 힐데가르트의 노래 속 지혜는 모든 것을 원처럼 포용한다. 「스키비아스」의 천사들도 그렇게 동심원을 이루며 창조주를 향한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제28곡도 함께 떠오른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하나의 눈부신 점을 중심으로 아홉 천사 무리가 원을 이루며 회전하는 광경을 본다. 베아트리체는 이를 설명하며 디오니시우스 이름까지 언급한다. 훗날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는 이 장면을 빛과 천사들의 장엄한 원무로 새겼다. 9월 17일, 힐데가르트 성녀의 축일을 기다리며 〈오 지혜의 힘이여〉를 듣는다. 12세기의 힐데가르트와 14세기 단테, 그리고 19세기 도레. 시대도 표현도 달랐지만 천상은 거듭 원을 그린다. “당신은 돌고 돌며 모든 것을 감싸안으셨습니다.” 900년 전 힐데가르트가 노래한 하느님 지혜의 신비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스테파니의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2004년 우리나라에도 번역·소개되었던 역사소설 「임프리마투르」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아토 멜라니(Atto Melani, 1626~1714). 그는 유럽 왕실을 누비던 카스트라토 가수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비밀 정보원이기도 했다. 그의 생애에는 노래와 정치, 밀사 임무와 첩보가 함께 했다. 가상 인물처럼 보이지만 무려 실존 인물이다. 동시대 네덜란드에는 콘스탄테인 하위헌스(Constantijn Huygens, 1596~1687)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부친이다.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류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제임스 1세 앞에서 연주했고 이런 말을 남겼다. “류트, 접견실로 들어가기 위한 나의 열쇠여.” 음악학자 폴 오데트는 “류트 연주자는 자주 스파이나 이중 첩자로 이용되었다”라고 말한다. 나지막한 음량을 가진 류트는 왕이나 최고위 측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연주하기 좋은 내밀한 현악기다. 한마디로 이는 정보원에 접근하기 최적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음악은 궁정 깊숙한 곳으로 사람을 데려갔고, 때론 외교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런 시대에 작곡가와 외교관, 가수, 성직자 이력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이 있었다. 아고스티노 스테파니(Agostino Steffani, 1654~1728)다. 스테파니의 삶을 한 가지 직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 활동했고, 작곡을 공부했다. 뮌헨 궁정에서 일하다 1680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하노버로 옮겨 여러 오페라를 썼고, 외교 임무도 맡았다. 브뤼셀과 뮌헨을 오가며 협상에 참여했으며, 주교품을 받고 작센 지역 대목구장까지 올랐다. 그의 첫 출판 작품은 성음악집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인 1674년 로마에서 펴낸 「저녁기도 시편집(Psalmodia vespertina)」이다. 같은 시기 스테파니는 별도의 성음악도 작곡했다. 1673년 11월에 완성된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Laudate pueri)〉가 그중 하나다. 시편 113편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오늘날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필사본으로 전한다. 아홉 성부로 쓰인 곡이지만 독창, 이중창, 삼중창과 합창이 번갈아 나타나고, 때론 두 합창이 합쳐지면서 음향의 크기와 밀도가 달라진다. 적은 수의 성부가 중창처럼 나서며 선율들이 서로를 모방하고 화답하며 얽힌다. 훗날 스테파니의 이름을 널리 알린 ‘듀엣(실내 이중창)’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스테파니는 듀엣의 대가였다. 곡을 듣다 보면 궁금증도 생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상대를 붙잡고 싶은 조바심, 질투와 희망, 체념과 격정이 작품 속에서 계속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후 주교가 된 사제가 사랑과 관련된 온갖 감정을 어떻게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냈을까. 바로크 시대 작곡가에게 인간의 여러 정감(affetti)을 표현하고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스테파니는 이런 면에서 탁월한 거장이었고, 그의 이중창이 유럽 전역에서 큰 명성을 얻은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에도 그의 음악적 특기가 곳곳에서 보인다. 여러 목소리가 맞물리고 다시 합치되며, 텍스트에 섬세한 표정을 드리우는 감각. 사랑의 애틋함을 노래할 때도,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때도, 그는 음악과 가사로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수이자 작곡가, 사제이자 주교. 때로는 외교관으로서 국경을 넘나들었던 이. 멜라니와 하위헌스 사례에서 보았던 17세기 음악가의 여러 모습이 스테파니에게서 모두 공존한다. 열아홉 살 청년이 남긴 아름다운 시편은, 훗날 그가 보여줄 천의 얼굴을 예고하고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7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레스피기 〈성 대 그레고리오〉

역대 교황 중 이름에 ‘대(大)’ 호칭이 붙은 이는 단 세 명이다. 성 대 레오 1세,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성 대 니콜라오 1세다. 그중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590년부터 604년까지 교회를 이끌었고, 593년경에는 로마를 위협하던 랑고바르드족과의 협상에 나서며 평화의 수호자로도 존경받았다.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을 맞아 여러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어본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가 이 성가들을 직접 작곡했다기보다, 후대에 전례 성가의 권위가 교황의 이름과 결부되었다고 본다.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이다. 그는 1921년에 완성한 피아노곡 〈그레고리오 선율에 의한 세 개의 전주곡〉을 대규모 관현악곡으로 수정하고 한 곡을 추가해 〈교회의 창(Vetrate di chiesa)〉을 완성했다. 1927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된 작품은 〈이집트로의 피신〉, 〈성 미카엘 대천사〉, 〈성녀 클라라의 아침기도〉, 〈성 대 그레고리오〉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 때문에 레스피기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보고 작곡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악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후 종교적 표제가 붙었다. 특히 〈성 대 그레고리오(San Gregorio Magno)〉는 그레고리오 성가 〈천사 미사(Missa de Angelis)〉의 글로리아 주제를 장대한 오케스트라로 확장한다. 편성부터 압도적이다. 대규모 목관과 금관, 현악에 징 계열 타악기인 대·중·소 세 종류의 탐탐까지 가세한다. 레스피기는 다채로운 악기군을 한꺼번에 내보이지 않고 천천히 출연시킨다. 저역에서 호른이 제시하는 주제가 발전되고, 타악기가 공간감을 만들며 오르간이 울리면, 옛 선율은 어느새 천상교회를 형상화하는 듯한 규모로 변모한다. 제목의 ‘Magno’를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어 Magno는 ‘대(大)’, ‘위대한’이라는 뜻이다. 옛 단선율 하나가 수많은 악기의 색을 입고 웅대한 음향으로 구축된다. 소리로 그레고리오의 ‘위대함’을 묘사한 셈이다. 레스피기가 그리는 교황은 친숙한 성인의 초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이는 대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이 표상하는 교황권의 존엄함과 교회 전통의 유구함을 연상하게 한다. 기묘한 경외감도 스며든다. 독일 신학자 오토(Rudolf Otto)는 인간이 거룩하거나 초월적인 것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을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라고 불렀다. 이 곡이 자아내는 정감 역시 친근함보다는 청자를 압도하고 전율하게 하는 숭고함에 가깝다. 곡의 웅장한 종결부에 매료된 이들도 적지 않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ELP)’는 라이브 공연 마지막에 〈성 대 그레고리오〉의 피날레를 사용하기도 했다. 6세기 교황과 이어진 옛 성가가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의 손에서 거대한 관현악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은 경이롭다. 오랜 전례와 교회의 기억이 장엄한 음향으로 솟아오르는 시간. 〈성 대 그레고리오〉의 ‘Magno’는 그렇게 음악 속에서 완성된다. ▶ 〈성 대 그레고리오〉를 차용한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라이브 공연(13분 38초부터)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아우프슈나이터의 「감미로운 현악의 조화」

8월 28일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이다. 대표적인 교부이자 신학자로 기억되는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에는 음악과 연계된 인상적인 장면도 여럿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한 작곡가는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회심에 큰 영향을 미친 암브로시오를 연달아 두 곡에 배치했다. 빈과 파사우에서 활동한 아우프슈나이터(Benedikt Anton Aufschnaiter, 1665~1742). 그는 1703년 여덟 곡의 교회 소나타를 묶어 「감미로운 현악의 조화(Dulcis fidium harmonia)」를 펴냈다. 앞의 네 곡에는 서방교회의 네 교부 그레고리오,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예로니모의 이름을 차례로 붙였다. 그 가운데 제2곡은 〈성 암브로시오(S. Ambrosii)〉, 이어지는 제3곡은 〈성 아우구스티노(S. Augustini)〉다. 두 곡을 연이어 듣고 있으면 밀라노에서 있었던 오래전 만남이 떠오른다. 젊은 아우구스티노는 당시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오의 강론을 들었고, 387년 부활 전야에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두 사람의 인연에는 성음악도 깊이 얽혀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세례를 받은 무렵 밀라노교회에서 들었던 찬미가와 노래를 떠올린다. “당신 교회에 감미롭게 울려 퍼지는 찬미가와 시편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며 그 노랫소리에 얼마나 깊이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그 소리들은 제 귀에 스며들고 있었고, 진리는 저의 마음에 배어들고 있었으며…”(「고백록」 IX.6.14.) 그의 서술에는 암브로시오가 이끌던 밀라노교회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었다. 당시 황후 유스티나와 암브로시오 사이의 갈등으로 신자들이 성당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이때 사람들의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찬미가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고 아우구스티노는 기록했다. 동방교회의 관습을 따른 이 방식은 이후 밀라노교회에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흐른 뒤, 성인은 ‘신앙을 되찾던 처음, 교회의 성가를 들으며 쏟아냈던 눈물’을 다시 떠올린다. 이제 그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선율은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돕지만, 때로는 내용보다 소리 자체에 더 미혹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음악에서 오는 쾌감의 위험성과 유익함의 체험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고 썼다.(「고백록」 X.33.50.) 그는 음악이 신앙에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동시에 그 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가 「음악론(De musica)」을 별도로 집필했다는 사실도 이런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아우프슈나이터의 소나타에는 가사가 없다. 〈성 암브로시오〉가 흐르고, 이어서 〈성 아우구스티노〉가 시작된다. 두 곡 사이에서 밀라노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아도 좋겠다. 한 사람은 노래하는 교회를 이끌었고, 다른 이는 그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늘날에도, 두 이름은 현악 선율 속에서 나란히 되살아난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엘가의 〈하느님 나라〉

올해 5월, 레오 14세 교황이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룬 문헌 중, 한 대사가 눈에 들어온다. 영국 소설가 톨킨(J.R.R.Tolkien, 1892~1973)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세계의 모든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지. 우리 역할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구하기 위해 내면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고, 우리가 사는 들판에서 악의 뿌리를 뽑는 것이오. 후손들이 깨끗한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말이오.”(「고귀한 인류」 213항,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제5권, 9장 참조) 교황은 톨킨을 ‘가톨릭 작가’로 지칭하며 인용한다. 톨킨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친척들의 경제적 지원은 끊겼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그녀는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톨킨은 모친의 죽음을 믿음으로 인한 순교로 여겼다. 프랜시스 모건 신부가 그의 영적 아버지이자 후견인이 되었고, 톨킨은 평생 가톨릭 신앙에 충실했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이 “근본적으로 종교적이며 가톨릭적인 작품”이라고 정의한다. 간달프의 조언에는 세 층위가 중첩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회칙 전체를 관통한다. 첫째는 인간의 한계와 미력함을 직시하는 일이다. 디지털화와 AI, 로봇공학은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회칙은 기술 자체를 적대적인 힘으로 볼 수 없으며, 기술의 발전이 생활 조건을 크게 개선해 왔다고 평가한다.(4항) 그러나 ‘세상의 모든 흐름을 다스리려는’ 욕망은 인류를 교만과 자족의 환상으로 이끌 수 있다. 둘째는 현재에 대한 응답과 실천에 대한 촉구다. 간달프는 지금 요청되는 역할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구하기 위해 내면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황 역시 문제가 너무 크고 우리는 너무 작아서 개인의 선택은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현실주의로 위장한 그럴듯한 체념”이라고 지적한다.(212항) 셋째, 미래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 후손들이 깨끗한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오늘의 선택은 후대가 살아갈 환경과 삶의 모든 조건까지 바꾼다. 회칙은 모든 민족과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인류는 새로운 바벨탑을 세울 것인가(창세 11,1-9 참조), 혹은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머무는 공동선에 기초한 도시, 즉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인가(느헤 2-6 참조)라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이다.(7~10항) 여기서 톨킨보다 한 세대 앞선 영국 작곡가 엘가(Edward Elgar, 1857~1934)의 오라토리오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p.51〉를 들어 볼 수 있다. 1906년 초연된 작품은 오순절, 성령께서 다락방의 제자들에게 내려오신 순간과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탄생을 그린다. 오순절은 신학적으로 바벨탑과 대조된다. 창세기 바벨탑을 통해 언어는 흩어졌지만, 오순절 사건에서 제자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로 말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성령께서 “다양성과 일치를 조화롭게 통합”하시며, 이를 통해 “바벨의 저주”를 극복하신다고 설명했다.(2008년 5월 11일 「성령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 참조) 이는 건축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은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장면과도 통한다. 엘가의 오라토리오에서도 제자들의 합창은 서로 겹치며, 성령을 기다리는 공동체의 여러 목소리가 펼쳐진다. 결국 엘가의 〈하느님 나라〉가 그리는 교회, 느헤미야의 성벽 복구, 간달프의 권고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그것은 바벨의 탑을 더 높이는 대신 무너진 성벽의 한 구간을 맡는 일이다. 뒤에 올 이들이 다시 씨를 뿌릴 수 있도록, 깨끗한 땅을 남겨 두는 일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프란츠 리스트의 〈새들에게 강론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주변에 영적 체험을 했다고 고백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그 사이에서 늘 모종의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기도 중 특별한 음성을 들은 적도, 소위 환시를 본 적도 없다. 다만 그 찰나에 어렴풋이 다가서 본 기억이 있다. 오래전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았다. 성당 한가운데 작은 경당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를 품고 있는 곳. ‘작은 몫’을 뜻하는 포르치운콜라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때마침 8월 2일 포르치운콜라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장미정원 옆 회랑에 도착한 순간, 성 프란치스코 동상 주위로 흰 비둘기 두 마리가 보였다. 한 마리는 성인의 품에 있는 바구니에, 다른 한 마리는 벽 위에 앉았다. 이곳 비둘기들은 오랫동안 동상 곁에 머물러 왔다고 했다. 하얀 깃털 사이로 까맣고 맑은 눈이 고요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무수히 많은 말이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눈앞의 비둘기들은 오랜 전승을 떠올리게 했다. 프란치스코가 동물들에게 설교했던 행적은 토마스 첼라노의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그의 일화를 엮은 「잔꽃송이」 등 여러 문헌으로 전해진다. 그는 비둘기와 까마귀를 비롯한 새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달라고 겸손히 청했고, 그들은 성인의 이야기를 기뻐하며 들었다. “나의 자매인 새들이여, 그대들은 창조주를 크게 찬미하고 언제나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 옷이 되는 깃털과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셨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들을 당신이 창조하신 존재들 가운데 고귀하게 만드셨습니다.”(토마스 첼라노의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제1생애」 1부 제21장, 58항) 이 경이로운 장면을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가 피아노로 옮겼다. 1863년경에 쓴 「두 개의 전설(Deux Légendes)」 중 첫 곡 〈새들에게 강론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çois d'Assise: La prédication aux oiseaux)〉다. 리스트는 젊은 시절 비르투오소로서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중년 이후에는 삭발례를 받고 경건한 생활을 해서 성직자 ‘아베 리스트(Abbé Liszt)’로 통했다. 최근 연구는 리스트가 프란치스코 성인을 종교적 모범과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비추는 인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곡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한다. 가벼운 트릴은 새소리와 날갯짓을 떠올리게 하고, 빠른 32분음표 음형은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저마다 다른 울음을 그려낸다. 높은 음역에서 속삭이듯 울리던 흐름에 나지막한 선율이 들어선다. 프란치스코의 목소리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1866년 초판에는 말의 억양과 리듬을 살려 낭송하듯 부르는 양식 ‘레치타티보(recitativo)’라고 적혀 있다. 이는 새들이 놀라서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말을 거는 어조를 연상하게 한다. 이윽고 프란치스코의 소박한 말은 넓은 음역으로 퍼져 나간다. 낮은음에서 시작한 단선율이 건반 전체를 채우는 화음으로 확장된다. 초입에는 새와 성인의 목소리가 뚜렷이 나뉘지만, 서로 다른 음역과 리듬이 상징하던 두 존재의 대화는 하나로 합쳐진다. 새들도 일제히 창조주를 향한 찬미에 동참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말하듯, 성인에게 모든 피조물은 사랑의 유대로 하나 되는 형제요 누이였기 때문이다.(11항 참조) 리스트의 음악은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상행 음형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마주했던 비둘기들은 시간이 흘러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흡사 눈으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성인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피조물들의 눈빛. 어쩌면 신비란, 강렬한 체험보다 미소한 생명의 눈길 하나가 평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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