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사 한 페이지](17) 가정사목위원회 설치

교구는 제1차 교구 시노두스 이후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주요 사목 과제로 삼았다. 아울러 청소년 신앙이 뿌리내리는 가장 기초적인 자리가 가정이라는 인식 아래, 교구는 가정의 성화를 청소년사목과 소공동체 활성화를 함께 이끌 핵심 과제로 바라봤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전 교구적으로 펼친 ‘성가정운동’으로 구체화됐고, 이후 가정사목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가정사목위원회 설치로 이어졌다. 신앙의 유산을 자녀에게 대리구제가 전면 실시된 뒤 교구는 2007년 사목 목표로 ‘대리구제 활성화’와 ‘가정의 성화’를 제시했다. 표어는 ‘함께 하자 대리구제! 신앙의 유산을 자녀에게’였다. 가정 해체와 가족 간 관계 약화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던 상황에서, 교회의 기초 공동체인 가정을 복음화하지 않고서는 청소년의 신앙도,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는 가정을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가장 기초적인 신앙공동체로 바라봤다. 가정이 성화될 때 본당의 구역·반 공동체가 살아나고, 나아가 대리구와 교구 공동체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교구는 2007년 2월부터 2009년까지 3개년에 걸쳐 전 교구 차원의 성가정운동을 전개했다. 운동은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고, 대화와 친교를 나누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가정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1단계인 2007년에는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며, 사랑을 나누는 성가정을 만들어 갑시다’를 표어로 정했다. 매주 한 번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가정기도의 날’, 매월 한 번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 ‘가족 사랑의 날’, 가족이 함께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 나눔의 날’ 등을 제안했다. 가정기도에서 시작해 가족미사와 친교로 이어지고, 그 결실이 이웃 사랑으로 확장되도록 한 것이다. 2008년 2단계에서는 ‘실천하는 가정은 행복합니다’를 주제로 가족 시간의 생활화를 강조했다. 매일 가정기도를 하고, 매주 가족 사랑을 실천하며, 매월 가족미사와 사랑나눔에 참여하도록 권고했다. 희망·헌신·용서·생명·사랑 등의 주제를 일상의 구체적인 행동과 연결해 성가정운동이 행사에 머물지 않도록 했다. 2009년 3단계는 ‘성가정을 이끄는 힘은 기도입니다’를 주제로 가정기도와 사랑 실천, 청소년의 기도 생활에 더욱 무게를 뒀다. 축복 인사 나누기, 집안일 함께하기, 한 끼 금식하기, 서로 발 씻어주기, 함께 산책하기, 감사 편지 쓰기 등 월별 실천 사항도 제시했다. 가족 고해성사 프로그램을 보급해 대화와 화해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운동을 넘어 ‘가정사목’으로 3년에 걸친 성가정운동은 가정성화를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가족이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교구 복음화국은 관련 기도문과 안내 자료를 제작, 배포하고 대리구와 본당의 실천 현황을 점검했다. 각 대리구는 모범 성가정을 선정해 축복장을 수여하는 등 참여를 독려했다. 신자들은 교구, 대리구, 본당 차원에서 전개된 성가정 운동이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으로 신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가정과 사회에서 화합과 나눔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2009년 교구 복음화국이 간행한 ‘2009년 수원교구 중심 사목에 대한 봉사자 의식 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과 가정사목에 대한 무관심 등이 과제로 확인됐다. 신자들은 가족 단위 신앙증진 프로그램과 봉사 기회, 소공동체를 통한 가족 지원 등 보다 지속적인 사목적 뒷받침을 요청했다. 교구는 성가정운동 종료 이후에도 가정성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가정사목연구소를 중심으로 부모·부부·노인 등 가정 안의 다양한 관계와 생애주기를 고려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성요셉 아버지학교와 성마리아 어머니학교, 부모 역할 훈련, 부부 프로그램 등을 통해 부모와 자녀, 부부 관계의 회복을 도왔고, 성경잔치에는 가족 성경암송대회를 마련해 가족이 함께 말씀을 익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가정사목을 개별 프로그램이나 단발성 행사에 맡기지 않고 교구 차원에서 장기적인 목표와 정책을 세울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커졌다. 교구는 2011년 3월 가정사목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들을 임명했으며, 5월 20일 교구청에서 발족식을 열었다. 위원장 송영오(베네딕토) 신부를 비롯한 15명의 위원이 위촉됐다. 가정사목위원회는 교구 가정사목의 전문화와 정책 실현을 위한 연구, 사목 프로그램 기획과 실행, 본당 가정사목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전문 봉사자 양성, 가정사목분과위원 교육 등을 맡았다. 특히 복음화국·청소년국 등과 협력해 가정과 청소년, 본당 공동체의 사목이 분리되지 않고 현장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성가정운동에서 시작된 교구의 노력은 가정사목위원회 설치를 통해 ‘운동’에서 ‘사목 체계’로 한 단계 나아갔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며 미사에 참여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교회의 체계를 함께 세우려 한 것이다. 가정을 신앙 전수의 첫 자리이자 교회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바라본 교구의 가정사목은 이후 부모·부부·노인 사목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가정성화를 위한 장기적인 여정을 이어갔다.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6) 이성효 보좌주교 탄생

2011년 2월,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둔 교구에 새 보좌주교가 탄생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월 7일 이성효(리노) 신부를 보좌주교로 임명하고,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지에 이를 공식 발표했다. 이 보좌주교 임명은 급속한 도시 개발과 인구 증가로 외형이 커진 교구의 사목적 부담을 나누고, 설정 50주년과 그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급성장한 교구, 보좌주교를 기다리다 2009년 3월 30일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제4대 교구장직을 승계한 뒤 교구는 보좌주교의 임명을 기다려 왔다. 당시 수원교구는 195개 본당에 신자 약 78만 명이 속해 있었으며, 교구 승인 복지시설 130여 곳과 성지 16곳을 두고 있었다. 신도시와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도 이어지면서 교구민 수와 지속적으로 늘고 이로 인한 사목적 요구는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용훈 주교는 새 보좌주교 임명을 알리는 서한에서 “2009년 3월 30일 이후 온 교구민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간절하게 고대한 보좌주교의 임명으로, 2013년 교구 설정 50주년 대희년을 맞는 우리 교구는 더욱 활기차고 견고하게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구장 한 사람에게 집중됐던 방대한 사목과 행정 업무를 나누고, 교구의 내적·외적 복음화 사업을 더욱 충실히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195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성효 주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기를 수원에서 보냈다. 아주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뒤늦게 사제성소에 응답해 1985년 수원가톨릭대학교에 입학했다. 1992년 사제품을 받은 뒤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교부학을 전공했고, 오산본당 주임과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지내며 본당 사목과 사제 양성에 힘써 왔다. “모든 이에게 작은 기쁨이 되겠습니다” 이성효 보좌주교 임명 소식은 2월 7일 오후 8시 공식 발표됐다. 당시 안식년을 보내며 성라자로마을 공동사제관에 머물던 이 주교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얼떨떨해하면서도 “모든 이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 날 교구청을 방문한 이 주교는 사제단과 직원들의 환영을 받은 뒤 교구장 이용훈 주교와 함께 교구청 성당에서 감사기도를 바쳤다. 이용훈 주교는 “2년을 기다린 끝에 보좌주교가 오셔서 기쁘고 감사하다”며 새 주교를 맞았다. 두 주교와 교구청 직원들은 교구 설정 50주년 대주제인 ‘희망의 땅, 복음으로!’를 함께 외치며 교구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이성효 주교의 주교 서품식은 3월 25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이용훈 주교 주례와 한국교회 주교단 공동 집전으로 거행됐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과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베드로) 주교를 비롯해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등 3000여 명이 함께했다. 교구민들도 기도로 새 주교의 탄생을 준비했다. 신자들은 미사 42만9432회, 성체조배 21만7892회, 묵주기도 571만6172단을 비롯해 희생과 주교를 위한 기도 등 수많은 영적 예물을 봉헌했다. ‘듣는 자세’로 교구의 미래를 준비하다 이성효 주교는 보좌주교로 임명된 뒤 곧바로 40일 동안 피정과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주교라는 무거운 직무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권고 「주님의 말씀」을 읽으며, 말씀 안에 머물고 말씀에서 힘을 얻는 주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 주교는 ‘듣는 자세’로 교구민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가운데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주교 서품식에서 “저는 무엇보다 성모님의 경청하시는(audiens) 모습을 본받아 ‘듣는 자세’로 이 과제들을 찾고 싶다”며 “또한 교회를 위한 모든 사업과 수원교구의 미래를 위해 순명의 자세로 교구장 주교님과 일치하고 배움의 자세로 교구 사제단과 함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교 서품 뒤 교구 총대리와 교구청장,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한 이 주교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지나간 역사를 기념하는 행사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교회의 사명과 복음화 정책을 새롭게 점검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이 주교는 2011년 10월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경제 제일주의의 폐해를 개선하는 데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며 “윤리와 도덕성을 회복하고 생명 문화가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교구민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가정에서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며, 모든 교구민이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성효 보좌주교의 탄생은 급성장한 교구의 사목 체계를 보강한 사건이자, 교구 설정 50주년을 새 복음화의 출발점으로 전환하는 데 힘을 보탠 역사적 계기였다. 이 주교는 이후 약 14년 동안 총대리로서 교구장을 보필하고 사제단과 교구민을 연결하며 교구의 여정을 함께했다.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5) 청소년 비전 50 프로젝트

수원교구는 제1차 교구 시노두스 이후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중요한 실현 과제로 삼아 왔다. 청소년이 교회의 미래라는 선언을 넘어, 청소년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교회의 주체로 살아가도록 돕는 구체적 사목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교구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 흐름은 이용훈(마티아) 주교의 교구장 착좌 이후 더욱 구체화됐다. 특히 ‘청소년 비전 50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청소년 사목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틀을 찾기 위해 교구는 2010~2012년 사목지침의 주제를 ‘교회와 청소년’으로 정하고, 교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완성하기 위해 청소년 사목에 역량을 집중했다. 청소년을 사목의 단순한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가정과 소공동체, 본당공동체가 함께 신앙을 살아가는 신앙의 주체로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이를 위해 교구는 2009년 12월 교구 청소년국 산하에 ‘청소년 비전(VISION) 50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틀을 찾기 위한 ‘청소년 비전50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프로젝트는 3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인 2010년에는 새 복음화의 관점에서 교구 청소년들의 신앙생활 실태를 진단하고 현실을 파악했다. 2단계인 2011~2012년에는 연구와 시범 실시를 통해 청소년 사목의 방향을 점검하고 평가했다. 3단계인 2013년 이후에는 교구 설정 50주년 이후 장기적인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방안을 사목 정책으로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교구는 2010년 ‘교회와 청소년 문화: 우리 시대의 청소년 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청소년 문화공간 확보, 청소년 문화축제 정착, 멀티미디어 교육팀 발족, 청소년을 문화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 등에 대해 논의했다. 청소년 사목이 교리실 안에만 머물지 않고,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문화와 삶의 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표명한 것이다. 연구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1년에는 청소년 비전 50 위원회 주관으로 8차례 청소년 사목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청소년 신앙생활의 실태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피고, 그 대안을 찾는 자리였다. 또한 같은 해 교구 청소년국은 「교구 시노두스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제2차 실현평가 보고서」를 발간해 2001년 교구 시노두스 이후 청소년 사목의 실현 정도와 신자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을 위한 공간 확보와 자치 모임 활성화의 필요성도 확인됐다. 특히 이 연구들은 발표나 주장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졌다. 2011년부터 각 대리구별로 청소년 거점본당이 시범 운영됐다. 거점본당에서는 청소년 열린미사와 예비신자 교육, 교리교육, 봉사활동, 성취포상제 활용, 자원봉사 장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도됐다. 교구는 이를 통해 본당별로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청소년 사목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을 모색했다. 청소년 신앙교육의 장도 넓어졌다. 2011년 4월 교구 청소년국은 교구 내 성지와 경유지 성당을 연결하는 순례 코스를 개발하고 이를 안내하는 책자 「디딤길」을 발간했다. 대건청소년회는 각 본당 봉사단을 체계적으로 운용하고, 해외자원봉사단 파견 등 청소년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2012년 갓등이 피정의 집을 축복, 청소년 신앙 교육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교구 청소년국은 청소년 사목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전문 봉사자 양성을 위해 2012년 ‘청소년 C·L·M 양성 과정’을 시작했다. C·L·M은 청소년 사목의 여러 과정을 조직하고(Coordinator), 이끌고(Leader), 관리하는(Manager) 전문가를 뜻한다. 이 과정을 수료한 이들은 ‘청소년 선교사’로 청소년 사목 연구기관이나 관련 단체, 교육 현장 등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교회 최초 교구 차원 청소년 사목 지침서 발표 이러한 연구와 실천은 2012년 10월 5일 교구 설정 50주년 개막미사를 기해 인준된 청소년 사목 지침서 「청소년은 미래 교회의 주인」으로 정리됐다. 교구 차원에서 청소년 사목 지침서를 발표한 것은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이었다. 지침서는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새 복음화 건의안’의 첫 번째 작업으로 제출됐고, 교구 전체를 아우르는 청소년 사목의 공통 기준을 제시했다. 개별 사목자의 역량과 관심에 따라 크게 달라지던 청소년 사목의 한계를 넘어, 교구와 본당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방향을 마련한 것이다. 지침서는 특히 청소년이 아니라 교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소년과 소통할 수 있는 교회,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주는 교회, 청소년을 위해 일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회, 교구·대리구·지구·본당이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해 연대하는 교회로 쇄신할 것을 요청했다. 청소년을 교회의 미래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못했던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 것이다. 지침서는 초·중·고·청년에 대한 사목 강화, 속인주의적 청소년 사목을 위한 거점본당 설치, 청소년 전문 봉사자와 사목자 양성, 어린이 견진성사 활성화, 청소년센터·청소년사목연구소 설립 등을 제시했다. 청소년 사목을 단순한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구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사목 영역으로 세우려는 장치였다. 2012년 12월 15일에는 교구 청소년국 청소년사목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연구소는 기존에 산발적으로 운영되던 연구팀들을 통합하고, 청소년 정책, 교재와 교안, 프로그램, 청소년 문화, 청년 신앙교육, 봉사자 양성 등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구소는 대리구 청소년국과 본당에서도 전문적인 청소년 사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청소년 비전 50 프로젝트는 교구가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청소년 사목의 현실을 진단하고, 연구와 시범 실시, 전문가 양성, 지침서 발간, 연구소 개소로 이어지는 체계를 세운 과정이었다. 청소년을 교회의 미래라고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교회가 먼저 변화하려 한 시도였다.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4) 이용훈 주교 교구장 착좌와 3대 복음화 방향 제시

이용훈(마티아) 주교의 제4대 수원교구장 착좌는 교구 제1차 시노두스 이후 추진돼 온 사목적 과제를 계승하고, 이를 새 복음화·내적 복음화·외적 복음화라는 세 방향 안에서 재정립한 출발점이었다. 이 주교는 착좌와 함께 소공동체 활성화,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대리구제 정착이라는 교구의 핵심 과제를 이어받아 교구 공동체의 내적 성숙과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를 함께 강조했다. 이후 교구는 3대 복음화 방향을 바탕으로 사목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청소년 사목과 순교 영성, 지역 선교와 사회복음화 활동을 강화하며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다. 이용훈 주교, 제4대 교구장으로 착좌 2009년 3월 30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최덕기(바오로) 주교의 교구장직 사임 청원을 받아들이면서, 교구장 승계권을 지닌 부교구장이던 이용훈 주교가 제4대 교구장직을 자동 승계했다. 같은 날 이 주교는 교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특별 서한을 통해, 역대 교구장들이 일군 사목적 유산과 영적 전통을 계승하고, 대리구제의 정착과 교구 시노두스의 두 핵심 과제인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구장 착좌미사는 2009년 5월 14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됐다.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를 비롯한 한국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경기도 지역 정·관계 인사, 이 주교의 가족과 은사, 교구 내 수도회 장상, 평신도 등 3000여 명이 함께했다. 이 주교는 취임사에서 교구가 나아갈 방향을 새 복음화, 내적 복음화, 외적 복음화로 제시했다. 이 주교는 “교구민은 한마음 한뜻으로 새 복음화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며, 절박하게 요청되는 내적 복음화를 이루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외적 복음화 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상에 세우는 데 교구민이 함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는 교구 공동체가 안으로는 신앙의 정체성과 영성을 다지고, 밖으로는 지역사회와 세계를 향해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사목 방향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같은 해 10월 27일 이 주교는 「수원교구의 2010~2012년을 위한 교구장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취임사에서 제시한 새 복음화, 내적 복음화, 외적 복음화는 이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의 중점 사목 방향으로 구체화됐다. 특히 2010~2012년 사목지침의 주제는 ‘교회와 청소년’으로 정해졌고, 청소년 사목은 교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완성해 가는 중요한 복음화 과제로 강조됐다. 새 복음화: 새로운 열정, 방법, 표현을 통한 복음화 새 복음화는 과거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새롭게 분석해, 세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느님의 역사를 동시대인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복음적 언어로 전해야 하는 사명을 말한다. 교구의 새 복음화는 제1차 시노두스의 양대 실현 과제인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시행된 대리구제의 정착과 가정의 성화를 중심축으로 한다. 교구는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소공동체 사목 운영 매뉴얼 개발, 시범 본당 운영, 교회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소공동체 사목 방법론 교육, 공동체 활동을 위한 다양한 실천 자료 마련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리구별 청소년 센터 활성화, 효과적인 청소년 사목 연구, 본당별 대건청소년 자원봉사단 도입과 운영 등을 실천 과제로 제시했다. 새 복음화의 한 축인 대리구제 활성화를 위해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사목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대리구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9년 9월 1일부로 교구청과 대리구청의 편제를 개편했다. 교구청은 1처 5국 1회, 곧 사무처와 관리국, 복음화국, 청소년국, 사회복음화국, 성소국, 사회복지회 체제로 정비됐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회가 사회복음화국과 분리되면서 교구는 사회복지 활동을 보다 강화하고, 사회복음화 관련 업무는 더욱 전문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내적 복음화 내적 복음화는 새 복음화를 실현하고 세상의 복음화에 참여하기에 앞서 교구민 스스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이다. 복음화의 출발점은 조직이나 제도의 변화에 앞서 신앙인의 내면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이 주교는 내적 복음화를 제안하면서 “교구민은 한국 순교자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교구 내 많은 성지의 다양한 지향을 바탕으로 일치를 이루면서 순교자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구는 영성 함양 교육, 성경 읽기와 쓰기, 성경 공부 활성화, 성체조배의 일상화를 통해 교구민의 영적 성장을 도모했다. 순교영성 함양을 위해서는 다양한 성지 순례 프로그램 운영, 성지 활용 청소년 사목 프로그램 개발 등이 세부 실천 과제로 논의됐다. 또한 교구 교회사연구소와 성지위원회의 역할을 확충하고, 교구 내 성지 개발과 발전을 위한 진취적 모델을 연구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외적 복음화 외적 복음화는 내적 복음화의 열매이자 표현이다. 신앙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수행하는 삶을 뜻한다. 교구는 지역선교와 해외선교, 사회복음화와 사회정의 실현, 장애인·노인·교도소 재소자·이주민 등을 위한 사회복지 분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생동감 있는 복음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사회사목 분야에서는 직장, 경찰, 병원, 민족화해, 농민, 환경 등 다양한 사회사목 체계를 확립하고, 한마음한몸운동을 활성화해 교구 차원의 대사회 운동을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교구는 외적 복음화를 위해 본당과 소공동체 중심의 선교 활성화, 직접적 선교 방법론 교육, 대사회 활동을 통한 선교 세미나 등을 실시했다. 2009년 이후 각 대리구와 본당은 지역 선교 활성화에 나섰고, 대리구 차원에서는 선교 우수 본당과 신자들을 선정해 표창하며 선교 의식을 북돋았다. 지역 선교와 본당 활성화를 위해 새 신자 찾기와 냉담 교우 회두 운동도 적극 전개했다. 그 결과 2009년 74만 명이던 교구 신자는 2012년 80만 명을 넘어섰고, 2013년 말에는 82만5000여 명에 이르렀다. 교구 복음화율도 10.69%로 올라갔다. 이는 새 복음화, 내적 복음화, 외적 복음화를 축으로 한 사목 방향이 교구 공동체의 성장과 선교 의식 제고로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지표였다.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3)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수원교구의 순교자 현양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전의 순교 신심 함양과 순교자 현양이 신자들의 기도와 기념, 성지순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 시기부터는 순교자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순교 터를 확인하며 교회법 절차에 따라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교회사 자료를 수집·연구하다 교구는 이미 다양한 활동으로 시복시성운동에 불을 지폈지만, 시복시성은 신자들의 현양과 신심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다. 순교자를 공적으로 기리는 시복시성은 순교자의 생애와 신앙, 체포와 심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역사 자료를 통해 확인돼야 할 뿐 아니라, 해당 순교자의 죽음이 신앙 때문에 겪은 순교였는지도 교회 안에서 검토돼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순교자 현양이 시복시성 추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순교 터와 관련 증언을 확인하며, 교회법 절차에 따라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교구는 김남수(안젤로) 주교 재임기인 1996년부터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비롯한 초기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운동을 추진했다. 1996년 6월 7일 교황청에 시복추진허가 청원서를 제출했고, 같은 해 11월 시복 추진 허가 공문을 접수하면서 시복시성운동을 본격화했다. 1997년에는 기존 대상자 외에 추가 순교자들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도 시작했다. 최덕기(바오로) 주교가 교구장직을 승계한 뒤에도 시복시성 추진은 이어졌다. 1996년부터 활동한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1998년 2월 현지 탐사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양근과 여주의 순교 터 두 곳을 확인했다. 또 1997년과 1998년에는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 자료집」을 간행하며 시복 대상자 자료를 정리했다. 이후 초기 순교자 시복시성운동은 한국교회 차원의 통합 추진으로 확대됐다. 1999년부터 교구 시복시성 추진 담당자들이 통합 추진회의를 열고 각 교구가 제출한 순교자 명단과 약전을 검토했다. 2001년 주교회의는 조선왕조 박해로 한국에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시복을 통합 추진하기로 했다. 같은 해 주교회의에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교구도 대상 순교자가 많은 교구 가운데 하나로 이 과정에 참여했다. 시복시성 추진이 한국교회 차원으로 이관됐지만, 교구는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 나갔다. 특히 교구는 2003년 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수원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구산성지에 자리한 연구소는 교구 전사와 교구사 연구, 교구 내 성지 연구, 교회사 관련 사적지와 유물 조사, 교구 출신 순교자와 관할 지역 순교자 조사·연구, 자료 수집과 정리·보존 등을 주요 사업으로 삼았다. 시복시성 추진에 필요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교구 차원에서 지속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교회법 절차에 따라 시복을 추진하다 교회법 절차도 진행됐다. 2002년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 추진이 본격화되자 2004년 시복 안건 착수와 법정 구성 교령이 발표됐고 국내 시복 예비심사를 담당하는 시복재판부가 구성됐다. 2004년 9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이어진 시복재판에서는 각 후보자의 순교 사실과 무덤, 순교지, 관련자, 치명 사실의 정황 등이 조사됐다. 이에 따라 2006년 교구 지역 현장조사가 진행됐다. 조사에는 최덕기 주교와 시복재판부 관계자, 수원교회사연구소장 정종득(바오로) 신부와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조사단은 남한산성성지, 천진암성지, 양근성지, 여주성당, 죽산성지 등을 방문했다. 마침내 2009년에는 하느님의 종 124위와 최양업 신부에 대한 문서가 교황청 시성성(현 시성부)에 보내져 국내 시복 심사 과정이 마무리됐다. 이 과정을 통해 2014년 시복식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국내 시복 재판이 끝났지만, 교구의 시복시성 추진은 계속 이어졌다. 2007년 주교회의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에 신앙 때문에 순교한 이들에 대한 증언록 작성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에 교구는 증언 청취와 기록, 연구를 담당할 기관으로 수원교회사연구소를 지정하고, 교구민들에게도 근·현대 수난사와 순교자 자료 정리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12월 24일에는 교구 차원의 추가 시복 추진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교구 순교자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됐다.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권철신(암브로시오) 등 한국교회 창설 주역과 병인박해 순교자들을 중심으로 자료 조사와 연구를 이어갔다. 이러한 작업은 이후 주교회의 차원의 제2차 시복 추진 안건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시복 추진으로 이어졌다. 시복시성 추진과 함께 교구 성지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2001년에는 제1회 청년 도보 성지순례가 열렸고, 이후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순례가 매년 이어졌다. 천진암, 남양, 죽산, 남한산성, 구산, 어농·단내, 수원성지, 양근성지 등에서도 성지 정비와 현양 행사가 이어졌다.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은 자료 조사와 교회법 절차를 통해 진행되는 한편, 성지 개발과 순례를 통해 교구 신자들의 순교자 현양으로도 이어졌다.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2) ‘대리구제도’ 시행

1990년대 한국교회에서 두 번째로 큰 교구로 성장한 수원교구는 외적 성장의 이면에서 여러 과제를 안고 있었다. 본당 공동체의 친교 약화, 신자의 익명화, 선교율과 주일미사 참여율 감소, 쉬는 교우 증가, 청소년 신앙생활 약화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구는 조직과 체제 개혁을 추진했다. 특히 2006년 9월 26일부터 시행된 대리구제는 이후 복음화를 위한 교구의 사목활동 전반을 보다 활발하게 이끄는 동력이 됐다. 활기찬 교구 위한 조직 개편 논의 교구는 시노두스 의제였던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실현하기 위해, 비대해진 교구 조직과 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규모가 커진 교구 체제로는 사제와 신자들의 다양한 사목적 요구를 충분히 충족하기 어려웠고, 더 많은 평신도가 참여하는 ‘함께하는 교회’를 이루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는 사제들과 동반자로서 통합사목을 추구하고, 평신도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교구는 2000년 12월 사제연수에서 ‘교구장 지구 대리구제도’, 곧 ‘대리구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어 2001년 5월 사제연수에서 최 주교는 교구 사제들에게 거대한 교구의 조직과 체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물었다. 교구 사제들은 기존 지구 조직을 유지하기보다 대리구제를 시행하는 방향을 원했다. 이에 따라 교구는 사제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당시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에서 시행되던 대리구제도를 검토하고, 수원교구 현실에 맞는 제도를 준비하기로 했다. 2005년 11월 30일에는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총대리 이용훈(마티아) 주교 등 12명의 성직자로 구성된 대리구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준비위원회는 2006년 수원교구 대리구제 시안을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아울러 각 대리구를 담당할 대리구장을 임명하고, 최 주교의 교령을 통해 대리구제 전면 시행을 발포하기로 했다. 6개 대리구 분할, 각 대리구장 임명 대리구 준비위원회는 거주민 수와 신자 수,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중소도시 등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6개 대리구 분할안을 발표했다. 기존 17개 지구, 168개 본당을 재편해 관할하는 6개 대리구는 수원대리구(28개 본당), 안양대리구(23개 본당), 평택대리구(35개 본당), 용인대리구(31개 본당), 성남대리구(25개 본당), 안산대리구(26개 본당)로 결정됐다. 교구는 2006년 5월 22일부로 대리구장을 임명했다. 새로 임명된 대리구장들은 대리구 준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관할 지구 사제들과 만나며 대리구제 시행에 필요한 준비를 이어갔다. 6월 1일에는 총대리 이용훈 주교가 교회법에 따라 교구청장으로 임명돼, 교구청 주관자로서 교구청의 제반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7월 14일에는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천주교 수원교구 대리구제도에 관한 교령 반포 및 대리구장 서임 미사’가 거행됐다. 미사에서 최 주교는 대리구제 설정을 공포하고 시행지침을 알리는 교령을 발표했다. 6명의 대리구장에게는 교구장 대리로서의 권한을 부여하고 임명장을 수여했다. ‘천주교 수원교구 대리구제도에 관한 교령을 발표하며’ 제목의 담화에서 최 주교는 “주교와 사제단이 더욱 성화·일치하고 교구민과 함께 연대해 주님을 찬미하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교구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교구 대리구제를 구상했다”며 “이는 한두 명의 주교에 의해 기계적이며 경직된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인의식을 갖고 연대해 자발적이고 활기찬 교구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대리구제는 기존 지구제와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지구가 대체로 7~15개 본당이 연합한 결합체라면, 대리구는 이러한 지구 2~4개가 연합한 조직으로 평균 30개 이상의 본당을 아우르는 체제였다. 대리구장은 사목방문과 견진성사 등 주요 행사를 주관했다. 또 대리구 운영지침에 따라 대리구 사제평의회를 구성하고, 사제들과 대리구 직원들의 협조를 받아 대리구청에 상주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대리구는 기존 지구를 세분화하거나 통합함으로써 더욱 전문화된 교육과 행사를 실시하고, 고유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작은 교구로서 지역사회 복음화에 힘쓸 수 있게 됐다. 또한 청소년의 교회 활동이 지구 단위에서 활발히 이뤄져 온 점을 고려해, 대리구 차원에서 청소년 활동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었다. 대리구제 시행으로 교구청 업무 변화 대리구제가 시행되면서 교구청의 1처 5국 체제는 유지됐지만, 기능이 조정됨에 따라 업무와 직원 구조도 일부 개편됐다. 사무처와 관리국, 성소국은 기존 업무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복음화국과 청소년국, 사회복음화국은 상당수 업무를 대리구로 이관했다. 특히 복음화국과 청소년국의 교육·행사 중심 업무는 전문적인 기획·연구 중심 업무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교구청은 정책을 연구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고, 대리구는 이를 바탕으로 본당과 연계해 교육과 행사 중심의 공동체 사목을 펼치는 형태가 됐다. 기존 지구는 대리구와 본당 사이의 중간 역할을 담당하되, 행정 업무보다 지구 사제단 모임을 통해 본당 연합 사목이 이뤄지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게 됐다. 대리구장은 대리구청에 근무하는 복음화국장, 청소년국장과 함께 대리구 전반의 사목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주관했다. 복음화국장은 사회복음화 업무를 겸임했고, 청소년국장은 성소 업무를 겸임했다. 대리구제 실시 이후 교구는 2007년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 차원의 새로운 사목 목표를 발표했다. 중점 목표는 시노두스 의제였던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였으며, 표어는 ‘함께 하자 대리구제! 신앙의 유산을 자녀에게!’로 정했다. 구체적인 실천 목표로는 ‘대리구제 활성화’와 ‘가정의 성화’를 제시했다.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1)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 파견

수원교구가 ‘받는 교구에서 나누는 교구’로 변화하는 중심에는 해외 선교사제의 파견이 있었다. 특히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를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본격적인 해외 선교가 이뤄질 수 있었다.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를 통한 교구의 해외 선교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나누는 교회로 변모하다 1988년 제2대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가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미사에서 ‘받는 교구’에서 ‘주는 교구’로의 변모를 천명한 이래, 교구는 외국 교구와 선교지를 향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교구의 관심은 단순히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현지 교구와 연계하고 성직자를 파견하는 받는 교구와 주는 교구가 함께 복음화되는 ‘나누는 교회’를 지향했다. 그 대표적인 활동이 한국외방선교회 창설이었다. 김 주교는 한국 외방 선교회 창설에 참여하고 제2대 총재로 해외 선교사 양성과 지원에 기여했다. 이어 제3대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 역시 제3대 총재를 역임하며 해외선교 활동을 이끌었다. 2004년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한국 외방 선교회 총재직을 서울대교구장이 당연직으로 맡기로 결정되기까지 교구는 한국 외방 선교회를 통한 해외선교에 기여했다. 비단 한국 외방 선교회를 통한 활동만이 아니었다. 2001년에는 교구 사제를 파리 외방 전교회를 통해 일본 선교지에 파견하기도 했다. 2004년 4월 최 주교는 아프리카 남수단을 방문하고 당시 룸벡교구 톤즈에서 사목하던 고(故) 이태석(요한 세례자) 신부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해외 선교지 사정을 살폈다. 그때 룸벡교구장에게 선교사제 파견을 제안받은 최 주교는 교구의 새로운 해외선교를 준비했다. 바로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 파견이다. 신앙의 선물 싹 틔우다 피데이 도눔은 한 교구에 소속된 사제를 일정 기간 선교 지역 교구에서 현지 교구 사제로서 사목활동을 하도록 돕는 제도를 뜻한다. 라틴어로 ‘신앙의 선물(Fidei Donum)’이라는 뜻을 지닌 이 제도는 비오 12세 교황이 1957년 발표한 회칙 「피데이 도눔」에서 유래했다. 교구는 2005년부터 해외선교를 진행할 수 있도록 선교사제 양성에서부터 해외 선교를 뒷받침한 여러 조직을 구성했다. 2008년 ‘바오로의 해’에는 교구 복음화국 내에 ‘해외선교사목부’를 신설해 교구 내 각 선교지역을 관리·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해외선교사목부 산하에 중국선교위원회와 아프리카 수단선교위원회를 신설했다. 마침내 2008년 4월 3일자로 파견된 첫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들은 룸벡교구 내 아강그리알과 쉐벳에서 사목을 펼쳤다. 선교지에서는 단순히 성사 집전만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이뤄졌다. 특히 의료 봉사, 학교 건립 등은 단순히 물적 지원에 머물지 않고 남수단 현지인들의 자립을 돕고 현지인들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활동이 됐다.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가 파견된 선교지를 중심으로 교구민들의 나눔도 더욱 확산됐다. 교구 내 여러 단체, 본당은 물론이고 어린이들의 작은 손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물적·영적 후원이 선교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 뻗어나가는 교구의 해외선교 교구 해외선교는 남수단 룸벡교구와의 피데이 도눔을 계기로 크게 탄력을 받고 활성화됐다. 2009년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교구장에 착좌한 이후, 교구의 해외 선교는 크게 확장하며 보편교회와 함께 가는 교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가 파견된 곳은 잠비아다. 잠비아 피데이 도눔은 한상호(마르코) 신부의 선교를 통해 이뤄졌다. 한 신부가 2009년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잠비아 솔웨지교구의 승인을 얻어 마냐마 지역을 사목한 것이 선교의 발판이 된 것이다. 교구는 2013년 솔웨지교구와 피데이 도눔을 체결하고 선교사제를 파견했다. 2014년 4월에는 남아메리카 페루 시쿠아니교구의 요청에 따라 피데이 도눔 선교사제를 파견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를 통해 칠레 산티아고대교구에 선교사제를 파견하고 2017년 산티아고대교구와 정식으로 피데이 도눔을 맺어 선교사제를 파견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해외의 여러 교구들과 피데이 도눔을 체결하고 있다. 교구는 2020년에는 칠레 안토파가스타대교구와, 2022년에는 잠비아 은돌라대교구와 피데이 도눔을 맺고 선교사제를 파견했다. 또 2025년에도 일본 사이타마교구와 나고야교구에 선교사제를 보내 선교를 펼치고 있다. 교구는 현재 아프리카 남수단 룸벡교구, 잠비아 솔웨지교구와 은돌라대교구, 남아메리카 페루 시쿠아니교구, 칠레 산티아고·안토파가스타대교구, 그리고 일본 나고야·사이타마교구 등에 10여 명의 선교사제를 파견하고 있다. 2026년 2월 해외 선교사제 파견미사에서 이용훈 주교는 “해외 선교사제 파견은 교회가 안정적인 교구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라며 “이제 교구는 도움을 받던 시기를 넘어 인적 자산과 실천적 사랑을 나누는 교구로 성장했다”고 해외 파견의 의미를 전했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0) 교구 시노두스

‘시노두스(Synodus)’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모여 수원교구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여정을 뜻한다. 1996년 제2대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는 사목교서를 통해, 2000년 대희년을 잘 준비하고 21세기의 변화하는 세상에 부응하는 교구로 거듭나기 위해 ‘제1차 교구 시노두스’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1999년 7월 17일 개막해 2년간 이어진 교구의 시노두스 여정은 공동체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전 신자 시노두스 교육으로 ‘준비하다’ 김남수 주교의 뒤를 이어 교구장을 승계한 제3대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는 1997년 10월 9일 성직자·수도자·평신도 합동총회를 열고, 교구 시노두스 개최를 공식적으로 반포했다. 시노두스 준비에 본격 착수한 교구는 1998년 2월 24일 교구 시노두스위원회 위원을 임명했다. 위원장 겸 사무국장에는 윤민구(도미니코) 신부, 총무에는 김길민(크리스토폴) 신부가 각각 임명됐으며, 위원으로는 성직자·수도자·평신도 대표들이 선임됐다. 교구는 공동체 전체에서 선발된 대표들이 모여 교구 전체의 방향을 잡아가는 모임이 교구 시노두스임을 전제하고 각 본당과 지구, 단체, 수도회, 신학교, 수녀연합회가 시노두스 의제를 선정해 제출토록 했다. 또 교구 공동체와 교구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사제평의회를 거친 뒤, 최덕기 주교의 결정에 따라 ‘교회의 기초공동체’와 ‘젊은이의 신앙생활’을 시노두스 의제로 확정했다. 1998년 7월에는 시노두스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위원회는 전 신자를 대상으로 시노두스 교육을 진행하며, 시노두스의 의미와 두 의제의 취지를 설명해 나갔다. 시노두스 여정 ‘개막’…‘구역·반 공동체’,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일련의 교육과 준비 과정을 거친 뒤, 교구는 1999년 7월 17일 교구 시노두스 개막미사를 봉헌했다. 이어 열린 1차 총회에서는 각 본당이 제시한 시노두스 초안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고, 기초공동체와 청소년분과의 주요 쟁점에 대해 찬반 토론과 약정 토론을 진행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본당 시노두스’, ‘성직자 시노두스’, ‘수도자 시노두스’가 차례로 열렸다. 전 신자가 참여한 본당 시노두스에서는 주제별로 찬성과 반대 발표자를 선정해 토론을 벌였고, 종합 토론 뒤 찬반 의견을 조사해 시노두스 사무국에 결과를 보고했다. 2000년 8월 30일에는 1차 본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이후 논의의 기초 자료가 될 준비초안집을 배포하고, 관련 회칙과 조직, 일정을 확정했다. 아울러 의제였던 ‘교회의 기초공동체’의 명칭을 ‘구역·반 공동체 활성화’로 변경했다. 이어 2차 본회의는 ‘구역·반 공동체 활성화’를, 3차 본회의는 ‘청소년,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각각 열렸다. 특히 3차 본회의에서는 초·중·고등부와 청년의 전례, 교육, 조직과 운영, 고등부의 문화·인권, 청년 선교, 가톨릭 청년문화 등 청소년 공동의 과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회의는 2차 본회의와 달리 모든 조항에 대해 토의와 표결을 진행한 뒤 그 결과를 일괄 발표하는 방식을 취했다. 교구는 2001년 10월 11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시노두스 폐막미사와 최종문헌 반포식을 거행했다. 최종문헌은 ‘구역·반 공동체’와 ‘청소년 신앙생활’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시행세칙도 함께 제정했다. 최종문헌 ‘실행’ 통해 소공동체 중심 본당 재편 교구는 시노두스 폐막 뒤 최종문헌의 방향을 교구 운영과 사목 현장에서 구체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에 따라 2002년 교구 목표를 ‘구역·반 공동체 및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로, 표어를 ‘일어나 가자!’(요한 14,31)로 정했다. 또 본당의 조직적 행정 수행과 사무 능률 향상을 위해 2002년 1월 1일부로 교구청과 본당 직원 관련 각종 규정을 공포했고, 1월 29일에는 교구청 편제를 1처 3국에서 1처 5국으로 개편했다. 재편된 복음화국과 각 지구·본당은 구역·반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전 본당의 구역·반 공동체 조직화와 의식화 교육을 추진했다. 2002년 10월 3일에는 시노두스 시행세칙에 따라 교구 소공동체 봉사자 전원을 대상으로 ‘교구 소공동체 봉사자 대회’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었다. 이어 2002년 12월부터는 소공동체 학교를 개설해 7개월 과정으로 전문 봉사자를 양성했다. 청소년국도 시노두스 시행세칙을 실현하기 위한 후속 조치에 나섰다. 지구 청소년 복음화 담당 신부 임명, 청소년분과 분리 운영, 전례 안에서 다양한 악기 사용, 청소년을 위한 문화 공간 마련, 장애 청소년에 대한 배려, 본당 주임의 청소년 사목 책임 강화, 청소년 사목을 위한 수도공동체의 협조, 지구 차원의 청소년·청년 분과장 조직 구성 등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과 홍보를 이어갔다. 청소년 사도직 단체 활성화에도 힘을 쏟았다. 청소년국 청년사목부는 2002년 10월 20일 수원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제1회 수원교구 예술제’를 열어 비신자들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젊은이 기도모임’은 청년 재복음화와 미사 활성화를 목표로 ‘토요기도모임’, ‘젊은이 성령 안에서 새 생활 피정’, ‘청소년 세미나’, ‘고3 피정’, ‘밤샘기도모임’을 주관했고, 2004년부터는 젊은이 떼제미사를 봉헌했다. 2002년 사목교서와 교구 목표는 2006년까지 교구 복음화 사업의 지침으로 이어졌다. 2006년 대리구제가 실시된 뒤에는 2007년부터 최덕기 주교가 퇴임한 2009년까지, 교구의 중점 목표였던 구역·반 공동체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에 더해 실천 목표인 대리구 활성화와 가정의 성화가 함께 추진됐다. 이 같은 교구 차원의 노력 속에 본당은 단체 중심에서 소공동체 중심으로 서서히 재편됐고,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 교육도 교구 전반으로 확산됐다. 교구민 전체의 의견을 모아 미래 교구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개최된 시노두스의 실현목표는 최덕기 주교의 후임인 제4대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시기에도 중단 없이 추진됐다.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9) 최덕기 주교 착좌

수원교구 제3대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는 교구의 내적 성숙과 새로운 도약을 일군 교구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정자동 교구청 시대 개막과 함께 탄생한 새 교구장의 첫걸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덕기 부교구장 주교 임명 1992년 제2대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가 만 70세가 됨에 따라 교구는 사제평의회에서 부교구장 주교 임명 필요성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논의는 김 주교의 교구장 착좌 20주년이던 1994년 본격화됐고, 마침내 1995년 1월 25일 최덕기 신부가 부교구장 주교에 임명됐다. 최 주교 임명으로 교구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두 명의 주교가 함께 사목하는 교구로 거듭났다. 부교구장 주교는 교구 사목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임명된 교구장 후계권을 지닌 주교다. 최 주교 임명 당시에는 ‘부주교’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다. 보좌주교의 경우 교구장을 계승할 권한이 없지만, 부교구장 주교는 교구장 퇴임 시 교구장으로 임명된다.교구는 1996년 2월 4일 「수원주보」를 통해 최 주교의 부교구장 주교 임명 소식을 알리며, 최 주교에게 “급속히 성장해 가는 교구의 활성화와 2000년대 복음화를 기해 바람직한 소공동체로의 전환”이라는 과제가 주어졌음을 시사했다. 같은 해 2월 22일 주교로 서품된 최 주교는 교구 총대리를 맡으며 교구 사목에 뛰어들었다. 특히 주교 임명 당시 교구청 직제 개편과 정자동 신교구청사 마련이라는 교구의 큰 사업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최 주교는 교구장을 보필하며 교구 체계를 다져나갔다. 교구 체계를 다지면서 최 주교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교구청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작업이었다. 최 주교는 ‘좋은 생각 창안제도’ 등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면서 직원들의 분위기를 쇄신했고, 교구청의 활성화를 위해 관심을 기울였다. 1997년 1월 교구청의 정자동 이전과 함께 ‘소공동체 기도모임’도 시행했다. 최 주교는 교구청 직원들이 매주 국별로 소공동체 기도모임을 실시하며 서로 삶과 신앙을 나누고, 일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교구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교구청에서 소공동체 기도모임을 활성화시킨 것으로, 향후 전개될 소공동체 운동을 효과적으로 보급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도 했다. 제3대 교구장 착좌 최 주교가 부교구장 주교로 활동한 것은 1년 4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김 주교의 교구장 사임 청원이 1997년 6월 7일 교황청에서 수락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 주교는 제3대 교구장으로 교구장직을 계승했다. 최 주교는 주교 서품 당시 사목표어를 ‘그리스도와 함께’로 정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 교회 구성원 모두 함께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의미를 담은 성구다. 주교 문장 역시 그리스도를 따라 사목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 구원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뜻을 담아 만들었다. 같은 해 9월 25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교구장 이취임식에는 하느님의 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초대교구장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 등 한국 주교단과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대주교를 비롯해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 등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최 주교는 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내적으로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교구 공동체, 외적으로는 사랑·정의·평화를 사회에서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전례의 활성화 ▲간부 교육 ▲소공동체 활성화 ▲복음선포 ▲사회복음화 등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최 주교는 자신이 설정한 사목 목표와 실천 방안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하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교구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성직자·수도자·평신도 합동 총회’다. 성직자·수도자·평신도 합동 총회는 교구장의 결정을 교구민에게 공표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전 교구민의 의견을 수렴해 공동 목표를 설정하는 자리였다. 교구민들이 능동적으로 복음화 목표를 세우고 실천을 다짐함으로써 목표를 더 강하게 추진할 힘을 얻고, 또한 교구 구성원들이 일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7년 10월 9일 열린 합동총회에는 최 주교를 비롯해 교구 내 사제, 수도자, 평신도 대표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합동총회를 통해 교구는 1998년 교구 공동 실천 목표를 ▲성령의 힘으로 소공동체를 활성화하자 ▲성경 말씀을 읽고 쓰고 묵상하자 ▲성령의 힘으로 복음화에 앞장서자 등으로 정했다. 합동총회는 교구 역사상 최초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교구장의 사목 목표와 실천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수립한 자리였다. 교구 내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이 복음화를 위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함께 식별하는 오늘날 ‘시노달리타스’라 부르는 정신을 이미 구현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최 주교는 후에 이 합동총회에 관해 “하느님을 향한 하나의 사랑으로 일치한 우리들의 다짐은 더욱 뜨거운 내·외적 선교 열정이었다”며 “특히 전 교구민들이 능동적으로 복음화 목표를 세우고 실천을 다짐한 것은, 교구의 공동복음화 목표 설정을 더욱 쉽게 해줬을 뿐 아니라 강력하게 추진하는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4면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8) 수도회 진출과 사회복지 사목 전개

수원교구 2대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는 “수도자야말로 교회의 뼈대인 성직자를 보완하고 둘러싼 살(근육)이므로, 교회가 건강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뼈대인 성직자와 살인 수도자가 많아야 한다”며 “교회 발전의 가능성은 건전한 수도회가 얼마만큼 존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김남수 주교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회고록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중) 이에 따라 교구는 전교와 사회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해외 수도회 영입과 교구 수도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수도자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교구 진출 수도회 증가는 사회복음화가 확산되는 자양분이 됐다. 지역의 사회복지 토대를 일군 교구의 역사를 살펴본다. 1970년대 이후 수도회 진출 확대, 사회복음화 토대 다져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과 인구 집중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도시화가 크게 진전됐지만 이와 동시에 빈부 격차로 도시빈민과 소외계층도 증가했다. 이 시기 농촌 교구에서 도농 복합 교구로 변화하고 있던 교구는 선교사업과 함께 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교구 차원에서 사회복지 사업에 힘을 기울이지 못했고 대신 복지관이나 수도회를 교구에 유치하거나 정착시키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였다. 교구에 수도회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1972년 노틀담 수녀회를 시작으로 미야사끼 까리따스 수녀회(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미리내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수녀원), 성 원선시오의 애덕 자매회(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등이 교구에 진출해 교육사업,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했다. 1980년대 후반에도 많은 수녀회가 교구에 자리를 잡았다. 이 중 1985년에 교구에 진출한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1990년 수녀원과 양로원 ‘평화의 모후원’을 준공했다. 천사의 모후 수녀회는 교구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해 1991년 한국 분원을 수원 율전동에 설립하고 소외된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1989년 교구에 진출한 예수 마리아 성심 전교 수녀회도 1996년 경기도 화성 향남읍에 본원을 세우고 성심어린이집을 개원해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성 안드레아 수녀회는 교구에서 설립된 수도회다. 1988년 정음전(마리안나), 김화숙(율리안나), 김정희(젤마나) 씨는 낙태를 예방하고 미혼모를 돕고자 새싹의 집을 열었다. 생명수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김남수 주교는 이들의 뜻에 공감하고 1991년 11월 수도 공동체 설립을 인가했다. 경기도 안성에 본원을 둔 성 안드레아 수녀회는 현재 경기도 군포에 한부모 가정 양육시설 새싹들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남자 수도회의 진출이 활발했다. 1992년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성남에 자리를 잡고 도시빈민 사목을 전개했다. 1998년에는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을 열고 현재까지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과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1994년 교구에 진출한 예수의 작은 형제회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자리를 잡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사목을 펼치고 있다. 교구의 수도회는 1974년 7개 수녀회, 2개 수도회에서 1997년 33개 수녀회, 14개 수도회로 크게 확대됐다. 1997년 당시 수도자 수는 수사 58명, 수녀 766명이었다. 1994년 사회복지회 설립…지역의 소외된 이와 동행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구는 사회사목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사회복지법인인 수원교구 사회복지회를 설립하고 1994년 5월 10일 경기도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이 교구 관할 지역에서 전개됐다. 특히 교구 관할 지역사회에는 의탁할 데 없는 노인들을 보호하는 양로시설이 필요했는데 수도회나 개인, 본당, 단체들이 노인복지 사업을 맡아 운영했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평화의 모후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글라라의 집’,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성녀 루이제의 집’, 천사의 모후 수녀회 ‘아녜스의 집’ 등이 설립돼 현재까지 노인복지 활동에 힘쓰고 있다. 개인이나 본당에서 시작한 시설 중에는 복지법인으로 발전하거나 교구·수도회에 이관된 경우도 있었다. 복지사업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1989년 서종선(토마스) 신부가 무의탁 노인 보호를 위해 설립한 ‘애덕가정’은 1992년 천주의 섭리 수녀회가 인수해 노인 주거 복지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제1대리구 사강본당에서 시작한 양로시설 ‘사강 보금자리’는 교구 사회복지회로 이관돼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당시 도척본당 주임 방구들장(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들과 함께 무의탁 노인 보호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 4월에는 사회복지재단 오로지종합복지관을 만들었고 그해 11월 양로원 ‘작은 안나의 집’을 건립했다. 장애인 복지시설도 확충됐다. 인보 성체 수도회는 1990년 사회복지법인 천주교인보회를 설립하고 노인과 장애인 복지사업을 추진했다. 1991년부터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에 시설을 마련했고, 1994년 중증장애인을 위한 요양시설인 ‘요한의 집’을 개원했다. 또한 교구 사회복지회는 중증장애인의 직업 자활을 위해 1994년 3월 수원 원천동에 ‘복지 개미사업’을 설립했다. 이후 ‘해피해누리작업장’으로 이름을 바꿔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1997년 3월 ‘해동일터’를 열고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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