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빚은 신앙] 첫 사진전 - 어느날 주님이 내안에 오시어

나는 정보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기계치’였다. 필름 카메라와는 너무도 다른 많은 기능과 복잡함에 주눅이 들었지만 이미 카메라를 구입했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숙제 제출도 제대로 못 해 안타까워할 때 봉사하시는 분들의 기다림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매주 수업에 지각은 했지만 야외 출사 한 번을 빼고는 개근했으니, 나는 확실히 외유내강의 성격이었나 보다. 일을 그만두니 모든 시간이 고스란히 남았다. 나는 하고 싶었던 호스피스 병원 안내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고, 물론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행복하게 봉사하고 있다. 환우분들 옆에서 직접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내 몸도 돌봐야 하는 현실을 주님께서는 어찌 그리 잘 아시고 내게 꼭 맞는 일만 주시는지,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보호자분이 임종하시는 분을 위해 묵주가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하시기에 늘 가지고 다니던 묵주를 드렸다.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였으리라. 그 뒤에 찾아온 내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서히 사진이 내 안에 스며들 때쯤 작품집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십자가에 관한 사진이 많았다. 그 후 열심히 십자가를 찾고 찍고, 또 찾고 찍었다. 나는 깨달았다. 열심히 찾으면 보인다는 것을. 십자가는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일상 곳곳에 있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는데, 내가 비로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묵상’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출간하고 졸업한 뒤, 공허한 마음으로 사진전을 관람하러 갔다가 작가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의 모든 일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묵상」 작품집을 들고 사진작가를 찾아가 보여 드리며 사진전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다. 사진작가도 아니고 사진을 오랫동안 한 것도 아닌, 겨우 작품집만 달랑 하나 있을 뿐인데 말이다. 사진들은 사순 시기에 맞는 작품들이었고, 내년이면 아마 이런 용기를 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첫 사진전을 하게 되었다. 순수하고 작은 사진전이 나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비신자분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행복했다. 또 어린 학생이 사진 속에 담긴 내 마음을 알아보았을 때도 행복했다. 내 몸에 꼭 맞는, 내 마음에 드는 사진전이었다. 이렇게 나는 예술과 신앙을 찾아 먼 길을 돌아왔나 보다. 사진은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 되었다. 어느 분이 써 주신 감상 글을 옮겨 본다. “수많은 사진이 필름 속에 담겨 있지만, 그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사랑의 눈이 겹쳐져 주님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길을 걷는 것 속에 십자가의 길을 걷듯이 액자 안의 고통과 침묵을 통해서…” 아! 언제나 이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야겠다. “주님, 제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소서.” 글 _ 조웅식 가타리나(수원교구 사진가회)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내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것들을 휴대전화로 찍는 데 만족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카메라를 사서 다시 사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배우고 싶은 것들을 익히느라 바쁜 날들을 보냈다. 주일에는 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토요일에는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을 사랑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는 일에 늘 진심이었다. 어느 해인가 창덕궁 후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해설하는 분을 보고 감동한 나는 화성을 해설하는 ‘화성길라잡이’가 되었다. 교육받는 동안 북수동성당이 성지이고 화성 곳곳에도 순교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젠가는 성지에서도 꼭 안내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렵 북수동성당에서 수원성지해설사학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안내를 보고 참여해 전 과정을 이수했다. 하지만 그 뒤로 활동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아주 중요한 한 분을 만났다. 극단을 운영하는 연출가였고, 삶 자체가 연극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었다. 그분을 만나면서 나는 연극이라는 아주 생소한 세계를 살아 보게 됐다. 포크댄스와 펜싱, 탭댄스, 호흡법 등 연극의 기초교육을 받으며 아마추어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조금이나마 익힌 것 같다. 지금도 처음 무대에 섰을 때의 떨림이 생각난다. 그립지만 처음은 단 한 번뿐이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 동안 열 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하며 쉴 새 없이 무대에 섰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으리라. 선생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지만, 나는 믿고 싶다. 어디에 계시든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지금도 인상을 쓰며 모호한 작품을 연출하고 계시리라고. 그 시절 나의 믿음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아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성가대원으로서 주일미사만큼은 열심히 봉헌했다. 기적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에 보이는 믿음을 원했지만 나는 조용한 신앙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나 또한 직장 생활 외에는 아무 활동도 할 수 없어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족과 사별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암 선고를 받았다. 나는 두려워하지도,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왜?’라는 의문도 없이 담담하게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다. 이제야 나는 통증 없이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분, 언제 어디서나 늘 나와 함께 계시는 분께 기도한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봉성체 봉사자의 소임도 맡겨 주셨다. 어르신들이 보여 주는 지순한 신부님 사랑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오히려 내가 위로받곤 한다. 어느 날 주보에 실린 가톨릭사진가회 회원 모집 안내를 보았다. 나는 사진을 다시 시작해 보리라 결심하고 수강 신청을 했다. 얼마 후 드디어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주님은 나를 어떻게 하시려는 것일까? 글 _ 조웅식 가타리나(수원교구 사진가회)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세례를 받다

30대의 젊은 엄마였던 당시, 시어머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도 개신교 신자였고,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어짐이었다. 일상의 어려움으로 지친 상태였지만,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어떤 위로나 위안도 받을 수 없었다. 성가대 활동도 해 보고 여러 악기를 배워 연주도 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겉돌았다. 허수아비같이 텅 빈 마음을 간직한 채 지내는 날들이었다. 목사님의 설교 시간에 늘 딴생각에 잠겨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자연스레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웬만한 마을에도 성당에 다니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교회 외에 다른 종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히 성당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전업주부였던 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당 근처로 이사를 왔지만 언제나 무심히 지나쳤고, 성당은 나와는 무관한 어떤 곳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힘들고 지친 나는 나도 모르게 성당 마당에 계신 성모님 앞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아마 그 후부터 내 마음에 성모님께서 조금씩 찾아오시지 않았나 싶다. 언제나 나를 바라보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나는 성당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확실한 믿음이 생길 때까지 2년 동안 주일 미사를 봉헌한 뒤, 마침내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 우연히 만난 어느 수녀님의 “주님께서 자매님을 뽑으셨어요”라는 말씀과 따뜻한 미소에 힘을 얻었고 세례를 받았다. 믿음이 샘솟듯 솟아나 나를 풍요롭게 하지는 않았지만, 종종거리던 발걸음에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에 굳어 있던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수녀님의 손에 이끌려 성가대원이 되면서 주일을 잘 지킬 수 있었다. 국악성가대원이 되어 여러 성지를 다니며 봉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믿음은 성가를 연습하고 성가대원으로서 매주 찬양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후 나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지만 교적을 옮기지 않고 성가대 활동을 계속했다. 그 후 견진성사도 받았고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 신부님의 “하느님 말씀 안에서 항상 행복하십시오”라는 귀한 말씀을 듣고, 주님 품으로 가기 전까지 성경을 세 번 필사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은 천천히 두 번째 필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자 주변을 산책할 때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로 사진도 찍게 되었다. 나뭇잎의 속삭임, 바람에 날리는 꽃잎, 아이들의 웃음소리, 피어나는 무지개, 흔들리는 갈대, 물 위에 떠 있는 조명등, 하늘과 구름, 빗방울, 무당벌레, 가장 먼저 피어나는 진달래, 전망대, 불타는 단풍 등.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찍고 또 찍었다. 일상 안에서 발견한 기쁨과 감사. 이것은 소소한 기적이었으니, 이 또한 주님의 계획이었으리라! 글 _ 조웅식 가타리나(수원교구 사진가회)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50여 년 전…카메라를 샀다

나는 교구 사진가회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개신교를 믿던 평범한 주부였던 내가 가톨릭 사진가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을 이끌어 오신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은 엉뚱함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의 일생을 계획해 놓고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0여 년 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다. 아이 유치원 엄마 중 동네 약국을 경영하던 약사님의 권유로 카메라가 있는 몇몇 엄마들이 모여 사진반을 만들었다. 그때 우리는 3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유치원 차 타는 곳에서 우리는 얼마 동안 얼굴을 익혔고, 그 후에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숙해졌다. 어느 날 약사님과 집으로 오던 중 백일장에 나가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참석한 백일장에서 나는 입선을 하게 되었고, 약사님은 무척 좋아하시며 전업주부인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취미를 가져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30대의 젊은 엄마였던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목마름에 약간은 몸이 근질거리지 않았나 싶다. 사진반, 문예반, 중창반, 탈춤반이 그래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각자 맡은 반에서 열심히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반은 그 지역에서 사진을 하시던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에 공부도 하고, 분기별로 출사도 다녔다.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음에도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 주시며 진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다. 우리는 가끔 모르는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사실에 마냥 설레곤 했다. 연말에는 시화전과 사진전도 했다. 자작시에 손수 그림을 그려 액자를 만들어 걸고, 출사 후 찍은 사진 중 몇 점을 골라 액자에 넣어 전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진전을 할 때, 사진반 선생님은 손수 좋은 사진을 골라 주시며 전시회가 처음인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당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사진반 활동에 더욱 열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단체나 모임이든 과도기가 지나면 조금 느슨해지면서 열정이 식곤 한다. 몇 년이 지나자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엄마들이 타성에 젖기도 하고, 이사와 아이들 교육 문제로 그만두기도 하면서 모임을 이어 가는 것이 위태로워졌다. 결정적으로 모임을 이끌었던 약사님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됐고, 우리도 모든 활동을 접게 됐다. 사진을 통해 나를 찾아가던 중이었지만, 일상의 어려움으로 지친 상태였고 모임을 해체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열정을 다해 사진을 찍었던 그때를 나는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몰랐으리라. 내가 일흔이 넘어 다시 사진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글 _ 조웅식 가타리나(수원교구 사진가회)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일과 찬양 그리고 기도

저는 일과 찬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일에 쌓인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찬양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일과 찬양을 함께 하면 시간이 서로 많이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날에 찬양하러 가지만 사실 집에서 쉬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찬양을 가지 않는 대신 몸의 피로를 풀고 싶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의무감에 갇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는 반항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종 쉬는 시간 없이 찬양과 일을 함께 하다가 육체적 피곤을 해소하지 못해 실수를 한 적도 있습니다. 기뻤던 찬양 시간이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고 일 생각으로 찬양에 성의를 다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에 대해서도 성의가 떨어져 일에 대한 결과가 좋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이 마냥 즐겁고 편하지만은 않듯이 이 찬양 활동도 그럴 것 같습니다. 찬양은 신앙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신앙생활이 잘 돼야 찬양을 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주일미사에 참여하기 귀찮아할 때도 있고 일을 하면서 말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잘못된 행동도 많이 합니다. 때로는 이런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저를 더 마음의 동굴 안으로 밀어놓기도 합니다. 저는 계속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찬양 활동만이 신앙생활이 아니라고도 생각하고 있고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저에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 관리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게 큰 기쁨을 주고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찬양이 많은 양분이 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찬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이러한 경험과 생각들이 저를 더욱더 성장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냥 쉬운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일이라도 준비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생활 중 기도할 때, 짧게 할 때가 많습니다. 성모송이나 영광송을 하거나 정 안되면 ‘하느님 도와주세요’ 식으로 짧게 기도합니다. 일을 하다가 중간 중간에, 찬양을 시작하기 전 종종 그렇게 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부지런하지도 않고 능력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노력도 잘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기도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생각을 하느님께 바치면 성령께서 저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 주시리라 믿습니다. 글 _ 조성욱 루카(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어느 성당에서의 찬양

얼마 전 수원교구에 있는 한 성당에서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성가를 부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떼제 성가도 함께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참 좋아합니다. 그 목소리가 순수하고 티 없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안에서 그 느낌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봉사를 하고 계신 분들과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저를 반갑고 기쁘게 맞이해 주시며 함께 연습하고 찬양해 주셔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당의 학생들은 정말 잘 불렀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그 안에서 제가 무엇을 했다기보다 정말 잘 들었고, 잘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 안에서 순수함과 기쁨을 느끼고, 그 마음을 찬양을 통해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향하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저를 잡아 내리기도 하고, 자신감을 떨어뜨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제가 기쁘게 그분 앞에서 찬양한다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하느님의 기쁨 안에서 함께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찬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일 잠들기 전 기도합니다. 사실 그렇게 큰 지향은 아니고, ‘저를 도와주십사’ 하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최대한 담백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바치려고 합니다. 하루의 삶 안에서도 그렇게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때를 돌아보면, 어릴 때 성당 마당에서 즐겁게 놀던 시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야말로 더 바라는 것이 없었고, 그저 그 안에만 있어도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기도를 이렇게 바치려고 합니다. 성가도 이렇게 부르려고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기쁘게 보시고, 저도 그분께 찬양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대입니다〉라는 갓등중창단의 성가가 있습니다. ‘그대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나도 그대 안에 있습니다. 나 그대의 눈으로 보고 그대 가슴으로 삽니다’라는 가사가 종종 제게 다가옵니다. 이미 하느님은 제 안에 계시고, 저도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종종 제게 힘든 일이 다가올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위의 가사처럼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그분 안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 기쁨 안에서 저는 찬양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지에서

어느 신부님의 초대를 받아, 원주교구 배론성지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피정 마침 주일미사 중 성가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친분이 있던 분을 뵐 수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성가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작은 경당에서 봉헌됐고 반주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에게는 그 점이 부담을 덜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은 성당을 좋아해서였는지, 좋은 신부님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미사에 참여하러 갈 때만큼은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행복한 마음으로 길을 나설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미사에 방해만 되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실제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긴장하는 버릇은 여전했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실수를 하면 모든 신자분이 저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오해였습니다. 다행히 신부님과 신자분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고, 함께 성가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에게는 그 시간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반주를 도와주시는 분도 생겨 더욱 기쁘게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수도 처음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자차로 이동해도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는 일이 늘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불러주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라도 미사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성지를 향할 수 있었습니다. 삶 안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신부님과 상담할 수도 있었고, 성지에 머무르며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이어서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성지순례를 떠나는 기분이었고, 힘든 삶 안에서 위로를 받고 돌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로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던 제가 스스로 전날 미리 성지에 도착해, 성지의 밤하늘 아래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봉사해야지’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는 신부님을 뵈러 간다는 단순한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제가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걱정은,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씻은 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제가 움직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고, 그 시간은 추억이 되어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저에게도 슬프고 힘든 일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곧 지나갈 것입니다. 그 과정 안에서 제가 하느님 안에 머무르려 한다면, 그분의 도우심 안에서 다시 만족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가가 기도가 되기까지

저는 사실 어릴 때 성가에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성가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고,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물론 미사에 참여하면 이왕 참여했으니 성가라도 열심히 불러 보자는 생각은 있었지만, 단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좀 지나 어떤 친구가 뜬금없이 제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 들은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했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내 목소리가 정말 좋다면 성가도 잘 부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성가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불러 보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금방 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면서 성가에 아주 작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성가에 집중하고 머무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성가에 관심을 가지던 중, 성당에서 활동하면서 미사 안에서 성가를 부를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행복을 느꼈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습니다. 신자분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잘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혼자 부르는 성가보다 함께 부르는 성가가 더 기뻤습니다. 마치 저와 함께 기도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제게 정말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을 많이 하고, 힘도 더 빠집니다.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삶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자분들 안에서 함께하는 것은 제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그 안에서 용기를 얻고, 하느님을 멀리하지 않게 됐다고 말해야 할까요. 사회생활 안에서 저는 종종 하느님을 거부하거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곤 합니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제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합니다. 어느 때는 그런 것이 편하고 큰 부담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다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마치 사랑을 떠난 사람처럼요. 오히려 기도, 나아가 성가를 부르고 찬양하는 것이 큰 기쁨을 주고,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양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말입니다. 제가 부르는 성가가 기도가 되어, 듣고 계시는 신자분들의 기도와 함께할 수 있다면 더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의 시작은 사소했고, 더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생각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과 하느님께서 그런 저를 도와주시고, 이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하신 말씀으로 전해지는 말입니다. 제 부족한 기도가 두 배가 되어 하느님께 닿을 수 있다면, 저를 보시고 다른 분들도 기도하는 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면, 저는 지금보다 더 기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교회음악가들을 위하여

우연히 길이 열려,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성음악원에 들어갔다. 그 학교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며 ‘유럽의 대성당 성가대를 맡았던 지휘자들이 이런 노력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가톨릭의 성음악을 알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누군가가 알아줘야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손발이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문득 ‘성음악을 누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틴어 성가의 언어 장벽, 무반주 성가의 어려움, 성가대 인원의 감소, 그리고 넓혀지지 않는 연령층 등 다양한 이유가 전통적인 성음악을 하기에 큰 장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성음악은 가톨릭 성가에만 있는 성가들이 전부일 것이었다. 작곡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판의 길이 열리지 않아 자신들의 아름다운 곡을 발표조차 하지 못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성당과 성지에서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무대에 세워 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이 주는 울림과 빛, 그리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들, 이 모든 것이 성음악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을 이끌면서 아이들의 정기연주회 프로그램만큼은 성가로 했다. 아이들의 원성도 자자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다른 합창단과 다르지 않으냐”라는 말을 반복하며 아이들을 설득하며 지켜 왔다. 그리고 그 음악들은 성당과 성지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2025년 ‘CANTUS 8’이라는 보컬 앙상블 단체를 만들었다. 부활의 의미를 넣어 숫자 ‘8’을 넣었다. 성악과 음악을 전공한 30~40대 중장년 신자로 단체를 구성했다. 겨우 8명을 만들어 첫선을 보였지만 갈 길이 멀다.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다성음악 그리고 바로크 합창음악 게다가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성가의 모든 장르를 노래로 불러볼 예정이다. 관심 있는 성악도들이 함께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활 성가도 좋지만 정통 가톨릭 성가에 관심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20~30대 젊은 친구들이 그 어려운 그레고리오 성가와 폴리포니 성가들로 자신들을 알리는 모습을 보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한다. 40~50대 선배들이 생각조차 못 했던 일들을 그들은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복음적 신앙을 선포하며 또 다른 방향으로 성음악을 알리려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노래 안에서는 하느님께 닿을 때가 있다. 부족한 나의 모습도, 흔들리는 믿음도, 감추고 싶은 연약함도 성음악 안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성가를 부르는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솔직한 나 자신을 하느님께 보여 드리는 시간일 것이다. 많은 성음악가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 소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교회 안에서 성음악이 더 이상 낯선 음악이 아니라 신앙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글 _ 오선주 루치아(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콘체르토 안티코

노래는 가사가 있는 음악이다. 종교음악도 가사가 있다. 그 가사는 기도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래들도 있었다. 어느 날 레슨 때 “종교음악은 어떤 감정으로 노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담당 교수는 “그 위대하신 분이 네가 어떤 마음으로 불러도 다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을까?”라고 대답했고, 나의 감정이 널뛰기 시작했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경외하는 마음도 모두 담아내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바로크 음악을 하는 전문가들의 팀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교구 성음악위원회의 제의를 받고 담당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단체가 ‘콘체르토 안티코’다. ‘콘체르토’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 형식으로, 성악과 기악이 함께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안티코’는 ‘옛’, ‘옛날’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콘체르토 안티코는 리코더,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첼로, 성악을 하는 연주자 5명으로 출발했다. 서로 몰랐던 연주자끼리 만나 합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외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미묘한 감정의 상처들도 생겨났다. 단체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소수의 상처를 안은 채 다수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상처를 먼저 보듬고 잘 마무리한 뒤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롭게 출발할 것인가. 결론은 후자였다. 선택 후 연습과 공연을 이어가며 모든 멤버에게서 즐기는 마음과 어떻게든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콘체르토 안티코는 정기연주회와 여러 성당에서의 초청 연주 그리고 경기도의 지원금을 받아 꾸준히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감사하게도 지원금이 확대돼 5년 전부터는 ‘무지카사크라 페스티벌’이라는 바로크 종교음악 축제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무지카사크라 페스티벌은 3일간 4회 공연을 통해 중세음악, 바로크 음악, 기악곡, 성악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공연 장소도 심혈을 기울여 정한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장소인가, 울림이 있는 공간인가, 모두가 다 즐길 수 있는 공간인가를 고려한다. 종교음악과 미술 그리고 건축 양식을 한자리에서 즐기기에 성당만 한 곳이 없다. 더욱이 성당과 성지에서 하느님의 음악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공연 장소로 성당을 고려했고, 2025년 11월 공연은 제2대리구 분당성요한성당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콘체르토 안티코는 종교음악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다소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에게 어려운 기도도 있고 쉬운 기도도 있고 마음이 동하는 기도도 있듯이 하느님의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음악을 우리가 귀로 담아 마음으로 듣는다면 분명 내 안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숨구멍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는 6월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콘체르토 안티코만이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음악을 공연한다. 많은 분이 우리와 함께 감정의 숨구멍을 열어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 _ 오선주 루치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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