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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

1926년생 동갑내기 본당들…시련 딛고 ‘100년’ 열매 맺다

100년 전인 1926년 5월 29일.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1875~1938) 주례로 성 유스티노 신학교 소속 부제 11명의 사제서품식이 거행됐다. 한국교회가 아직 넉넉지 않은 사제 수와 어려운 사목 환경 속에서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넓혀 가던 때였다. 서품식 다음 날인 5월 30일, 드망즈 주교는 새 사제 11명을 각 지역으로 파견하는 사제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를 통해 7개 본당이 새로 세워졌다. 한날 한뜻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의 공동체로 자라났다. 그 가운데 대구대교구 남산본당과 성동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 마산교구 옥봉동본당은 오늘날까지 신앙의 맥을 이어 오며 5월 나란히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한 세기 전 사제서품과 본당 신설로 시작된 공동체의 여정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 신앙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 ‘대구대교구 남산본당’ 대구대교구 남산본당(주임 박덕수 스테파노 신부)은 석종관(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 정식 성당이 없어 교구청 내 평신도 교육 공간이던 ‘명도회관’을 개축해 사용했지만, 공동체의 활동은 활발했다. 1928년에는 본당 차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리말 성가 수십 곡을 담은 성가집 「공교셩가집」을 발행했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본당은 2대 주임 남대영(루도비코) 신부 주도로 1929년 5월 새 성당 건립 준비에 나섰다. 공동체가 합심해 현재 성당 맞은편 자리인 대명동 언덕의 토지를 매입했고, 1936년 가을 새 성당을 착공해 이듬해 10월 10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 소재지가 대명동으로 옮겨지면서 ‘대명동성당’으로 불렸다. 일제의 압력으로 1945년 3월 11일부터 성당을 집단수용소로 내주는 아픔도 겪었다. 대구대교구가 1952년 4월 2일 여성 고등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효성여자대학을 설립함에 따라 성당과 부지는 대학이 사용하게 됐다. 같은 해 가을 본당은 교구청 부지인 성모당 남쪽 현 위치에 새 성당을 지었고, 1953년 5월 5일 제6대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성당이 다시 남산동으로 옮겨지면서 본당 명칭도 현재의 남산본당으로 변경됐다. 남산본당은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본당 출신 사제만 39명에 이른다. 본당 출신 첫 사제는 제2대 마산교구장을 지낸 장병화(요셉) 주교이며, 하느님의 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도 본당 출신이다. 남산본당은 성모당과 인접해 설립 초기부터 오늘까지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로 자리해 왔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남산본당 100년사」 편찬을 비롯해 전 신자 성지순례, 100주년 기념 바자와 음악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5월 30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 신심 운동 매진하며 지역사회 발전 이끌다 ‘전주교구 부안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주임 김정훈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03년경 전북 부안군 하서면 등용리 일대에 교우촌이 형성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 12월에는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등용리공소 경당이 봉헌됐다. 이후 본당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드망즈 주교는 1926년 5월 30일 이기수(야고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초대 주임 이기수 신부는 등용리가 외진 곳에 있어 교세 확장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고, 1935년 옛 부안문화원이 있던 자리에 새 성당 터를 마련했다. 이후 성당 이전과 함께 4년제 소학교를 세워 지역사회 문맹 퇴치에 앞장섰고, 교리교육을 통해 교세를 넓혀 갔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1년 소학교는 강제 폐교됐지만, 당시 성당 자리는 훗날 청우실업학교로 발전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6·25전쟁 중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본당은 1957년부터 새 성당 건립을 추진했고, 1963년 8월 27일 제4대 전주교구장 한공열(베드로)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은 1950년대 후반부터는 농촌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간척사업을 실시해 신자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1980년대 들어 신자들은 신심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때는 매년 100명 이상의 새 신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도 다수 배출했다.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본당은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리모델링하고 쉼터를 조성했다. 또 100주년 기도문을 함께 바치며 신자 재교육 특강, 성지순례, 성경쓰기와 성경통독, 묵주기도 봉헌 등 신심을 살찌우는 다양한 영성운동도 전개했다. 본당은 5월 17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김정훈 신부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던 선배 신앙인들의 기도와 희생이 오늘의 본당 공동체를 세웠다”며 “다가올 100년도 더 따뜻하고 더 열린 공동체,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기쁘게 머물 수 있는 교회, 지역사회 안에서 복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본당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28개 본당의 모본당 ‘대구대교구 성동본당’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주임 김태한 바오로 신부)은 이성인(야고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에는 ‘경주본당’으로 불렸다. 천년 고도(古都) 경주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공동체로 경주 11개, 포항 17개 본당의 모본당이다. 1983년 9월 1일 성건본당을 분리하면서 본당명을 성동으로 바꿨다. 본당은 1992년 4월 1일 발생한 화재로 1959년부터 사용하던 성당을 잃었다. 이후 1999년 새 성당 공사에 들어가 2001년 1월 28일 제8대 대구대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주례로 현재의 성당을 봉헌했다. 2026년 3월 현재 2514명의 신자들이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는 본당은 박재수(요한) 신부를 시작으로 그동안 사제 9명, 수도자 30명을 배출했다. 본당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나눔 활동도 꾸준히 이어 왔다. 2023년 1월 부임한 제31대 주임 김태한 신부는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초대해 공동체의 활력을 높이고, 100년을 이어 온 신앙 공동체에 걸맞은 영적 쇄신을 이끌고 있다.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한편, 예술적 감각을 담은 십자가상과 성모 마리아상 등을 배치해 신자들과 지역 주민, 경주를 찾는 타 지역 신자들에게도 특별한 감흥을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본당은 5월 31일 오후 2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설립 100주년 기념미사를 거행한다. 현재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성당을 찾는다. 김 신부는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 공동체를 구원의 도구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복음화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고, 지난 100년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가운데 살아 있는 신앙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산청 성심원 설립 등 지역사회에 사랑 실천 ‘마산교구 옥봉동본당’ 마산교구 진주 옥봉동본당(주임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 설정 이후, 초대 대목구장으로 부임한 드망즈 주교는 미국교회 한 신자의 성금을 받아 진주 읍내 동북쪽, 옥봉동 산 아래 땅 120평을 구입해 공소를 마련했다. 당시 초대 회장을 맡은 이낙종(스테파노) 씨는 전교에 헌신했고, 그의 아들 이상석(가브리엘) 씨도 ‘가톨릭청년회’를 조직해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많은 이의 정성이 모여 1923년 목조건물이 신축됐고, 정수길(요셉)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문산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됐다. 설립 당시 본당명은 진주본당이었다. 진주·사천·삼천포·합천·의령·하동·남해 지역을 관할했다. 이후 1967년 제10대 주임으로 박정일(미카엘) 신부, 훗날 마산교구 제3대 교구장이 부임한 뒤 현재의 옥봉동본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랜 역사만큼 본당이 지역 복음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현재 경남 진주 소재 12개 본당의 모본당으로 ‘진주 지역의 어머니 성당’으로 불린다. 또한 해성학원‧해성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교육사업을 펼쳤고, 한센인 공동체인 산청 성심원을 설립했다. 노인 요양 시설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사랑의 실천도 이어 왔다. 이진수 신부는 “진주대로의 끝자락, 낙후된 지역에 본당이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 부합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며 “본당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말씀 그대로 살고자 노력해 온 공동체”라고 전했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친다. 2025년 대림 1주일부터 ‘본당 설립 100주년 기도’를 봉헌해 왔으며, 올해 사순 시기에는 역대 주임신부 특강을 마련했다. ‘열일곱이다’ 음악 피정(4월 19일)에 이어 5월 8일에는 기념 음악회 ‘은총의, 100년 찬미의 노래’와 기념 사진전을 열었다. 100주년 기념미사는 5월 10일 10시30분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봉헌한다.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9면

마산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경축미사 봉헌

마산교구는 4월 18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죽헌로 72 현지에서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경축미사 및 교구청 봉헌식을 거행했다. 지나온 ‘60년의 시간’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교구 역사를 쌓아나갈 ‘새 공간’을 축복한 겹경사 자리였다. 3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교구청 봉헌 기도 ▲성전 축성과 벽 도유 ▲60주년 축하식 등으로 이어진 행사 이모저모를 화보와 함께 소개한다. 지역민·내외빈 등 3000여 명 기쁨 나눠 레오 14세 교황·유흥식 추기경 축전 보내 “100년 향해 가는 희망 공동체로 도약” ◎… 마산교구의 새 교구청사 건립은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교구 설립 당시인 1966년에는 별도 건물 없이 성지여고 일부를 사용했고, 1974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섹카우 교구의 지원으로 가톨릭 문화원이 건립된 이후에는 그곳을 교구청으로 이용해 왔다. 이에 따라 교구는 2014년 8월 새 교구청 부지를 매입하고 2018년 교구청 신축추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건립 비용에 대한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2021년 6월 기공식과 함께 모금 운동이 시작됐고, 그 결과 200억 원 이상이 모이면서 ‘빚 없이’ 완공된 교구청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 축복식까지의 과정 또한 녹록지 않았다. 2023년 교구청사를 완공했지만 교구장이 공석인 상황. 결국 공식 봉헌식 없이 새 교구청 건물을 사용했고, 2025년 2월 이성효(리노) 주교가 제6대 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완공 3년 만에 봉헌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이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이 모든 과정을 언급하며 “오늘 60주년 행사와 신청사 봉헌은 우리 교구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지 재발견하도록 초대한다”면서 “2014년부터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도를 바치며 희생했고, 우리 스스로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 주교는 교구민들과 함께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친 후 “마산교구라는 신앙의 배를 함께 저어오신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 교구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등 한국 주교단, 교구의 초청에 흔쾌히 응답한 일본 삿포로, 히로시마, 가고시마교구 교구장 등 30여 명 주교가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레오 14세 교황도 교황청 국무부 국무차관 앤서니 오니에무체 에크포 몬시뇰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에크포 몬시뇰은 “레오 14세 교황 성하는 마산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경축미사와 교구청 봉헌식 거행 소식에 크게 기뻐하셨다”면서 “교황님께서는 교구 공동체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살아있는 표징이 되어 주시기를 당부하시고 격려하셨다”고 전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경남 지역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려온 마산교구가 새봄을 맞은 대지처럼 성숙한 성장이 계속되기를 기도드린다”며 “새로운 100년을 향해 가는 희망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본 행사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교구청으로 향하는 길목에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농촌 마을 한가운데에 들어선 교구청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려워 각 본당에서는 전세 관광버스를 이용해 행사에 참여했다. 교구에서 집계한 관광버스만 총 60여 대. 신자들은 버스에서 내리며 “성지 순례를 온 기분”이라며 들뜬 소감을 전했다. 행사 당일 비 예보로 야외 행사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기우였다. 행사 당일 오전 잠깐 비를 뿌리던 하늘은 미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맑아졌고, 준비해 온 우산을 양산처럼 쓰는 신자들이 많았다. 스포츠 경기 관람석에서나 볼 법한, 신문지를 접어 만든 모자를 쓴 채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도 눈에 띄었다. ◎… 옛 교구청을 회고하는 고령의 신자부터 성소를 꿈꾸는 청소년들까지 한 목소리로 새 교구청사 봉헌의 기쁨을 함께했다. 사제를 꿈꾸고 있는 김준후(가브리엘‧14‧거제 옥포본당) 군은 “지난해 성소 주일 행사 때 새 교구청에 처음 와보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라며 “이렇게 많은 주교님과 신부님을 한 번에 보고 있으니 교구청이 더 거룩해 보인다”고 전했다. 교구청에 처음 방문한다는 김형두(미카엘‧78‧통영 대건본당) 씨는 “어린 시절 성경학교와 청년기 꾸르실료 교육 등을 받았던 옛 교구청 기억이 선명하다”며 “우뚝 서 있는 새 교구청을 보며 교구 발전을 온몸으로 느꼈고, 뒤로 산과 앞으로 밭이 펼쳐진 귀한 땅에 초대받은 감격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고 전했다. ◆ 마산교구 역사 1966년 2월 15일 부산교구에서 분리. 마산교구 설정(설립 당시 신자 2만8069명, 성직자 22명(한국인 16명, 외국인 6명), 본당 21개) 1966년 3월 5일 김수환 신부, 초대 교구장에 피명 남성동성당, 주교좌성당으로 지정 승격 5월 31일 김수환 주교 성성 및 초대 교구장 착좌 교구 초기, 교구청사가 없어 성지여중고 일부 사용 1968년 10월 30일 장병화 주교 제2대 교구장으로 착좌 1971년 9월 24일 오스트리아 그라츠 교구와 자매 결연 1974년 5월 31일 가톨릭 문화원 준공(그라츠 교구 지원) 6월 22일 가톨릭 문화원으로 교구청 이전 1978년 11월 25일 양덕동성당 준공 및 축복(그라츠 교구 지원) 1979년 4월 15일 주교좌성당을 남성동성당에서 양덕동성당으로 변경 선포 1989년 2월 21일 제3대 교구장 박정일 주교 착좌 / 제2대 교구장 장병화 주교 퇴임 1989년 7월 4일 첫 해외 선교사제 파견(정홍식 신부: 에콰도르) 2001년 1월 8일 안명옥 부교구장 주교 서품식. 교구 총대리로 임명 2002년 11월 11일 제4대 교구장 안명옥 주교 착좌식 2008년 6월 14일 마산 가톨릭 교육관 봉헌식 2014년 8월 5일 새 교구청 부지 매입 계약 2016년 6월 8일 제5대 교구장 배기현 주교 서품 및 착좌식 2016년 10월 30일 교구 설정 50주년 감사미사 2021년 6월 19일 교구청 신축 기공식 2021년 9월 25일 그라츠 자매결연 50주년 기념 행사 2022년 8월 27일 교구장 서리 신은근 신부 임명 8월 29일 제5대 교구장 배기현 주교 퇴임 2023년 3월 22~23일 신축 교구청 이전 2025년 2월 12일 제6대 교구장 이성효 주교 착좌식 2026년 4월 18일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경축 미사 및 교구청 봉헌식 거행(신자 18만2824명(2025년 12월 기준), 성직자 178, 본당 75개)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2면

아픔과 무관심의 자리 찾아 부활 기쁨·희망 나누다

한국교회는 성주간과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며 죽음과 악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한 마음으로 경축했다. 동시에 교회는 부활의 기쁨이 성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웃들에게도 전해지도록 거리와 삶의 현장으로 나아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권력자나 강한 이들이 아니라 눈물 흘리던 이들과 약한 이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듯,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에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와 노동사목위원회 등 5개 단체는 4월 5일 서울역에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촉구를 위한 주님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는 빈민사목위원장 오주열(안드레아)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박상훈(알렉산데르) 신부를 비롯해 동자동 사랑방 주민과 사제·수도자·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례했다. 이들은 공공주택 사업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민들을 위로하며, 부활의 기쁨이 동자동 쪽방촌에도 깃들기를 기도했다. 박상훈 신부는 강론에서 “부활 신앙은 곧 다른 사람을 돌보라는 초대”라며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삶의 새로움이 허망한 것으로 남지 않게 하려면, 다른 형제자매들이 머물 ‘지붕’을 염려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자동 쪽방촌은 2021년 국토교통부에 의해 공공주택 사업지구로 선정됐으나, 주택 소유주들이 민간 재개발을 요구하며 갈등이 빚어져 5년째 재개발이 멈춰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사업이 중단되면서 5년 새 150명이 넘는 주민이 비좁은 단칸방에서 열악한 환경과 씨름하다 세상을 떠났다. 동자동 사랑방 대표 차재설 씨는 “씻는 것마저 불편한 공간에서 재개발이라는 ‘봄’을 기다리며 살던 한 할아버지가 ‘나도 살아생전 평온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라고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는 4월 5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영유아 거주시설 ‘디딤자리’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시설에 선물을 전달했다. 구 주교는 이날 “디딤자리 어린이들의 영혼에는 사랑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다”며 “디딤자리가 아이들이 사랑 안에서 애벌레에서 찬란한 나비로 자라나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돕는 하느님의 집이 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어 “교회가 지닌 교육·의료 시설 등을 바탕으로 장애 아동의 전인적 구원을 돕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2005년 개원한 디딤자리는 장애로 인해 가정 내 보호가 어렵거나 입양이 보류된 만 0~6세의 장애 영유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정공동체 형식의 소규모 거주시설이다. 현재 디딤자리는 전원해야 하는 아이들이 자립생활을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체험홈’ 마련이 과제로 남아 있다. 만 12세까지의 아동도 수용할 수 있지만, 공간이 부족하고 건물 증축도 어려워 외부 공간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디딤자리는 이를 위한 도움의 손길과 함께, 입소가 필요한 장애 영유아를 기다리고 있다. ※ 후원계좌 국민 487101-01-246065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디딤자리 ※ 문의 02-987-6009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디딤자리 ◎ 수원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4월 5일 수원시 이목동에 자리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바다의 별’을 찾아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가 2003년 문을 연 바다의 별에는 현재 공동생활가정 몬띠의 집, 마르따의 집, 바르나바의 집 등에서 50여 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이용훈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장애를 지닌 분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수도회는 물론이고 이용자 가족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갖고 시작된 이곳은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나는 공동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다의 별을 이용하는 분들과 봉사자, 직원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이미 충분히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삶 안에 따뜻하게 머물길 빈다”고 전했다. ◎ 제주교구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4월 3일 제주시 한림읍 성 이시돌 새미 은총의 동산 야외 십자가의 길에서 ‘4·3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했다. 교구는 올해 성금요일이 ‘제78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과 겹침에 따라 “나를 위해 울지 마라”(루카 23,28)를 이번 행사의 주제 성구로 정하고, 4·3이 단지 아픔과 슬픔에 머무는 기억이 아니라 희망과 생명으로 나아가야 할 여정임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봉헌했다. 14처 기도를 마친 후 신자들은 새미소 대형 십자가 아래 모여 물과 피를 상징하는 대형 천을 들고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봉헌했다. 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는 성체 강복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마무리했다. 앞서 교구는 4월 2일 서귀포시 강정천에서 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 주례로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했다. 문 주교는 강론에서 “갈등과 힘의 논리로 갈라진 공동체를 치유하는 길은 예수님처럼 서로의 발을 씻어 주고 보듬는 사랑, 빵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명을 선택하고 평화를 이루는 삶이 교회가 걸어가야 할 생명과 평화의 순례라고 전했다. 미사 중에는 발씻김 예식도 열렸다. 마산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도 4월 2일 경남 함안의 지적장애인 생활시설 ‘로사의 집’을 찾아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시설 생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며 주님 만찬의 의미를 되새겼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1면

[위령기도를] 마산교구 정하권 몬시뇰

‘교회론의 대가’, ‘학자 중의 학자’로 불린 정하권 몬시뇰(플로리아노‧마산교구 성사전담)이 3월 29일 선종했다. 향년 99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3월 31일 마산교구 주교좌양덕동성당에서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봉헌됐으며, 유해는 경남 고성군 이화공원묘원 성직자 묘원에 안장됐다. 장례미사 강론에서 이 주교는 “작년 교구장 착좌 이후 가장 먼저 찾아뵌 사제가 정하권 몬시뇰이었다”면서 “누구보다 사제를 사랑하신 몬시뇰의 성품을 기억하고, 많은 제자가 몬시뇰과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주교는 또 “병문안 때 기도와 강복 직후 미동도 없던 몬시뇰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고 함께 기도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며 “몬시뇰님은 자신의 서품 성구 ‘하느님의 모상대로’를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 이제 천상 제단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정 몬시뇰은 1927년 대구 군위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과 함께 사제품을 받은 ‘유일한 동기 사제’다. 서품 직후 창녕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스위스 프리부르그대학교, 프랑스 파리대학교 등에서 유학했다. 유학기간 동안 국내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그가 사목했던 창녕본당이 대구대목구에서 부산대목구로 소속이 바뀌어 정 몬시뇰 또한 부산대목구 사제가 됐다가, 유학이 끝날 무렵에 마산교구가 생기면서 마산교구 사제로 소속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이후 초대 마산교구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부임했고, 대구대목구에서 시작한 ‘동기 사제’의 인연이 마산교구로 이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1966년 귀국한 정 몬시뇰은 남성동본당 주임을 역임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사목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1973년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사무차장 겸 가톨릭대 교수로 봉직했다. 이 무렵부터 1994년 은퇴까지, 정 몬시뇰은 20여 년을 신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700여 명 사제를 가르친 이력으로 ‘사제들의 아버지’, ‘사제들의 영원한 스승’이라 불렸다. 1975년부터 광주대건신학대학 교수로 일하며 4년여간 학장을 맡았고, 1982년부터는 대구가톨릭대 학장으로 8년, 교수로 4년간 소임했다. 대구가톨릭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몬시뇰로 서임됐다. 사제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훌륭한 사제를 많이 길러낸 일”을 꼽은 정 몬시뇰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전국 교구를 찾아 신자들을 위한 강연을 펼치며 활발히 활동했다. 정 몬시뇰은 ‘외유내강’을 원칙으로 ‘사제답게’를 강조해 가르쳤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다. 정 몬시뇰 사제수품 60주년(2011년)과 70주년(2021년) 기념행사는 제자 사제들이 주축이 돼 마련했으며, 몬시뇰이 2022년부터 지내왔던 경남 창원 이화요양병원에도 후학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25면

[위령기도를] 마산교구 정하권 몬시뇰

‘교회론의 대가’, ‘학자 중의 학자’로 불린 정하권 몬시뇰(플로리아노‧마산교구 성사전담)이 3월 29일 선종했다. 향년 99세. 192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은 정 몬시뇰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품을 받은 ‘유일한 동기 사제’이다. 서품 직후 창녕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스위스 프리부르그대학, 프랑스 파리대학교 등에서 유학했다. 유학기간 동안 그가 사목했던 창녕본당이 대구대목구에서 부산대목구로 소속이 바뀌면서 정 몬시뇰 역시 부산대목구 사제가 됐다가, 유학이 끝날 무렵에 마산교구가 생기면서 마산교구 사제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후 초대 마산교구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부임했고, 대구대목구에서 시작한 ‘동기 사제’의 인연이 마산교구로 이어진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1966년 귀국한 정 몬시뇰은 남성동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사목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1973년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사무차장 겸 서울가톨릭대 교수로 일했다. 이 무렵부터 1994년 은퇴까지, 정 몬시뇰은 20여 년을 신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헌신했고, 700여 명 사제를 가르친 이력 덕에 ‘사제들의 아버지’, ‘사제들의 스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5년부터 광주대건신학대학 교수로 일하며 4년여간 학장을 맡았고, 1982년부터는 대구가톨릭대 학장으로 8년, 교수로 4년간 소임했다. 대구가톨릭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몬시뇰로 서임됐다. 사제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훌륭한 사제를 많이 길러낸 일”을 꼽던 정 몬시뇰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전국 교구를 찾아 신자들을 위한 강연을 펼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외유내강’을 원칙으로 ‘사제답게’ 살아간 정 몬시뇰을 제자들은 따랐다. 정 몬시뇰 사제수품 60주년(2011년), 70주년(2021년) 기념행사를 제자 사제들이 주축이 돼 마련했으며, 정 몬시뇰이 2022년부터 지내왔던 경남 창원 이화요양병원에도 후학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최근 3월 22일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의 병문안을 마지막으로 정 몬시뇰은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31일 오전 10시 마산교구 주교좌양덕동성당에서 이성효 주교 주례로 봉헌되며, 유해는 경남 고성군 이화공원묘원 성직자 묘원에 안장된다.

입력일 2026-03-29

[인터뷰] 착좌 1주년·교구 설정 60주년 맞은 마산교구장 이성효 주교

2025년 2월 12일 마산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착좌한 이성효(리노) 주교가 착좌 1주년을 맞았다. 특히 올해는 교구 설정 60주년의 해로, 교구는 4월 18일 60주년 기념행사와 새 교구청사 축복식을 개최한다. 1월 28일 마산교구청에서 이 주교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비전을 들었다. - 교구장 착좌 1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들려주신다면? 1년밖에 안 지났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합니다. 지난 1년이, 지난날과 그렇게 색다르거나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30년쯤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함께 지내는 신부님, 직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하시고요. 그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마산교구장좌는 2년 6개월간 비어 있던 상태였기에, 착좌 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구 곳곳을 방문하시면서 직접 느끼신 교구의 가장 큰 장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교구민들을 만나면서 ‘오랜 신앙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참 순수하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동 진교본당 삼장공소를 찾아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령화와 신자 수 감소, 공간 유지‧관리에 공소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저와 함께한 신자들은 그저 매우 기뻐 보였습니다. 꾸준히 공소를 지켜가는 깊은 신앙심이 정말 고맙고, 묵직하게 와닿았어요. ‘이것이 우리 마산교구의 힘이구나’ 깨달았고, 그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제 역할임을 알게 됐습니다. - 올해는 교구 설정 60주년의 해로 더욱 뜻깊습니다. 올해 계획은? 거창한 행사를 준비하진 않았습니다. 60주년 행사를 겸해 새 교구청사 축복식을 열 예정입니다. 마산교구청사는 전국 교구 중 유일하게 교구 소유의 청사가 없던 상황에서 교구민들이 힘을 모아 2023년 완공한 것입니다. 그 의미가 남다르지만, 교구장이 없어 축복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교구청사 축복식을 하고, 다음으로는 교구 규정위원회와 함께 여러 규정을 현실에 맞게 정리하며 내실을 다져갈 계획입니다. 새 교구청사 축복과 규정 정비로 내실 다지는 데 주력 ‘AI위원회 출범’…올바른 인공지능 활용 위한 지침 마련 - 60주년을 기념해 전국 교구 최초로 ‘AI 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역할이 궁금합니다. AI 위원회는 ‘AI 리터러시’, ‘AI 문해력’을 키워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것입니다. 단순히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스스로 깨닫고, ‘올바르게’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죠. 위원들이 주일학교, 이주민사목, 교정사목 등 부문별로 AI 문해력 향상을 위한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황청 AI 연구그룹’이 발간하는 도서들을 한국어로 번역해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영문으로 업로드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주체성 회복」을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진과 전문가들과 함께 번역 중인데, 4월 18일 60주년 기념행사 당일까지 출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AI 활용은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들이 대중매체를 접할 때도 문해력이 필요한데, AI를 활용해 그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5월 31일 청소년 주일에 ‘청소년 교육과 AI’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그 결과를 「청소년 교육을 위한 AI 윤리 지침서」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 오스트리아 그라츠-섹카우교구와 자매결연한 지 55주년이 됐습니다. 그라츠교구에서 사제 파견을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우리 교구의 제2대 교구장 장병화(요셉) 주교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71년 자매결연을 위해 오스트리아 그라츠교구를 직접 방문하신 장 주교님은 당시 낯선 타국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하셨다고 하더군요. 이후 그라츠교구의 지원으로 가톨릭문화원, 양덕동주교좌본당, 여성회관 등 초기 교구의 기반 시설들이 갖춰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도움을 줄 차례라는 목소리가 사제단 안에서 나오고 있고, 선교 기금도 어느 정도 마련된 상황입니다. 수품 15년 차 이하 사제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해 가는 중입니다. 성령을 통해 기도하고 함께 나아가며, 구체적 내용을 결정해 갈 것입니다. -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희망의 공동체’라는 제목의 2026년 사목교서를 발표하셨습니다. 향후 교구의 주요 운영 방향을 소개해 주신다면? 2025년 9월에 교구 사목평의회를 오랜만에 개최했습니다. 여러 상황과 교구장좌 공석에 의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열렸죠. 이 자리에서 나온 의견들을 사목교서의 뼈대로 삼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경제적 빈곤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AI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 청장년과 노인, 이주민 등 모두가 여러 의미에서 ‘가난한 이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희망의 공동체’가 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갈 것입니다. 또한 교구의 취약점 중 하나인 청년사목의 활성화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경상남도 지역은 젊은 층의 이탈이 심각한 곳입니다. 일단 대학생 사목부터 한발 한발 다가가 볼 예정입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는 종착점이 아니라, 한국교회 청년사목이 새롭게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 교구민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의 일치를 이뤄 간다면 그 어떤 파고도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구 설정 60주년의 은총을 기억하며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가정에 주님의 무한한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1면

[2025년 주님 성탄 대축일 담화] 마산교구장

올해 우리는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때에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약속으로 우리 마음에 새롭게 울려 퍼집니다. 성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구원의 실제적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과 취약함, 남루한 일상 속으로 찾아오시어, 우리 안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지만 풍요롭고 안전한 곳이 아닌 가난하고 누추한 마구간을 당신 자리로 삼으셨습니다.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본받아 소외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성탄의 빛에 비추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면, 무관심의 장벽은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 교구는 참된 ‘가톨릭’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 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닌 희망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라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작고 사소한 사랑의 몸짓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구를 희망의 공동체로 새롭게 일구어 가실 것입니다. 다음은 담화 전문.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5년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올해 우리는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때에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약속으로 우리 마음에 새롭게 울려 퍼집니다. 성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구원의 실제적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과 취약함, 남루한 일상 속으로 찾아오시어, 우리 안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가난을 선택하신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지만 풍요롭고 안전한 곳이 아닌 가난하고 누추한 마구간을 당신 자리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 위해 인간 삶의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셨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낮아지심을 선택하셨다는 이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은 세상의 힘이나 권세가 아닌 사랑과 온유 안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활동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37)라고 말씀하셨고, 교황 레오 14세는 “주님을 향한 사랑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입니다. … 이는 단순한 인간적 친절을 베푸는 문제가 아니라 계시입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5)라고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느님의 능력이 강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얼굴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신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탄의 신비는 모든 사람의 고유한 존엄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합니다.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본받아 소외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무관심의 장벽을 넘어, 참된 ‘가톨릭’ 정신으로 하나 되는 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한 나머지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거나 때로는 외면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관심의 벽을 쌓게 하고, 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마저 마음의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톨릭’입니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이를 품는 보편적 공동체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는 약한 이들, 주변부에 놓인 이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중심에 둘 때 교회가 비로소 주님의 모습을 참되게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5, §17 참조). 따라서 우리는 성탄의 빛에 비추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반문에 진지하게 응답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며, 저마다 서로에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면, 무관심의 장벽은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 교구는 참된 ‘가톨릭’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 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희망의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실천적 사명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닌 희망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라시는 때입니다. 희망은 기다림으로만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지니고 이웃을 향한 책임 있는 사랑을 실천할 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도 이러한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이웃을 향한 구체적 책임이 함께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102, §108 참조). 희망의 씨앗은 매우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작고 사소한 사랑의 몸짓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구를 희망의 공동체로 새롭게 일구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가난을 선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무관심의 벽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갑시다. 희망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은 우리 교구를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증언하는 참된 ‘가톨릭’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일상에 늘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다시 한번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화의 모후님! 복자 신석복 마르코, 구한선 타대오, 정찬문 안토니오, 박대식 빅토리노, 윤봉문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천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 리노 주교

입력일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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