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헌재의 신속한 판단을 기대한다

국회가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3일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적 공포와 혼란을 초래한 지 11일 만의 일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계엄의 공포와 참상을 체험했고, 대통령의 임기 중 파면도 겪었기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탄핵해야 했다. 주교회의는 4일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에 즈음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을 주문했다. 그리고 탄핵이 가결된 즉시 다시 한번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을 주문하고 모두가 “정파적인 갈등을 떠나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주교회의 입장문이 촉구하듯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심리가 신속하게 진행돼 빠른 시일 안에 올바른 판단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통령 탄핵과 직무 정지에 따른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비상계엄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야기한 엄청난 파장과 해악을 수습해 국민들의 삶이 하루속히 안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얄팍한 당리당략과 정파적 이해가 탄핵 심판의 과정에, 그리고 책임자들의 잘못의 경중과 단죄의 판별에도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계엄 사태를 주도적으로 막아낸 거대한 힘은 바로 국민들에게 있었다. 피 흘려 체득한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인식으로, 국민들은 누가 또다시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려는지 판별하고, 법과 정의에 따라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12-25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성탄 되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써 하느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을 깊이 껴안으셨다. 이는 곧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연대의 선언이다. 특히 올해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희망의 순례자’를 주제로 희년이 시작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년을 통해 “교회가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강조했다. 이 사명은 우리 개개인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나아가 성탄의 기쁨이 개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로 확산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게 된다. 소외된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용서와 화해의 다리를 놓으며,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작은 걸음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희년의 주제인 ‘희망의 순례자’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적 성찰과 회개의 여정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려한 성취가 아닌 겸손과 나눔의 삶을 가르치셨다. 희망의 순례길을 걷는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구원의 사건임을 체험해야 한다. 올해 주님 성탄 대축일은 희망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희년의 은총 속에서, 교회 공동체는 물론 각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희망의 증거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4-12-25

다시 촛불이다

12월 3일 깊은 밤, 우리는 45년만에 다시 비상계엄을 만났다. 그로부터 2시간 30분 후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했고, 6시간이 지나서 해제 발표가 이뤄졌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무장한 계엄군을 막아선 것은 국회를 에워싼 시민들이었다. 그날 이후 국회의사당 앞과 여의도 일대는 윤석열 정권의 이른바 ‘친위 쿠데타’에 항의하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리고 그 ‘촛불’은 전국으로 번져갔다. ‘내란죄’로 다뤄질 이 군사 쿠데타를 획책한 이들의 위험천만한 시도는 이미 오랫동안 계획된 것이었다. 한밤의 평화로운 일상을 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엄청난 참극이 이어졌던 1979년과 1980년 신군부 세력의 계엄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시민들은 즉각 여의도로 모여 계엄군을 몸으로 막았다. 그에 힘입어 국회의원들은 신속하게, 하지만 위태롭게 계엄 해제를 결의, 쿠데타를 막을 헌법적 명분을 성립시켰다. 이후 시민들은 쿠데타 주범에 대한 탄핵 소추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즉각적인 참여를 촉구하며 거리를 메웠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촛불에만 의지할 수 없다. 촛불은 엄혹한 시대의 참담한 역사를 건너오며 스스로 장착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지만 또 다시 촛불을 켜야 하는 시간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엄은 이미 수개월 이전에 기미가 포착됐고, 시대착오적 망상으로 치부됐지만 실현됐다. 어리석은 대통령의 어설픈 시도로 빚어진 소극(笑劇)이나 소동 정도로 규정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다. 시민들의 적극적 개입, 군 지휘 체계상의 혼란과 항명과 ‘태업’, 야당 중심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대처와 다양한 우연 등으로 비극적 사태를 가까스로 면했을 뿐이다. 주교회의가 4일 입장문을 통해 밝혔듯이,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즉각 사퇴, 혹은 탄핵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이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을 방해하는 행위는 반역이다. 천주교 사제 1466명은 비상계엄 선포를 예견하기라도 했듯 11월 28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 사제 4명 중 1명이 서명한 선언문이 탄식하며 이르듯이, “어둔 데서 꾸민 천만 가지 일들”이 속속 밝혀지고, 그래서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지경”이었다. 형식상의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우리는 이전의 독재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방심했다. 하지만 이번의 사태처럼, 그 위험천만한 시대로의 복귀가 불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마다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촛불의 힘을 믿는다. 여기에는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교회의를 비롯해 전국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 수도자들,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교회내 단체들이 연이어 입장문과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국미사를 봉헌하며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종종 교회가 ‘순수성’을 지키고 교회와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자체검열적 소신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 안의 해묵은 정교분리의 의식은 우리가 참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신앙인의 소명은, 세상을 비추라는 것이지 자신 안에 머물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일과 함께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과 공동선을 철저하게 실현해가기 위한 일상의 노력에 더 철저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독재의 여지를 온전히 봉쇄하는, 성숙한 민주적 시민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이번 비상계엄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4-12-15

동등한 존엄성 지닌 인간 권리 수호에 앞장서야

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낸다. 전례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인권(人權)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수호하고, 공정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사명이 신앙인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창세 1,27 참조) 모든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 즉 인권이 모든 이에게 보장돼야 함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교회의 가르침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올해 인권 주일과 사회 교리 주간 담화에서 특별히 이주 노동자의 인권 수호를 강조했다. 18명의 이주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아리셀 공장 참사를 언급하며, 주님 안에서 ‘서로 다른 지체이지만 한 몸’을 이루는, 그럼에도 여전히 ‘소모품’처럼 외면받는 우리 사회 이주 노동자들을 기억하자고 청했다. 이주 노동자들 또한 우리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이자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인권 주일을 맞이하며 인재(人災)의 위험에 노출된 채 홀대받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한 번쯤 새겨 성찰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소외된 노인과 아동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이 많다. 그들 또한 주님의 형제들이자 우리의 형제들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 참조)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힘쓰며 인간 존중에 바탕을 둔 인권 수호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2024-12-08

평신도 신학운동 30년을 지지한다

평신도들의 우리신학 연구를 표방한 우리신학연구소의 30년에 대해 치하하고 지지한다.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11월 30일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신학 연구를 하기에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평신도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평생의 소명으로 함께 일군 우신연의 30년 여정에 대해 우리는 높이 평가하고 격려하고자 한다. 우신연의 설립 취지는 먼저 평신도 신학운동이었다. 그 소명의 바탕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현대 세계와 교회의 나아갈 바에 대한 가르침이었고, 이는 지난 10월 막을 내린 세계주교시노드에서 논의한 시노달리타스 정신과 다르지 않다. 비록 저변이 충분하게 확장되지 못했다는 자체적인 성찰이 있지만, 우신연은 시대를 앞서 평신도의 정체성을 밝히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또한 명칭이 분명하게 드러내듯이, ‘우리신학’을 표방한다. 역사와 전통은 중요하지만, 전통에 대한 존중이 경직된 사고와 구태의 답습, 혹은 창의성과 현실성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구 신학의 풍요한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과 문화, 작금의 사회 현실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은 본질적인 과제다. 때마침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가 끝나고 이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초대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됐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촉구한 시노드적인 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 시작한 그 여정에서 평신도들의 소명과 역할은 더욱 강조될 것이고, 여기에서 우신연이 기여할 바는 무궁할 것이다.

2024-12-08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 본격화

한국교회가 11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세계청년대회(WYD)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을 포르투갈 젊은이들로부터 전달받음으로써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가 본격화됐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지다. 신앙인에게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상 희생 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평생 지고 가겠다는 헌신과 희생의 표지이자 구원이 선포됐다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드러내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별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십자가는 두려움 없는 희망의 원천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젊은이들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을 선사하는 기쁨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교회가 이 자리를 그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참된 나눔과 기쁨의 장이 되도록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 결정 후 교회 각계각층에서 이어지는 각종 세미나와 포럼 등이 그러한 고민을 보여준다. 때마침 국회에서 대규모 행사를 원활하게 치르기 위한 범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배려를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이 행사는 교회만의 것이 아니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 나아가 전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뜻이 충분히 실현되도록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과 함께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2024-12-01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새해가 돼야

전국 각 교구에서 새해 사목 방향을 담은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새해는 은총의 해인 희년이자 축성생활의 해이고,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준비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아울러 3년여의 시노드 여정이 마무리된 후 처음 맞는 새로운 해다. 사목교서들은 ‘복음의 기쁨’을 더 깊이 체험하고 삶으로 증거하고 선포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했다. 희년은 이러한 희망에 더없이 적절한 때이다. 또한 우리 삶과 신앙의 터전인 가정의 복음화에 사목적 역량을 집중할 것임을 밝혔다. 오늘날 세계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끝없는 정치적, 군사적 긴장과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 지역 분쟁은 국제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수십 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은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고, 정치권은 국민들의 삶에는 관심없이 정쟁만 일삼고 있으며, 경제는 침체되고 사회적 불안 요소들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나라 전체가 양극화돼 계층과 성별, 연령에 따라 갈등과 긴장 속에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목교서들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신앙인들이 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희년을 맞은 신앙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 만남을 통해 스스로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이를 선포하기를 권고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특별히 지난 10월에 폐막된 세계주교시노드의 결실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시노드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4-12-01

삶과 신앙의 지혜를 성경에서 찾자

올해 제40회를 맞은 성서 주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 안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우리 삶과 신앙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성경 필사나 성경 공부 모임 등 성경 말씀을 새기고자 하는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려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바는 교회의 거룩한 전통과 함께 성경 속에 담겨 있다. 열심한 전례와 성사 참여, 다양한 사도직 활동, 이웃 사랑의 실천 등 신앙 생활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은사에 참여함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항상 필요하다. 나아가 성경을 다만 지적 연구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성경 말씀에 대한 막대한 정보가 다양한 방식으로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특히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된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우리는 이전에는 많은 노고를 들여야 했던 성경 관련 정보와 지식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읽고 기도하고 묵상함을 통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하느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삶과 신앙, 사회와 세상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혼란을 겪곤 한다. 성경 속에 담긴 주님의 말씀은 우리 삶과 신앙생활의 밝은 빛이요 지혜의 원천이다. 성서 주간을 맞아 성경을 지혜의 보고로 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자.

2024-11-24

한일 양국 교회의 더욱 폭넓은 교류를 기대하며

제26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이 광주대교구 일원에서 열렸다. 1996년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이 도쿄에서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를 연 것으로 시작된 한일주교교류모임은 공동의 역사 인식을 통해 양국 관계를 바르게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이어진 모임은 동북아 평화, 정의평화, 생태환경, 선교사목 등으로 주제를 확대해 왔다. 올해 모임에서는 한국교회가 일본에 파견하는 선교 사제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했다. 현재 일본에는 50여 명의 한국인 사제가 있으며, 이들은 문화와 언어의 한계는 있지만 일본교회에 활력을 주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진 이 모임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일 주교들은 주교들만의 모임에서 더 확대해 사제 교류 모임 등 한일 양국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타진했다. 특히 2027년 열리는 서울 WYD도 한일 양국 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 주교회의 부의장 우메무라 마사히로 주교는 일본교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보태고 싶어한다면서 서울 WYD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일본교회도 활력을 얻고 활기차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가 흔히 일본을 부르는 말이다. 이웃 나라이지만 과거의 역사에 대해 아직 화해를 이뤄내지 못했기에 감정적으로 멀리 있는 나라 일본. 이러한 역사적 상처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은 양국이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고 화해하며 교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이 보여주는 모범에 따라 양국의 교회와 사회가 화해를 바탕으로 친교를 확대하길 기대한다.

2024-11-24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안전 보장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을 넘어서 대치 국면에 이르렀다. 직접적으로 상대를 무기로 공격하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적대하는 전단과 오물 풍선, 확성기를 동원한 밤낮 없는 비방,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들은 민족 모두를 무력 충돌의 언저리까지 몰아가고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가 11월 5일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힘의 논리보다는 상호 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자고 호소했다. 호소문은 특히 남북 지도자와 정치인, 정책 결정자들을 향해 “국가의 첫 번째 임무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라며 “지도자들은 전쟁의 참극이 일으키는 고통을 자기 자신의 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대소사는 모든 국민이 함께 책임져야 하지만, 의사 결정과 실행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책임은 정부를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 호소문이 상기시키고 있듯이, 남북 정치 지도자들이 과연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대규모 파괴와 대량 살상으로 이어지는 현대전은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엄청난 결과를 자아낸다. 한쪽이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패배한다. 그러니 정치 지도자들은 민족 간에 무력 충돌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비오 12세 교황이 말했듯이 “평화로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평화를 희망해야 한다.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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