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는 민족

2024년 12월 3일, 다음날 봉쇄수녀원 미사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터였다.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전화가 울렸다. 국제 행사 때 알게 된 미국인 신부의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하며 받았다. “바오로, 괜찮아? 넌 안전한 거야?”, “응? 무슨 말이야?”, “야, 너네 나라 계엄령 떨어졌어!” 서둘러 TV를 켰고, 이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됐다. ‘세상에, 21세기에 계엄령이라니!' 이후에 일어난 일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계엄군이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여당 의원들 대부분이 집단 퇴장하면서 탄핵소추안은 의결정족수보다 적은 인원이 표결에 참여해 폐기됐다. 국회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시민들은 민의를 대표해야 할 여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의 이익을 민의에 우선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국내 언론뿐 아니라 국외 언론들조차도 비판한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다음 주간에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내란상시특검법’이 통과됐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특전사령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 본인이 비상계엄을 직접 지휘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한편 여당에서도 탄핵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늘어났고, 마침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2016년 12월 9일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8년 만이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한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내리는 결정을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서 강산이 한번 바뀌기도 전에 또다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도 국무총리가 여당 대표와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비헌법적인 소리를 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당장의 이익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자기들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으니 망정이지, 나라가 가라앉는 모습을 눈 뜨고 바라만 보게 될 뻔했다는 사실을 곱씹을 때면 아직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군 장성들, 여당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비이성적일 수 있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에 나와 증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역사 지식과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이루어냈는지 공부도 하지 않고 성찰도 하지 않으니, 권력을 차지한 자신들은 국민들 위에 있다는 착각이 삶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드러났을 뿐이다. 이들과는 달리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앞다투어 국회로 달려왔다. 날마다 국회 앞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던 시민들 가운데에는 특히 각종 미디어에서 ‘개인주의’의 화신처럼 묘사되던 소위 MZ세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존재 덕분일까? 비장한 구호와 민중가요 일색이던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집회 장면은 신선함을 주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성숙하고 여유롭게 국가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 어떤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 왔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근래 몇 주 동안 우리가 세상에 보여준 모습은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흘려보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뿌리로 인식하는 시민이 굳건히 존재하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 또한 굳건히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12-25

선물

늦은 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22시 28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윤 대통령에 의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 명의로 23시를 기해서 “국회와 정당 등 정치 활동 금지”를 비롯해 6개 조항으로 구성된 계엄사 1호 포고령이 내려졌다. 헌법은 계엄에 관해서 규정하는 제77조 4항에서 “계엄을 선포할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의무 조항을 설정해 놓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한국 국민과 사회의 안녕과 사회적 존엄을 손상시키는 것일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같은 조 5항에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헌법은 비상계엄 상태에서도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의 역할은 명백하게 법으로 보장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엄사 포고령 1호에 의하면, 그 첫 조항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면서 이것을 어기면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를 근거로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적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회로 투입된 계엄군에게 내려진 명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였다. 국회의원들 가운데 190명은 경찰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담을 넘어가면서까지 국회로 모이기 시작했고,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위한 투표에 참여해 190명 참석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계엄이 무효화 된 것인데, 이때가 12월 4일 오전 1시 1분이었다.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계엄군에게 연락해서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도록, 안 되면 전기라도 끊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 지시를 받은 이상헌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오히려 부대원들에게 물러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표결이 완료돼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참석자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국민의힘 대표와 중진의원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맞춰 권한 내에서 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 없고, 더불어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이를 경고하기 위해 선포하게 됐다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식 속에서 그는 장관급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을 임명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지속해 갔다. 그러다가 계엄이 해제된 지 만 사흘이 지난 7일 오전 10시경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군을 동원해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의원들을 체포하려는 일련의 조치들을 실행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찬성할 시민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전국의 시민들은 그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더 빨리, 더 단단하게 뭉쳐야 한다”고 말하며 그의 퇴진을 위한 집회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그가 비상계엄으로 실추시킨 국격, 국가와 시민들이 겪게 만든 사회적 혼란과 상처를 회복시키고, 오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사회적 사랑’(「찬미받으소서」 231항)의 선물이 될 것이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2-15

카티 씨와 리사

세상을 선물로 받고 세상에 선물로 와준 리사(가명)와 엄마 카티(가명) 씨를 만났다. 카티 씨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에게 와준 소중한 생명을 지켜 낳은 딸 리사에게 세상을 선물로 준 강직한 엄마다. 이제 3살이 된 리사의 눈망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사랑스런 귀여움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리사는 어떤 꾸밈도 없는 그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누구보다도 신나게 살고 있다. 카티 씨는 완벽한 엄마로서의 준비는 부족했지만 아이의 생명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채워주는 리사를 보며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마음의 준비로 건강하고 밝은 미래의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몇 년 전 E6 비자를 발급받아 우리나라에서 일 해온 외국인 노동자 카티 씨는 일터에서 한국인 남성을 만났고 얼마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한국인 아이 아빠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오히려 낙태할 것을 종용하며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상태다. 몹시 두려웠고, 무서웠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로 홀로 이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마주해야 할 여러 문제가 너무 무서웠다. 그사이 아이 아빠는 자취를 감췄다. 가톨릭 신자인 카티 씨는 배는 불러오고 갈 곳도 없고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생명문제는 강자에 의해 약자의 생명이 유린당하는 것이며, 낙태, 안락사, 폭력, 전쟁 등을 통해서 위협받는 생명들은 힘센 자들의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이다.”(박정우 신부, 가톨릭신문 2007년 5월 20일자 칼럼 중에서) 그렇다, 강자에 의해 생명이 생겼지만 그 강자에 의해 다시 생명은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켜내려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약자들이다. 그 약자들은 여성이며 엄마다.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었나이다.”(시편 119, 37) 하느님의 길을 걸어 얻은 생명은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존엄성을 갖추기에 그 누구도 타인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 없고 또 가져서도 안 된다. 리사는 아직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카티 씨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리사와 함께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지청구 소송, DNA 검사를 통해 가족관계 확인을 해야만 엄마와 함께 안전하게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카티 씨에게 그는 이를 계속 거부하며 아이의 존재를 회피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리사는 아빠의 존재를 묻기 시작하고 있다. 카티 씨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과 아빠를 찾는 리사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다. 아이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카티 씨는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떠나야 한다. 꼭꼭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아빠의 행동은 안타깝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또다시 가족관계 확인을 위한 인지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이런 소송 없이도 아이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아빠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법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18세까지 양육비를 주도록 돼있는 법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는 나쁜 아빠들에겐 강제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외줄타기를 마다하지 않고 아이를 지키려 하는 많은 카티 씨 같은 약자들의 삶에 희망이 피어나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 있는 동안 책임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리사와의 삶을 살고 싶은 나라에서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12-08

젠더폭력에 대한 감수성

최근 몇 달 동안 보도된 뉴스의 젠더폭력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 교제 중 폭력을 당하던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 불법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받으며 온·오프라인의 성폭력을 당한 사건, 사진을 도용당하고 딥페이크 동영상 유포를 협박받고 금품을 갈취당한 사건 등이 있었다. 한 유명 여성 유튜버는 전 남자친구에게 불법촬영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많은 돈을 갈취당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남성 유튜버들이 이 사실을 알고 피해자를 협박해 돈을 요구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우리는 존중과 배려를 기본적 예의로 생각하기보다 나의 이익, 욕망을 관철한다면 상대방의 피해는 상관없다는 태도가 팽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 부족은 가난, 연령, 성, 장애 등의 층위에서 주변화된 집단을 위한 복지나 정책을 특혜나 역차별로 해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 고용 등 성평등에서 진보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과소대표성은 해결되지 않고 여성들은 남성중심적 사고나 여성혐오에 기초한 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 젠더폭력은 성별 권력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공정성이나 독립, 동등한 주체로서 여성들에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때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적 피해들은 사소화된다. 이러한 문화는 여성들이 피해를 자초했다고 비난하는 통념을 지지한다. 가해자가 권력을 이용하거나, 초범인 경우 처벌이 경감되는 것 또한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미국 코넬대 철학과 교수 케이트 만(Kate Manne)은 「다운걸: 여성혐오」에서 남성 가해자들에 대한 과도한 동정심을 ‘힘퍼시’(Himpathy)로 명명한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면에서 가해자를 연민하고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괴물이나 뿔 달린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가해자의 상황에 대해 연민으로 작용한다. 피해자에게 연민이 부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사회에는 피해자가 유혹하지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피해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학 연구자 김보화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성폭력 피해에 관한 법적 처벌 규정을 만들어낼수록 가해자들이 악랄해지는 상황을 기술한다. 성범죄 이력은 열람되고 취업의 제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기도 한다. 여성단체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의 기부금 계좌이체를 발견하고 당황한다. 이러한 기부는 가해자가 범죄에 대해 반성하는 자료로 악용되면서 형량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에도 가해자가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아 개인이 응징하는 내용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심판하면서 공분을 가라앉히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사법체제가 부정의를 심판하지 않을 때 사적 처벌은 성찰의 부재로 권력이나 폭력의 남용을 낳을 수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분노와 용서」에서 피해자에게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도 용서를 강요하는 문화를 비판한다. 또한 피해자와 가족이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 이들의 분노나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같은 범죄의 피해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막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 사회가 피해자와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낌없이 위로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범죄, 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예방 및 대처의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처벌을 위한 감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이 젠더폭력에 민감해질 때 여성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글_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12-01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

지난 11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가 세 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개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을 위해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기체류 미등록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이 내년 3월 종료됨에 따라, 지난 4년간 운영한 해당 제도의 의미와 문제점, 향후 관련 제도 마련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논의했다. 여러 발제들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이제는 청년이 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증언이었다. 다섯 명의 청년들 중 네 명은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한 명은 새롭게 이주한 도시에서 전학갈 학교를 찾지 못해, 더 정확히는 학교마다 전학을 거부해 자격요건을 상실하면서 체류 자격을 얻지 못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에 토론회 참석자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잠깐의 휴식 후 이어진 지정토론 시간에 법무부 이민조사과 사무관이 토론문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싶다고 해, 발제자와 토론자는 물론 참석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 역시 얼마 전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게 된 본당 이주민 신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 단위 외국인출입관리소 운영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외국인출입관리소로부터 연락을 받아 다음날 방문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직장에 이야기를 해 겨우 오전 반차를 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구제대책에 따르면 부모 각각 미등록 체류기간에 따른 벌금을 내야 하는데, 70%를 감면해 주기는 하더라도 이주민들이 하루 만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이 사실을 알려줘서 급히 본당 사회사목기금으로 지원을 하고 천천히 갚아 나가는 것으로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벌금을 마련하지 못해 체류자격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문제는 법무부에 이 구제대책을 계속 이어나갈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참석한 법무부 사무관은 구제대책을 ‘악용’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며 내부적으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더 크다고 밝혔다. 이대로 내년 3월 구제대책이 종료되면 3000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언제 강제출국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초‧중‧고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모여 ‘WE ARE ALL DREAMERS’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지난 11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회견문에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은 ”구제대책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안정적인 거주와 정책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교육 이수’라는 신청 대상 요건, 신청 시 부모님이 내야 하는 커다란 범칙금,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은 출국하셔야 한다는 규정은 신청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며 “무엇보다 구제대책이 정해진 기간 동안만 이뤄지고 고교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대학 진학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도 짚었다. “우리에게는 머무를 권리가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회견문 말미의 구호에 참 마음이 아팠다. 선주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을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걱정해야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닐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11-24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어느새 11월이다.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린 분들을 각별히 기억하는 위령 성월을 지내고 있는데, 죽음이 무엇인가? 1897년 4월 말경 스물넷 젊은 리지외의 데레사는 아침마다 각혈을 했다. 결핵 말기에 이른 그는 밤이 되면 특히 기침이 심해져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897년 9월 30일에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리는데, 그는 곧 죽음을 맞을 것을 인식하면서 말한다.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이에요.” 데레사에게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죽음은 하느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이런 죽음 의식을 갖고 있던 그는, 언니 수녀들이 그가 죽어서 자신들 곁을 떠나는 것으로 여기며 아파할 때, 자기가 죽음을 맞으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실제적으로 언니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깨워 준다. 데레사가 죽음을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을 깊게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핵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에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살았다. 그는 죽음 준비를 위해 ‘성사를 받는 것’도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도 다 “좋다”고 했다. 그 ‘모두가 은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은총의 바다, ‘은해’(恩海)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자기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이같은 하느님 신뢰는 고통을 많이 받는 것도 적게 받는 것도 관심이 되게 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것은 이런 신뢰 속에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큰 언니 성심의 마리 수녀는 데레사가 겪는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많이 고통받지 않도록 기도했는데, 당신은 이토록 고통받고 있어요!” 이때도 데레사는 단순하게 답했다. “나는 하느님께, 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는 데 장애가 되는 기도는 듣지 마시라고 청했어요. 그리고 그것에 어긋나는 모든 어려움을 거두시라고 했어요.”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를 증거하는데, 이 하느님 신뢰가 ‘어린이의 길’이라고 알려진 그의 ‘작은 길’의 핵심이었다. 데레사는 어느 날 말했다. “이처럼 고통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나는 어린아이처럼 고통받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나는 더 큰 고통을 청하고 싶지 않아요. 그분이 고통을 늘리신다면, 그것이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나는 기쁘고 즐겁게 고통을 참아 받을 거예요. 그러나 내 스스로 힘을 가지기에는 내가 너무도 작아요. 내가 고통을 청한다면 그건 나의 고통이 될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혼자 참아야 할 거예요.” 자기가 겪는 고통은 그분께서 주시는 고통이기 때문에, 그분이 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 힘도 자기에게 주시리라는 신뢰 속에서 그는 말한다.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적이 없답니다.” 하느님에 대한 데레사의 이 깊은 신뢰가 고통을 그렇게 기쁘게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음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알고 살게 한다. 그의 이런 죽음 이해가 그토록 기쁘게 하느님 안에서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추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충실하게 살고 기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은 데레사의 이같은 삶과 죽음 이해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1-17

‘무중구’ 수녀의 바람

여성 할례.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부족 문화에 따라 성인식을 빙자한 나이가 어린 남자아이들의 할례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의 할례가 부족 문화 속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이 놀랐다. 탄자니아로 파견된 우리 공동체의 한 수녀가 휴가를 나왔다. 가끔 탄자니아 상황을 이메일로 전해주곤 했는데 마주 앉아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탄자니아의 8세에서 15세 여자아이들의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함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탄자니아 마산가(Masanga) 마을에 수도회 공동체가 있고 무소마교구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케냐국경선에서 8km,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2시간 떨어진 쿠랴(Kurya) 부족이 주를 이루고 사는 농촌이다. 이 마을에서 피부색이 다른 유일한 사람, 탄자니아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른 이 수녀를 무중구(백인을 일컫는 말)라고 부른다. 선교활동 중에 만난 레베라(가명)는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친구이다. 레베라는 여자아이들의 할례거부를 위한 활동을 하는 공동체 기숙사에 머물고 있다. 겨우 11살인데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서, 스와힐리어(탄자니아 공통어) 말은 할 줄 알지만 글을 읽고 쓰기는 아직 어렵다. 선교사로서 낯선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레베라가 왜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센터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마산가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성인식인 할례를 통과하는 것이 결혼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며 학교의 방학이 시작하는 12월 첫 주부터 1월 마지막 주까지 남녀 아이들의 성인식을 마을의 큰 축제로 지낸다. 레베라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 사촌언니 그리고 동네 언니들도 모두 이 일을 겪었다. 그들은 이런 성인식에 참여하는 어린아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딸에게, 손녀에게, 조카에게 성인식을 강요한다. 레베라는 이것에 대한 두려움에 ‘할례거부 운동 센터’ 기숙사로 용기 있게 도망 아닌 도망을 선택한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일부를 거부한다는 것은 탄자니아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족과 친지를 피해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 그를 수녀들은 따뜻하게 품어준 것이다. 현재 기숙사에는 다양한 사례, 할례거부 외에도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으로 가출한 여학생 40여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레베라는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글을 깨우쳐 가고 있는 중에도 마음이 우울해지면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매일 매일 보챈다. 하지만 할머니를 보러 갈 수 없다는 것을 리베라는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 아프다. 할머니의 집은 기숙사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인데 그 길을 걸어가는 길목에서 혹시라도 만날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로 인해 끌려가서 억지로 할례를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할례가 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과 일종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다움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자기결정이 전통적 풍습이라는 이름으로 선택권이 용인되지 않으며 무시되고 있다. 마을 안에서 언제 할례를 받을지 모르는 아이들이 맑은 눈으로 크게 웃으며 뛰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아이들에게 희망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무중구 수녀는 간절히 바란다. 탄자니아 정부는 할례를 법으로는 금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법을 거슬러 반인권적 할례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 감은 눈을 크게 떠야겠다. 그리고 할례 예방 교육을 통해 국민의 인식을 바꾸고 이런 악습을 끊어내려는 노력이 과감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_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11-10

딥페이크 성폭력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올해 명문대 단톡방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은 충격을 줬다. 딥페이크란 AI 기술을 이용해 얼굴과 신체 부위를 합성해서 만든 동영상으로 성폭력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경찰청의 보고에 따르면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 유포로 474건이 검거됐고 가해자의 80% 이상은 십대로 그중에는 초등학생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십대들은 성적으로 무지한 존재가 아니고 성폭력에도 자유롭지 않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그들은 성착취물에 대한 접근이나 제작이 어렵지 않다. 여성 연예인의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가해자는 십대이고, 단톡방 운영자는 고등학생 때부터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했다고 한다. 친구의 초대를 받고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생산한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의 성별화된 현상을 보여준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고양하고 온·오프라인 성폭력 예방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동)로 딥페이크 성폭력의 쟁점조차 피곤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 처벌이 AI 기술 발전에 장애가 된다거나, 남성의 성적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응들도 있다. 이러한 반론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타자의 고통에도 내 욕망이 우선한다는 폭력에 대한 둔감성, 공감 능력의 부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고받으면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생산, 유포한다. 이 과정은 죄의식을 희석시키면서 자신감을 갖게 하고 남성들 간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이들은 엄마, 누나, 여동생의 사진까지 공유하면서 환호를 받는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는 이미지 착취이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물리적 성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피해가 없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노출된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고 고통받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사진은 삭제되고 졸업앨범은 사라질 위기에 있다. 친구, 지인, 교사 등은 폭력의 피해로 인간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 2024년 9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개최한 17회 여성인권영화제는 딥페이크 성폭력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영화 <나의 금발여친>에서 피해자는 소셜미디어에 몇 년 전 드레스 입은 사진을 올렸다. 이들은 사진을 도용당해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또한 <나의 가해자 추적기>에서 주인공은 친구와 식당에 갔다가 노트북을 도난당했다. 가해자들은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을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만들어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두 영화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체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진은 내가 아니다. 나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다’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용기 있는 행위이지만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기에 가슴 아픈 일이다. 해외의 언론은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많이 생산되는 국가이고 여성 피해자가 많다고 보도한다. 이러한 오명에도 운영자가 단톡방을 폭파하면서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가해자의 체포와 처벌이 쉽지 않다. 회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경찰의 수사 협조를 거절해 왔던 텔레그램이 딥페이크에 의한 불법 정보 삭제에 동의했다. 정부는 올해 10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소지,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법안을 의결했고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해 5년 이하에서 7년 이하의 징역형을 강화했으며,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이용한 협박에 대해서도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태조사 이후 폭력예방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성폭력의 주무 부서로 해석되지만 조직이 축소 운영되는 현실에서 인력이나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좀 더 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11-03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교회는 해마다 9월의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지내고 있다. 올해로 110차를 맞는 이날은 이주민과 난민 문제가 오랫동안 교회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는 점을 보여주는 날이다. 의정부교구는 해마다 이날 이주민 축제를 열어 교구 내 거주 중인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국가, 인종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몇 년 동안 중지됐던 이주민 축제를 다시 열기로 결정하며,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이하 엑소더스)는 고민에 빠졌다. 이주민 축제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어느새 이주민들‘만’의 축제로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10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다 보니 교구 산하 수련원을 축제 장소로 선택했던 결정이 역설적이게도 축제에 대한 선주민의 관심이 줄어들게 만들었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일선 본당을 섭외해 축제를 열고 축제 이름도 ‘엑소더스 축제’로 변경해 선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갈피가 잡혔다. 그리하여, 본당에서 열리는 첫 ‘엑소더스 축제’의 장소는 자연스럽게(?) 동두천성당으로 낙점됐다. 본당 관할 구역에 오랫동안 이주민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어 선주민 신자들도 어렵지 않게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축제 장소로 선정된 후 엑소더스 위원장 신부들과 직원들이 몇 차례 방문해 차근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 함께 하면서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다니!’ 하며 놀란 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 축제들에서 파악한 문제점이 어디서 기인한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축제에 참여하는 이주민과 선주민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또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할지 등 정말 많은 것을 염두에 둔 기획 과정이었다. 마침내 엑소더스 축제 당일. 축제는 의정부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님이 주례하신 개회미사로 막을 열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한 미사에서 우리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성찬 안의 일치’였다. 주교님은 영어로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 미리 연습을 하셨고, 비영어권인 베트남, 동티모르 공동체를 위해 전례문과 강론을 번역해 화면에 띄우고, 보편지향기도는 영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다양하게 진행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언어 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긴 했지만, 미사 후 선주민 신자에게서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울 것인가 헤아려 볼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주님의 식탁에 함께 모인 존재임을 느꼈으면 했던 우리의 의도가 성공한 듯했다. 미사 후에는 먹을거리 장터가 마련돼 성당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다. 부스마다 이주민 공동체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 선주민을 배려해 강한 향신료는 배제하고 음식을 준비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덕분에 어르신들도 음식을 맛있게 드실 수 있었다. 이주민, 선주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가 오감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화목한 식사 자리를 언제고 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과 함께. 뒤돌아보니, ‘성찬의 식탁’과 ‘오찬의 식탁’이 함께한 엑소더스 축제였다. 주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한몸을 이루고 있음을 성체와 음식을 통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 ‘한몸됨’을, 이 ‘일치’를 우리가 늘 잊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좋아하는 생활성가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부디 우리 모두,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10-27

존재의 거룩

10월 쌀쌀해진 어느 날 새벽, 살아 숨 쉬는 아기를 상자에 담아 내려놓고 돌아서는 한 어머니가 있다. 이렇게 하는 어머니들의 아픈 마음을 다 알기란 어렵다. 건강한 아기도 있고,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기나 뇌성마비가 온 아기도 있다. 심주희 어린이를 만난 수많은 이들이 물었다. “주희가 고통이 저렇게 심하다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주희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요?” 그는 1981년 2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지체 장애와 언어 장애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놔두고 가출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뇌성마비로 자율신경의 조절 기능을 상실한 그에게는 강직성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한쪽 어깨를 움직이면 양쪽 팔이 탈골돼 고통을 겪곤 했다. 말 한 마디에도 몸이 울려 고통을 겪었다. 한 번 자극을 받으면 주희의 등은 활처럼 휘어졌다. 거꾸로 휘어지는 등. 자세 교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희는 그 격렬한 고통으로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8년을 돌보며 지내다가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를 버렸다. 그런데 주희가 꽃동네에 오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꽃동네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자원봉사를 청했다. 그의 청은 받아들여져서 부녀가 함께 꽃동네에서 행복하게 살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꽃동네 사람들은 염려했다. 아프고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가 없어지면서, 더군다나 이번까지 부모에게 세 번이나 버려지는 상황에 직면해서, 그가 겪을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깊을까 걱정하면서 너무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떠난 후에도 ‘수선화 같은 그 고운 미소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 날들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수도자인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신상현(야고보) 수사가 물었다. “너를 세 번씩이나 버린 부모가 밉지 않니?” 그러자 그는 온 존재로 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말들을 모아 경어로 답했다. “선생님, 전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어디 계시든지 잘 사시라고요. 요즘은 기도를 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주희는 1995년 4월 4일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급성호흡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음을 맞기 전 자기를 돌보기 위해 온 신 수사에게 늘 그렇듯 경어로 말했다. “선생님, 엄마 아빠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어요.”, “너를 버린 미운 사람들인데도?”, “그래도 엄마 아빠예요. 부모님 용서는 벌써 했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그는 끝내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가 귀천하고 장례식이 있던 날, 그의 아버지가 왔다가 장례가 끝난 뒤에 그가 사랑한 딸 심주희 그를 가슴에 품고 다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심주희, 그는 자신의 온 존재,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온 삶으로 우리에게 탄생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은 ‘한 상태’, 고통보다 축복이 더 큰 상태라는 것을 증거했다. 이 신학적 진리를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탄생(삶) = 상태(축복 > 고통)’ 한 존재가 자기 존재의 원뿌리에 닿아서 부르는 존재의 노래, 저 탄생과 삶의 진리를 증거한 증거자 심주희가 죽기 직전 갈망으로 애타하며 말했다.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자기 존재를 매개해 준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존재의 충만을 향한 갈망, 이것이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거룩한 갈망이고 그 자체로 ‘엄청난 축복’인데, 우리는 심주희처럼 자신의 이 같은 갈망을 알고 사는가?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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