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쁨,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

교회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는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부터 다음 해 1월 ‘주님 세례 축일’까지이다. 주님 탄생과 함께 비로소 기쁨의 축제를 시작하는 것이다. 성탄 전 교회는 통상적으로 12월 초부터 회개와 나눔의 마음으로 대림 시기를 차분히 보낸다. 12월이 되면 성탄 기분에 들뜨다가 12월 25일이면 마무리되는 세간의 분위기와 정반대인 것이다. 성탄 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우선 ‘성탄 팔일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12월 25일부터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까지는 성탄 팔일 축제 기간이다. 팔일 축제는 교회 전례 시기 중 가장 중요한 부활절과 성탄절 두 시기에만 있다. 주님 성탄 대축일과 성탄 팔일 축제 미사 때 사제는 감사 기도 중 고유 성인 기도로 ‘복되신 마리아께서 동정의 순결한 몸으로 이 세상에 구세주를 낳아 주신 이 거룩한 (밤)날을 경축하나이다’라는 내용의 기도를 바친다. 팔일 축제가 끝나도 성탄 시기는 계속된다. 때문에 이 시기에 따른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침으로써 주님 성탄을 축하할 수 있다. 사제는 축제 기간인 성탄 시기 미사 주례 시 백색 제의를 입는다. 주님 세례 등의 축일과 성인 축일 미사 외에 이 시기의 미사 중 제1독서는 요한의 첫째 서간(요한 1서)이다. 요한 1서가 성탄과 주님 공현 신비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송 또한 주님 성탄 감사송인 ‘빛이신 그리스도’, ‘강생으로 온 세상이 새로워짐’, ‘말씀의 강생으로 이루어진 친교’ 등 세 가지 중 하나가 봉헌된다. 성탄 시기 성무일도의 아침 기도는 ‘성모님 아드님을 낳으시리니 대천사 가브리엘 예고한 아기’와 같은 찬미가를 바치며, 화답송도 ‘천사들과 목동’, ‘구세주 아기’ 등 성탄과 관련된 내용으로 응송한다. 아울러 성탄 시기 동안 계속 설치돼있는 구유에 경배하고 준비된 봉헌함에 예물 봉헌도 할 수 있다. 구유는 성탄 시기가 끝나는 주님 세례 축일 뒤 철거된다. 성탄 시기를 의미 있게 보내는 마지막 방법은 가난과 겸손의 이름으로 낮은 곳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며 연말연시 특히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 활동과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한민택(바오로) 신부는 “성탄은 우리가 전례 안에서 매일 우리 안에 새로 태어나시는 주님을 모시기를 결심하는 시기”라며 “성탄 시기에는 구유에 계신 예수님의 가난과 겸손, 그리고 그분의 연약함에 대해 묵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전했다. 이어 한 신부는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는 성탄의 기쁨이 사치일 수 있는데, 그때 우린 침울해하기보다 바로 그러한 그늘지고 누추한 곳에 주님께서 오셨음을 기억해 그분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어 앞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왕요셉 신부(하)

아흔이 훌쩍 넘은 왕요셉 신부(호세 마리아 비안코·살레시오회)는 나이가 들며 치과도 다녀야 하고 행동도 느려졌으며, 혈압과 신경계 문제도 생겨 여행을 안 좋아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여전히 맑은 눈빛과 정정한 기운으로 한가득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에 왕 신부의 고령은 실감할 수 없었다. 선교사로만 74년을 살며 청소년들과 함께한 시간만큼 그들을 닮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왕 신부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어본다. 밀어주고 끌어주며 청소년과 동고동락 살레시오회는 1954년 한국에 진출해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했다. 성 요한 보스코(1815~1888)가 창립한 살레시오회는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청소년들을 도우며 착한 그리스도인, 정직한 시민으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한다. 살레시오회의 정신에 따라 왕 신부도 청소년들 사목에 힘썼다. 한국에 온 왕 신부는 1964년 4월 광주 살레시오 중고등학교에서 수련자 대상 영어와 라틴어를 가르쳤고, 1971년 3월 중학생들에게 도덕 과목을 가르쳤다. 그 사이 1966년에는 서울 돈보스코 청소년 센터 설립에 참여했다. “우리는 일생을 젊은이들 가운데 살아왔어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따라가야 되고 동시에 젊은이들을 잘 이끌어야 하죠.” 왕 신부는 “청소년기는 생명력이 한창일 때이기에 활발하고 기쁨도 넘치는 때”라며 “그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운동장에서 운동도 하고 시합도 하며 많은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왕 신부는 기숙사 자유시간을 학생들과 어떻게 재미있게 보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방법이 연극이나 성가 연습, 악단이었다. 당시엔 TV가 없었기에 일요일 오후 저녁이면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성인전 내용으로 꾸민 각본으로 연극을 만든 것이다. “악기들의 하모니는 모두에게 기쁨이 돼요. 악기마다 서로 다른 음을 내며 하모니가 맞춰질 때 완성된 음악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요.” 학교에서 학생들과 악단도 꾸렸다. 일본 고아원에 있을 때도 악단은 늘 있었을 정도로 음악이 모두의 정서적 발달과 화합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다. 왕 신부도 악기를 다룬다. 바로 트럼펫이다. 인터뷰 현장에 악기를 지니고 온 왕 신부는 트럼펫을 불어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의 성가를 연주했다. 기숙사뿐 아니라 학교 성당에서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활동도 있었다. 성당에서 조용히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예식을 위해 열심히 성가도 부르고 합동 성가대도 들고 재단 옆에서 복사도 서면서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 “요즘은 휴대폰 때문에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함께 모여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더 깊은 친교를 나눌 수 있었죠.” 어지러운 세상, 예수님께 순명하며 기도해야 “선교사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 필요성을 따지기 이전에요.” 왕 신부는 ‘온 세상은 한 가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교통·통신의 발달로 세상이 좁아져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거나 세계 곳곳에 여행을 하기 쉬워졌다. 그런데 선교사는 이동이 불편했던 옛날부터 세상에 교리와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파견됐다. 가고 싶은 곳으로 파견되는 것도 아닌, 낯선 곳도 관구장의 뜻에 순명해 떠난다. 신앙과 사명 하나로 말이다. 왕 신부는 이것이 2000년 전 예수님이 하신 일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살레시오회는 중국, 몽골, 캄보디아, 아프리카, 파프아뉴기니 등에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세상을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아주 모범적인 사람 돼야 부하 직원들을 잘 지도할 수 있어요. 하느님을 인정하고 국가 통치도 잘해야 하죠.” 요즘엔 하루 중 성당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왕 신부는 특히 어지러운 세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 등 국가 간의 전쟁과 북한 파병도 문제다. 왕 신부는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특별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날을 꿈꾼다. 그를 위해서는 우리의 정성 어린 기도와 속죄가 먼저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불쌍한 인류를 도와주시길 바라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자비를 베푸실 거예요. 모두 힘냅시다.” ※ [저를 보내주십시오]는 이번 편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2024-12-25

“청년 한 명 한 명은 나무…숲처럼 모여 움직이면 지구 살릴 수 있어요”

의정부교구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 이하 생태환경위)는 올해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위한 소통과 배움의 장을 만들자”는 생각에 청년 모임을 구상했다. 교구에 퍼져 있는 청년들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하던 차, 우선 교구 주보 속지를 통해 단체 개설을 공지했다. 20·30대 청년으로 가입 요건을 정했다. 당시 모임의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5월 15일 창립미사에 30여 명의 청년이 모였다. 청년기후모임 ‘청숲’의 시작이었다. 모임의 주체는 청년…자발적으로 기쁘게! “기후위기 시대에 가톨릭 청년 한 명 한 명이 나무가 되어서 숲을 이뤄요”(청년 기후모임 ‘청숲’ 포스터 중) 생태환경위는 젊은 세대일수록 기후위기를 더욱 체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두 가지 방향성을 골자로 모임을 기획했다. 첫 번째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청년 신앙인들이 마음을 모으고 활동할 수 있는 장 제공’, 두 번째는 ‘청년 세대에 맞춰 회원들이 먼저 의견을 나누고 마음을 모아 단체 활동 내용과 실천 사항들을 정하는 방식으로 운영’이다. 그리고 모집 홍보 포스터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청년을 모집합니다.” 그렇게 5월 15일 창립미사와 함께 여정이 시작됐다. 세 번째 월례모임에선 기후모임의 명칭이 ‘청숲’으로 정해졌다. ‘청숲’ 모임의 기본은 월례미사와 월례모임, 그리고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읽고 나누는 것이다. 청년들은 매월 회칙의 정해진 분량을 읽고 미사 강론 시간에 짧은 강의를 듣는다. 이런 기본적인 틀은 생태환경위가 마련하지만, 활동과 실천 사항을 의논하고 추진하는 건 거의 청년들 몫이다. 정했던 방향성대로 청숲의 ‘콘셉트’를 청년의 자발적 참여와 결정으로 유지했다. 위원장 김승연 신부는 “‘청숲’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대화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또 “위원회에서 아이디어 제안을 하더라도 숙의 과정을 거치는 등 최대한 청년들이 스스로, 또 기쁘게 실천하는 쪽을 지향한다”고 했다. 어느새 100여 명 모여들어…챌린지 등 다양한 활동 모색 그렇게 청숲은 창립 후 청년들 주도로 지역별 플로깅,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동두천 가르멜 수녀원 방문과 미사 봉헌, 봉사활동 등으로 서서히 확장해 나갔다. 특히 플로깅은 고양시 권역, 의정부시 권역, 구리시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날짜를 정해 모인다. 그러던 중 모임 창설 5개월 만인 10월 회원이 100명까지 늘었다. 예상 밖 청년들의 뜨거운 관심에 활동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11월 30일엔 가톨릭농민회 농부가 운영하는 경기도 연천의 친환경 블루베리 농장에 일손돕기를 다녀왔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업이 생태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2월 13일엔 일산 에피파니아 청년센터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박사와 기후위기와 관련한 토크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더불어 대림 시기 챌린지를 교구 주보 속지로 홍보하고 있다. 대림 1주차엔 일회용품이 아닌 텀블러, 손수건 사용하기가 실천 사항이었다. 카카오톡 단체방과 SNS를 통해 챌린지 인증사진을 릴레이로 공유한다. 인원이 늘어나면서 모임의 체계도 점차 잡혀가고 있다. 포스터 디자인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홍보부’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제는 청년 회장단을 구성할지에 대해 논의가 오가고 있다. “가치와 의미가 있는 곳이면 청년이 모여요” ‘청숲’ 모임 초창기 생태환경위는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청년들만 모일 줄 알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모이는 청년들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청년들뿐 아니라, 활동을 한 번도 안 해본 청년, 예비신자, 냉담교우까지 모였다. 의정부교구 식사동본당 박정현(스테파노) 씨는 “사실 전에는 환경, 기후위기를 따분한 주제로 여겼었다”면서 “탄소중립을 다룬 뉴스 몇 개를 보고 생각이 바뀌고 있던 와중에, 지인의 추천을 받아 ‘청숲’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청숲’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기후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모이니 마음껏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전했다. 모임은 신앙도 영글게 했다. 박정현 씨는 “월례미사 때 강론과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인간이 파괴하는 현실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배웠다”고 했다. 기후와 생태에 큰 관심이 없던 청년들도 ‘청숲’ 활동을 통해 「찬미받으소서」를 읽고 학습하고 있다. 생태환경위는 “기후위기에 대한 청년 세대 관심이 생각 이상으로 더 보편적이고,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다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에 모인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승연 신부는 “‘청숲’ 활동은 단순한 기후운동을 넘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피조물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믿는 바를 실천으로 옮기며 신앙의 의미와 가치도 함께 발견하게 도와주고 있다”며 “청년이 직접 가꾸어 나가는 ‘청숲’을 성령께서 곧 맞이할 내년에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 문의: ‘청숲’ 인스타그램 DM(@youth.forest)

2024-12-25

[송년특집] 2024 세계교회 결산

올 한 해 세계교회는 3년 동안 이어진 세계주교시노드의 여정을 충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찼다.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진행된 세계주교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선교적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걸어간 뜻깊은 여정이었다. 이번 시노드를 통해 평신도, 특히 여성의 더 폭넓은 교회 생활 참여의 필요성이 강조됐고, 성 소수자에 대한 교회 내의 인식이 크게 변화됐다. 곳곳에서 터져나온 국제적 분쟁과 기후위기에 따른 생태적 재앙 등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교회는 ‘희망의 순례자들’(Pilgrims of Hope)을 주제로 내년 한 해를 희년으로 지내기로 했다. 희망의 희년을 맞아 교회는 온갖 분쟁과 다툼에 시달리는 세상에 평화를 기원한다. 많은 도전과 과제가 제기된 지난 한 해 교회는 어떻게 지내왔는지 살펴본다. ■ 시노드 여정 마무리하고 이행 단계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지난 2021년 10월 개막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2023년 제1회기 본회의를 거쳐 지난 10월 마지막 회기인 제2회기를 마치고 폐막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7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폐막미사에서 교회는 ‘정체’(static) 상태에 빠질 위험을 감수할 수 없고 “세상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선교적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제 시노드의 열매를 실현하는 이행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와 여성이 투표권을 갖고 참여한 이번 시노드를 마치면서 대의원들은 최종문서(Final Document)를 교황에게 제출하고 교황은 별도의 사도적 권고를 발표하지 않고 이 문서를 교도권적 문서로 확정, 승인했다. 51쪽 분량의 최종문서는 3년 동안 교구와 국가, 대륙별 단계와 두 차례의 본회의를 거쳐 하느님 백성 전체가 참여한 대규모 회의의 열매다. 이 문서에는 여성 부제 서품이나 성 소수자에 대한 공식 인정 등은 포함되지 않았고, 첨예한 논란 주제들은 별도의 연구 위원회를 통해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간다. ■ 희망의 희년 선포와 개막 2025년은 ‘희망의 순례자들’을 주제로 거행되는 정기희년이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12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聖門)을 개방하면서 시작돼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 이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9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 앞에서 주님 승천 대축일 저녁 기도회를 주례하면서, 칙서 「희망은 실망하지 않는다」(Spes Non Confundit, Hope Dose Not Disappoint)를 통해 2025년 희년을 선포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두려움과 낙담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기쁘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권고했다. 교황은 특히 2025년 희년을 앞두고 올해를 ‘기도의 해’로 선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전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 평화가 필요한 세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습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만 3년이 되어가도록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양산하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장기화된 전쟁으로 인해 지금까지 양측의 사상자만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전포고 없이 대규모 침공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더해져 지금 전 세계는 양편으로 갈라져 민간인들을 포함해 이스라엘과 이슬람권 국가들의 끝없는 살육이 이어지고 있다. 분쟁 종식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큰 성과는 없다. 분쟁의 여파로 레바논과 이란 등 주변 국가들도 긴장 상태에 있고, 중동 전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분쟁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대화와 화해, 평화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교황은 1월 21일 ‘기도의 해’를 선포하면서 “기도의 해에 특히 교회일치를 위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에콰도르 등 분쟁을 겪고 있는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위해 하느님께 평화를 호소하는 일에 지치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권고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인 3월 24일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증오와 폭력을 없애고 인간애를 가져올 수 있다”며 모든 증오와 폭력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파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을 맞아 파리대교구장 로랑 울리히 대주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교황은 “올림픽 전후 모든 분쟁 중단”을 요청했다. 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1주년인 10월 7일은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로 지낼 것을 호소했다. ■ 아시아 4개국 포함, 지치지 않는 해외순방 프란치스코 교황은 88세라는 고령과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순방하면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교황은 9월 2일부터 역대 최장기인 12일 동안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싱가포르 등 4개국을 사목 순방했다. 이는 당초 2020년에 예정됐던 것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연기된 것이었다. 교황의 9월 아시아 순방에는 변방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파푸아뉴기니에서는 기후위기로 위협받는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4개국 중 유일하게 가톨릭신자가 다수인 동티모르에서는 식민 통치 아래에서 고통받던 동티모르인들을 위로했고, 다민족과 다문화의 나라 싱가포르에서는 청년들에게 형제애와 평화의 사도가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4일 4번째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를 반포했다. 예수 성심과 그분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담은 이 회칙은 총 2만 8000자 분량으로 교황은 이 회칙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교회와 세상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것을 촉구했다. 2019년 화재로 파괴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5년간의 복원 작업을 마치고 12월 7일 재개관식을 열었다. 프랑스 교회의 암울한 상황을 상징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과 재개관에 대해 프랑스 교회는 교회와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희망을 갖게 해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재개관하던 날,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새 추기경 21명을 서임했다. 이날 서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의 추기경 140명 중 110명을 직접 임명했다. 24명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6명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임명했다. 교황청은 10월 22일 성명을 발표하고 주교 임명에 관한 중국 정부와의 잠정협약의 효력을 4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교황청과 중국은 2018년 처음으로 주교 임명 절차에 관한 잠정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교회에서 선출되는 주교는 서품 및 착좌 전 교황의 승인을 받는다. 이 협약은 2020년과 2022년에 2년씩 연장됐다.

2024-12-25

[송년특집] 2024 한국교회 결산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나라 전체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세밑. 대림 시기를 지내고 맞이하는 아기 예수 탄생은 어느 해 보다 뜻깊다. 2024년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기고 희망에 찬 새해가 찾아오길 고대하는 시기. 복음화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경주한 한국교회의 한 해 발걸음을 종합한다. 세계청년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준비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사목 과제를 성찰하는 백서도 발간됐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뿌리내리기 위한 움직임도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더욱 활발해졌다. ■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준비 박차 한국교회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의 본격적인 시작을 대내외에 알리고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박차를 가했다. 서울대교구는 7월 28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2027 서울 WYD 발대식’을 개최했다.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은 9월 24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한 서울 WYD 주제 성구로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본 대회에 앞서 열리는 교구 대회를 위해 청소년사목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한 ‘교구 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수원교구와 제주교구는 교구 대회 조직위원회를 발족했다. 11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국교회 청년들에게 인계된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는 11월 29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환영의 밤을 시작으로 인천, 대구, 수원교구 등을 순례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2027 서울 WYD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으며,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한국천주교 평신도단체협의회 등은 관련 심포지엄과 세미나 등을 잇달아 개최했다. 대회의 성공 개최를 염원하며 2월 11일 시작된 ‘묵주기도 10억 단 봉헌운동’은 12월 중순 현재 1억 단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 ‘시노드를 위한 한국 교회 본당 사제 모임’ 첫 개최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했다. 주교회의는 9월 2~4일 ‘시노드를 위한 한국교회 본당 사제 모임’을 개최했다. 전국 각 교구 사제들이 시노드를 주제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주교회의는 매년 2박3일 일정의 모임을 지속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군종교구는 11월 6일부터 이틀간 전국 교구 중 처음으로 ‘시노드를 위한 교구 본당 사제 모임’을 열었다. 100여 명의 군종 사제단은 군인이라는 특수한 사목 환경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어떻게 실천할지 모색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최종 문서」 지침의 실천 방안을 연구할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수용과 이행을 위한 전국 모임’(가칭)을 내년 2월 중 개최하기로 했다. ■ 「코로나19 팬데믹 사목 백서」발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 사목 과제 성찰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1월 31일 「한국 천주교회 코로나19 팬데믹 사목 백서」를 발간했다. 총 4편, 312쪽 분량의 백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과 교회의 대응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의 사목 과제를 성찰하고 있다. 4월 19일 주교회의가 발행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에 따르면, 2023년 한국교회 신자 597만675명 중 13.5%인 80만5361명만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65세 이상 신자가 26.1%로 한국교회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 주교단 9년 만에 사도좌 정기방문... 제3대 의정부교구장에 손희송 주교 한국 주교단은 2015년 이후 9년 만에 사도좌를 공식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9월 16~22일 주교단은 성 베드로·바오로 묘소 순례, 교황 알현, 교황청 각 부서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보편교회와의 일치를 드러냈다. 한국 주교들은 11월 12일부터 사흘간 광주대교구에서 일본 주교들과 ‘제26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을 열고 양국 교회의 영적 유익과 선교 활성화에 기여할 사제 교류 방안을 모색했다. 새 교구장 주교와 보좌주교도 임명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13일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를 제3대 의정부교구장에 임명했다. 서울대교구는 7년 만에 새 보좌주교를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24일 서울대교구 이경상(바오로) 신부를 신임 보좌주교로 임명했다. 참 목자를 주님 품으로 떠나보낸 슬픔도 있었다. 제2대 제주교구장과 제6대 전주교구장, 제3대 마산교구장을 역임한 박정일(미카엘) 주교가 8월 28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 세월호 참사 10주기... 담화와 미사 봉헌 통해 유가족 위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한국교회는 기도와 미사로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담화문을 발표하고, 4월 15일 광주대교구 산정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수원, 대구, 안동, 원주, 인천교구 등도 교구별로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힘써 온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9월 23일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창립 1주년을 맞은 평신도 생태사도직 단체 ‘하늘땅물벗’은 10월 9일 전국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제1회 하늘땅물벗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 위한 전구 기도의 날 제정... 김수환 추기경 시복 추진 ‘장애 없음’ 주교회의는 올해부터 최양업(토마스) 신부 선종일인 6월 15일을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을 위한 전구 기도의 날’로 제정하고,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장 명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10주년을 맞아 시성 기원 담화문을 8월 16일 주교단 명의로 발표했다. 서울대교구의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추진에도 탄력이 붙었다. 교황청 시성부는 6월 18일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 추진에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했다. 지역교회가 시복 대상자를 시복 추진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뜻으로 이에 따라 김 추기경은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게 됐다.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는 11월 1일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산 9-6에 묻힌 유해가 1800년 순교한 복자 인언민임을 확인하는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 유해 진정성에 대한 교령’을 발표했다. ■ ‘축성생활의 해’ 개막 수도자 정체성 재확립과 쇄신을 위해 한국교회 남녀 수도회가 준비한 ‘축성생활의 해’가 11월 21일 개막했다. 2025년 한 해 동안 평화순례와 ‘평화와 일치를 위한 성직자, 수도자 묵주기도 피정’, ‘수도자 큰잔치 with WYD’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메리놀 수녀회도 한국 진출 100주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미사와 행사를 마련했다. 50주년을 맞이한 한국 남자 가르멜 수도회는 음악회와 전시회, 수도회 영성을 공유하는 학술대회 등을 열었다. 작은형제회는 9월 23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오상(五傷) 800주년 미사와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2024-12-25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한상희 작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작가의 길 저는 다섯 자매 중 막내예요. 아버지께서는 저희 자매들에게 예술 교육을 시키는데,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피아노를 공부했고, 넷째 언니는 클라리넷을 전공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대요.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제게 미술 공부를 시키셨어요. 처음엔 당연히 그림을 그렸어요. 따라 그리는 ‘재현’을 참 잘했어요. 상도 많이 받았고요. 자연스럽게 예술 중학교와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또 미대를 갔고요.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고 대학원도 갔고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미술의 길을 갔기 때문에 다른 길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 때 조소를 전공했는데요. 그림을 잘 그리긴 했지만, 입체는 좀 어렵더라고요. 대학에서는 조금 어려운 분야를 전공하고 ‘그림은 언제든지 그리고 싶을 때 하면 되지’라는 마음이었어요. 사실 흙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매력이 있었어요. 저와 같은 여자들도 쉽게 입체를 표현할 수 있어요. 게다가 초벌인 900℃까지 구운 흙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어요. 친환경적인 소재인 거죠.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제게 특별히 테라코라를 할 기회를 주셨어요. 한 번은 제 자화상을 하나 만들었는데, 선생님께서 제게 ‘손맛이 좋네’라고 칭찬을 하셨어요. 그런지 몰라도 흙에 대한 친근함이 있어서 조소를 하게 됐죠.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했어요. 남편은 NGO에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인데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라 돈을 버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제가 돈을 벌어야 했어요. 작업도 하고 싶은데 돈은 벌어야 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요. 힘든 시기였어요. 미술학원도 운영하며 입시 미술을 지도했어요. 손재주가 있어서 그런가, 아이들 가르치는 걸 잘했어요. 아이들 대학도 많이 보내고요. 아픈 어머니께서 성미술 작가로 이끌어 사실 성미술 작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30대 중반쯤, 어머니께서 위암 4기 판정을 받았어요.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제가 모시고 살았어요. 작업은 계속하고 싶은데, 어머니를 돌봐야 하니 할 수 없었죠. 그렇게 갑갑하게 지내고 있는데, 한번은 서울 구파발 쪽에 꽃을 사러 갔다가 근처 석재상에서 까만 묘석을 얻어 왔어요. 그 묘석으로 십자가의 길 중 14처를 한 번 만들어 봤어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무덤에 묻히시는 부분이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산소에 둘 생각이었어요. 예수님께서 아이처럼 엎드려서 누워 계신 모습으로요. 까만 표면의 묘지석을 정으로 파내면 안에 희게 표현되는 형태였어요. 누군가는 판화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일종의 얇은 부조라고 봐야죠. 다행히도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마치시고 건강도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그때 십자가의 길을 만들던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도 작업할 때 마당에서 맡았던 아카시아 꽃향기가 느껴질 정도예요. 어머니의 건강이 어느 정도 좋아진 후 다시 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옆자리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돌을 자르고 평평하게 연마하는 것부터 1년 반 정도 돌을 다루는 것을 배웠어요. 그렇게 십자가의 길 14개 처를 쭉 만들었어요.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산소에 빙 둘러 설치할 생각이었죠. 같은 기법으로 조금 작게 만들었는데, 이게 의정부교구 행신2동성당 성체조배실에 가게 됐어요. 같은 콘셉트로 4개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었는데, 서울대교구 중견사제연수원과 의정부교구 행신2동성당, 제가 다니는 수원교구 신둔성당, 수원교구 영성교육원에 설치돼 있어요. 지난해 영성교육원 작품을 만들고 나서는 어깨에 무리가 왔어요. 진동이 많은 무거운 작업 도구를 써야 하거든요. 그래도 제 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우시는 모습을 보면 저의 일에 보람을 느껴요. 성미술 작품으로 복음화 이끌고 싶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작업을 해서 판 돈으로만 생활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런데 저에게도 기회가 왔어요. 2009년에 가톨릭 미술 공모전이 처음 열렸어요. 그때 우수상을 받았어요. 저는 세상이 달라지는 줄 알았어요. 전업 작가를 할 수 있겠다고요. 같은 공모전에서 세 번 상을 받았지만, 제 삶은 변하지 않았어요. 돌 작업으로 십자가의 길도 만들지만, 흙으로 성모상도 자주 만들어요. 특히 수태고지를 주제로 한 작업을 많이 해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모님의 모습이 너무 좋거든요. 게다가 성모상은 인기가 많아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거죠. 같은 주제로 그림도 그리고요. 처음 성미술을 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했어요. 그래서 바오로딸성경학교에서 6년 동안 성경을 공부했어요. 이후로는 그냥 성경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에너지가 솟아 올랐어요. 지금은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전부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꾸르실료를 수료하기도 했어요. 저는 제 작업이 제 욕구를 충족하고 생활비를 버는 직업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를 꾸르실료에 보내신 분은 제 작품 활동이 ‘복음화’ 활동이라는 거예요. 전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제 작품이 누군가의 신앙을 불러일으키고 교감을 할 수 있는 매개체된다는 걸요. 성미술 작품 활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누군가 광주대교구의 어느 주교님께 제가 만든 <착한 목자>상을 선물로 드렸데요. 그랬더니 이 작품을 맘에 들어 한 광주대교구청의 한 국장 신부님이 10년 교리교사 근속상 선물로 같은 작품을 여러 개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또 이게 연결돼 광주대교구 문흥동성당 십자고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까지 이어졌어요. 사실 허리도 아프고 제 건강 상태가 작품을 맡을 상황은 아닌데요. 별 수 있나요? 작가로서 먹고살려면 작품을 만들어 내야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성미술을 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 한상희(루치아)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제1회 가톨릭 미술 공모전 우수상 등 같은 공모전에서 세 차례 수상했으며, 서울대교구 중견사제연수원, 수원교구 신둔성당, 의정부교구 행신2동성당, 대전교구 궁동성당 등에 십자가의 길과 십자고상 등을 봉헌했다. 홍익조각회와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원이며, 선화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2024-12-2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세상에 희망 주는 교회로 거듭날 것”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종생 목사)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이 시대에 필요한 15가지 사회의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1월 18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100주년 기념대회를 열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 사회선언문’(이하 100주년 사회선언문)을 발표했다. 100주년 사회선언문 발표에 앞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목하는 사회 의제는 정의, 평화, 생명의 하느님 나라의 가치와 긴밀하게 얽혀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물질문명과 생명 파괴 문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힌 NCCK는 “100주년을 맞이하며 그 역사를 돌이켜 보는 가운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교회로서 그 몫을 다하기 위하여 자세를 가다듬고자 한다”고 전했다. NCCK가 발표한 사회의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 부정의, 정치 양극화, 디지털 문명, 노동 현실, 사회적 재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혐오, 폭력의 일상화, 이주민, 인구절벽, 성차별, 청년세대, 한반도 평화, 식민지 역사 청산, 기후위기 등 총 15개다. 현대사회에 새롭게 떠오른 디지털 문명 문제에 대해 “다국적 기업의 기술 독점, 딥페이크 성범죄, 가짜뉴스, 사생활과 인권 침해, 정치 공정성의 위협 등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며 “혁신적 산업문명으로의 전환에서 생명 존중과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윤리적 인식과 정책적 법제화가 시급하게 요청된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혐오에 대해서는 “한국교회는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지 못하고 배제와 혐오를 일삼았던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사랑의 가치와 공감과 공존에 기반한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 기후위기, 이주민, 노동 현실 등 천주교회가 주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특히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에 기초한 정의로운 전환이야말로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라고 선언했다. 김종생 목사는 “우리는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하느님의 방식이 무엇인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발견해야 한다”며 “이번 사회선언이 세대를 넘어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하나님의 선교가 무엇인지를 재차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24-12-15

악습 벗어나 성모님 품 안에서 기도하고 빵 굽는 형제들

“저희는 출소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빵을 만들며 생활하고 있는 작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성모울타리 공동체’ 하용수(종삼 요한) 원장이 신자들 앞에서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저는 도둑 출신입니다. 도박과 마약에도 중독됐었습니다”라고 자신의 과거를 소개했다. 하 원장이 숨기고 싶었을 과거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주님께서 저를 악습에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때 주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와 같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열심히 선교하겠습니다.’” 경남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서 출소자 30~40명의 형제가 함께 살아가며 열심히 기도하고 빵을 만드는 신앙 공동체, 성모울타리 공동체를 소개한다. 사활을 건 홍보 활동 “내가~ 밤 길을 가고 있을 때~ 누군가~ 등불 밝혀 두는 이~ 있음을 생각하니~.”(김정식 <예수 내 작은 기쁨>) 성당을 가득 채운 잔잔한 기타 소리와 호소력 짙은 음성이 신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로제리오) 씨와 테너 송봉섭(요한) 씨가 결성한 ‘듀오 메타노이아’가 11월 24일 대구대교구 구암본당(주임 나경일 펠릭스 신부) 주일미사에서 신자들에게 찬양을 선사했다. 노래가 끝나고 김정식 씨가 말했다. “성모울타리 공동체는 우리 사회에서 자칫하면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기 쉽고 또 힘든 그런 공동체일 수 있습니다. 모쪼록 도움의 손길을 주십시오. 본당 신부님께서 여러분과 공동체 사이에 사랑의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건너가시는 것은 여러분 선택의 몫입니다.” 성모울타리 공동체에게 본당 홍보는 그야말로 사활(死活)을 건 활동이다. 함께하는 직원들 월급을 책임져야 하고, 무엇보다 현재 보금자리 마련을 위해 진 억대의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자립을 돕기 위해 부산교구장 손삼석(요셉) 주교가 후원 활동을 허락하면서, 하용수 원장은 매주 전국 본당을 다니며 성모울타리 공동체 후원을 독려하고 빵을 판매하고 있다. 듀오 메타노이아와 생활성가 가수 신상옥(안드레아) 씨도 하 원장과 동행하며 찬양 봉사로 공동체를 돕고 있다. 신상옥 씨는 “신자들이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찬양을 하고 나면 마음이 열린다”며 “하느님께서 저를 이 자리로 불러주신 이유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만들고 판매하는 빵은 100% 우리밀과 친환경 재료들로만 생산된다.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 비쌀 법도 한데, 오히려 시중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 호두과자, 단팥빵, 도넛 …. 그중에서도 롤케익은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최근 판매하기 시작한 어묵과 청국장도 호응이 좋다. 전국 본당 찾아가 홍보하며 빵 판매 및 후원 요청 부채 상환 등 재정 어렵지만 희망 잃지 않고 주님께 의탁 하지만 공동체는 본당에 후원 활동 허락을 요청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 원장이 말했다. “본당에서는 ‘황창연 신부님(베네딕토·수원교구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께서 도와주시지 않느냐’는 말씀부터 하십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지나고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성모울타리 공동체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성당을 찾아다니며 빵 판매를 해왔는데, 그만 성당들이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그때 황창연 신부가 공동체 돕기에 발 벗고 나섰다. 황 신부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공동체를 소개했고, 단 한 번 방송으로 빵 7000만 원어치 주문이 들어왔다. 그 뒤로도 2년여 동안 황 신부는 공동체가 어려움 속에서도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이제 공동체는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지만, 지금도 황 신부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 어두움을 딛고 만난 하느님 “자신의 본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각자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모두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12월 4일 성모울타리 공동체 양산 보금자리에서 김현우 신부(바오로·인천교구 사회사목국 부국장)가 형제들의 피정을 지도했다. 김 신부의 인도로 형제들이 마음 깊은 곳 아픔을 꺼내놓고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안수가 이어졌다. 한 형제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공동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매주 화·수요일 미사와 피정 자리를 열고 있다. 하 원장 자신이 만난 하느님을 형제들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조직 우두머리로 생활하던 하 원장은 아내의 부탁에 못 이겨 1990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우연히 참가하게 된 성령쇄신 세미나에서 하 원장은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됐다. 그야말로 ‘회심’(回心)이었다. 하 원장은 이후 출소자들을 성당으로 인도했다. 지금까지 하 원장을 통해 세례받은 출소자들이 500여 명이나 된다. 부산 매장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이현수(베드로) 씨는 “한동안은 피정 내내 왜 여기 앉아있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지만, 어느 날 성령을 체험한 뒤로는 어서 빨리 피정 시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 원장의 뜻에 공감하며 전국의 사제들이 양산을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성령쇄신 피정을 지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공동체와 인연을 맺어오며 지도사제를 맡고 있는 이창수 신부(야고보·대구대교구 가창본당 주임)는 “영적인 힘이 이분들 삶의 바탕이며 가장 큰 힘”이라며 “이름 그대로 성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기도하며 각자 과거의 삶을 쇄신하고 훨씬 더 영적인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용수 원장은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서 “앞으로도 복음 말씀대로 주님만 믿고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저는 대장암 말기에다 폐섬유증까지 앓고 있는데도, 주님만 생각하면 모든 병이 녹아 없어지는 듯 힘이 납니다. 과거를 딛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여러분의 도움이 간절합니다.” ※ 문의 : 010-5085-0023(하용수 원장) ※ 후원 : 농협 351-0809-8853-93(예금주 성모울타리)

2024-12-15

유엔 플라스틱 협약, 성안 없이 종료…한국 수동적 태도 지적

유엔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 Intergovernmental Negotiation Committee)가 일주일간의 협상 끝에 12월 2일 종료됐다. 회의는 당초 계획했던 1일보다 하루 늦게 종료됐지만 성안 없이 추가 회의로 넘기기로 합의하며 막을 내렸다. 협상위를 이끈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일부 문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소수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협상회의 개최국이었던 한국 정부가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위한 적극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플라스틱 협약, 산유국 반대로 성안 없이 마무리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는 앞선 4번의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협약 작업을 완료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자리였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의사를 결정하는 특성상 안건에 대한 일부 국가들의 반대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번 회의의 쟁점은 ‘플라스틱 또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 생산 규제’와 ‘유해 플라스틱·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등 세 가지였다.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예상보다 전향적 입장을 보였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스틱은 원유부터 시작해 1차 원료인 폴리머 생산과정, 최종 제품이 소비돼 폐기될 때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쳐 오염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강력한 협약을 원하는 쪽은 ‘1차 폴리머 생산 감축’을 협약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산유국이나 플라스틱 생산국들은 이를 반대해 왔다. 이번 회의를 열 때 의장이 제시한 초안에는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 동안 지속가능한 수준의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를 달성하기 위해 1차 폴리머의 공급을 관리할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협약에 생산 규제 조항을 포함하는 것을 ‘레드라인’(한계선)으로 규정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러시아는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에 집중하자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플라스틱은 2019년 기준 4억6000만 톤 이상 생산된다. 1950년대부터 생산된 플라스틱을 모두 합치면 90억 톤이 넘는다. 재활용률은 9% 정도다. 지금껏 생산된 플라스틱의 99%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로 만들어졌다. 화학물질의 종류는 수천 가지 이상이며, 이중 상당수는 인간과 자연에 유해한 물질이다. 해양에 투기되고 매립, 소각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와 땅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회의 참가국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맞물려 협상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발비디에소 의장은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추후 5차 협상위를 재개해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전반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또 “부산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며 “우리의 일이 완료되기까지 한참 남았기에 공동의 목표를 향해 계속 협력하면서 실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플라스틱 원료 ‘폴리머’ 규제 협약 조항 초안에 넣었지만 원료 생산 산유국 거부로 ‘불발’ 회의 재개 약속하고 종료 환경단체 “플라스틱 오염 종식 끝까지 요구할 것” 플라스틱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전 세계적 약속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협상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인 리더 그레이엄 포브스는 “각국 정부 대표단은 다음 회의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목표와 실질적인 조치를 포함한 효과적인 협약을 도출해야 하며 유해 화학 물질로부터의 보호,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 재사용 목표 설정, 공정한 재정 계획 마련 등도 핵심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는 협상 과정에서 참관인을 배제하는 관행을 중단하고, 플라스틱 오염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최국으로서 협약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이번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우호국 연합(High Ambition Coalition, HAC)의 소속 국가이자 협상회의 개최국이었음에도 생산 감축을 포함해 협약을 위한 적극적 행보를 일체 보이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는 다음 회의에서 협약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고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성안되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도 12월 2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번 회의 결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강력히 거부한 세력에 굴복한 것”이라며 “아직 우리에게는 한 번의 협상이 남아 있기에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 Intergovernmental Negotiation Committee) 세계 여러 국가들은 종종 유엔에서 특정 문제에 관한 조약과 협정에 서명하는데 이를 통해 해당 국가는 해당 조약과 협정을 따라야 하는 법적 구속력이 생긴다. 따라서 유엔은 정부 간 협상위원회를 구성해 플라스틱 협약의 세부 내용을 협의할 수 있다. 정부 간 협상위원회는 정부관리들, 비정부기구, 과학자, 산업계 대표들로 구성돼 있으며 주요 청소년, 청년 그룹이 참관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정부 간 협상위원회에서 최종 협약안이 마련되면 국가들이 여기에 서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협약 최종안을 만들고 투표를 통해 협약으로 채택된다. 국가별 서명과 비준 절차가 완료되고 협정이 발효되면 서명국은 이 협약을 이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플라스틱 협약 제1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는 2022년 11월 28일 우루과이에서 처음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전 세계 플라스틱 오염 현황을 공유하고 협약의 틀을 설정했다. 이후 2023년 5월과 11월에 각각 프랑스 파리와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뒤 지난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렸던 4번째 회의에서는 플라스틱 생산량 40% 줄이기 위한 목표를 제안했으며, 부산에서 열리는 5차 회의를 위한 ‘1차 플라스틱 폴리머에 대한 선언’을 공유했다.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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