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3일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적 공포와 혼란을 초래한 지 11일 만의 일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계엄의 공포와 참상을 체험했고, 대통령의 임기 중 파면도 겪었기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탄핵해야 했다. 주교회의는 4일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에 즈음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을 주문했다. 그리고 탄핵이 가결된 즉시 다시 한번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을 주문하고 모두가 “정파적인 갈등을 떠나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주교회의 입장문이 촉구하듯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심리가 신속하게 진행돼 빠른 시일 안에 올바른 판단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통령 탄핵과 직무 정지에 따른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비상계엄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야기한 엄청난 파장과 해악을 수습해 국민들의 삶이 하루속히 안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얄팍한 당리당략과 정파적 이해가 탄핵 심판의 과정에, 그리고 책임자들의 잘못의 경중과 단죄의 판별에도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계엄 사태를 주도적으로 막아낸 거대한 힘은 바로 국민들에게 있었다. 피 흘려 체득한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인식으로, 국민들은 누가 또다시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려는지 판별하고, 법과 정의에 따라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써 하느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을 깊이 껴안으셨다. 이는 곧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연대의 선언이다. 특히 올해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희망의 순례자’를 주제로 희년이 시작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년을 통해 “교회가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강조했다. 이 사명은 우리 개개인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나아가 성탄의 기쁨이 개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로 확산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게 된다. 소외된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용서와 화해의 다리를 놓으며,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작은 걸음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희년의 주제인 ‘희망의 순례자’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적 성찰과 회개의 여정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려한 성취가 아닌 겸손과 나눔의 삶을 가르치셨다. 희망의 순례길을 걷는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구원의 사건임을 체험해야 한다. 올해 주님 성탄 대축일은 희망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희년의 은총 속에서, 교회 공동체는 물론 각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희망의 증거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다른 길로 한 걸음 나에게로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 작품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02-379-1975)에서 열리는 사진전 ‘다른 오늘’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5년 3월 2일까지.
11월 29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세계 청년 대회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환영의 밤이 열렸다. 폭설도 내렸고 며칠째 추운 날씨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핫팩이었다. 평소에 핫팩을 사용하지 않지만 왜 하필 핫팩이 떠오를까? 성모 동산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몹시 추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작 핫팩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오후 5시 시작이라 저녁도 먹지 않고 달려갔다. 배고픔에 식사는 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대성당에는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로 가득했다. 처음에 마당에 들어섰을 때 봉사자들이 안내 리플렛을 나눠주며 핫팩도 함께 주었다. 내가 집에서 깜빡한 그것이다. 다행히도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온이 계속 올라가 따뜻해졌다. 옥외 행사는 없었다. 식사는 청년들이 좋아하는 피자, 핫도그, 붕어빵, 녹차 호떡 등을 따뜻한 음료와 함께 나눠주었다. 음식을 뻥튀기에 담아 주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환경을 생각한 아이디어 같았다. 개막 공연에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리핀 공동체의 공연이었다. 그들의 노래에는 떨림이 있었다. 대성당에서 떼제기도를 봉헌했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성당 안을 충만하게 이끌었다. 이어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인도 하에 ‘십자가의 길’을 진행하였다. 멋진 분위기의 밤이었다. 행사가 끝나고도 오랜 시간 청년들은 성당 마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행사 중에 마주친 WYD t성모 성화의 눈빛에 놀랐다. 엄하고도 아름다운 눈빛이어서 뭔가 마음에서 찔끔하였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첫눈이 내리고 바로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공개되며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교회 안에서 함께 눈을 굴리자는 것이다. 함께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면 분명 눈사람이 그대들의 삶을 이끌 것이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눈을 굴리듯 그렇게 연륜을 교회에서 쌓아나가면 하느님 안에서 삶의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해주고 싶다. 글 _ 김동기 요한 사도(서울대교구 신월동본당)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가사는 없었지만 노랫말이 또렷이 들리는 듯했던 살레시오회 왕요셉 신부의 트럼펫 연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한 소절이 서울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성당을 가득 채웠다. 스테인드 글라스 안의 아기 예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음률을 흥얼거리는 듯했다. 왕 신부는 “너무 오랜만이라 잘 안 불어진다”고 했지만, 아흔이 넘은 춘추에 직접 부는 트럼펫의 음색은 비교적 또렷했고 손놀림도 정확했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기 예수와 가장 닮은 아이들이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탄. 그런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는 성인 중 한 명인 성 요한 보스코는 살레시오회를 창립했다. 살레시오회원인 왕 신부도 성 요한 보스코를 닮았다. 일본 선교 시절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렸고, 한국에 와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설립에 참여하고 학교 교사도 지내며 사랑이라는 선물을 듬뿍 전했다. 마침 살레시오회는 현재 광주에서 청소년 대상 ‘돈보스코 농구대회’ 개최와 관련해 후원을 받고 있다. 어릴 적 스페인 내전, 제2차세계대전 등을 겪으며 신문에 자주 등장한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 조종사를 꿈꿨었다는 왕 신부 이야기를 듣고는, 그가 루돌프 사슴 대신 비행기를 몰고 아이들을 찾아다닐 뻔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뷰 마무리 시간, 기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는 왕 신부의 미소는 누구보다 산타 할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그때 저는 더 구부러진 할아버지가 돼 있겠지만요. 메리 크리스마스!”
2024년 12월 3일, 다음날 봉쇄수녀원 미사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터였다.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전화가 울렸다. 국제 행사 때 알게 된 미국인 신부의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하며 받았다. “바오로, 괜찮아? 넌 안전한 거야?”, “응? 무슨 말이야?”, “야, 너네 나라 계엄령 떨어졌어!” 서둘러 TV를 켰고, 이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됐다. ‘세상에, 21세기에 계엄령이라니!' 이후에 일어난 일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계엄군이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여당 의원들 대부분이 집단 퇴장하면서 탄핵소추안은 의결정족수보다 적은 인원이 표결에 참여해 폐기됐다. 국회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시민들은 민의를 대표해야 할 여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의 이익을 민의에 우선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국내 언론뿐 아니라 국외 언론들조차도 비판한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다음 주간에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내란상시특검법’이 통과됐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특전사령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 본인이 비상계엄을 직접 지휘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한편 여당에서도 탄핵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늘어났고, 마침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2016년 12월 9일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8년 만이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한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내리는 결정을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서 강산이 한번 바뀌기도 전에 또다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도 국무총리가 여당 대표와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비헌법적인 소리를 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당장의 이익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자기들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으니 망정이지, 나라가 가라앉는 모습을 눈 뜨고 바라만 보게 될 뻔했다는 사실을 곱씹을 때면 아직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군 장성들, 여당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비이성적일 수 있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에 나와 증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역사 지식과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이루어냈는지 공부도 하지 않고 성찰도 하지 않으니, 권력을 차지한 자신들은 국민들 위에 있다는 착각이 삶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드러났을 뿐이다. 이들과는 달리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앞다투어 국회로 달려왔다. 날마다 국회 앞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던 시민들 가운데에는 특히 각종 미디어에서 ‘개인주의’의 화신처럼 묘사되던 소위 MZ세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존재 덕분일까? 비장한 구호와 민중가요 일색이던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집회 장면은 신선함을 주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성숙하고 여유롭게 국가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 어떤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 왔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근래 몇 주 동안 우리가 세상에 보여준 모습은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흘려보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뿌리로 인식하는 시민이 굳건히 존재하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 또한 굳건히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어제는 아들의 두 번째 월급날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고기를 얻어먹었다. 그 얼마 번다고 고기까지 사내라 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이 돈을 벌면 고마운 사람에게 고기를 사야 한다. 왜? 인간의 사랑이란, 아가페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입에다 뭘 넣어주는 거다.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어줄 나이는 19세까지다. 그 이후엔 조건부로 바뀌어야 한다. 부모라고 해서 퍼주기만 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엄청난 사랑(돈)을 주셨던 분이다. 그 결과, 어른값도 못 하는 팔푼이가 되었다. 그러다 언니들의 피 토하는 투서로 친정에서 돈이 끊기고 바닥에서 몇 년을 벅벅 기어다니다 조금씩 정신을 차려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오리고기 가공공장에 다닌 적이 있다. 냉동고처럼 추운 작업실에서 오리의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는 일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금요일마다 손에 들려주는 훈제오리와 백숙용 닭이 날 달래주었다. 애들에게 이걸 맛있게 먹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어젯밤, 고기를 구워 내 앞에 놔주는 아들을 보며 참 좋았다. “저는 돈을 많이 벌 거예요”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말해 주었다. “돈을 많이 벌면 물론 좋지. 하지만 그게 맘처럼 쉽진 않아. 중요한 건, 네 힘으로 열심히 살아내겠다는 다짐. 그거면 된 거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은 고기 1인분을 더 주문했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낳아 키웠다. 목수인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보살피는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집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게 된 아들을 격려와 응원의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부모의 역할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한자로 자식(子息)을 이렇게 쓰는데 ‘息’ 자는 ‘스스로 숨을 쉬고 생존한다’는 뜻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식이라는 한자를 ‘自食’이라 말하고 싶다. ‘스스로 일 해 돈을 벌고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요즘 세상이 젊은 친구들에게 스스로 밥을 벌어먹기에 힘든 건 맞다. 최저시급이 만 원도 안 되고 직장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초봉이 200만 원도 안 되는 곳이 태반이다. 야간수당을 챙겨주는 곳도 거의 없다. 부당함에 대해 말하면 잘리기 십상이다. 일할 사람은 많고 일할 곳은 없다. 월급을 받아도 월세를 내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도 얼마 없다. 큰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곳은 빚만 떠안기 일수다. 저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나는 아들에게 고기를 얻어먹는다. 자신을 먹여주고 키워준 부모 입에 고기를 넣어주며 뿌듯해할 그 마음을 아이가 느껴보길 바란다. 그 뿌듯함으로 힘든 세상을 견디고 다음 월급을 받을 때까지 다시 힘을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산다. 일하는 게 힘들고 고달파도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고기를 넣어주기 위해 버틴다. 그 힘으로 직장이 유지되고 나라가 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과 고기를 입에 넣어주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自食’ 스스로 일해 밥을 먹고 살겠다는 마음. 그것을 믿고 지지하고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은 결코 연약하지 않다.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
늦은 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22시 28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윤 대통령에 의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 명의로 23시를 기해서 “국회와 정당 등 정치 활동 금지”를 비롯해 6개 조항으로 구성된 계엄사 1호 포고령이 내려졌다. 헌법은 계엄에 관해서 규정하는 제77조 4항에서 “계엄을 선포할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의무 조항을 설정해 놓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한국 국민과 사회의 안녕과 사회적 존엄을 손상시키는 것일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같은 조 5항에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헌법은 비상계엄 상태에서도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의 역할은 명백하게 법으로 보장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엄사 포고령 1호에 의하면, 그 첫 조항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면서 이것을 어기면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를 근거로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적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회로 투입된 계엄군에게 내려진 명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였다. 국회의원들 가운데 190명은 경찰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담을 넘어가면서까지 국회로 모이기 시작했고,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위한 투표에 참여해 190명 참석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계엄이 무효화 된 것인데, 이때가 12월 4일 오전 1시 1분이었다.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계엄군에게 연락해서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도록, 안 되면 전기라도 끊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 지시를 받은 이상헌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오히려 부대원들에게 물러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표결이 완료돼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참석자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국민의힘 대표와 중진의원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맞춰 권한 내에서 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 없고, 더불어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이를 경고하기 위해 선포하게 됐다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식 속에서 그는 장관급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을 임명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지속해 갔다. 그러다가 계엄이 해제된 지 만 사흘이 지난 7일 오전 10시경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군을 동원해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의원들을 체포하려는 일련의 조치들을 실행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찬성할 시민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전국의 시민들은 그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더 빨리, 더 단단하게 뭉쳐야 한다”고 말하며 그의 퇴진을 위한 집회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그가 비상계엄으로 실추시킨 국격, 국가와 시민들이 겪게 만든 사회적 혼란과 상처를 회복시키고, 오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사회적 사랑’(「찬미받으소서」 231항)의 선물이 될 것이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2년 12월 1일, 사랑하는 엄마께서 99번째 생신날 새벽 3시30분경에 하늘나라를 향해 떠나셨다. 평생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었던 분, 자신을 위한 삶이라고는 한순간도 없으셨던, 친인척들로부터 천사라 불리셨던 분, 비록 글은 모르셨지만 참으로 지혜로우셨던 성모님을 참 많이도 닮으셨던 나의 엄마는 그렇게 떠나가셨다. 돌아가시기 8개월 전부터 산소호흡기를 하면서 엄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지면서, 너무너무 궁금한 것 하나가 생겼다. ‘사람이 죽으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어찌나 간절히 궁금했는지 저절로 나오는 신음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장례식장에는 엄마가 정말로 안 계셨다. ‘엄마는 지금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계신 것일까? 혼자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발인날이 되었다. 상실감을 넘어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도 만져 볼 수도 없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도 없는 아득한 이별이라는 생각은 너무 슬펐다. 장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첫눈을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눈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계시지 않은 지금의 엄마한테 열심히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엄마와의 여행이 되고 있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깃털처럼 가볍고 아주 평온한 이 마음은 뭐지?’ 하는 순간, 반짝반짝 해같이 빛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 너~무 이쁘다!” 하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남편 바오로가 나를 툭 치면서 “무슨 소리야? 엄마가 이쁘다니?” 하는 바람에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폰으로 라도 찍어둘걸’ 싶었는데 나중에 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가 폰으로 찍을 수 있었으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을 거야. 그건 엄마한테만 보인 것이고, 천국 가신 할머니를 보여 주신 거야” 한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 뒤로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고 가장 행복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계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슬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치고 가슴이 벅차올라 감사할 뿐이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내게 보여 주셨다.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간절함으로 구했던 나의 목마름에 그분께서는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이런 곳이란다” 하시며 은밀히 보여주셨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처절하게 무너진 이를 이렇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위로를 넘어 기쁨과 환희가 가득 차도록 바꿔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있다! 그분은 바로 나의 하느님, 나와 늘 함께 계시는 나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나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으신다. 그 애틋한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온 세상이 내 품 안에 있는 듯하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가신 엄마를 품에 안아 주신 그분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인간의 품에 비할 수 없는 한없이 좋은 그분의 품 안에 계시니 이보다 더 안심되는 일이 있을까? 늘 가여웠던 엄마에 대한 가슴 시림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큰 위로가 되고 평안함이 되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 흐르게 한다. 나는 이제 영원한 삶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이곳에서의 여정을 다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가게 되는 날 ‘해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엄마와 천사들의 마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이길남 파우스티나(인천교구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본당)
키 큰 나무 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 작품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02-379-1975)에서 열리는 사진전 ‘다른 오늘’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5년 3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