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가톨릭문학상 본상에 김탁환 소설 「사랑과 혁명」

이주연
입력일 2024-04-15 수정일 2024-04-29 발행일 2024-04-21 제 338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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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박해 통해 ‘인간다운 삶’ 성찰…시상식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로얄호텔

가톨릭신문사(사장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가 제정·운영하고, 우리은행(은행장 조병규)이 후원하는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에 김탁환 소설가의 「사랑과 혁명 1·2·3」(2023, 해냄)이, 작품상 수상작에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의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2022, 여우난골)가 선정됐다.시상식은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로얄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시상식은 가톨릭신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된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은 한국교회에서 처음 마련된 문학상으로 그간 가톨릭정신과 인류 보편적 진리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을 발굴해 왔다. 본상 수상자 김탁환 소설가를 만나 수상 소감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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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옛 곡성동초등학교 집필실 ‘달문의 마음’에서 인터뷰 중인 김탁환 작가. 김 작가는 "영성과 노동을 두 날개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사랑과 혁명」은 그런 삶의 첫 열매"라고 말했다. 사진 박원희 기자

◆ 인터뷰 - 본상 수상자 김탁환 작가

본질적인 것 공들여 쓰려는 마음, 문학상으로 격려받았습니다

광주대교구 곡성성당은 1827년 발생한 정해박해 진원지 옥터성지에 세워졌다. 박해 중 곡성은 물론 전라도 전역, 경상도 상주, 충청도와 서울 지역 등지에서 500명 정도 신자가 체포됐다. 심문 과정에서 다른 도에 거주하는 신자들 이름이 밝혀짐에 따라 규모가 커졌는데, 지독하게 고문한 것으로도 악명 높았던 박해다. 광주대교구는 박해 당시 감옥이었던 자리에 제대를 봉헌하고 1958년 본당을 설립했다.

김탁환 작가의 집은 곡성성당 뒷마당과 이웃하고 있다. 철망이 경계일 뿐이어서 고양이들이 집의 텃밭과 성당 마당을 수시로 오간다. 박해 당시에는 김 작가 집을 포함한 성당 일대가 객사와 감옥터였다. 「사랑과 혁명」은 그가 실제 소설 속 공간에서 구상하고 집필한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4년 동안 원고지 약 6000매 분량에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김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들이 모진 고문 속에 고통스럽게 지냈던 터에서 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기르고 숨고 흐르는 마음을 매일 문장으로 옮겼다.

“소설을 쓰면서 ‘영성과 노동’이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였습니다. 이를 독자들과 함께 충분히, 좀 깊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떤 것은 짧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또 어떤 것은 불편하더라도 길게 설명해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정해박해는 후자입니다. 제대로 서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이 이런 본질적인 것을 공들여 쓰고자 하는 마음을 격려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곡성과의 인연은 2018년에 닿았다. 사회파 소설을 쓰며 안전과 생태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농촌으로 내려갈 마음을 굳혔던 그는 그런 배경에서 그해 곡성에 내려간 기회에 성당과 더불어 옹기교우촌이 있던 당고개 덕실마을을 둘러보게 됐다.

이는 「열녀문의 비밀」과 「대소설의 시대」 등 이전 작품에서 18세기 정조 시절 천주교 신자들 모습을 다루며, ‘언젠가 18세기 신자들 활동이 19세기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가’를 쓰려던 김 작가 마음을 움직였다. 곡성은 생태적인 삶을 살면서 19세기 천주교 신자들을 그리는 최적의 마을이었다. 이후 곡성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소설의 틀을 마련했고, 2020년 집필에 착수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1일 곡성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곡성에서, 그것도 감옥 터였던 성당 옆집을 우연히 구해 글을 쓰게 된 것을 그는 “‘신의 의지’인 것 같다”고 했다.

한양에서 가장 먼 곳이라 할 수 있는 곡성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15년 경이다. 박해를 피해 강원도와 경상도 등에서 남으로 내려온 신자들이 덕실마을(현 승법리)과 미륵골(현 미산리) 일대에 정착했다. 신앙을 유지하고 생계를 위해 가마터를 열고 옹기를 구워 팔며 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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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가 전남 곡성에서 운영하는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에 진열된 「사랑과 혁명」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낯설고 물선 곳까지 간 사람들은 어떻게 은밀히 마을을 꾸리고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특별히 신유박해부터 정해박해까지 26년 동안 교인들이 이뤘던 공동체 생활에 관심을 돌렸던 김 작가는 “직업도 집도 가족도 다 버리고 떠나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작품의 핵심을 ‘변화’로 짚는다. 신앙으로 이전에 불가능했던 삶이 바뀌는 변화다. 그것은 자신과 공동체가 변하는 혁명으로 이어진다. “정해박해 때 붙잡힌 곡성의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후 가장 낮은 자인 옹기꾼이 되었고, 낯선 곡성에서 마을을 이뤘습니다. 제자들도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건 참으로 힘들고 대단한 용기와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신교 신자인 김 작가는 유년 시절 주일학교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나자렛 예수의 삶이 늘 화두였다. 소설 속 인물 짱구나 길종문이 던지는 물음은 그의 질문이기도 하다. “4년 동안 작품을 쓰며 태어나면서부터 지녔던 신앙을 더 깊고 진하게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김 작가는 “네 권의 복음서를 정말 자세히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사랑과 혁명」에 등장하는 신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살아 있는 생명을 보호하고 때로는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며 갈등을 평화롭게 극복하려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다른 길을 찾아 걸었던 그들을 통해 김 작가는 믿음과 희망, 사랑, 바로 신망애의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태도는 특정 종교 특정 시대에 갇히지 않는다. 이 작품이 종교 소설이지만 사실 생태 소설이기도 하고, 1800년대 역사소설이되 지금을 이야기하는 소설인 이유다.

그는 이번 책이 “작가로서 세 번째 시기를 시작하는 소설 같다”고 말했다. 교단에서 가르치며 글을 쓰던 시기를 거쳐 전업 작가로 사회파 소설 등을 쓰던 도시 소설가에서, 이제는 ‘섬진강 대학교 4학년’ 마을 소설가로서 말이다.

“영성과 노동을 두 날개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사랑과 혁명」은 그런 삶의 첫 열매”라는 김 작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천주교에 대한 소설을 또 쓰고 싶다”고 했다.

◆ 김탁환 작가는

1968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김탁환 작가는 서울대 국어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문학을 가르치며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첫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건양대, 한남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거치며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소설들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31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단편집, 3편의 장편 동화를 냈다. 「불멸의 이순신」과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이 드라마로 제작됐으며 「열녀문의 비밀」과 「노서아 가비」, 「조선마술사」, 「대장 김창수」는 영화로 제작됐다. 요산김정한문학상, 카멜레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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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 「사랑과 혁명 1·2·3」은

‘조선의 암흑기’라 불리던 19세기 초 다른 세상을 꿈꾸며 천주를 믿었던 사람들의 사랑과 소망 그리고 기다림을 담고 있다. 27년간 역사소설과 사회파 소설을 오가며 치열하게 창작 활동을 해온 김탁환 작가의 서른한 번째 장편소설로서, 원고지 약 6000매 분량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1827년 정해박해로 시선을 돌린 작품은 땅만을 섬기던 농부 들녘이 하늘만을 믿던 아가다를 만나 세상이 금하는 신을 믿어가는 과정과 그 신을 믿기 위해 목숨 건 교우들과 이들을 추적하고 탄압하는 무리의 팽팽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치명록’ 형식을 차용해 액자식 구성을 띤 책은 정해박해 전후에 발생한 천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신자들 시간을 따라간다. 1권에서는 곡성 교우촌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옹기를 만들며 사랑을 빚는 시간을, 2권에서는 천주교인과 첩자 군관이 숨고 달아나고 쫓고 쫓는 추적의 시간을, 3권에서는 옥 안팎에서 다시 사제를 모셔 오기 위한 움직임과 기다림이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은 인간 존엄을 지키고 살아 있는 생명을 보호하고 때로는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며 갈등을 평화롭게 극복하려 한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특정 종교에 갇히지 않고,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책이 ‘종교소설이되 종교소설이 아니고 역사소설이되 역사소설이 아닌’ 이유다. 최근 사회 내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생태환경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 세계의 확장을 품고 있기도 하다.

종교와 상관없이 억압된 사회에서 인간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묵묵한 수호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심사평

"정해박해 통해 ‘인간다운 삶’ 성찰하는 작품 「사랑과 혁명 1·2·3」은 1827년 전남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옥사인 정해박해를 다루며 사랑으로 혁명을 이룰 가능성과 그 열망에의 서사다. 그리고 고난과 좌절, ‘깊은 고통’의 이야기다. 

들녘의 사람들이 하늘의 뜻과 소통하며 정녕 인간다운 삶의 지평을 열고자 하는 자연발생적 소망을 무도한 정권은 혹독하게 억압하고 치죄한다. 500여 명 교인이 체포되고 16명이 치명해 순교하는 정해박해 사건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신분과 성별의 차이, 경제적 질곡 등으로 고난받아야 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런 상황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들녘’이나 ‘짱구’ 같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변화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십자가의 길로 접어든다. 빛과 어둠, 열망과 좌절이 혼돈처럼 어우러진 그 이야기를 작가는 매우 촘촘하게 그려낸다. 많은 자료를 성실하게 고증하고, 그 사실들을 넘나들며 상상의 빛을 쏘아 매우 고통스러웠던 천주교회사의 한 장면을 형상화했다.

이 소설은 단지 정해박해 사건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천주교 순교사에서 머물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사랑 없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독자를 오래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전 산문의 율격과 현대 산문의 리듬 사이를 가로지르며 독특한 소설 문장의 숨결을 형성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 숨결로 빚어진 문장들은 작중 옹기촌에서 신자들이 구운 ‘잘 빚어진 항아리’처럼 빛난다.

역사소설로 오랜 세월 내공을 쌓은 작가의 능란한 솜씨가 빛나는 역작이다. 생태주의적 색채가 진하게 깔린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 심사위원 - 김산춘 신부, 구중서 평론가, 신달자 시인, 구자명 소설가, 우찬제 평론가 >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