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동체 후배신부님이 지방출장 때문에 정기적으로 미사를 다니는 어느 수녀원의 새벽미사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바쁘게 살고 있는 신부님을 도울 겸 기꺼이 응답해 주었고 미사 부탁 받은 날 아침, 늦지 않게 수녀원으로 갔습니다.
수녀원에 도착했더니 수녀님 한 분이 작은 빗방울이 흩날리는 새벽 아침,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경당으로 가서 20여 분 되는 수녀님들과 미사를 봉헌하는데 그분들의 표정이 5월의 맑은 아침 햇살만큼이나 밝았습니다.
미사 후 식사당번 수녀님들이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원장수녀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수줍은 듯 온유한 미소로 미사를 와주고 계신 후배신부님이 비록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얼마나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시는지 모르겠다며 무척이나 감사해 하셨습니다. 특히 때때로 아침식사 전 클라리넷 연주를 해 주신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원장수녀님, 그 신부님은 저희들 앞에서는 한 번도 연주를 하지 않는데 수녀님들 앞에서는 가끔씩 연주를 하나 보죠?”
“가끔이지만 아침식사 전에 악기를 연주해 주셔서 저희들의 마음과 그날 하루를 환하게 밝혀 주시곤 하셨어요. 너무 고마우셔요.”
아침식사 종이 울렸습니다. 때마침 두 분의 수녀님이 축일이었습니다. 축가도 부르고, 촛불도 끄고, 박수도 쳤습니다. 수녀님들은 각자가 특수한 소임을 맡고 계신지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동료의 축일을 손수 준비하기 위해서 정성을 담아 축일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전날 밤, 직접 만든 케이크와 빵, 감동스러운 축일 카드와 웃음 가득한 선물 등,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세상 속에서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것들만 가득한 조촐한 아침, 풍성한 축일 아침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압권이었던 것은 아침식사를 시작하려는데, 한 분 수녀님이 자리에 일어서더니, ‘일일 음악 선곡자’를 맡으셨고, 그 전날까지 다른 수녀님들에게 이 특별한 아침에 듣고 싶은 음악들을 잔잔한 사연과 함께 신청을 받아 놓으셔서 꽤 괜찮은 대중가요와 함께 사랑이 가득 묻어나는 사연을 읽어 주었던 것입니다. 조촐한 아침식사였지만, 풍성한 대화와 명랑한 웃음들이 가득 어우러진 시간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 가난함 안에서도 해맑은 기쁨의 샘물을 끊임없이 길어 올리며, 헌신적으로 서로에게 진심으로 겸손히 봉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그날 아침은 잠깐이나마 지상에서 천국을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