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부가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상담을 온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맞벌이 부부로, 아들은 초등학교 때 할머니 손에 자랐고, 중학생인 지금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방과 후에 부모님의 퇴근 시간대를 맞춰 학원을 다니면서 생활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부모와도 말하는 것을 싫어하기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상담 며칠 전에도 사건이 있었는데, 엄마는 아들의 학교생활도 걱정되고 해서 직장에 휴가를 내어 학교에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선생님으로부터 ‘별 문제없이 조용히 잘 지내는 편’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같은 반 친구를 소개 받아 아들에 대해서 몇 가지를 물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 역시, ‘말은 없지만, 반에서 잘 지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가족들을 위해서 장도 보고, 음식도 하면서 식구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남편이 들어온 후에도 아들은 소식이 없었고 아들의 핸드폰 전원도 꺼져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아들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 부부는 아들을 좀 야단치려는데, 그 아들이 먼저 가방을 마루에 내동댕이치면서 ‘이제 학교에 안 간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이유는 엄마가 만났던 같은 반 친구가, 교실로 돌아와 다른 친구들에게 ‘엄친아’니 ‘마마보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고, 그 순간이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는 것입니다.
외할머니에게 아들의 양육을 맡기며 왠지 모를 자책감으로 인해 그 부모, 특히 엄마는 주말에 아이와 함께 있는 경우 그동안의 생활전반을 취조하듯 물어보고, 친정 엄마에게 확인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표현으로, 그 엄마는 ‘같은 말을 또 하고’,‘일주일치 학교 숙제를 다시 일일이 검사’했기에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들의 눈에는 마치, ‘늘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언제나 자신의 말은 믿어주지 않고 있다는 불신’을 느끼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엄마의 ‘불신의 창살’에 갇혀 날마다 몸부림치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맞벌이 때문에 더 잘해주지 못했다 생각하는 엄마의 지나친 관심은 아들에게 오히려 주말과 공휴일이 악몽의 시간이 됐고, 그 날 학교에 찾아온 엄마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관심’이 아니라, 학교까지 자신을 감시하러 온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비쳐졌던 것입니다. 괜한 미안함과 자책감보다 평소 자녀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원인 모를 ‘불신’의 씨앗을 처음부터 없앨 수 있었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