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급성 우울증으로 두세 달을 고생한 경험이 있는 선배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늘 해맑은 미소로 갖고 계신 신부님께 ‘우울증’의 경험을 들려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이젠 다 지나간 일이라며 아주 객관적인 관점에서 당시의 상황과 그 진행 과정에 대해서 마치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지금의 내 삶은 은총이지요. 뭐, 사제 생활도 한 십여 년 넘게 했었고 때마침 성당 신축 공사를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도 참 많았지만 무사히 축성식도 잘 끝낸 후였어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부고 소식을 들었던 것이지요. 나에게는 평소 무척 좋아했던 사촌 형이 한 분 있었는데 그 형이 젊은 나이에 갑자가 돌아가신 거예요. 너무 갑자기. 그래서 그 형 집에 내려가서 친척들과 함께 무척이나 슬펐던 기억이 나는 초상을 치르게 됐지요. 그리고 사제관으로 돌아와 이삼 일이 지난 후에, 왠지 몸이 좀 무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잠이 그렇게 잘 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운 동료 사제들을 만나서 술도 먹어보고 했지만, 그럴수록 잠은 더 안 왔지요.”
“평소에는 어떠셨는데요?”
“뭐 저녁에는 좀 늦게 자는 편이었지만, 아침에는 항상 6시면 일어났었답니다. 아침기도 드리고, 주변 산책도 할 겸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려 하면 우선 집중이 안 되고, 책을 읽으려 하면 머리부터 아프고. 그렇게 생활하다가 식욕마저 줄어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내면서, 가까운 신자들에게 사소한 말에도 짜증이 내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곤 했지요. 그리고 다시 사제관에 오면 그렇게 했던 내 자신이 싫었고, 그러다 원인도 없이 눈물이 나더니, 가슴이 너무 답답했었어요.”
전형적인 급성 우울증을 겪으신 신부님은 말씀을 이어나가셨습니다.
“제가 잘 알고 지내던 형제님이 계신데, 그냥 단지 의사인줄 알았던 분인데 알고 보니 ‘정신과 의사’였어요. 그래서 그 형제님을 먼저 만나보기로 했었지요.”
“신부님, 큰 결심을 하셨어요. 사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잘 말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기도의 힘과 정신력으로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답니다. ‘사제’도 사람인지라 부끄러워하거나 감추기만 한다면 병은 병대로 깊어지고,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급성으로 온 우울증은 급성으로 치료하면, 급성으로 낫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하하하.”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