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임종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하게 암 투병을 했고 자신을 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후 지금은 연령회 입관 때 ‘염’ 봉사를 하시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간혹 일 년에 한 번 정도 남편과 함께 수도원에서 만나곤 하는데, 나이를 드시면 드실수록 마음은 더 맑고 청아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늘 남편의 배려라고 몇 번을 말하곤 하였습니다.
“불교 신자인 남편은 영세 받기 전에, 나에게 자주 ‘반야심경’을 외우면 이것저것을 다 사주겠다고 꼬드긴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때는 잘 안 외워지더라고요.”
우직한 체구의 남편은 아내 곁에서 조용히 미소만 지으실 뿐 말씀이 그다지 없으셨습니다. 이에 나는 ‘부부가 서로 종교가 다른데, 사는데 괜찮으시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남편은 열심한 불교 신자지만,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 했어요. 사실 우리 남편은 내가 종교가 없을 때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가톨릭 교우들이 매주 장애인시설 봉사를 갈 때, 제게 차를 내주고 본인은 대중교통으로 직장에 갔어요. 그리고 연로하신 친정어머님이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사실 우리 집에서 5년을 함께 모시고 살았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남편은 늘 제게 ‘당신이 천주교 신자니까 친정어머니를 더 잘 모시고 살아야 한다’면서 저를 격려해 주었어요. 그럴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지금 ‘염’봉사 하는 것도 남편이 이해해주고 허락해 주지 않았으면 못할 뻔 했지요.”
옆에 계신 남편은 그저 ‘허허’ 웃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마디, “내가 불교 신자라 불교 신자답게 사는 거지, 뭐. 당신은 하느님이 살려주셨으니 거기에 보답하는 거고. 뭐, 다른 거 있나?”
한국에서 부부들의 이혼 사유 중에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갈등’이 꽤 높은 수치로 작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이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부부가 같은 신앙을 가지는 것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다르다 해도, 각자가 믿고 있는 종교의 근본 가르침에 따라 살면 그 근본은 통하기에, 서로의 다른 종교는 갈등의 소지가 아니라 오히려 대화의 여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각자가 가진 종교인답게 잘 살아가기 위해 오히려 건강한 경쟁 관계가 되어 마침내 영적 성장의 고귀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같은 종교에 대한 맹목성’으로 심지어 고귀한 부부의 인연이 갈라지는 것, 그것은 그 어떤 종교의 가르침 안에도 분명 없을 터인데,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