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까무잡잡한 피부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수도생활에 관심 있는 청년이 어느 수녀님을 통해 당시 제가 소임으로 있던 신학원에 방문하여 2박3일 수도원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는 신학원 형제들이 학기말시험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평소 그리 공부에 관심이 없는 형제들이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막판 벼락치기 하느라 신경도 예민해지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을 우리 수도원 체험에 보낸 수녀님 마음이나 신학원 책임자를 맡은 저의 마음은 그 청년에게 수도생활 안에서 뭔가 즐겁고, 신나는 일도 있고, 남자들만 살지만 그 안에서도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놀기 좋아하는 우리 형제들이 모처럼 마음잡고 공부하고 있었기에 뭐라 할 수 없었고, 특히 하루 종일 조용한 분위기로 인해 재미있는 모습보다는 ‘봉쇄 수도원’ 같은 분위기가 됐습니다.
‘이 청년이 지난 달, 아니 정말 지난주에만 왔더라도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그 청년과 회식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지금 이렇게 시험 때 와서.’
서서히 그 청년이 실망하고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청년이랑 함께 놀아주기에는 뭔가 서로 좀 불편하고 어려운 면들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하루가 지난 후, 문득 그냥 특별한 것 없이 청년이 우리와 함께 단순한 일상을 지내게 해주고, 나머지는 혼자 알아서 느끼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청년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 속편하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어나 주님을 찬미하고, 미사 봉헌하고, 식사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거나 방으로 공부하러 가고, 그 성소자형제는 자기 방에서 혹은 마당에서 이리저리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내심, 귀한 손님 방문했는데 제대로 대접 못 해주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말입니다.
그렇게 2박3일이 지나고 청년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수도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데 짧은 소감을 한마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수사님들, 저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옷을 가지러 갔다가 다음에 입회한 후 다시 오겠습니다. 꼭 함께 살고 싶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성소에 대해 갈등과 고민을 하던 그 청년이 그저 수도원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인데, 본인은 ‘말할 수 없는 내적 은총을 받았고 자기가 살 곳이 이 수도원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곧 돌아오겠다’는 확신 있는 말을 남기고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그냥 머무르기만 했는데도 말입니다.
다음 해 그 청년은 우리 수도원에 입회했고, 지금도 신학원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음이, 단지 함께 있는 그 느낌만으로도 타인과 많은 감동을 나눌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