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고 친하게 지내는 형 신부님이 사제관에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나선 길, 상가건물 2층, 3층을 성당으로 쓰는 그곳을 지나 4층 사제관으로 가서 ‘형아, 나 왔어’하면 형은 언제나 환하게 반겨줍니다.
주방 자매님이 소고기를 준비했는데 그 형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저만 신나게 되었습니다. 주방 자매님은 본당 신부님이 고기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겠지만 이번에도 손님인 내가 다 먹어 치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며칠 전, 그 형의 축일이라고 50여 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그 자리에도 낀 적이 있어서 그날 식사 값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형은 참석한 신자들이 함께 모아 식사 값을 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신자들이 요즘 살기 어려울 텐데 영명축일이라고 용돈을 주셨어. 그래서 그 돈을 모아 본당 성전 건립기금으로 냈지, 뭐!”하고 말했습니다.
형다운 발상이고 또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아마 그날 회식비는 당신 축일 축하금으로 지불하려고 했을 터인데 본당 신자들이 말렸을 것이고, 그러니 그 형은 다음 날 그 돈 모두를 남김없이 본당 성전 건립기금으로 내버린 것입니다.
여름이면 본당 신자들과 저녁에 영화를 보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가 되면 늘 수박을 사주는 것을 큰 낙이라 생각하는 형. 주일 저녁미사에 삼삼오오 청년들이 미사 전례를 준비하고 미사 해설 및 독서를 자발적으로 돕는 모습이 예뻐 한 달에 한 번 이상 청년들을 데리고 시원한 맥주와 맛난 것을 사주며 기운을 북돋아주는 형. 이러저러한 본당의 작고 큰 행사가 있으면 몰래 사비를 털어서 귀한 선물을 건네주고 축하해 주는 형.
남은 동치미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형은 참 좋은 사람이다, 늘 거저 받은 것, 거저 다 주니!’하고 말했습니다. 형은 답했습니다.
“루카복음에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하는 구절 알지? 거기서 ‘하느님의 총애’라는 말이 성경 원문에 가깝게는 ‘호의’라는 뜻이 있어. 그렇다면 예수님은 뭐, 하느님의 호의를 받았다는 거지. 그런데 ‘호의’는 그 자체로 진정 ‘호의’를 받았으면, 받은 것 이상으로 상대에게 ‘호의’의 기쁨을 되돌려 주려는 힘이 있지. 어쩌면 예수님은 십자가상 죽음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호의를 인간 구원을 위한 희생선물로 되돌려 주셨던 것 같아. 나도 그렇고, 사제들은 신학생 때부터 신자들의 ‘호의’를 받으며 지금 이 시간까지 존재하잖아! 그러니 나 먼저 그때 받은 ‘호의’를 되돌려 주려고 노력하는 거야. 뭐, 다른 것 없어. 그냥 무상으로 받은 ‘호의’를 무상으로 되돌려 주는 것뿐이야.”
우리는 압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튼 ‘호의’는 받아서 행복하니 다시금 어느 누구에게라도 돌려주고 싶은 원의가 생기는 ‘좋은 덕’임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