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교구 동창신부님이 전화를 걸어 사제관으로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마침 시간도 있고 해서 옷 하나 걸치고 종종걸음으로 사제관에서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데, 오늘 본당 미사 때 자신이 했던 강론을 들려주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예전에는 통신수단으로 ‘삐삐’가 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삐삐는 크기가 좀 작아서 자주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삐삐를 케이스에 담아 허리춤에 차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 시절, 어느 본당 보좌신부님도 삐삐를 허리에 차고 다니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보좌신부님은 미사 때도 삐삐를 허리에 차고 미사를 집전하신 것입니다. 이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던 주임신부님은 몇 번이고 보좌신부님께 말했답니다. 제발 삐삐를 허리에 차고 미사 들어가지 말라고. 주임신부님 말씀에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깜빡깜빡하는 성격의 보좌신부님은 또 다시 몇 번이고 삐삐를 허리에 차고 미사를 집전하셨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이를 괘씸하게 여긴 주임신부님은 그 보좌신부님을 혼쭐내려고 보좌신부님이 주례를 맡은 미사 때 특히, 거양성체를 할 즈음 보좌신부님 번호로 삐삐를 치신 것입니다. 미사 집전 때, 그것도 엄숙하고 장엄한 거양성체 순간! 삐삐 진동이 울리면 온몸에 전율이 ‘찌리릿’ 올 정도로 부들부들 몸을 떨게 됩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주임신부님은 보좌신부님 미사 때, 특히 거양성체 때마다 삐삐를 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후로, 그 본당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좌신부님이 미사 집전할 때면 본당 신자들뿐 아니라 인근 다른 본당 신자들도 그 미사에 참석하려고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신자들 사이에서 보좌신부님의 미사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던 것입니다.
보좌신부님은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너무 엄숙하고 장엄하게 미사를 봉헌하신다, ‘어떻게 인간이 감히 그리스도의 성체신비를 거행할 수 있느냐’에 대한 보좌신부님 스스로의 깊은 겸손과 통회의 마음으로 거양성체 때 온몸을 떨면서 미사를 봉헌한다, 한낱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한 미사를 감히 봉헌할 수 있을지 부끄러워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미사를 봉헌한다, 때로는 거양성체 때 통회의 한숨까지 쉬면서 온몸을 부들부들거리며 미사를 봉헌한다는 등의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주임신부님이 삐삐를 허리에 차고 미사를 드리지 말라고 야단을 쳐도, 삐삐를 허리에 차고 미사를 드리는 보좌신부님의 마이너스. 그러한 모습이 못마땅해 보좌신부님 거양성체 때마다 삐삐를 치시는 주임신부님의 마이너스. 하지만 이 모든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신 분은 하느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 인간의 삶을 늘 플러스로 바꾸어주시려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느님이 오늘따라, 참 그립고 너무나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