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친 신부님이 계신데 그 신부님에게서 들은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예전에 중국에서 몇 년 동안 있게 됐는데, 그곳 주교관에서 몇몇 교구청 신부님들과 만나 무척 잘 지냈답니다. 가끔 중국 신부님들과 외식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중국 신부님들은 독한 중국술을 큰 컵에 따라 마시면서 서로 친분을 쌓는 걸 좋아했답니다. ‘우리는 형제다’ ‘우리는 동반자다’ 뭐, 그런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루는 양꼬치와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큰 컵으로 독한 중국술을 넘치게 담아 한 번에 마시게 됐답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은 마셨지만 세 잔째는 도저히 못 마시게 됐답니다. 하지만 중국 신부님들 앞에서 형제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신부로서 흔들리지 않고 끄떡없이 술을 마시는 것, 말은 잘 못해도 술은 절대 안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잔을 정신력으로 마시고 술은 취했는데 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버텼답니다. 몽롱한 기억 가운데 중국 신부님들이 자신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최고’라고 하면서 술자리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중국 신부님들과 함께 양꼬치 집에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데 그 이후부터는 아무 기억이 나지 않고, 다음날 자기 방 침대에 묵주를 손에 꼭 쥐고 누워 있더랍니다.
잠을 잔 후 출출하니 바람도 쐴 겸 숙소를 나오는데 주교관을 지키는 중국인 경비원이 다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잘 잤느냐고 묻더랍니다. 잘 잤다고 했더니 ‘자신은 이곳에서 40년을 근무했지만, 당신처럼 신심 깊은 신부님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랍니다.
절친 신부님은 엉겁결에 인사를 받은 후, 마음속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면서 주교관 주변을 산책 했습니다. 시장 쪽을 향해 가는데, 때마침 그 지역에 오래 사셨던 한국인 신자 한 사람을 만났답니다. 그런데 그 신자가 먼저 환하게 웃으며 ‘신부님, 정말 그러셨어요?’ 하더랍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신자는 ‘신부님 소문이 이 동네에 다 났어요. 영험이 뛰어난 분이라고’ 하고 말했습니다. 놀란 신부님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냐’고 되묻자, 그분은 ‘신부님이 어젯밤에 주교관 문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대요. 그래서 경비원이 무슨 일이 있는지 보려고 주교관 현관으로 와봤답니다. 그런데 그 경비원이 본 것은 신부님이 주교관 문을 열쇠가 아닌, 묵주로 열려고 하더랍니다. 그 장면을 보고 탄복해 얼마나 신심이 깊으면 묵주를 가지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실까 생각해 경비원은 서둘러 자신의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신부님을 숙소까지 모시고 가서 침대에 뉘여 드리고 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잘 때까지 손에서 묵주를 쥐고 주무시는 모습까지 봤으니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저는 그 신부님에게 ‘지금도 묵주로 문 여느냐?’ 물었더니 단 한마디, ‘미쳤냐’ 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아무튼 묵주를 손에 쥐고만 있어도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보니, 묵주는 들고 다닐만한 것입니다. 기도까지 하면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