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0명의 신자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날 아침의 일입니다.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며칠 전 구입한 플라스틱 방석 40개, 비상약품과 주문 제작된 ‘성지순례단 깃발’을 들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원장수사님이 ‘짐이 많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당부를 했지만 그다지 무겁지 않았고, 플라스틱 깃발도 조금 날카로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목적지까지 들고 갈 수 있겠다 싶어 보자기로 한 짐을 묶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는 도중 강의 내용도 정리하고 순교자들의 마음도 묵상하면서 편안함 보다는 좀 불편하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성지순례를 가는 이의 마음이겠다 싶어 버스를 탔고 지하철로 갈아탔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지하철은 칸마다 대부분 승객이 차 있었고 가지고 갔던 짐은 무게보다는 부피가 컸으며, 깃발의 날카로운 면이 생각 이상으로 예리했습니다. 개인 짐은 등에 지고, 꼭 묶은 보자기는 한 손으로 쥐고, 다른 한 손은 깃발이 타인에게 불편을 줄까 봐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흘러, 비좁게 타고 있던 승객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사실 아침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지하철에 부피 있는 큰 짐을 갖고 타는 것이 좋게 보일리가 없겠지요. 승객들이 내리고 탈 때마다 양손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을 수 없기에 몸은 이리 저리 떠밀리는 신세가 되었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특히 잡고 있는 깃발이 미끄러워 풀리면 ‘성지순례’라는 내용이 펼쳐지는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뜨끔 뜨끔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계속 흘깃 쳐다보는 승객들의 눈빛이 깃발에 적혀 있는 ‘성지순례’라는 글귀를 읽게 된다면, ‘성지순례 가는 사람이 아침부터 왜 이리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일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처럼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고 강의 내용을 생각할 틈도 없었고, 짐 때문에 주변 사람들 눈치 살피느라 머릿속은 ‘지금이라도 내릴까’ 그런 생각뿐이었습니다. 환승역에서 내려 다른 열차를 타러 갈 때엔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사람에 밀려 걸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약속 시간에 도착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커지면서, 한가한 지하철을 기다릴 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무조건 갈아타야만 했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가까스로 지하철을 갈아 탄 후에 앞에 탔던 차량보다 사람이 적다는 안도감에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택시비 7000원 정도를 아끼며 순교자들의 마음을 닮을 생각에 아침부터 부피 큰 물건을 들고 대중교통을 탔지만 희생이 아니라 민폐를 끼친 셈이 되었습니다. 오전 내내 긴장이 가라앉지 않아 스스로 횡설수설도 했습니다. 문득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순교자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석진아, 가난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은 좋지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진짜 청빈이지! 희생한답시고 극기, 보속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친다면 그건 아니함만 못한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