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케이블 텔레비전에 보면 ‘엑소시스터’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엑소시스터’란 말은 구마자, 즉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천주교에서는 구마예식서가 공식적으로 있으며 한국어판이 앞으로 인준돼 출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예식서에는 구마자의 자격과 양성, 그리고 예식전반이 실려 있다. 구마(驅魔) 예식은 준성사에 속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인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라고 한다.”(1673항)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기 위해 여러 차례 구마를 행했다(마태 8,28-34 마르 1,23-28). 구마는 이미 고대 아시리아나 이집트 등지에서도 시행하던 풍습으로 여러 문화권에서 여러 형태로 널리 퍼져 있었으나 성경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예수님의 활동과 하느님 나라의 오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의 관점에서 악마는 하느님 뜻을 거역하고 인간을 죄악으로 유혹함으로써 불행과 죽음에 떨어지게 하는 힘을 지닌 영이다.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하느님과 일치시키려는 구세주 예수님은 악령의 세력을 누르고 추방함으로써 당신이 참된 구세주이시며 세상에 구원이 다가왔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는 궁극적으로 구세주 예수님이 죄악에 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돼 있고 그의 파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한 것과 같이 악의 세력을 제어하고 악령을 쫓아내는 힘을 받았다(마태 10,8 루카 10,7 마르 16,17).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이러한 구마의 힘까지도 이어받았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한테 구마한 사례를 순교자 유스티노와 오리제네스 등이 전해준다.
그리스도교 입교를 지원하는 사람들에게도 구마 예식을 베풀었다. 지금도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신자들에게 구마 예식을 교회는 행하고 있다.
구마 예식하면 보통 세례 때 간단하게 행하는 것만 생각할 수 있으나, 간단한 형식의 구마예식과 달리 ‘장엄 구마’(magnus exorcismus)라고 하는 마귀 쫓는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은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히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 질환과 마귀 들린 것이 혼동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별력을 지니고 검증을 통해서 구마를 행하기 전에 질병이 아닌 마귀 들린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구마예식으로는 세례 때 행하는 ‘마귀를 끊어버림’ 예식이다. 이를 통해서 세례후보자들은 마귀와의 단절을 결심한다. 주례자는 이렇게 세례후보자에게 묻는다.
“그대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고자 죄를 끊어 버립니까? 죄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죄의 근원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이 물음에 정확하게 답을 해야 신앙고백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곧 참된 신앙은 죄와 악의 유혹, 마귀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 이후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세례 때의 결심과 약속은 희미해지고, 다시 죄를 짓고 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며 마귀의 소리에 귀가 얇아지는 경우들을 체험한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 성야 미사 때 세례 갱신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세례 때의 결심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부활시기에 행하기를 권장하는 성수예절을 통해서 세례의 은총을 상기시킨다.
한국 초기 신앙공동체는 마귀를 쫓는 구마 예식에 대해 매우 신중했고 미신적 요소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특히 우리를 하느님에게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모든 작용을 일으키는 주체를 마귀로 정의했다. 곧 미사에 참례하지 않게 방해하는 마음의 책동을 일으키고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마음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미워하는 분노 등을 말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기도서인 「성교공과」에 특히 기도생활과 성사생활 그리고 지킬 도리를 방해하고 유혹하는 존재로서 사탄과 마귀가 언급된다.
필자가 신학교 때 방학을 앞두고 9일 기도를 하면서 부르는 라틴노래에는 신학교를 떠나 방학 때 신학생을 유혹해 기도하지 않게 하고 세상의 쾌락에 눈을 돌리게 하는 마귀로부터 구하시어 다시 개학 때 신학교에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는 라틴가사가 있다. 어쩌면 지금 현대의 감각으로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가사지만 그 당시 순수한 신학생의 마음에 깊은 묵상과 의지가 된 노래였다.
우리는 마귀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느님을 잃고 방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구마 예식과 구마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일부 성령기도에서 구마자(驅魔者), 구마 은사자 혹은 마귀가 붙어있는 사람을 지칭해 부마자(付魔者)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호칭의 무분별한 사용은 신자들에게 커다란 신앙의 오류와 인격적인 상처를 주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단계별 어른 입교 예식에 나오는 구마 기도를 소개하면서 마치겠다.
“주님, 저희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삶을 가르쳐 주시고 더러운 죄악을 없애시며, 믿음을 굳게 하시고 희망을 불러일으키시며 사랑을 길러 주시니, 사랑하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힘으로 청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여기에 있는 주님의 종들에게서 불신과 의혹, 물욕과 음욕, 불화와 증오, 그 밖의 온갖 사악을 물리치게 하소서. 주님께서 이들을 부르시어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살게 하셨으니 이들에게 믿음과 정성, 인내와 희망, 절제와 정결, 사랑과 평화의 영을 새롭게 부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해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