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신 맞서 참 하느님 증명한 엘리야상(像) 우뚝
‘탈출기’ 경험에도 줏대 없이 우상숭배 매달린 백성에게 진정한 신앙 일깨운 현장
이스라엘 북서쪽 지중해 연안에는 카르멜 산이 있다. 성경에서 카르멜 산을 접하면, 우리는 흔히 산봉우리 하나를 상상한다. 그러나 카르멜은 여러 산이 연결된 산맥이며, 해안을 따라 병풍처럼 25km 가량 뻗어있다. 이스라엘에는 민둥산이 많으나, 카르멜은 유달리 나무가 우거져 아름답다. 곳곳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들도 보인다. 고대에는 이곳으로 죄지은 이들이 자주 숨어들었던 것 같다(아모 9,3: “그들이 카르멜 꼭대기에 몸을 숨겨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내어 붙잡아 오고” 참조). 특히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카르멜 산 위용이 인상적이라, 가나안의 옛 선원들은 신들의 거주지로 여겼다. 게다가 고대인들은 하늘도 신들의 영역이라 믿었기에, 주로 높은 산에 제단을 만들었다(이런 제단이 성경에 자주 나오는 ‘산당’high place의 시초다). 그래서 카르멜 산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 ‘거룩한 산’이라 기록될 만큼, 다신을 숭배하던 중심지였다. ‘카르멜’의 뜻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하느님의 포도원’으로 추정한다. 엘리야가 참하느님을 증명했다고 전해지는 지점은 카르멜의 한 봉우리로서, 해발 482m 가량 된다. 현지 말로는 ‘무흐라카’라 하는데, ‘불의 제단’을 의미한다.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에 맞서 제단을 쌓았을 때, 하느님이 불로 응답하셨기 때문이다(1열왕 18,20-40).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 당시 재위한 임금은 아합이다. 아합은 종교적으로 혹평을 받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능한 실력자였다. 그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페니키아와 관계를 증진하려고,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정략 결혼한다(1열왕 16,31). 그때 이제벨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가 정식으로 북왕국에 들어오게 된다. 물론 바알 숭배가 그때 싹텄다는 말은 아니다. 그전부터, 가나안의 잔재라 해야 할까? 억제돼 있었으나 암암리에 존재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의 아들 또한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바알’이었다(1역대 8,33). 그러니 이제벨의 등장에 바알 신앙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아합은 아내의 영향으로 야훼 신앙에 소홀해졌으나(1열왕 16,31-33), 완전히 버린 것 같지는 않다. 아합의 아들 이름이 각각 아하즈야(1열왕 22,52)와 요람(2열왕 3,1)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들은 ‘야훼께서 붙잡으시다’, ‘야훼께서 들어 높이시다’라는 의미를 띤다. 곧, 아합은 한 종교를 택하기보다,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의 종교를 결합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탈출기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바알과 아세라에게 그토록 유혹을 받았나? 이유는 간단하다. 물 귀한 이스라엘에게 비의 신 바알과 풍요의 여신 아세라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다다익선이라고, 하느님뿐 아니라 이 신들도 조금씩 섬겨 주면 힘이 갑절이 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엘리야는 이런 줏대 없는 태도에 반기를 들고,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친 채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하며 백성을 꾸짖는다(1열왕 18,21). 성경은, 그가 카르멜 산으로 바알 예언자 450명을 불러 모았다고 전한다. 그런 다음 각자 제단을 쌓고 제물을 올린 뒤, 불로 응답하시는 참하느님이 누구신지 내기를 걸었다고 한다. 바알 예언자들이 먼저 황홀경에 빠져 피까지 내면서 신을 부르지만, 응답이 없었다(1열왕 18,28-29). 그러자 엘리야는 12개 돌로 옛 제단을 복구하고, 그 위에 제물을 올렸다. 제단에는 4차례씩 3번 물을 갖다 부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기에(1열왕 18,2), 제단에 부은 물은 그야말로 피와 같은 것이었다. 곧, 이 상징 행위를 통해, 비를 관장하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야훼 하느님임을 증명하려 했다. 그때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을 삼키고 물까지 핥아 버렸다고 한다. 참하느님이 증명되고 난 뒤에는 북왕국을 짓누르던 오랜 가뭄도 해소된다(1열왕 18,41-46).
카르멜 산에는 현재 가르멜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엘리야 기념 성전이 있다. 성당 안에는 12개의 굵은 돌로 이루어진 제대가 봉헌되어 있다. 이 제대는,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며 쌓은 제단을 재현한 것이다. 타락해가던 북왕국에 참신앙의 불을 다시 붙인 카르멜! 이곳은 구약성경에 얽힌 성지이기에,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이 함께 찾아오는 일종의 종교적 화합 장소이기도 하다.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