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성신연구소는 중국에 관한 세계 최대의 연구소로 알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성신연구소 설립 당시부터 연구소를 이끌었고, 교구장직에서 은퇴한 뒤 다시 연구소로 돌아오셨는데요. 이 연구소에 몸을 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통혼 추기경(이하 통 추기경) :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70년에 홍콩으로 돌아와 맡은 직분이 바로 홍콩 성신신학대학 교수였어요. 신학생들에게 교의신학을 가르쳤죠. 당시 중국 본토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그렇게 10여 년 정도 본토와 홍콩에서 신학생 양성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1979년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방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보편교회는 중국과 연락할 끈이 없었고, 중국과 연락을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죠.
중국 개방 이후 당시 홍콩교구장이신 우쳉충 추기경께서 홍콩교회가 보편교회와 중국교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보편교회 역시 홍콩과 홍콩교회가 중국교회와 관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홍콩교회가 중국교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길 바라고 있었어요. 이에 우 추기경께서는 성신연구소를 설립하고 중국과 연결끈이 있었던 저를 소장으로 임명하셨죠.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당시 중국에 관심을 갖고 있던 선교회 선교사들의 참여가 큰 힘이 됐습니다.
▲장 국장 : 중국교회는 거대한 영토에 산재해 있는 만큼 중국교회에 대한 소식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중국 정부가 종교 활동을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교회는 정부와 불편한 관계 속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중국교회를 이해하기 위해 성신연구소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통 추기경 : 우리는 주로 중국에 관한 정보를 수집, 보관,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영어와 중국어로 발행되는 정기간행물을 모으고, 일간지도 분석하죠. 연구소는 계간지 「트라이포드」를 발행하는데, 우리가 분석한 연구 자료를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10년 동안 중국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사제와 수도자 등 교회 인사들의 왕래를 허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지어 지하교회 성직자들도 외국에 나갈 수 있게 됐어요. 우리는 이 기회를 활용해 홍콩에 오는 중국교회의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중국 정부는 보통 성직자들이 일주일 정도만 외국을 왕래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 때문에, 우리는 2~3개월에 한 번씩 일주일짜리 양성프로그램을 마련하죠. 이 세미나에서는 본당 운영 방법을 비롯해 결혼과 가정, 본당 청년 사목 등을 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장 국장 : 성신연구소는 중국교회에 관한 정보 수집과 중국 성직자 양성 외에도 해외의 자선기금과 중국교회의 사회복지기관 등과 연결시켜 도움을 주고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성신연구소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통 추기경 : 신학교 교수로서 제 역할은 주로 신학생의 양성이었습니다. 물론 100여 차례 중국 본토를 드나들며 중국에 있는 10여 개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었죠. 연구소 소장으로서 중국교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도 중국의 신학생 양성에 큰 관심을 갖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연구소는 중국에서 오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증언을 통해 중국교회의 현재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합니다. 세미나 기간 동안 다양한 논의를 통해 이들은 중국교회 소식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죠.